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해바라기가 비스듬히 기운 사립짝 앞에 꿋꿋하게 서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과의 만남을 위해 절치부심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그러던 해바라기가 이제는 회포를 맘껏 푼 듯 둥그런 머리를 무겁게 숙여 마치! 가는 계절을 배웅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땡볕에 누렇게 그을리며 수놓았던 여름날의 숱한 기억들을 되뇌는 것 같아 마냥 애처롭게도 보였다.
서늘한 바람이 잔잔하게 머무는 울밑엔 하얀 소국이 해말끔한 아침 햇살에 순백한 모습으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마도 뻘쭘하게 대궁만 남긴 채 불어오는 바람에 건들거려 쓸쓸함만 더하는 해바라기의 일그러진 심성을 그라도 아울러 주려는 것 같았다.
둔덕너머로 불어오는 산바람도 성숙한 가을 꽃향기에 취한 듯 잠시나마 꽃잎에 머물려는 듯했다. 도랑가 길섶에도 알록달록한 산국(山菊)들이 올망졸망한 꽃봉오리들이 저마다 앞을 다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불어 은은하게 번져나는 짙은 향기가 코끝에 싫지 않을 만큼 와 닿았다.
도랑가 빨래터에서 아주머니가 아기를 등에 둘러업으시고 식구들이 입었던 옷을 빨려는지 방망이질을 하고 계셨다. 아주머니와 말이 통하질 않아 의사소통이 정말로 힘들었다. 손짓 발짓 다해 동네 옥순이네 집에 볼일을 보러 간다고 말씀드리고 나서 빠른 걸음으로 언덕배기에 올랐다.
동구 밖에는 산기슭 밭에 고구마를 캐러 가시는 인식이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인식이 어머니가 머리에 흰 수건을 쓰시고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철길 건너 기현네 집 마당에는 기현이 할아버지와 흥남이 아저씨가 지붕을 새로 이으시려는지 볏짚으로 이엉을 엮고 계셨다.
앞이 시원스레 트인 텅 빈 들녘 저 멀리 원목다리가 보였다. 그 원목다리를 지나 작년 이른 봄에 새로 생긴 채운역의 모습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그 채운역을 중간 기점으로 하는 새로운 선로가 들어서고 있었다. 강경역을 출발하여 채운역을 거쳐 연무대역으로 가는 길이가 비교적 짧은 강경선 철로였다.
선로가 신설되는 그 자리에 흙을 돋우려고 공사를 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옷 색깔로 보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선로 보수 반 아저씨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였다.
노랗다 못해 황금빛으로 탱탱하게 영글어 가는 탱자나무에 울타리에 기현이와 동네 꼬마 녀석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아이들 저마다는 이엉을 엮고 있는 흥남이 아저씨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고 있었다.
뾰족뾰족한 가시 사이로 작은 손을 엇비스듬히 넣어 탱자를 따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울타리에서 번져 나는 잘 익은 탱자 열매 냄새가 향긋했다. 그중에는 며칠 전에 둥구나무에서 우리 집에 오신 아주머니를 벙어리라고 놀리다 나에게 멱살을 잡혀 혼쭐이 났던 귀남이도 있었다. 귀남이가 나와 서로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슬슬 피하려고만 했다.
심술이 얼굴에 가득 찬 귀남이는 동네 제 또래들 중에서 힘이 제일 세어 늘 대장노릇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동네에서 크고 작은 말썽을 곧잘 일으키는 개구쟁이였다.
귀남이네 집도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사는 형편이 간고했다. 조상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논은커녕 자드락에 눈곱만한 밭뙈기 하나 없이 어렵게 살았다.
귀남이 아버지가 종구네 논 몇 마지기를 소작으로 일구며 살았다. 그렇게 겨우 목에 풀칠이라도 하며 살았는데 몇 해 전에 귀남이 아버지가 폐병으로 심한 각혈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그런 탓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소작마저 잃게 되었다.
그래서 귀남이 어머니와 기순이 누나가 남의 집에 일을 다니며 근근이 살았다. 그러나 가을 바심이 끝나 일거리가 없어지자 살아나가기가 힘들었다. 생각하다 못해 귀남이 누나가 식구들 먹여 살린다고 군산 고무신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갔다.
그 후로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기순이 누나가 고무신 공장에 조금 다니다 그만두었다. 그리고 군산 비행장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미국 공군부대에 근무하는 군인을 만나 같이 산다는 뜬소문이 얼핏 들렸다.
