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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1 조회 : 1,886




여느 해에 비해 다소 늦은 듯하게 찾아든 여름장마였다.
늦장마였지만 몇 해 전 물난리 때 처럼 유난스런 법석을 떨지는 않했다.
그런 탓에 대지 위에 알맞게 내린 빗물에 량이나 바지런한 햇살이 실팍하게 비춰준 일조량이 지난 해와 비교하여 크게 다를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과 밭에서 순탄하게 자라나는 농작물들을 흡족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무릇 지난 해에 이어 또 다시 풍년이 들 것이라는 기대를 은연 중에 하고 있었다.

허나 그 해 장마는 실로 지루하다 못해 진저리가 처질 정도로 길고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런 탓으로 마을 사람들 모두는 이미 인내의 한계치를 벗어나 있었다.
고로 받아드리는 느낌이 극한 불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듯 그해 여름 장마가 그토록 진저리처지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근본적인 요인이 또 하나 있었다.
이미 저마다의 마음 속에 엇비슷한 불만이 팽배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공산주의자들이 이 땅에 저질러 놓은 광란의 전쟁이 빚어낸 처절한 상흔 때문이었다.

동네 어른들의 말씀처럼 참으로 하늘 땅 아래 절대로 상종을 못할 금수만도 못한 폭도의 무리들이었다.
그렇게 광적으로 일으킨 침략전쟁의 만행은 되돌려 놓을 수도 없을만큼 도처에서 실로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때문에 우리들 모두의 분노에 감정을 더욱 상승시켜 기폭이 되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결론에 이르러서는 전쟁으로 부터 받은 복합적인 울분이 모태가 되어 장마가 주는 지루함이 겁쳐 지친 심신을 더욱 부축였기 때문이었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그 주된 이유는 살인적 만행을 일삼는 놈들이 일으킨 전쟁이 주는 참혹함이었다.
덧붙혀 그 당시의 상황으로는 가늠키도 어려운 앞날에 대한 암담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 남기는 참혹함에 치를 떨면서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비상식적으로 흘러가는 세월을 애꿋게 탓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제가끔 살길을 찾아 피난길에 올라야만 했다.
정들었던 고향에 삶의 터와 피 땀 흘려 가꾸워 놓은 온갖 농작물들을 애석하게 모두 버리다시피 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참기 힘든 서러움에 분이 차올라도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하는 피난 길이었다.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인 고통이 실로 컷기 때문이였다.

그런 복합성을 지닌 모진 장마도 준엄한 자연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기에 끝내는 순응하고 말았다.

한동안 검어짙은 구름들의 두터운 벽이 야멸차게 가두워 놓았던 저 하늘이 그제서야 제 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 동안 참을만큼 참았으니 모두들 두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바라보라는 듯하였다.
그래서 아주 도드라질 정도의 파란 빛으로 제 모습을 역력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장맛비는 세속에 흐트러져 있던 아주 미세한 먼지와 티끝 하나까지 여지없이 씻어내렸다.
그에 힘을 얻은 하늘은 어느 한곳인들 탓할 수없게 해말금한 모습을 당차게 드러냈다.
그러나 마냥 불공평하게 잔악한 괴뢰도당들은 하늘로 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했다.

장마의 여세가 소진하여 드디어 끝맺음 하려는 듯한 조짐을 보인 것은 불과 하루 전이였다.
내 아버지의 억울한 혼백이 천추에 한을 남기고 황망하게 떠나야만 했던 그날 아주 이른 새벽녘부터 였다.

광명한 태양의 힘을 얻은 하늘이 욕심껏 참한 모습을 우리들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도 참으로 오랫만이었다.
그러니 그만큼 장마가 길고 지루했다는 반증이었을 것이다.
그리 눈물겨웁도록 탐스럽기만한 청자빛으로 드넓게 펼쳐진 하늘이 민낯을 두드러지게 드러내었다.
그런데 지난 장마가 끝자락 흔적을 애꿋게 남기려는 듯했다.
더할 나위 없이 청명한 하늘에 옥에 티처럼 아주 미세하게 작은 구름 한 덩이가 머적머리 없게 똠방 머물러 있었다.
그런 모습 하나가 참으로 어색하다 못해 가련스럽게 보였다.

