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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09 조회 : 1,622




그토록 기다렸던 수학여행에 대한 부픈 기대감에 잔뜩 들떠 있었다. 엊저녁 늦게까지는 날씨가 쾌청(快晴)하여 그런대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래도 밤사이 하늘이 무슨 변덕이라도 부릴까 싶어 가뜩이나 들떠 있는 마음에 조바심까지 겹쳤다.
수학여행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몇 번을 잠자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잠을 못 이루다 뒤늦게 겨우 잠이 들었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 수학여행의 날이 밝았다. ‘꼬끼오’ 하며 대나무로 둥그렇게 만든 닭둥우리 횃대에서 수탉이 목청을 높여 울어댔다. 힘껏 울어대는 수탉의 울음소리에 번쩍 잠이 깨어 얼른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 가운데 서서 이리저리 하늘을 둘러보니 아득한 동쪽 끝머리에 여명의 빛이 서서히 번져오고 있었다. 앞산 산릉선에 부연 안개 자오록하게 서려 여행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일 것만 같았다.

뭇 새들도 아직은 잠이 덜 깬 듯 소리가 나질 않아 아직은 아침이 이른 듯싶었다. 하루 동안에 여행을 다 마쳐야 하는 빠듯한 일정 때문에 모두들 이른 아침부터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식구들도 덩달아 일찍 아침식사를 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를 수밖에 없는 아기도 다른 날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났으나 다행히도 단 한 번도 칭얼대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정성껏 싸주신 김밥 도시락을 들고 사립문을 나섰다. 학교로 가는 냇둑에 오르려 언덕배기를 넘어섰다. 부옇게 밝아오는 이른 아침 햇살에 안개가 걷힐 랑 말 랑 하는 철길 건널목에 닿았다.
철길 건널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내 짝꿍 옥순이가 수학여행을 간다고 한껏 멋을 부렸다. 머리를 양쪽으로 곱게 빗어 땋은 그녀는 어디서 구했는지 도시락이 담긴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다. 옥순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하여 발길을 서둘렀다.

조금 뒤 몰강스럽게 생긴 용만이가 자전거 뒤에 종구를 태우고 발 빠른 움직임으로 페달을 밟으며 우리들 앞을 지났다. 그런데 자전거 뒷좌석에 종구 혼자만 타고 있어 주현이는 수학여행에서 빠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주현이 어머니께서 수학여행에 드는 비용이라도 줄여 보려는 심사에서 주현이가 수학여행에 참석하는 것을 말리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언짢았다.

서서히 물안개가 걷히는 냇가를 거슬러 종구가 타고 가는 자전거 뒤를 바쁜 걸음으로 따라갔다. 냇둑 건너 광다리로 넘어가는 언덕 위 큰길에는 버스 두 대가 약간의 사이를 두고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들을 수학여행 장소인 부여까지 태우고 갈 군용트럭을 개조하여 만든 머리가 앞으로 툭 튀어나온 버스였다. 그 당시 군내에 딱 두 대 밖에 없다는 관광용 버스였다. 그 뒤를 따라 화산리에 사는 아이들이 서둘러 걸어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자 두 반 선생님과 흰머리가 조금 벗겨지신 교장선생님이 수학여행에 함께 가시려는 것 같았다. 가죽 끈에 묵직하게 매달린 카메라를 목에 거시고 두 반 선생님들과 함께 ‘부릉부릉’ 시동을 걸어 놓은 버스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얼마 후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인원 파악을 한 후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무엇을 그리도 보고 싶었던지 서로 창가에 앉으려고 가벼운 자리다툼을 하여 차내가 좀 소란스러웠다.

그렇게 학교를 출발한 버스가 면소재지 입구로 들어서 이발소와 면사무소를 지나 지서 앞에 닿았다. 그리고 버스는 철로 건널목을 건너 신작로 나들목에 있는 주막집 탱자나무 울타리를 끼고 돌았다.

버스는 지난여름 장마에 길바닥이 파인만큼 제멋대로 세게 뒤뚱거리며 심하게 흔들렸다. 물안개 촉촉이 젖은 차창 밖으로 부연 흙먼지가 다보록하게 피어올랐다. 노후한 차에서 새어나오는 기름 타는 냄새가 차 안에 진동을 했다.

버스가 등화동 마을 건널목을 지나 언덕길을 덜컹거리며 내려섰다. 흔들림 속에 모두들 엉덩이가 뜨는 듯싶다가 이내 제자리에 푹 내려앉자 여학생들은 배가 아파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남학생들은 그런 모습에 뭐가 좋은지 키득거렸다.

흙먼지 속을 그렇게 달려온 버스가 강경 읍내만한 크기의 논산 읍내 시가지로 들어섰다. 오일장에 어머니를 따라 한두 번쯤 와 보았던 읍네 건물들인데 새삼스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버스는 읍내 사거리 길 왼쪽으로 꺾어 돌아 긴 다리를 건너 공주와 부여로 갈라지는 나들목에서 냇둑을 따라 비스듬한 길로 내려섰다. 그리고 성동면 마을 몇 곳을 지나 단풍이 붉게 물든 산모퉁이를 휘어 돌아 석성 십자거리를 향해 달렸다.

