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리게 떠오른 찬연한 아침 해는 산 밑 다랑이 논에 아른거리는 희끄무레한 안개를 가볍사리 헤치고 왕 소나무 우듬지 위에 듬직하게 머물러 우리집 안마당을 짯짯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와는 걸맞지 않게 겨울을 재촉하며 쌀쌀맞게 불어오는 기세가 등등한 찬바람이 땅 위에 덥수룩하게 깔린 흙먼지를 한차례 요란스럽게 쓸고 지났다.
그리고 다랭이 밭자락을 가로 질러 이내 철로길 가장자리에 자릴 잡고 서 있는 나무 전신주의 송전선에 부딪쳐 ‘우릉우릉’ 가느스름하게 소릴 냈다.
채운들녘 저편엔 강경역을 출발하여 논산 육군훈련소가 있는 연무대역으로 향하는 첫 열차가 조금 멀찍하게 보였다. 전국 각지에서 자식들을 보려고 밤을 새워가며 수많은 면회객들이 몰려오는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면회객들의 수송 편의를 위해 그랬는지 평소와는 달리 제법 다섯 칸씩이나 뒤에 매달고 가파른 화정리 언덕배기를 오르고 있었다.
동네 어귀에는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 지붕을 새로 이으려고 서둘렀는지 경수 아저씨와 삼식이 아버지 그리고 기성이 형까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엉을 이를 볏짚을 지게에 한 짐씩 가득하게 지시고 둥구나무 앞을 지나 우리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해마다 방죽가에 사시는 흥남이 아저씨가 우리 집 지붕 이는 일을 솜씨 있게 해주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할 사정이 생겼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오랫동안 홀아비로 사시던 흥남이 아저씨가 등마루 마을에 사는 과수댁과 맞선을 보는 날이었다.
동네로 장사를 하러 자주 들락날락하시던 수다스런 방물장수 할머니가 뚜쟁이 노릇을 했다. 그래서 등화동 마을에 홀로 사는 과부댁 아주머니와 읍내 중국 음식점홍안루에서 맞선을 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짜가 서로 겹쳐 우리집 지붕에 이엉올리는 일을 못하시게 되자 대신 옆집에 사시는 기현이 할아버지께서 일을 도와주시려고 오셨다.
지부을 이으려고 오신 동네 어른들이신 일꾼들 때문인지 오늘따라 아주 오랜만에 돼지고기 찌개 냄새가 온 집안으로 푸짐하게 배어났다. 부엌에서는 순덕이 어머니께서 일을 하려오신 동네 분들에게 드필 아침밥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일을 하시는 어른들이 드실 막걸리를 가지러 주전자를 들고 동네 삼식이네 집에 가려고 철길 앞 언덕배기를 넘어섰다.
언덕 위에는 마을에 사시는 어른들이 잠시 쉬어 가시려는지 등지게를 받쳐놓고 계셔 인사를 드리는데 삼식이 아버지께서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셨다.
“상민아, 너 시방 우리 집으로 술 가질러 가는그지? 우리 집에 가그들랑 삼식이 에미헌티 술동이에다가 술 반 말만 가지고 오라구 전해라, 상일꾼이 셋이나 되는디 소두 한 되짜리 주전자를 가져오면 어디 간에 기별이나 가긋냐, 난중에 내가 니네 엄니헌티 말을 헐틴께 그리 알구 내 시키는 대루 혀라.”
그렇지 않아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술을 그리도 좋아 하시는 분들이니 온종일 아무리 적게 술심부름을 다녀도 서너 번은 왕복을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찌 생각해 보면 삼식이 아버지 말씀이 옳은 듯싶었다. 그러나 어른들이 술을 좀 많이 드시는 것 같아 다소는 기분이 언짢았다.
언덕배기를 내려서 철길을 건너 방죽가를 지나는데 기현이 할아버지께서 등지게를 지시고 사립짝 밖으로 나오시기에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기현이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을 하셨다.
“상민이구나! 동네에 술 가질러 가냐? 에이구 그놈에 술들은 좀 작작 마시지 않구, 뭐시 몸에 그리 좋다구 만나기만 허면 술들을 그리 퍼마셔대는지 몰라. 암튼 어여 가 보그라.”
기현이 할아버지께서 철길을 건너 언덕배기를 내려서 우리 집을 향해 걸어가셨다. 그리고 나는 동네로 가려고 방죽가를 지나 동네 앞 둥구나무 앞에 닿았다.
둥구나무 밑에는 동네 끝머리 집에 사시는 영남이 형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바지게에 걸쳐놓은 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널따란 바작 안에 양은 솥 한 개와 반찬거리를 담은 그릇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함지박과 마른장작이 올려져 있고 누런 암탉 한 마리가 날개와 발목을 노끈으로 야무지게 묶인 채 답답해서 그러는지 아주 조금씩 푸덕거렸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조금 불편하신 방앗간 순태 아저씨가 옆에 서 계셨다. 순태 아저씨가 영남이형 아버지와 궐연담배를 갑에서 꺼내 나눠 피우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이미 다 지나가버린 일이지만 내 어렸을 적이었다.기억하기도 싫은 지난날 한 때는 둥구나무 밑에서 나를 향해 '새비젓 장시 아들이라'고 그리도 심술궂게 놀려댔던 동네 형들 중에 한 명인 영남이 형이었다.
