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완한 오솔길을 내려서 숨을 가다듬었다. 눈앞에 바라보이는 개울가엔 빼곡하게 들어찬 억새풀의 끝머리가 온통 허옇게 보였다. 더불어 하늘 향해 긴 목을 쭉 빼어 내민 억새풀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하느작거렸다.
산골짝을 살뜰하게 훑어 내려와 이루어놓은 개울은 물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해말끔했다. 수정같이 투명한 개울물은 올곧게 내리쬐는 한낮 햇빛에 금빛물결로 반득였다.
개울엔 파르스름한 이끼 가득 낀 징검다리 디딤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띄엄띄엄 놓여 있는 디딤돌이 각박하게 살아가는 여정 속에 잠시인들 쉬엄쉬엄 건너가라고 암시하는 듯했다. 그런 모습이 마치 삶의 쉼표와도 같았다. 그렇게 자연이 빚어낸 예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포근한 마음에 여유로움이 넉넉하게 묻어났다.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두 그루 왕 소나무가 납작 엎드려 실그러진 초가집을 다정스런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 뒤에 아기를 업으신 아주머니의 모습이 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울타리 너머로 바라다 보여 그 또한 정감 어리게 보였다. 아주머니께서는 물지게를 지고 밭둑길로 들어서는 내 모습을 바라보시며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주셨다.
언제 달려왔는지 검둥이도 돌돌 말은 꼬리를 연신 흔들어 대며 앞을 섰다. 반쯤 기울어진 사립짝 앞에 닿으니 조금은 이른 듯 점심밥을 지으셨는지 청국장 냄새가 울 밖까지 풍겨 나왔다. 물두멍에 물을 부으려고 부엌에 들어서니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았는지 ‘타닥타닥’ 솔방울 터지는 소리가 났다.
늦가을 날씨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소슬했지만 그래도 한낮 내려쬐이는 햇살은 따스하기만 했다. 쪽마루에 개다리소반을 사이에 두고 아주머니와 마주보고 앉아 점심밥을 먹었다.
아주머니가 마루 한쪽에 놓인 자루와 뒷산을 번갈아 자꾸만 가리키며 어눌한 말소리로 표현을 하셨다. 그러나 내가 아주머니의 뜻을 잘 알아듣기가 어려워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주머니가 일어나셔 부엌으로 가셨다. 그리고 솔방울 하나를 들고 나오셔 다시 어눌하게 말을 하시기에 그제야 눈치를 채고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바라보시며 웃으셨다.
그 시절 논농사를 짓는 들녘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는 땔감으로 볏짚을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철따라 보릿짚이나 타작이 끝난 마른 콩깍지나 참깨 대를 땔감으로 하기도 했다. 허나 땅 한 조각 없는 우리 집이나 처지가 비슷한 동네 몇 집은 돈을 주고 볏짚을 사서 땔감으로 사용해야만 했다. 아니면 일을 한 품삯으로 볏짚을 받아 땔감으로 사용하며 살았다. 그마저 여의치 못한 집은 뒷산에서 마른 삭정이와 솔방울을 줍고 마른 솔가리나 잔디덤불을 갈퀴로 긁어모아 불을 지펴 살았다.
부엌 설거지를 서둘러 마친 아주머니가 마루 기둥에 걸린 수건을 머리에 쓰셨다. 그리고 마루에 뉘여 놓았던 아기를 업으려 하셨다. 반득반득 빛나는 까만 눈동자로 아기가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성글거리며 티 없이 웃고 있었다.
뒤뜰 왕 소나무 밑을 지나 조금은 가파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어느새 사립짝을 빠져나왔는지 검둥이가 꼬릴 흔들며 저만큼이나 앞서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띄엄띄엄 나무 밑동에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오줌을 누워 나름대로 영역 표시를 했다. 그런 모습이 몹시 상스럽게 보였는지 아주머니께서 애써 보지 않으시려 얼굴을 돌리셨다.
나무에서 떨어져 껍질을 빠져나온 누르끄름한 도토리 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오솔길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답박골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앞서가던 검둥이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잔솔나무 숲에서 수꿩 한 마리가 ‘꿔겅’ 하고 소릴 요란스럽게 내어 날개를 푸덕이며 날아올랐다.
산중턱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길섶엔 소나무 밑동에 착생하여 더부살이를 하는 검푸른 이끼가 솔향기와 한데 어우러져 싱그러운 산 내음을 물씬 풍겼다.
얼마쯤 뒤에 따라오시던 아주머니가 보이질 않아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널따란 잎들이 메말라 오그라지려는 칡덤불 숲에서 나를 부르시는 듯 아주머니의 어눌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르던 길을 되돌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섰다. 이끼 가득 끼고 거무레한 바윗등을 잘못 밟아 그만 미끄러져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며 몸에 부딪치는 낙엽소리에 놀란 듯 싸리나무 숲에서 산토기 한 마리가 튀어나와 근처 어웅하게 생긴 굴속으로 삼식간에 몸을 숨겼다. 잽싸게 뒤따라온 검둥이가 주둥이를 굴 입구에 들이대고 ‘킁킁’ 하며 냄새를 맡고 두 발로 흙을 후비고 있었다.