아마도 그 작은 한 덩이 구름은 아침 해가 등 떠밀어 몰고 온 듯해 보였다.
불과 두서너 식경 전에 해가 샛터마을 방앗간 지붕 위에 잠시 머무렀을 때였다.
허망하게 홀로 떠도는 모습이 언짠하게 보여 어여 가자고 몰고 온 그 구름인 것 같았다.
가짠하게 보이는 작은 구름이 넓디 넓은 하늘아래 하필이면 동구 밖 느티나무 위에 오도커니 자릴 잡고 있었다.

그리고 애써 의연한 척 하며 동네 고삿길로 들어서는 나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내는 것 같았다.
쌓이고 쌓인 서름 그도 클 터인데 발걸음 늦춰 더욱 서러워 하지 말고 어서 저를 따라 오라고 기다려 재촉하는 것 같아 참으로 어쯥찮게 보였다.

질곡이 심한 이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함은 우리들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허나 저주 받아야 마땅할 악이 축들은 날이갈수록 자꾸만 악의 늪으로 더 깊숙히 빠져들어 온갖 악행을 공공연하게 저지르고 있었다.

순박하기 그지 없는 민초들은 악의 탈을 쓴 놈들로 부터 살기 위해 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죽지 않으려고 피하는 그 당시의 실상이 퍽이나 애처러울 따름이었다.

충만한 은혜가 가득차야할 이땅에 전쟁이 남겨 놓은 참상을 일일히 다 열거할 수는 없었다.
우선 피부에 직접 와 닿는 내 고향 들메마을의 모습은 대다수 부락민들이 피난길에 오르느라 제각기 집들을 비웠다.
정말로 사람의 온기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적막하기 짝이없었다.

그런 우환 속에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속속들이 다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독 종구네 집만큼은 전쟁을 실감하지 못한채 평소와 다를바 없이 평탄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자뭇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나 속담에 "내 코가 석자라는' 말처럼 저마다 처해진 위기를 수습하기에 바뻐 굳이 그런 내막을 알려고 할 겨를조차도 없었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종섭이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부터 남로당에 이미 가담을 하여 암암리에 활동을 하였다.
그런 탓에 정부 관계기관과 경찰들로 부터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되어 심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런 중에 국가보안법이 설치되어 대거 검거작전에 들어가자 신변에 위험을 느끼게 된 종섭이가 어디론가 소리소문 없이 도망을 쳐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니까 전쟁이 일어나기 두 해 전의 일이었다.
그 후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조차도 마을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농삿일이 바뻐서 그랬는지 종섭이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전황이 놈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면소재지가 점령되고 말았다.
그러자 종섭이가 어찌 알았는지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나 마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금의환향이나 한 것처럼 왼쪽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르고 북괴도당들의 충실한 앞잡이가 되었다.
더불어 천하가 제 세상인 것 처럼 턱밑에 거무스름한 구렛나루가 난 험상궂게 생긴 얼굴로 살기 등등하게 길거리를 활보하였다.
그러니 동네 어른들께서 흔히 쓰시는 속된 말로 '벌이 똥구멍 힘 믿고 까분다'고 그런 종섭이의 힘에 배경을 등에 업고 태연자약하게 여유를 부리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되어 북괴도당의 부류에 일원으로 전락해 버린 종구네 삼촌인 종섭이었다.
그날밤 검붉은 피로 억룩진 내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오만방자하게 거들먹거렸다. 그리고 내 어머니를 향해 거침없이 남기고 간 그 잔인스러운 말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미 내 뇌리 속에는 뚜렸하게 각인이 되어 의미 깊은 적개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내 심정을 좀 더 상세하게 피력하자면 종섭이라는 인간은 이미 내 증오와 저주에 주체적인 대상이되였기에 두 말할 나위도 없었다.
더불어 종구네 아버지를 위시하여 어린 종구까지도 내 마음 속에 서서히 경멸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옳바른 생각을 갖고 사는 정희 누나만큼은 종구의 친 누나임에도 결코 미워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런 정희누나가 부엌으로 들어가다가 나와 얼굴이 마주쳤다.
흙담장 너머로 무엇이라 말은 못해도 그저 눈빛으로 말을 건내는 것같았다.
그라도 나를 향해 씁쓰레 웃어 주어 마음이 한결 포근했다.