지난번 추석에는 기순이 누나가 아주 달고 고소한 초콜릿과 은박지에 쌓여 있는 동글동글하고 납작하게 생긴 사탕을 가지고 왔다. 세상 태어나 처음으로 맛보는 아주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우러나는 오렌지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겉 포장지가 아주 예쁘게 생긴 양담배를 한 아름 가지고 왔다.
귀남이 어머니는 그런 부끄러운 소문이 날까 두려워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웃들에게 남모르게 나눠주셨다. 그런데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근질근질한 입을 통해 소문이 퍼져났다.
평소 기남이네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뒤에서 어린 나이에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온갖 흉을 보았다. 실컷 얻어먹고 안 보이는 뒤에서 소문을 내고 다니는 그런 동네 사람들의 이중성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여름에는 그리도 사람들이 모이던 둥구나무 아래도 가을걷이가 끝나자 약속들이라도 한 듯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 틈을 타 그만그만한 동네 아이들 몇 명이 모여 자치기 놀이와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여러 날 동안 정희누나 일로 신경을 쓰셔서 그랬는지 얼굴이 조금은 수척해 보이는 종구 아버지께서 고샅길을 걸어오셨다. 밤색 양복에 검정 구두를 신고 정희누나를 앞세워 화산리 교회에 같이 가려는 것 같았다.
고샅길 가운데에 있는 종구네 집 앞에 닿았다. 낯선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어김없이 거위 한 쌍이 ‘꺼어억 꺼어억’ 울어댔다. 마당에선 몰강스럽게 생긴 용만이가 ‘우르릉 우르릉’ 소리가 나는 새끼줄 꼬는 제승(製繩)기를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담 너머 방앗간에서는 방아를 찧는지 발동기 소리가 촐랑촐랑하게 들려왔다.
운치 있게 몸이 굽은 향나무 두 그루 오뚝하게 서 있는 동네 우물가를 지나 옥순이네 집 대문 앞에 이르렀다. 홍시가 될동말동한 감들이 먹음직스럽게 가지마다 매달려 있었다. 문득 대여섯 살 되었을 무렵 옥순이와 함께 나무 밑에서 감꽃을 줍던 일이 떠올랐다.
마루에서 머리를 빗고 있던 옥순이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마루 위에 앉으려는 나에게 궁금한 듯 말을 걸었다.
“야, 상민아. 채운역 있는디루 철로가 새로 생긴다구 하던디, 그게 생길라구 작년 가실부터 그렇게 논을 파 헤치구 그랬냐? 그 철로 길이 훈련소 어딘가루 가는거라 하던디,” “나두 잘은 모르는디, 작년에 채운역 생긴 것두 다 그 철로길 만들라구 그런거래 그리구 그 철로 길이 훈련소 연무대라는 디루 간다구 하는디 군인들을 실어 나를라구 만드는 거래.” “응, 그려! 연무대라구 허드라 그긴 군인들이 많은 디라구 하든디, 가끔 총소리 나는디 그긴가 보다, 상민아 넌 한 번이라두 가 봤냐?” “아니, 볼일두 없이 그 먼디를 뭐하러 가냐?” “허긴 그려, 그 먼디를 일부러 갈 일이 없긋다. 그리구 이게 울 엄니가 할머니네 집에 가면서 너 오면 주라구 싸 놓은 건디 이때가 니네 집에 갈 때 가지구 가.”
옥순이가 마루 위에 놓여 있던 포대 자루 하나를 내 앞에 놓았다.
“옥순아, 암튼 잘 먹을께, 고맙다구. 니네 엄니 한티두 꼭 전해 줘라 아줌니두 혼자 있는디 그럼 가 볼게.”
조금 전 마을 앞을 스쳐 지난 화물열차의 매캐한 석탄냄새가 묻어나는 연기가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이장님네 집 마당에서는 경수 아저씨와 기성이 형이 볏짚으로 이엉을 엮고 한쪽에선 삼식이 아버지가 매끄러운 솜씨로 이엉 곱새를 엮고 계셨다.
방앗간 지붕 위로 너르디너르게 펼쳐진 쪽빛하늘에 금시라도 푹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연자방앗간 높다란 가죽나무 가지 사이로 조개구름 한 자락이 여유롭게 머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