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내 너른 들녘에 노닐던 해가 저녁나절이 되자 읍내로 이어진 금강 둑 위에 느긋하게 머물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둥그런 몸을 큼직하게 부풀리며 읍내 서편 봉화재의 느티나무 위에 몸을 뉘일 것 같았다. 그때쯤이면 온통 붉은빛으로 온 주위에 탐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을 남길 것처럼 느껴졌다. 서편 들녘으로 부터 이따금씩 불어오는 갈바람에 얼굴이 간지러웠다.
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 비교적 홀가분한 마음으로 냇둑 위를 걸었다. 햇살에 번질거리는 납작한 차돌멩이 하나가 발길에 걸렸다. 얼른 주워 손에 들고 물결 위에 비스듬하게 던져 물수제비를 떴다. 그때 옆에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옥순이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야, 상민아! 아침에 니가 말하다가 말은 거 있잖냐? 그게 뭔가 말 좀 혀봐. 하루 종일 참 궁금했는디.” “음, 그게 뭐냐면 오늘 아침 우리 집에 어떤 아줌니가 애기를 업구 왔어. 근디 무신 말 못할사정이 있는가는 잘은 모른건는디 옷 입은 것두 그렇구 참 불상허게 보이드라. 집두 없는지 이 집 저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모양 같더라구 근디 애기는 엄청 이쁘게 생겼드라. 아침에 내가 학교 올 때쯤 우리 동네로 안 족으로 들어 갔는디 어디루 갔는지 참말루 걱정이다.” “음, 그랬구나! 근디 아줌니가 왜? 자기네 집에서 나와 얻어먹구 다닌다냐. 애기두 딸렸다면서, 뭐땀시 고생을 하고 다니는가 물어보지 그랬냐?” “참, 어떻게 물어보냐, 그 아줌마랑 말이 안 통하는디, 말을 못 허는 벙어리라구, 인제 알았냐?” “음, 말 못하는 벙어린가 보구나, 누군지는 몰라두 참 불쌍하다. 애기는 증말루 이쁘데?” “응 그려, 너무 이쁘구 귀엽더라구, 그래서 울 엄니가 아기 먹이라고 밥물도 끓여 줬어.” “야, 상민아! 그럼 동네루 갔으면 누구네 집이나 동네 고샅길 어디에 있겄네. 우리가 한번 찾아보면 되긋다.” “응, 안 그래두 책보따리 얼른 집에다 갔다 놓구 동네 가서 한번 찾아볼라구 생각했어.” “그럼, 내가 건널목에서 기달릴 텐께 빨랑 갔다 와라 꾸물럭거리지 말구.”
햇살에 잘 반사된 송신선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곧게 늘어서 있었다. 건널목에선 옥순이가 내가 집으로 가서 책보자기를 놓고 얼른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에 대한 궁금한 마음에 추수가 끝나 텅 비어 있는 논배미를 냉큼 가로질렀다. 그리고 도랑가에 닿아 뒤뚱거리며 디딤돌 위를 건넜다.
휑하게 빈 밭을 홀로 지키는 원두막을 지나 집으로 달려가 마루 위에 책보를 내려놓았다. 함께 따라나서려고 사립문 밖까지 따라나서는 검둥이를 큰소리쳐 겨우 떼어놓았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추수가 끝난 논길을 가로 질러 건널목으로 와서 옥순이와 함께 동네로 향했다. 그런데 동네 어귀 둥구나무 밑에서 동네 꼬마 녀석들이 아주머니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히득거리며 마구 놀려 대고 있었다. 그래서 옥순이를 뒤로 제치고 서둘러 먼저 뛰어가 보니 아이들이 아주머니에게 흙덩이를 던지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거지라네유, 거지래유, 으덩박씨 땅그지래유.”
짓궂은 아이들은 어디론가 피하려는 아주머니 뒤를 줄지어 쫓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뒤를 돌아 아이들을 바라보며 더 이상 성가시게 굴지마라는 투의 어눌한 말소리로 소릴 치고 있었다. 나도 몇 해 전 바로 그 자리에서 동네 형들로부터 당했던 그 쓰라린 기억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아이들을 향해 아주 큰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 느그덜 안 떨어질래? 어서 싸게 떨어지라구 이 자식들아! 말 안 듣는 놈들은 절대루 가만히 안 둘 틴께.”
그리고 그중 꼬마대장 격인 기남이를 잡아 멱살을 꽉 붙들고 흔들어댔다. 기남이가 평소와는 달리 과격해진 내 행동에 놀랐는지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나머지 아이들은 동네 안으로 쫓기는 참새 떼처럼 도망을 쳤다.