막말로 이웃 집에서 수년간 키우던 소가 어느 날 거간꾼의 우직한 손에 코두레가 잔뜩 처들린채 읍내 소전으로 팔려나가도 안쓰러운 마음에 눈길이라도 주는 그런 잔잔한 미덕이 살아 있던 들메마을 이였다.

그런데 싫었던 좋았던 간에 한동네에서 같은 우물 물을 먹고 살아 온 사이였다.
대문 밖으로 나와 작별 인사를 못할 지경이면 그저 담너머로라도 눈인사 정도는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을 했다.
허나 그마저도 외면 하고 말은 동네 어른이 한 분 있었다.

그저 모른 척 하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앞에 나서 뭐라 위로에 말이라도 할려니 자기 동생 종섭이의 위치가 그런지라 입장이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래선지 멋쩍은 듯 괜시리 헛기침을 하면서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런 종구네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리도 야속하다 못해 한없이 얄밉기만 했다.

이미 대다수의 동네 사람들이 피난을 가고 난 뒤라 동네가 텅 비어 있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래도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동네 어른들과 우연이라도 서로 만날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렇게 쓸쓸히 떠나야만 하는 내 아버지의 혼백이 덜 외로울 것만 같아 은연중에 다만 몇 사람의 얼굴이라도 서로 마주치길 마음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벌건 대낮임에도 좁다란 고삿길에 사람의 흔적은 단 한 번도 찾을 수가 없어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다들 허겁지겁 짐보따리를 챙겨 떠나기에 바빴는지 집에 내박치다시피한 주인 잃은 고양이들만 잔뜩 굶주림에 지쳐 허기진 모습으로 먹이를 찾으려 다니고 있었다.
그때 고양이 한마리가 고샅길 나지막한 흙담 위로 뛰어올라 몸을 잔뜩 움크린채 청승맞게 울었다.
그래서 마을 분위기가 더욱 음산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마을을 빠져나와 동구 밖 정자나무 밑에 이르렀다.
한여름인데도 단 한 사람 보이질 않았다.
그져 느작머리 없이 뻔질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 만이 들려 올 뿐이었다
서로 주고 받는 정이 소록소록 묻어나던 장기알 소리가 멈춘지도 제법 된 듯 싶었다.
마을은 사람들이 기거했던 흔적들만 남아있을 뿐 그저 싸늘한 냉기만 잔뜩 도사리고 있었다.

계절이 한여름 칠월의 중반에 머물고 있는 탓이였나 보다.
주저없이 매섭게 내려 쬐이는 태양의 열로 온누리가 견뎌내기 벅찰 정도로 뜨겁게 달아 올랐다.
그런 탓인지 둥구나무 그늘도 역시 후덥지근 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목이 타드는 갈증을 유발시키는 무더위가 온몸을 엄습하여 가슴 에이는 슬픔을 열기 속에 더욱 가중시켰다.

따지고보면 불과 단 하루 밤이였다.
그렇지만 이번 아버지의 급작스런 변고로 감당 하여야 할 정신적이나 육체적인 고통이 몰고 오는 생리적인 변화는 어쩔 수 없었다.
영적으로는 물론이려니와 온 전신에 밀려오는 피로감이 극을 이루웠다.