안개 걷힌 아침 햇살이 차창 가에 따스하게 비췄다. 차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도로가엔 형형색색의 코스모스가 기다랗게 줄지어 서있었다. 학교로 가는 아이들이 우리들을 향해 다정스레 손을 흔들었다.
길가에 줄을 이은 시골집 마당과 마루에서 어른들도 함께 손을 흔드셔 우리들도 차창 밖을 향해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버스가 계속 흔들리며 달려와 속이 무척이나 울렁거리는지 참기 어려운 아이들이 차멀미를 했다. 선생님이 준비해 오신 종이봉투를 나눠주셨다. 그리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시며 다독여주셨다.

그렇게 어렵게 흔들리며 두 시간 여를 달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눈앞에 커다란 로터리가 보였다. 그 앞으로 곧게 뻗은 도로가 시원스럽게 보였고 줄지어 선 가로수가 눈 안에 들어왔다.
선생님께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곳이 목적지인 부여라고 말씀하셨다. 강경보다는 좀 작은 듯 보이는 읍내 건물들이 차창 밖으로 내다보였다.
백제의 옛 도읍지 부여는 옆에 백마강을 끼고 있는 비록 작은 소읍이지만 관광지답지 않게 조용하고 깔끔하기만 했다.

우리 학교로부터 부여읍내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흙먼지 속에 오십여 리 길을 달려온 관광버스가 잠시 여정을 멈춰선 곳은 새하얀 국화꽃이 화단에 가득 피어 있는 박물관 앞뜰이었다.

모두들 차에서 내리자 선생님이 흩어져 있던 우리들을 불러 모으고 차멀미가 심하였던 아이들을 챙기셨다. 그리고 다시 인원점검을 하여 학교에서 출발할 때부터 시작하여 벌써 세 번째의 인원점검이었다.

『오늘 너희들이 여행을 온 이곳 부여는 백제의 옛 서울 사비성으로 백제 성왕이 웅진성(공주)에서 수도를 옮겨와 백제가 멸망할 때인 마지막 왕 의자왕 때까지 백제의 수도였다.

의자왕은 처음엔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또한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허세와 자만에 빠져 수많은 날을 사치와 향락에 도취되어 국력이 급격하게 쇠약해졌다.

그런 허술한 틈새를 노린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다. 신라군은 김유신이 군사를 이끌고 육로로 진격을 했다.
한편 당나라군은 소정방이 수군을 이끌고 백마강으로 쳐들어와 백제를 양면에서 공격했다. 신라군은 황산벌(논산)에서 백제의 계백장군이 이끄는 오천 명의 결사대와 피로 물든 결전을 갖게 되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에게 결국은 패하여 백제군은 전멸되었다. 그때 백제의 계백 장군은 황산벌에서 장렬하게 전사를 하여 최후를 맞이했다.
백제의 마지막 보루였던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이 패하자 사비성은 사방이 포위되었다. 의자왕은 웅진(공주)으로 허겁지겁 도주하였다가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말았다.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화려하고 웅장했던 사비성은 그렇게 불바다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 너희들은 그런 역사의 흐름을 잘 알고 유적지를 돌아보며 공부를 하기 바란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사회 시간에 귀가 따갑도록 듣고 배웠으며 시험지로 수도 없이 풀어 반 전체 학생들이 거의 알고 있는 바로 그 이야기였다. 온통 들떠 있는 마음에 눈과 마음은 주변에 있는 구경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가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으로부터 장황한 설명을 듣게 되어 조금은 지루했다.

눈을 들어 부소산을 바라보았다. 바로 정면 우거진 소나무 숲 사이로 ‘백화정’ 정각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그리고 산마루턱엔 커다란 기와지붕과 누각이 보였다.

부소산으로 오르기 전 우리들 모두는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잠시 박물관에 들렀다. 수없이 유리를 조심하여 보라는 선생님의 성화에 눈으로 보았는지 귀로 보았는지 몰랐다. 박물관을 빠져나와 부소산 오르막 산길을 따라 맨 먼저 삼충사에 닿았다.
백제의 3대 충신 (성충, 홍수, 계백)의 혼을 모셔놓은 곳으로 사당의 규모는 비록 작았지만 자못 엄숙하게 보였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약 30분 정도 걸어서 오르니 재잘거리는 산새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크고 작은 소나무가 촘촘히 들어 선 숲 사이로 아주 큰 기와지붕의 건물과 누각이 보였다.
선생님께서 건물 정면을 바라보시며 현판에 쓰여 있는 한자가 ‘영일루’ 라고 말씀하셨다. 맑게 갠 날 아침에 선인들이 계룡산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곳이라고 하셨다. 그런 이유로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부소산은 높이가 겨우 해발 106 미터에 불과한 낮은 야산이었다. 그러나 넓은 평지에 오뚝하게 서 있어 주변을 관망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 부소산 자락에 아침에 떠오르는 광연한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영일루가 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반대 쪽 서편엔 달을 배웅하는 송월대가 있으며 그 중간쯤에 반월루가 있었다. 그리고 부소산 제일 높은 곳에 사자루 누각이 묵묵히 백제의 한을 말해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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