누렇게 메말라 떨어진 느티나무 잎들이 여법 쌓인 둥구나무 밑에 아주머니는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서러움에 흐느끼시는 것 같았다.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등 뒤에 업은 아기도 시끄러운 소리에 놀랐는지 큰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옆에 서 있던 옥순이가 내게 말을 했다.
“참, 아무리 철딱서니 없는 애들이래두 그렇지, 에이구 불쌍하지두 않남. 그리 인정머리 없게 놀리구 지랄들 허게. 야, 상민아! 그런디 아줌니가 디게 젊어 보인다.”
아주머니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곁눈질로 등 뒤에 업힌 아기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주머니에게 다가서 위로를 하려고 하는데 아주머니께서 반가운 눈빛으로 얼른 내 얼굴을 쳐다보셨다. 아침나절 우리 집에서 그 짧은 만남이었지만 반가우신지 얼른 저고리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셨다. 그리고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로 애를 써 손짓을 곁들여 반갑다는 표현을 하셨다. 그런 안쓰러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구석에 애잔함이 절로 묻어났다.
아주머니의 그런 측은한 모습에 더 이상 그 곳에 주체할 수 없었다. 눈물을 훔치시는 아주머니를 향해 아주 서툴고 어색한 몸짓으로 집으로 같이 가자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아주머니께서는 좀처럼 나를 다라 나서려 하질 않았다. 그리 한동안 망설이시기에 내가 아주머니 곁으로 다가서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그제야 못이기는 척 발길을 옮기려 하셨다. 옥순이에게 먼저 집으로 가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머니 등 뒤로 다가와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참, 귀엽게 생겼네. 우리 조카보다 훨씬 더 이쁜 거 같다. 상민아, 그럼 지금 니네 집으로 같이 갈라구 그러냐? 근데 니 맘은 잘 알것는디 니네 엄니가 받아 줄랑가 모르긋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해볼라구 혀, 울 엄니두 불쌍하다구 해서 잘은 몰러두 아마 반대는 안 할 거야. 그리구 애기두 이쁘다구 안어주구 했으닌께.” “그럼 시방 니네 집으로 바로 갈껴, 갈라면 얼른 가 봐, 나두 집으루 갈란께 그럼 낼 보자.”
조금 약삭빠르긴 해도 심성이 고운 옥순이는 그래도 아기 생각에 영 마음이 짠한지 동네로 걸어가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고샅길 안으로 걸어갔다.
아주머니와 함께 마을 앞 나무다리를 건너 마을 큰길을 걸어 방죽가에 닿았다. 포근한 오후 햇살에 방죽가에서 한가롭게 졸고 있던 오리들이 발걸음 소리에 놀랐는지 앞을 다투어 방죽 물속으로 ‘텀벙 텀벙 텀벙 텀벙’ 뛰어들었다.
철길 건널목을 건너 언덕배기에 오르자 어김없이 검둥이가 뛰어왔다. 처음엔 아주머니를 보고 머리를 한두 번 갸웃거렸다. 그러나 내가 함께 있어 그런지 이내 긴장을 풀고 내 곁으로 다가서 아주머니를 향해 짖지 않았다.
부는 바람 스산하게 느껴지는 텃밭 모퉁이를 지나 집안으로 들어섰다. 마루에 앉아 아주머니에게 밥을 먹었냐는 표현을 하려고 손으로 내 입을 향해 숟가락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고개를 좌우로 저으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차리려 그릇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부엌으로 따라 들어오셔 아주머니가 하시겠다는 손짓을 하셔 주춤댔다. 시렁에 올려 있는 소쿠리에서 밥을 덜어 담고 반찬 그릇을 챙겨 밥상을 드시고 마루에 와서 함께 앉아 밥을 먹었다.
아기가 걱정이 되어 밥물을 줘야 되지 않느냐고 아주 힘들게 손짓으로 묻자 고개를 끄덕이셔 아기의 밥물을 끓여 주려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아주머니께서 양은냄비에 밥을 물에 말아 풀고 계셨다. 내가 걸쇠를 찾아놓고 산에서 주워 모아 놓은 관솔에 불을 붙이려고 부엌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입으로 불었다. 그러자 고맙다는 뜻으로 아주머니가 웃고 계셔 나도 함께 웃었다. 등에 업힌 아기의 볼 살을 가볍게 손끝으로 만져주었더니 아기가 나를 바라보며 생글생글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거짓 없는 아기의 웃음에 왠지 마음이 포근해졌다. 참으로 적적하기 더없던 우리 집이 처음으로 사람의 훈기로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