지난 날 내 아버지로 부터 받았던 사랑과 연약한 내가 응석으로 내 아버지에게 드렸던 가녀린 사랑은 굳게 살아남아 있었다.
고로 서로 주고 받은 사랑의 힘이 변함 없이 존재했기에 그토록 힘든 고통을 잘 참고 버텨낼 수 있었다.

동구 밖 느티나무 위에는 뜨거운 태양이 태연자약하게 우리를 기다려 맞이하는 것 같았다.
더불어 머적머리 없게 쉴틈없이 번갈라가며 울어대는 매미와 쓰르라미의 귀따가운 소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느티나무 우듬지에는 한 덩이 작은 구름이 얄미울 정도로 앙증맞게 떠 있었다.

둥구나무 그늘 밑을 벗어나 마을 앞 냇가에 이르도록 그 때까지도 멈츔을 모르고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왔다.
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불과 며칠 전에 어머니와 주고 받으셨던 매미에 대한 말들이 문득 떠 올랐다.

그날은 장마가 막바지에 이르러 쇠잔해져 가는 것 같았다.
보일락 말락하게 내리던 안개비의 가는 빗줄기가 아침 밥상을 물리기도 전에 멈추고 말았다.

그럴라치면 구름 속에 갇혀있던 해가 거침새 없이 맨 얼굴을 드러내어 우중충한 분위기를 잠시라도 뒤바꿔 놓았다.

그때쯤이면 비를 피해 나뭇잎 뒤에 몸을 숨겼던 매미와 쓰르라미들이 제가끔 참았던 울음을 앞 다퉈 울어대어 온 마을이 엄청 소란스러워졌다.

그러자 식사를 끝마친 밥상을 치우시던 어머니께서 비가 멈추기 무섭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짜증이 나시는지 한 말씀 하셨다.

"워따메 무신 놈에 매미 새끼덜은 아츰 일쯕부텀 저리두 느작머리 읍시 울어재키는지 모르긋네 그려, 이자사겨우 비가 그쳐 한 순돌리능가 싶었는디 저 지랄로 싸각머리 읍게 울어제끼니 아침 바람부터 기분이 영 그렇네유"

그러자 그 말씀을 듣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말을 받으셔 말씀을 이으셨다.

" 아 냅싸둬 그냥 그러려니 허면 될걸 가지구 임자가 오늘따라 신경을 되게 쓰느구먼 그려.그리구 말이사 나왔으니께 망정이지 지넘들이 끼껏 살아봤자 한 보름 남짓인디 글케라두 살아 보긋다구 무례 칠년 동안을 어둠 침침헌 땅 속에서 버티구 세상 바깥티루 나왔는디 왜 하루하루가 아깝지 않긋써, 사람이나 말 못허는 미물인 하찬은 벌레라두 다덜 죽음 앞에선 저러콤시루 마음이 약해져서 더 살어볼려구 악타구를 쓰는 거시닌게 임자두 아자부터는 그리 알구 지발 뻔질나게 욕허지말드라구유"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내가 모르고 있던 매미에 대한 이야기를 뜻 깊게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매미에 대하여 전혀 모르셨던 것을 조금은 알게 되신 것 같았다.
그래선지 방안에 같이 있던 외조부님과 나에 시선을 피해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치시며 은근 슬쩍 웃을을 띄우셨다.

그날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중에 '비록 마지막이 될지라도 조금 더 살아볼려고 악다구를 쓴다" 라는 말이 다시금 떠 올랐다.그로 인해 가슴 속 깊은 곳에 또 다른 아픔 하나가 고통의 멍울로 남으려 했다.

