머릴 들어 온 사방을 둘러봐도 구름 한 점 없이 말끔하게 갠 하늘은 가을 날씨답게 드높고 푸르기만 했다. 눈앞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앞산은 푸른 소나무 사이에 서 있는 잡목들이 제가끔 앞을 다퉈 담황색의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렇듯 자연은 그 모두를 한데 어우러져 계절의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참한 모습에 잠시인들 도취되어 있으려니 오묘하기 그지없는 자연의 법칙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산자락 아래 아담하게 자릴 잡은 내 작은 초가집에도 활기찬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영롱한 아침 햇살이 참한 모습으로 가득 내려 쪼이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굴뚝에서는 홍연(紅煙)이 바라보기 좋을 만큼 피어올랐다.
울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광활한 논산들녘은 추수가 끝나 고적하리만큼 텅 비워 있지만 그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들녘너머로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지평선엔 강경 읍내의 풍광이 눈에 익은 듯하게 바라보였다.
시간은 벌써 아침녘인데 시차를 잊은 듯 온 마당이 자기 영역인양 해묵은 장닭이 목을 길게 빼 내밀고 두 날개를 푸덕이며 머적없이 울어댔다. 추녀 밑에 매달린 볏짚으로 만들어 새끼줄로 매달아 놓은 둥우리에서는 암탉이 알을 낳고 나오는 것 같았다. 두 날개를 펼쳐 땅으로 조심스레 뛰어내리며 ‘꼬고댁꼬꼬,꼬꼬댁꼬꼬’ 시끄럽게 울어댔다.
이른 아침부터 아랫마을에 제 짝을 찾아 다녀왔는지 검둥이도 목을 세차게 돌려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있었다. 그리고 앞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길쭘한 입을 볼썽사납도록 크게 벌려 기지개를 켰다.
앞산 마루터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짙게 묻어오는 황토 냄새가 더없이 상큼하기만 했다. 이런 넉넉한 자연의 배려가 군데군데에서 배어나 비록 간고한 삶일지라도 살아가는 의미를 나름대로는 뜻 깊게 새길 수 있었다. 또한 그런 깊은 의미는 거친 세파 속에 강건하게 자랄 수 있는 큰 힘을 부여하는 원천이 되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세수를 하려고 텃밭을 내려서 원두막을 지나 도랑가에 발길을 멈췄다. 물 위에 앙증맞은 자세로 둥실 떠 있는 물옥잠의 푸른 잎이 햇빛에 반득이었다. 얼굴을 씻으려 물에 손을 담그니 물에 닿은 두 손이 여법 차가워 가을이 깊어 감을 새삼스레 느꼈다.
철길 건너 기현네 집에는 기현이 할아버지가 밭은기침을 하시면서 허릴 굽혀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알뜰하게 쓸고 계셨다. 옆집 흥남이 아저씨는 뒷산에서 베어 온 싸리나무 둥치를 뒤척여 마당에 펼쳐 널고 계셨다. 아마도 올곧게 뻗은 가지들을 골라 지게바작과 삼태기 그리고 통발을 엮으시려는 것 같았다.
도랑가에는 아주 작은 면적의 땅을 둘로 째어 심어 놓은 채소밭이 단작스럽게 달라붙어 있었다. 성글게 자란 무의 푸른 이파리에 맺힌 이슬방울이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났다.
언덕바지 수수밭에는 지나가던 산새가 잠시 쉬어 가려는가 한참 동안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푸석하게 줄기만 남은 수숫대 끝머리에 목말을 타듯 앉아 있었다. 가늠한 수숫대가 참새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따라 간당거렸다.
도랑가에 앉아 가볍게 얼굴을 훔치고 있는데 면소재지 화산리로 이어진 텃밭 쪽에서 멧새들이 요란스레 우짖으며 떼를 지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어 자연스레 눈길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모아졌다.
그때 산마루턱까지 이어진 오솔길 아래로 추레한 옷차림의 아주머니 한 분이 등 뒤에 아기를 둘러업은 채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모습에 검둥이가 싸리 울 밖으로 뛰어나와 사정없이 짖어댔다. 사립짝 밖에 찾아온 낯선 사람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지 마냥 으르렁거리는 검둥이를 소리쳐 떨쳐놓았다.
