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흔쾌한 마음으로 마당 한 가운데에 서서 앞산과 들녘을 바라보았다. 온 사방이 짙은 안개에 가려져 시야가 잔뜩 흐렸다. 깊어가는 가을의 진면모를 보여 주듯 한낮으로는 날씨가 아주 맑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서둘러 잎새들을 떠나보낸 벚나무 가지엔 작은 산새 한 마리가 곡예를 하듯 나뭇가지 위아래로 촐랑거려 아침을 부르고 있었다. 마른 가지에 힘겹게 매달린 이슬 한 방울이 내 목덜미에 차갑게 떨어졌다. 맑은 공기를 듬뿍 들이마셔 기분을 상쾌하게 하려고 가슴을 활짝 펴보았다.
싸리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울타리 너머로 주막집이 작달막하게 보였다. 면소재지를 향해 굽어 도는 언덕배기엔 허연 억새풀이 쓸쓸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산바람에 희뿌연 긴 목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부엌문 앞에 걸쳐놓은 가마니를 둘둘 말아 걷어올린 부엌에서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불길이 활활 잘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 오붓하게 앉아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몸짓에 손짓을 곁들이시고 그것도 모자라신 듯 부지깽이를 들고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열심히 표현하시려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곁에 앉으신 아주머니께서는 더듬더듬 뜻이 통하시는 듯 성글게 웃고 계셨다. 아마도 그분들 나름대로 어렵게 의사소통을 하시며 아침밥을 짓는 것 같았다.
막상 잠에서 깨어난 지가 얼마 되질 않은 탓에 입안이 껄끄러웠다. 양치질을 하려고 소금 종지를 찾으려 부엌으로 들어섰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부뚜막에 걸린 가마솥 뚜껑 가장자리에서 허연 거품을 내며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부엌을 나서려는 나에게 어머니께서 말씀을 건네셨다.
“또랑가에 갔다 오면서 배추 야무진 걸루 두 포기만 뽑아 오너라. 이제는 한 입 더 늘었으닌께 건건이라두 할라면 짐치라두 푸짐허게 담으야 쓰것다.” “근디, 무신 말들을 그리 다정허게 했데유?” “야, 넘덜은 이 사람이 그저 남네 집 대문 밖에서 얻어먹구 다닌다구 우습게 볼려나 몰러두 그냥 얼추 대강대강 말을 들었지만서두, 김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구 막고생을 해서 그렇지 사람은 야물딱지기만 허다. 에휴, 말을 못 허는 거 그게 흠이지. 저 젊은 나이에 어린 걸 데리구 을매나 고생이 심했것냐?”
어머니께서 밥반찬을 하려고 지붕 위에 올려 잘 말린 나물거리를 볶으시려는지 걸쇠 위에 냄비를 올려놓으셨다. 아주머니는 부엌 벽에 매달아 놓은 마늘 한 접에서 몇 개를 뽑아 겉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초라하고 비좁기 더없는 작은 오두막집 지붕 밑에서 우리 네 사람은 그렇게 서서히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른들 말씀에 사람의 훈김이 무섭다고 두 식구가 늘어난 집안이 그 날 따라 그리고 훈훈하기만 했다.
배추밭 갓길 따라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면서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원두막을 바라보니 고적감만 더했다. 그런 기분을 더욱 부추기듯 멀리 샛강 철교 옆 원목다리 위로 하얀 솜구름 한 자락이 외롭게 떠 아주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강경 읍내 경계지점에서 동쪽으로 약 2km 쯤을 떨어진 마을 어귀 샛강에 원목다리가 있다. 아주 오래 전 옛사람들은 그 곳에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사람들 모두가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만 했다 그 강 위에 놓인 원목다리의 형태는 세 개의 무지개 형상으로 이루어 놓은 홍예다리였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의 흐름 속에 다리의 일부가 훼손되어 다소는 흉하게 보였다.
조금 멀리 바라보이는 동구 밖에는 비석골 밭에 고구마를 캐러 가는가? 기성이형이 바지게를 지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시는 기성이형 어머니의 모습이 조금 멀찍하게 보였다.
세수를 마치고 텃밭에서 뽑아온 배추를 토방 위에 내려놓자 아주머니께서 부엌칼을 들고 나오셔 배추를 다듬어 소금을 고루 뿌리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기를 자기 자식인양 품안에 보듬어 얼러주셨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앞산 어딘가에 묻었다는 내 누나 생각이 났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그런 아픔을 간직하신 마음에 더욱 아기에게 잘해 주시려는 것 같았다.
방안에는 눅눅해진 벽에서 배어나는 흙냄새가 반찬 냄새와 한데 어우러져 지긋하게 풍겼다. 그래도 그런 냄새가 코에 살갑게 와 닿아 방안이 훈훈한 기분으로 꽉 들어차는 것 같았다. 우리 네 사람이 서로 머릴 맞대고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쳤다.