그토록 저주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 새벽녘이었다.
사악한 놈들의 총뿌리 앞에 등메산 골짜기로 어처구니 없이 끌려가셨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온갖 두려움 속에 엄청난 고통을 받으셨을 것이다.
더불어 생에 대한 끈질긴 애착심마져 일방적인 강압에 의해 찬탈 당하고 말았다.그러니 죽음을 앞둔 공포심에서 끝없이 떨어야만 했던 처절한 순간이였을 것이다.
그런 비통한 마음에 마지막까지 고통을 받으시며 숨을 거두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니 이렇게 나 혼자 살아남아 아버지께서 영면 하실 곳으로 걸어가는 것 조차도 그저 죄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마을로 들어오고 마을 밖으로 나가는 입목을 가로막고 흐르는 냇가를 건너려고 동네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 놓은 나무다리를 중간쯤 건넜을 때였다.

내 아버지의 친구 응수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며 등지게 위에 누워 계신 내 아버지에게 들으라는 듯이 한말씀 하셨다.

“야, 임마 기태야. 너 시방 우리가 으디쯤 걸어가는지 알기나 허냐? 여그가 동네 앞 냇가신디. 니눔이랑 나랑 총각 시절에 요기 냇가시서 보매기 험서 붕어랑 참기랑 잡으먼서 않 노랐냐, 또 으짜다가 재수 좋아 매기 한 마리라두 손에 잡히면 미끄러워 빠져나갈까봐 바싹 손이루 움켜쥐고 흙탕물이 튀긴 얼굴을 쳐다봄서 허심읍시 웃었었는디, 이자는 그긋마저두 아득한 먼 옛날 야그가 되분져뿌렸다 잉. 글구 인자 쪼까만 가믄 니가 평생토록 살 니 집으로 갈 틴께 딱딱헌 지게 위여서 쪼까 불편허드라두 쫌만 참그라. 니눔이 여글 가는 것도 다 하늘의 뜻이 아니긋냐.”

마을 앞 냇가에 놓여 있는 나무다리는 겨우 소달구지 한대가 빠져나갈 정도의 폭이 좁고 길이가 짧은 다리였다.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는 다양각색의 숱한 기억들이 서려 있는 다리였다.

다리를 건너서자 마을 앞으로 놓여진 호남선 철길이 아주 가참하게 눈 앞에 와닿았다.

한여름의 태양이 내리꽂는 햇살을 담뿍 받은 철로 레일의 등 언저리가 군데군데 번쩍번쩍하게 보였다.

철길의 두 갈래 레일이 펼쳐진 끝트머리까지 바라보면 마치 테일이 서로 맞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리 없어 늘상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었다.

그리고 마을 뒤 켠에는 강물이 흘러 개어구를 지나 금강 물줄기와 합류하는 논산천의 지류인 샛강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호남선 선로가 그 샛강을 통과 하기 위한 철교를 놓으려 인근 지역민들을 강제로 부역시켰다.
이름모를 석공들이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고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교각 위에 붉은색 페인트로 듬뿍 칠을 한 철제구조물을 높다랗게 올려 철교가 멀리서도 한눈에 쉽게 바라보였다.

그 철교를 마을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공굴다리라고 불렀었다.

마을 서남쪽 나들목에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오가는 발길이 끊긴 원목다리가 외로히 홀로 서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와 함께 뜨겁게 달아오르는 지열이 아른거려 그 모습이 어른어른 하게 보여 뜻 깊은 외로움을 더욱 자아냈다.

마을 앞 철길을 건너기 전에 거북바위 앞을 지나려할 때였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배가 앞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와 몸집이 잔뜩 불어난 개구리 한 마리가 눈에 보였다.
흙먼지가 가볍게 푸석이는 달구지 길을 가로 질러 가려고 몸을 바짝 서둘고 있었다.
우리들 보다 두서너 걸음 정도 앞에서 펄쩍펄쩍 뛰어 논둑을 엉거주츔하게 타고 올랐다.
그리고 이내 '텀벙' 소리를 아주 짧게 내며 논빼미 안으로 몸을 숨겼다.

