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늦은 무렵부터 하늘이 칙칙해 날씨가 음울하더니 밤사이 서리가 허옇게 내렸다. 온 몸으로 을씨년스럽게 냉기가 서려와 잔뜩 웅크려졌다. 사립짝을 나서는 발밑에 밟히는 뾰족뾰족한 서릿발이 ‘짜그락짜그락’ 소릴 냈다. 이제 계절의 흐름이 설한의 초입에 닿았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듯했다.
희뿌연 하늘 위에는 겨울의 전령사인 기러기 떼가 마을 앞 들녘에 첫 손님으로 찾아왔다. 정연하게 줄을 지어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뉘렇게 빛바랜 들녘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기러기들이 보기 좋게 균형을 이뤄 날아가는 확 트인 들녘 저 멀리 채운역이 자그맣게 보였다. 방금 전 세찬 기적을 남기며 역사를 벗어난 기차가 화정리 마을 뒤편 언덕배기 애솔나무가 다보록하게 들어찬 고갯마루 턱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비교적 곧게 뻗어난 철로 길에 기차는 뒤꽁무니에 겨우 세 칸을 매달아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다. 작달막하게 보이는 기차가 검은 연기를 나직하게 흩뜨리며 산 너머에 있는 마을 연무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듯 내 눈에 바라보이는 그 모두가 평온함 속에 실로 자연스럽기만 했다.
마당에서 세수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벽엔 햇빛이 어렵사리 틈새를 비집는 옹색하게 생긴 봉창 하나가 겨우 트여 있어 환기가 잘 되질 않았다. 사방 벽에서 배어나오는 눅눅한 흙냄새와 아랫목에 띄우고 있는 청국장 냄새가 만만치 않았다. 그에 더할 새라 아기가 변을 누웠는지 변 냄새는 환기가 덜 되는 비좁은 방안이 비좁다고 양껏 퍼져났다. 그런 탓에 방안에 머물러 있기가 조금은 거북스러웠지만 꾹 참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는 전혀 다르게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는 듯했다. 얼른 아기의 두 다리를 한데 모아 위로 치켜드시고 엉덩이를 닦아 기저귀를 갈아주시는 모습이 그리도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 역시도 어렸을 적 내 어머니가 똑같은 모습으로 나를 키우셨을 것 같아 내심 어머니의 지순하신 모정에 감사할 뿐이었다.
아주머니는 옆에 앉아 있는 내 얼굴을 퍽이나 미안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아무런 말 없이 계셨다. 그리고 아기가 배설한 변을 서둘러 치우시려는 듯 누런 변이 잔뜩 묻어난 헝겊 기저귀를 손에 드시고 문지방을 넘으셨다.
아기가 인연이 닿아 그 소종함을 지키려고 그랬는지,비록 허름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별스런 탈 없이 잘 자라 마음이 푹 놓였다. 더욱이 이제는 쌀로 끓인 된죽도 제법 잘 받아먹어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닭둥우리에서 달걀을 꺼내셔 그 중에서 한 알을 밥그릇에 깨트려 흰자는 어머니께서 드시고 노른자를 아기가 먹는 흰죽에 넣어 그리 애틋하게 정이 가는만큼 고루 비벼주셨다.
어찌 보면, 천진난만한 아기는 외로움에 두루 지쳐 살아온 적적한 우리 두 모자에겐, 싫지 않은 인연이자 한 가족의 일원으로 다가선 듯싶었다. 그리고 삶에 찌들대로 찌든 아주머니에게는 그라도 의지할 수 있어 그라도 큰 위안이되었으며 고된 삶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상큼하게 묻어나는 흙냄새와 더불어 배어나는 아기의 배변 냄새도 우리들 모두가 크게 거부하지 않고 살아왔으니 그 또한 꾸밈없는 삶에 일각이었으리라!
“웬만하면 그냥 그럭저럭 한 해 더 버텨 볼려구 했는디, 이러다가 내년 여름 장마 때 댑다 비라두 샐까 싶어 아무리 궁리를 혀봐두 도저히 안 되긋다. 그래서 이번 괭일날 놉이라두 으더서 지붕을 혀번져야 쓰긋다. 글구 하는 김에 사립짝두 손을 좀 볼라구 허닌게,그리고 알구 그날일랑 애 에미하구 같이 뒤에서 일꾼들 잘 좀 도와 드려라.”
어머니께서는 가뜩이나 힘든 살림에 지붕을 이으려니 자못 걱정이 앞서는지 희뿌옇게 빛바래져 가는 지붕을 바라보시며 자꾸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참 그리구 상민이 너는 내가 삼식이 엄니헌티 진작부터 얘기해놓았으닌께 중참허구 저녁참 때 일꾼들 주게 널박지에다가 그 뭐시냐 막걸리를 넉넉허게시리 받아다 놓아라.”