어머니께서 읍내로 장사를 나가시며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집에만 계시라고 몇 번을 반복하여 손짓을 하셨다. 그리고 아기를 한 번 더 보듬어주시고 마당 밖을 나서 밭둑길을 걸어가셨다.
어제 먹다 남긴 찬밥 한 덩이를 물에 말아 검둥이 밥그릇에 챙겨 주었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주섬주섬 책들과 도시락을 챙겨 책보자기를 들고 토방에 내려섰다. 그때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물 묻은 손으로 나오시며 나를 바라보고는 웃는 얼굴로 배웅해 주셨다.
“야, 검둥아! 넌 쓰잘데없이 아랫마을로 마실만 가지 말고 아줌마랑 애기 잘 지켜주구 몰르는 사람 오면 세게 짖어라, 알았냐?”
어머니가 읍내로 장사를 나가시고 나 또한 학교에 가고나면 텅 빈 집에 홀로남아 계실 아주머니와 아기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책보자기를 묶은 끈을 한쪽 어깨에 걸쳐 메고 마당을 나서며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고 텃밭으로 내려섰다. 학교에 가려고 철길 건널목을 향해 걸어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아주머니께서 내 뒷모습을 몇 번씩이나 바라보고 계셨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나름대로는 서로의 정이 깊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도랑 건너편을 바라보니 옥순이가 건널목에서 주춤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빨랑 좀 와라, 요새는 맨날 늦게만 오구 그러냐, 또 애기 땜시 늦었냐?” “아녀, 그런 게 아니구, 울 엄니가 짐치 담는다구 해서 배추 좀 뽑아오느라구 쬐금 늦었구먼 뭘 그러냐.” “근디. 그건 그렇구, 아줌니허구 애기는 니네 집에 있기루 했냐?” “응, 우리집에 있어. 그리구 울 엄니가 날두 싸늘해지는디 애기 감기라두 걸리면 어쩌냐구 하면서 우선은 우리 집에 같이 있게 한다구 했어.” “야, 증말루 잘됐다. 나두 애기 땜시 은근히 걱정 많이 했는디. 내가 울 엄니헌티 말 하닌까 울 엄니두 니 엄니가 맘이 약해서 그냥 내보내지는 못할 거라구 하더라.” “그런디, 울 엄니가 시방은 장사를 허지만 겨울에 되게 추우면 장사두 못 나가는디 뭘 먹구 살랑가 무지허게 걱정된다. 그 아줌니 밥두 나만치는 엉청나게 많이 먹든디.”
옆에 함께 걸어가는 옥순이를 바라보며 멋쩍게 씩 웃었다. 그러자 옥순이가 내 걱정을 덜어줄려고 그러는지 웃으려고 그냥 하는 말인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야, 지금은 속이 비어서 그렇게 많이 먹을란가 몰라두 을매 안 있으면 그렇게 많이는 안 먹을 거야. 왜냐면,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밥을 많이 안 먹거든.” “야, 그럼 너는 여자인디두 밥을 왜 그렇게 많이 먹냐?” “야, 너 내가 밥 많이 먹는 거 언제 봤는디? 언제 봤냐구”
큰소리로 말을 하며 부루퉁한 얼굴로 내 어깨를 가볍게 떠밀며 오목한 입을 잔득 오므리고 가볍게 눈을 흘겼다. 상명한 가을 날씨답게 하늘은 마냥 푸르기만 했다. 학교 울타리 높다란 측백나무 너머로 눈 시린 아침 햇살이 마을 쪽으로 부챗살처럼 널따랗게 퍼져 나왔다.
햇빛에 반사되어 번득거리는 물결 따라 개울 둑길을 걸어 수문 앞에 닿았다. 수문 앞에는 며칠에 한 번씩 동네로 장사를 하러 오시는 체 장수 할아버지께서 잠시 다리쉬임을 하시려는지 수문 교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등에 매었던 짐을 벗어 놓으시고 담배쌈지를 풀어 곰방대에 살담배를 오목하게 담아 꾹꾹 눌러 피우고 계셨다.
종구와 주현이는 자전거를 타고 우리들보다 한참을 앞서 간 듯싶었다. 비탈진 산기슭 비석골 비알밭에선 고구마를 캐고 있던 기성이형이 우리들을 알아보고 잠시 일손을 멈춰 손을 높이 들고 흔들어 주었다. 그래서 옥순이와 나 또한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함께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다. 이 모두가 한 하늘 아래 같은 마을에서 한 우물물을 먹고 사는 끈끈한 정인 듯싶었다. 은연중 온몸으로 베어오는 따스한 정에 마음이 무척이나 흐뭇해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샛터 마을로 이어지는 소롯길에는 이른 아침부터 면소재지 한약방에 다녀오는지 한 손에 한약 봉지 꾸러미를 든 아주머니가 잰걸음으로 새터마을 나들목으로 들어섰다. 바로 그때 마을 앞을 지나는 호남선 철길 위에는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몸을 약간 흔들며 텅 빈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