이윽고 마을 둠벙 앞에 다달으니 혼란스런 마을 사정에 대하여 그저도 모르는지 대여섯 마리의 논병아리 새끼들이 물 위에 떠있었다.
훗날 어미로 부터 독립해서 홀로서기를 하려고 어미 뒤를 따라 열심히 자맥질을 배우는 것같았다.

그런 평온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옛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버지께서 민물낚시를 하시려고 마을 외곽에 있는 둠벙에 가실라치면 나는 그 뒤를 따라가려고 무던히 떼를 썼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더운디 뭣땀시 따라올라구 허냐.’하시면서 나를 떼어놓고 혼자서 홀가분하게 가시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아버지를 향해 나를 왜 데려가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지청구를 하셨다.

" 이봐유 상민이 아부지, 도대체 뭐땀시 그러는가 모르 긋네유, 참말루 으디 내 몰래 개복상 꽃 가튼 과수댁이랑 만나기라두 했는감유, 아 뭐시냐 아그가 그리 딸라부틀라구 저러는디 델꼬가면 쓰갔구먼 도데채 왜 그란다요, 자가 으디 원묵다리 미티서 주서왔는감유,그러지럴 말구 어여 델꼬 가시유, 날랑은 싸게싸게 뒷바티 가봐야 허닌께유,"

그렇게 겨우겨우 따라나선 나는 아버지께서 낚시를 하시는 동안 방죽 안을 요리조리 살피며 다녔다.
물 위에 둥실 떠 있는 몰옥잠 꽃을 찾아 강한 햇살에 눈이 잔뜩 시려오도록 세여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물옥잠의 두툼한 잎사귀 위로 자발맞게 올라서는 작은 물방개도 보였다.
마치 고난도의 곡예를 하듯 방죽가 얕은 물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소금장이의 익살맞은 모습에 왠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께서는 아주 어쩌다 생각보다 큼직한 붕어란 놈이 낚시줄에 걸려들면 물 위로 잽싸게 끌어올리셨다. 그러면 온몸을 뒤틀면서 죽어라 요동을 치면 하얀 물고기의 비늘이 한낯 햇살에 반사되어 번득거렸다.
그럴때면 얼른 두 손을 한데 모아 손뼉을 치며 그리도 좋아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세상 근심 다 잊으신 듯 웃음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리고 늘상 그맘때쯤이면 마을 앞을 지나는 기관차가 높다랗게 보이는 철교를 가삐 벗어나고 있었다.
휘어도는 철길을 따라 달려오는 기다란 기차의 끝 부분이 얼핏 눈에 띄어 조금은 구부러지게 보일라치면 어느 사이 기차는 똑 바로 균형을 잡으며 달려왔다.

기차는 제 딴에 마냥 반갑다고 그러는지 커다란 기적소리를 요란스럽게 울려 평온하기 그지 없는 들메마을에 오후의 정적을 깨트렸다.

그런 기차의 모습이 반가울라치면 그런 감정을 채다 느끼기도 전에 기차는 방죽 앞을 잽싸게 스쳐지났다. 그리고 어느새 면소재지 지서 앞에 있는 건널목을 가로 지르고 있어 못내 마음이 서운해지기도 했다.

그럴때면 방죽가의 찰진 개흙을 파서 손으로 꾹꾹 눌러 다져서 내 딴에는 비행기도 만들어 보았고, 자동차도 만든다고 억지 흉내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면 한여름 뙤약볕에 얼굴이 빨갛게 그을린다고 아버지는 쓰고 계시던 보릿짚 모자를 얼른 벗어서 내 머리 위에 씌워 주셨다.
그런데 그 모자가 내 머리에 맞을 리 없어 모자 안으로 내 작은 머리통이 쏙 들어가 버려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럴 적마다 나는 모자를 쓰지 않겠다고 떼를 쓰며 얼른 벗어 던지려고 하였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더위를 먹으면 큰일 난다고 하시며 다시금 모자를 씌워 주려하셨다.
나는 쓰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서로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곤 했었다.