어머니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엄니는 그날 하루만이라도 안 쉴려구 그러는감?”
그러자 어머니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아주머니의 등 뒤에 업혀 엄지손가락을 열심히 빨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야, 쉬기는 어떻게 쉬긋냐. 나사 증말루 하루라두 푹 쉬었으면 좋겠는디 메뚜기두 한 철이라구 쪼매 있으면 서두르는 집들은 김장을 땡겨서 허닌께 부지런히 돌아 댕기면서 한 푼이라두 악착 같이 벌어들여야 우리 식구덜 애기랑 올 겨울을 따십게나지 않그러냐?, 그렇지? 애기야.”
자뭇 그리도 아기에게 정이 가시는지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시고 사립짝 밖을 나서 좁다란 밭둑길로 걸어가셨다.
대나무로 길쭉하고 둥그렇게 만든 닭집 둥우리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기를 그리도 재촉하던 닭들을 마당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뻐끔하게 두 눈을 뜨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는 검둥이 밥도 챙겨 주었다.
마루 위에 놓인 아주머니가 해 주신 도시락을 책보자기로 싸서 손에 들고 개울 징검다리 디딤돌을 밟고 건너 언덕배기에 올랐다.
철길 건널목에는 옥순이가 나를 향해 작은 손을 높이 들어 나 역시 가볍게 흔들어 주었다. 옥순이가 반가우 듯 ‘어이!’ 하고 소리를 질러 나도 옥순이를 바라보며 반갑다는 표시로 ‘어이!’ 하고 소릴 질렀다. 서로 얼굴이 마주치자 옥순이가 조금은 쑥스러운지 해맑게 웃어 나도 덩다라 웃으며 옥순이 앞으로 다가섰다.
물비린내가 비릿하게 풍겨오는 개울 둑길을 나란히 걸어가면서 키 작은 옥순이가 나를 위로 조금은 올려다 바라보며 아기에 대하여 궁금한 듯 물었다.
“상민아, 니네 애기 인제는 밥 먹냐? 아니면 아즉꺼정 미음만 먹냐?” “아니, 아직까장은 밥은 못 먹구 조금 입으로 씹어 주면 먹는디. 된죽을 먹어 그래두 우리 집에 와서 많이 큰 것 같드라.”
한 해 농사 다 끝난지라 텅 비어 있는 새막 터 앞을 지났다. 그때 외양간 지붕에 이엉을 엮어 올리려는지 새터 마을에 사시는 아저씨 한 분이, 희끄무레하게 색 바랜 새(띠)를 한 짐 가득 지게에 지시고, 우리들 보다 몇 걸음 앞을 서 걷고 있었다. 기다란 새가 축 늘어져 아저씨게서 걸음을 옮길 적마다 지게 위에서 자발스럽게 휘청거렸다.
저만큼 종구가 우리들 보다 앞서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자전거 뒷머리에 주현이가 엉덩이를 걸쳐 벌써 새터 마을 나들목을 지나 달려가고 있었다.
학교 울타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높다란 측백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학교와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아이들이 먼저 와 있는지 운동장에서 떠드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었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운동장가엔 양씨 아저씨와 우리 반 부반장 영선이가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모으고 있었다. 커다란 부대자루에 눌러 담고 있어 아마도 겨울철 난롯불 지필 때 불쏘시개로 각 교실마다 나눠주시려는 것 같았다.
영선이가 교문을 지나 교실로 향하는 나와 옥순이를 바라보며 반가운 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운동장에서 저마다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비켜 지나 교실로 향했다.
아침나절 냉기가 가득 서린 교실에 들어서니 교실 뒤쪽에서 성태가 책상 양쪽 끝머리를 양손으로 누르고 기계체조를 하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주위에 둘러 서 있는 아이들을 향해 힘을 주어 말을 했다.
“야, 니덜 이게 뭐하는 건지 아냐?, 이건 그냥 기계체조가 아니구 우리 동네 옆에 있는 까치말 삼거리 장터에 들어 온 쓰꺼스 (써커스)에 있는 사람들이 귀신 같이 부리는 재주랑께.”
성태가 아이들에게 어깨를 으쓱 대고 말을 끝내자, 옆에 있던 응선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을 이었다.
“야, 그 써커스 허는 사람덜이 지난 번 공일 날 우리 동네로 나팔 불구 북 치면서 사람들 끌어 모를라구 왔는디, 그 차 위에서 원숭이가 우리들을 보면서 지 볼따구를 자꾸 만지작거리구 음, 그리구 내가 증말루 봤는디, 원숭이는 똥구멍이 참말루 빨갛게 생겼더라.”