아주머니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니 머리칼 군데군데에 볏짚의 검불이 묻어있어 행색이 너무도 남루했고 퍽이나 지친 모습이었다. 지난밤에 어딘가에 쌓아놓은 볏짚더미에서 잠을 자고 나오신 것 같았다.
검둥이가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듯 등 뒤에 업힌 아기가 이내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밖이 너무 소란하자 어머니가 부엌에서 밖으로 나오시며 말씀하셨다.
“아니 밖에 누가 왔다냐? 되게 시끄럽네. 근데 이 분네는 첨 보는 사람인디 누구시래유?”
자못 궁금해 물어보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아주머니께서는 역시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에 멍하니 ‘목마른 송아지 우물 찾듯이’ 그저 집 안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조금은 답답하시고 이상스러우신 듯이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아니 누구냐닌까유, 왜 말이 없어유? 그리구 요기는 뭔 일루 왔는감유?”
그래도 역시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이 어머니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만 보셨다. 옆에 있던 내가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아주머니에게 다시금 말을 건넸다.
“아줌니 누구시냐구유? 그리구 여기 우리집엔 뭣 땀시 왔냐구유?”
역시 단 한마디 말이 없으신 아주머니가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셨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등 뒤에 엎으신 아기를 어깨로 들썩거리시며 한 손으로 배를 두드려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하셨다.
“음, 말 못하는 벙어리이구먼 그려, 에휴. 그리구 어린 애가 배고프다는 말인가 본데 으짠다냐?. 더군다나 날씨한질라 쌀쌀헌디 애기가 춥긋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여 안으로 들어가야 쓰긋다.”
어머니가 서둘러 아주머니를 향해 집안으로 들어가자는 손짓을 하셨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제서야 어눌한 말소리를 입 밖으로 내시며 집으로 들어오셔 마루에 앉으셨다. 그리고 등 뒤에 업고 있던 아기를 앞으로 보듬어 끌어안으셨다.
어머니가 나를 흘깃 바라보신 후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마루 옆에 서 있으려니 불어오는 산바람에 아주머니의 때 묻은 옷에서 나는 냄새가 뒤섞여 조금은 꺼림칙했다. 그러나 생글생글하게 웃고 있는 아기의 천진스런 얼굴이 귀엽고 탐스럽기만 했다. 거칠 대로 거칠어진 아주머니의 얼굴과 티 없이 맑은 아기의 모습이 마음 한편으로는 왠지 측은했다.
그런 측은함은 아버지 없이 자라는 내 모습과 아기의 처지가 같은 점에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얼마 후 부엌에서 어머니가 그릇에 밥물을 담아 입으로 불어 식히며 나오셨다. 그리고 밥물이 뜨거울까 싶어 수저로 밥물을 몇 차례 저어 아주머니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얼른 밥그릇을 받아 입으로 후후 불어 아기의 그 작은 입에 떠 넣어주었다. 그런 모습이 어머니도 마냥 측은하게 보였던지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집 나온지 꽤나 되는 모양인디, 날씨야 아직까정 춥지는 않으니 다행이지만서두 혼자 몸두 아니구 애까장 델구 저러구 다니니 애가 고생이다 그러다 탈이라두 나면 저 어린 목숨 손두 한 번 못 써 보구 죽는건디 에휴.”
어머니가 못내 짠하신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아침 밥상을 차리려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아기가 입으로 서툴게 받아먹어 밥물이 입 주위로 흘러내리자 아주머니가 아기를 바짝 추스르며 안고 입으로 밥물을 담아 아기 입에 대고 혀끝으로 밀어 넣어주셨다.
그런 가슴 뭉클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 어느 봄날 추녀 밑에 둥지를 튼 어미 제비가 어린 새끼들의 노란 주둥이에 입에 물고 온 먹이를 쏙 넣어 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남루한 옷차림의 아주머니보다는 아기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앞서기 시작했다. 비록 미력하나마 어떤 방법으로든 도울 수만 있다면 돕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애틋한 마음은 순수한 동정심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매사에 미약한 나는 아주머니와 아기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그리 쉽사리 떠오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