등지게를 짊어지고 우리들 일행보다 대여섯 걸음 정도 앞서 가시던 응수 아저씨께서 철길가 기현이네 집에 다다르자 힘이 드셨던 모양이었다.
탱자나무 울타리 그늘 밑에 이르러 작대기로 등지게를 받치시고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으셨다.

그리고 아랫 주머니에서 답배갑을 꺼내시어 궐연 한 개비를 입에 무시고 성냥불을 그어 대시면서 뒤를 따라오시던 순태 아저씨에게 말을 건네셨다.

“어이, 쪼까들 쉬어 가드라구. 그러니께 다덜 쉬는 참에 댐배 한 대썩 꼬실리구 가드라구. 글고 상민이 엄니두 요기 그늘 밑에 쪼매 앉어서 쉬어 가시유. 기나저나 상민이 니가 참말루 고생이 많구나. 나가 진즉부텀 당부를 헐라구는 혔는디 느그 아부지 일 땀시 짬이 통 나들 안혀서 이자서야 너헌티 허는 말인디, 참말루 세상 박복헌 느그 애비야 이미 황천길루 갔다마는 이제 씻구 벗구 누가 있긋냐. 느구 엄니허구 너하구 하늘 똥구녕 밑이 달기똥 모냥 달랑 둘이서 남었으니께 으쩌튼지간이 하늘이 무너지구 땅이 짝 갈러지는 한이 있드라두 느그 엄니 잘 모셔야 헌다. 인자 저분이 누굴 믿구 살긋냐. 미우나 고우나 자식이라고는 너 하나뿐인께 나가 허는 말 허트루 듣지 말고 꼭 새겨 들어라. 내 말 알긋지?”

말씀을 마치신 응수 아저씨께서 동네 앞 나들목 벼랑바위에 눈을 모으셨다.
담홍색 빛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난 능소화 꽃을 바라보시며 입에 물고 계시던 담배를 모지락스럽게 빨으셨다.
그리고 허연 담배연기를 페 속 깊히 들이마셨다 이내 허공에 대고 길게 내뿜으셨다.
내 아버지께서 그리 돌아가셔 못내 애석하신지 옆에 사람들이 다들리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자 옆에 가만히 앉아 계시던 귀분이 아버지께서 그런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꿔보려는 의도였는지 어머니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셨다.

“참, 상민이 엄니. 아까 참에 얼핏 보니께 순태 동상 지게 우에다가 덮구 자던 비단 요때기 하나를 얹으시든디 그걸 상민애비 묫자리 바닥 안에 깔어줄라구 그러는감유?”

그러자 어머니께서 조금은 울먹이시는 듯해 보였지만집을 떠나올 때보다는 다소 차분한 목소리로 귀분이 아버지 말씀에 대해서 답을 하셨다.

“그저 이리 서룹게 가는 것두 그 사람 속맴으론 복장을 치구 억울헐 건디 누워서 잠자는 동안 등짝이 딱딱허게 배기지 않게 해줄라면 바닥에 쪼매라두 푹신허게 깔아줘야 돼긋다 싶어서 가지구 왔구먼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시는 어머니께서 억지로 감정을 추스리려 무던히 애를 쓰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맹칼없이 채 익지도 않은 시푸르딩딩한 탱자를 애꿎게 따서 마음이 아프신만큼이나 손으로 짓누르셨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달래시려는 것 처럼 보여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런 어머니의 얼굴을 더는 바라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토록 애가 타다 못해 짙이겨져 응고 되지도 못한 내 어머니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였다.
그래도 저 하늘은 그런 아픔을 조금이라도 아우러 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탐스런 푸른빛으로 곱살하게 물들어 있는 하늘이 검푸른 탱자나무 줄기와 제멋대로 뾰족하게 뻗어 난 가시 사이로 조각조각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 모습의 여름 하늘이 그리도 탐스럽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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