너저분하게 뻗어난 넝쿨사이 줄기 끝에 다섯 손가락을 펼친 손바닥처럼 보이는 잔잎들이 동그랗게 모여진 으름덩굴이 보였다. 덩굴엔 등껍질이 벗겨진 새하얀 으름 몇 개가 먹음직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그중 하나를 따서 입에 넣으려 하자 아주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시고 나를 향해 먹지 말라는 손짓을 하셨다. 그리고 아주머니께서 한쪽 손에 엄지를 펴시면서 어머니가 오시면 같이 먹자고 표현하셨다.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가 머릴 맞닿을 듯 하늘 향해 우뚝 서 있고 반석돌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산중턱에 올랐다. 바위머리에 앉아 다리쉬임을 하며 눈을 모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둥구나무 뒤편에 고만고만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그 한복판에 종구네 검정 기와집 한 채가 오뚝하게 솟아 있었다. 초가집 삼십 여 호가 논밭을 일궈 가난할지언정 순박하게만 살아가는 작달막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소작농으로 살기 힘들어 한두 집이 마을을 떠났다. 어쩜 그리 마음 아프게 떠나야만 했는가 하고 잠시인들 생각을 모아봤다.
산길을 오르면서 시나브로 주워 모은 솔방울이 반 자루 남짓하게 채워졌다. 솔방울 자루를 바윗돌 위에 놓고 함께 쉬시던 아주머니가 몸뻬바지 아랫주머니에서 도토리같이 생긴 껍데기가 노르스름한 개암을 몇 알 꺼내 주셨다. 입에 넣고 깨물어 보니 우윳빛 속살에 담백한 맛이 밤보다 더 맛이 있었고 뒷맛이 들기름보다 더 고소했다.
향긋한 들국화가 유난스레 많이 피어 있는 물레치기 골짜기를 지나 산허리 중턱에 아버지의 유택이 보였다. 한낮 햇볕을 받아 아직은 따스한 바위에 앉아 산자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그리 커다랗고 높게만 보이던 학교 측백나무 울타리가 작달막한 모습으로 나지막하게 보였다. 저녁 해가 기울려면 아직은 먼 듯싶은데 풀숲에서 풀벌레 울음소리가 조금은 섧게 들렸다.
아버지 유택 앞에서 아주머니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두 손을 펼쳐 모아 볼에 대고 잠을 자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서둘러 자루 속에서 칡잎으로 잘 싸놓은 으름 알 두 개를 유택 머리맡에 놓으셨다. 그런 다음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있는 내 얼굴을 내려다보시며 살며시 웃으셨다.
두 갈래 철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끝없이 곧추서 있는 전신주를 따라 눈길을 모아 보았다. 저 멀리 텅 빈 들녘 한 자락에 외롭게 서 있는 아주 작은 채운역사가 멀어 까마득하게 보였다. 무연탄을 실러 강원도 산골짜기 어느 역으로 향하는 화물열차가 허연 수증기를 흩트리며 멈춰 서 있었다. 아마도 방금 요란스럽게 마을 앞을 스쳐 지나간 광주로 내려가는 하행선 군용열차에게 길을 비켜 주려고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있는 듯했다.
느릿느릿 서쪽으로 걸음걸이 하는 저녁 해는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며 마을 둥구나무 위에 머물렀다. 들녘 끝머리 강경 읍내 양조간장 공장의 높다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실타래 같이 풀어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곳 어디쯤에 젓갈동이 머리에 이시고 이저리 행상을 다니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가슴 한쪽이 시려와 저렇듯이 말없이 누워만 계신 아버지가 더없이 얄밉기도 했다 그러기에 어린 마음에도 언젠가는 몸에 더덕더덕한 이 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꼭 벗어나야만 할 것 같았다.
물레치기를 벗어나 산밤나무 서너 그루 서 있는 언덕마루에 닿았다. 산 다람쥐 배불러 남기고 갔는지 떨어진 낙엽 사이에 떨어져 가려진 알밤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아주머니께서 서둘러 주우시려 허리를 굽히셨다. 그러자 설핏설핏 노루잠을 자던 아기가 자세가 불편했던지 깨어나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께서 몸을 일으켜 세워 아기의 엉덩이를 다독여 주셨다.
산머리로부터 부는 바람이 조금은 싸늘했다. 아기가 추울까 봐 앞서가는 검둥이 뒤를 따라 서둘러 산중턱을 내려서 빨갛게 익은 청미래 열매가 줄기에 달라붙은 덤불숲을 비켜났다. 그리고 길가 양옆으로 억새풀이 어른 키 높이만큼이나 자란 오솔길로 홀가분하게 내려섰다.
잔솔 숲 사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동네 아이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펑퍼짐한 잔디밭에서 두서너 살 아래턱인 동생들이 병정놀이를 하며 놀다 마을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빛을 온몸에 받으며 소릴 모아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고 있었다.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고개 너머 또 고개 아득한 고향, 저녁마다 놀지는 저기가 거긴가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불면서, 아이들도 지금쯤 소 몰고 오겠네.”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동네로 내려가는 모습들이 언덕 아래로 자그맣게 내려다보였다. 그날 저녁 따라 저녁노을빛이 유난스럽게 곱기만 했다.
마을엔 초가지붕 위로 저녁연기 소옴소옴 피어올랐다. 드문드문 불어오는 바람결에 연기가 실실이 흩어져가는 모습이 방죽가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모든 풍광이 더없이 소담스럽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