그렇게 응선이가 서커스단에 대하여 한동안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땡땡댕, 땡땡땡”첫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책상과 걸상 위에 올라앉아 있던 아이들이 재빨리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얼마 후 교실 출입문을 여시고 선생님 들어오셔서 첫 번째 국어시간의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칠판 위에 분필로 ‘고려 충신 길재’ 라고 쓰셨다.
“오늘 너희들이 배울 ‘길재’라는 인물은 이색, 정몽주와 함께 고려시대 3대 성리학자로 충절을 지킨 충신이었다. 고려가 멸망하자 고향 땅인 지금의 경상북도 선산으로 내려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 2년에 세자 이방원이가 높은 벼슬을 주려했다. 그러자 충신은 두 조정을 섬길 수 없다 하며 충절을 지키려 끝내 그 높은 벼슬을 사양했다. 그리고 금오산자락 마을에 묻혀 살다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이 즉위하던 그 해에 숨을 거두었다. 그분이 지난날 고려시절의 옛 모습과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며 남긴 회심가가 있는데, 너희들이 이미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라 다 알고 있어 지금 함께 불러보기로 하자.”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듸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우리들 모두가 합창을 하였고 선생님은 잘 불렀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느릿느릿 꾸무럭거리는 해가 운동장 한복판에 머물고 있었다. 오후 첫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모두 푸대 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가 운동장에 모였다. 각 반별로 두 줄로 서서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남산리 뒷산으로 솔방울을 주우러 발걸음 했다.
그때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트럭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공출미를 실으러 용화리 동네로 들어서는 트럭 운전수 옆자리에 한두 번은 본 듯한 면 직원 아저씨가 타고 계셨다.
그 뒤를 따라 어깨에 북을 둘러매고 ‘둥둥, 둥둥’ 치며 술밑마을로 들어서는 동동구리무 장수 아저씨의 모습도 보였다. 그 당시 그 동동구리무는 우리들 어머니와 누나들이 얼굴과 손에 바르는 기초화장품으로 꽤나 인기가 있었다. 설거지나 들녘 일에 손등이 갈라져 트는데 아주 좋다고 하여 많이들 너나할 것 없이 사서 발랐다. 무엇보다 읍내에 있는 화장품 가계에서 파는 것보다 가격이 저렴하여 인기가 꽤나 좋았다.
남산리로 가는 큰길가 함석집에는 누런 차광막이 쳐 있었다. 환갑잔치를 하는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가족들이 마당 안에서 오고가는 모습들이 흙담장 너머로 얼핏 보였다. 그중 한사람은 문밖에까지 나와 찾아오는 손님들을 안내했다. 마당 안에서는 노인 분들이 서로 어울리시어 춤을 추시며 장구소리에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가 담 너머로 제법 구성지게 들려왔다.
그럭저럭 얼마 동안을 걸어서 남산리 뒷산에 도착한 우리들은 인솔책임선생님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들었다. 저쪽 산등 너머 사유림 쪽으로는 절대로 가지 말라는 지시를 거듭 몇 번인가 받았다. 각자 흩어져서 땅에 떨어진 솔방울 저마다 열심히 줍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반의 담임선생님들도 우리들과 한데 어울려 같이 줍고 계셨다.
경사가 그리 가파르지 않아 비교적 완만한 들녘 야산이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산들에 비해 잡목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솔방울 줍기에는 적합한 장소였다.
그렇게 약 1시간을 조금 넘게 줍고 있었다. 얼마 후 집합을 알리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한 인원점검을 마치고 각자 솔방울 자루를 어깨에 둘러메고 여자 아이들은 머리에 이고 질서 정연하게 두 줄로 맞추어 학교로 돌아왔다.
창고 앞에 있는 커다란 자루에 붓고 한데 모으니, 그 양이 제법 많아 보여 마음이 흐뭇했다. 수고들 했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후 각자 교실로 들어가 책보자기를 챙겨 들고 교문 밖으로 나왔다. 서쪽 하늘 끝머리에 불그스름한 노을빛이 완연한 모습으로 곱살하게 물들여져 아스라이 바라보였다.
야트막한 언덕배기를 한두 살 아래턱인 동네 동생들과 함께 걸어 마을로 향했다. 어둑한 밤, 등 뒤에 달빛을 받으며 밤늦게 옥순이와 단둘이서 집으로 올 때보다 기분이 한결 좋았다. 그리고 올망졸망한 동네 동생들을 아울러 커다랗게 노래를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동생들과 힘차게 합창을 하며 언덕배기를 넘었다. 새터 나들목 앞을 지나려는데 ‘때르릉, 때르릉’ 소리가 났다. 얼른 뒤를 돌아보니 종구와 주현이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들 앞을 스쳐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종구가 나와 옥순이를 힐끔 쳐다보며 비웃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끝을 모르게 넙다란 들녁 서편에 있는, 금강 둑 너머로 몸을 뉘려는 저녁 해가 불그레한 노을빛을 가득 아듬고, 서서히 스러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