그리 동네 동생들을 지꿎게 놀려대던 영남이 형이 이젠 의젓하게 다 큰 청년이 되었다. 머리에 포마드를 잔뜩 발러 반들반들하게 빗어 넘기고 심심할 때마다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뒷주머니에 하모니카를 꽂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누나들을 만나려고 한껏 멋을 부리고 다녔다.
그러던 중 약 한달 조금 넘었을 때였다. 면소재지 화산리 이발소에서 소집 영장을 받고 군대에 간다고 하면서 머리를 박박 깎아 목에 수건을 두르고 온 부락에 집집마다 인사를 다녔었다
그리고 끝머리에 어머니께도 인사를 꼭 드려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 집에도 다녀갔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 군대를 간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벌써 신병 교육을 끝마쳤는지 두 내외 분께서 영남이 형을 면회하러 가는 것 같았다.
“그기 뭐시라냐, 까치말 삼거리까장 가서두 면회장 까장은 더 걸어가야 된다구들 허닌께 설찬히 멀껀디 채운역에서 거기까장 가는 기차가 있다구 하던디 그걸 타구 가지 아무리 빠른 걸음이라두 걸어서 언제 갈려구 그러는감?”
순태 아저씨가 말씀을 하시자 영남이형 아버지가 순태 아저씨께서 하시는 말을 이내 이어받으셨다.
“아, 이십 오리 길이 좀 빠듯허기야 허지, 허지만 서둘러 걸으면 면회시간이 12시부터 3시까지 라닌께 충분할 껄세, 그리구 이 짐을 다 으떻게 기차에다가 옮겨 실구 가긋는가, 안 그런감, 뭐시라두 뜨십게 끓여 먹일라면 죄다 준비를 혀가지구 가야지, 뭐시냐 아래께 자기 아들 면회 갔다 온 화산리 사는 정주사라는 분 이야그 들어보닌께 물 빼놓구는 다 돈 주구 사야 되는가 보든디.”
그러자 순태 아저씨가 영남이 형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시며 궁금하신 듯 되물으셨다.
“아니, 그럼 훈련소 면회장 마당에서 직접 불을 지펴서 밥두 허구 국두 끓여두 되는감?”
옆에서 두 분이 나누는 말씀을 계속 듣고만 계시던 영남이 형 어머니께서 답답하신 듯이 말을 거드셨다.
“야, 다들 자기네 자슥들 먹일 껄랑은 지가끔 준비들 혀가지구 와서 나무떼기루 불 때서 해먹인다나 봐유. 암튼 그리 아시구 서둘러서 얼랑 댕겨 올 께유.”
영남이형 어머니께서 자식을 한시라두 빨리 보고 싶어 애태우는 눈빛으로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영남이형 아버지를 바라보시며 발길을 재촉하셨다.
녹슨 방앗간 지붕 뒤로 뻘쭘하게 바라보이는 가죽나무 한 그루에 나뭇잎이 다 떨어져 퍽이나 외롭게 보였다. 그래도 투명한 아침 이슬에 젖은 가죽나무가 햇살에 반사되어 오묘하게 빛을 내는 고샅길로 접어들어 종구네 집 앞에 닿았다.
일요일 아침 예배를 보러 갈려고 서두르나 안방에서 밥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담 너머로 들려왔다.
그 순간 내 뇌리 속에 별로 좋지 않게 각인이 된 종구네 아버지의 시덥지 않은 얼굴이 떠올랐다.
비싼 비단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옆구리에 두툼한 성경 책과 찬송가 책을 끼고 나 교회 다니네 하고 갈짓자 걸음으로 동네 고샅길을 제발 다니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의도로 교회를 다니는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않지만 기왕지사 믿음을 가지려고 했으면 하나님도 좋고 교회도 좋지만 제발 인간성부터 원천적으로 뜯어 고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제 우리에게 주었던 가혹한 짓일랑 우리집 하나로 만족하고 힘없는 소작농들에게 가혹하게 하지말고 진실한 신앙을 답습하여 보다 인간다운 면모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먼저 식사를 끝마쳤는지 용만이가 안방 문을 열고 마루에 서서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소매 끝으로 입 가장자리를 쓱쓱 문대며 디딤돌 위로 내려섰다.
우물가 미나리 밭을 끼고 돌아 삼식이네 집에 가서 삼식이 어머니에게 삼식이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전해드렸다.
동네 고샅길을 빠져나오려는데 고샅길 어귀에 온통 검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띠었다. 아침 일찍부터 제짝을 찾아가는지 우현네 집 낮은 흙 담장 위에서 고샅길로 덥석 뛰어내려 잽싸게 도망을 쳤다.
미루나무 두 그루 사이좋게 서 있는 방죽가 앞에 닿았다. 그날따라 물가에 놀던 오리가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못 궁금한 마음에 오리 우리가 있는 흥남이 아저씨네 집 쪽 마당을 바라보았다. 장가들 생각에 마음이 설레어 그만 잊어버리셨는지 아니면 집을 비운 사이 남의 손이라도 탈까 싶어 일부러 우리에 가둬놓은 것 같았다. 비좁은 우리 안에서 오리들이 밖으로 나오고 싶어 온통 바동대고 있었다. 우리에 엮어놓은 대나무 틈사이로 기다랗게 목을 빼어 내밀고 ‘꽥꽥 꽥꽥 꽥꽥’소리를 내며 꽤나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한 자락 찬바람이 스산하게 얼굴을 스쳐 지나는 언덕배기를 내려서 빠른 걸음을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사립짝을 고치러 오신 기현이 할아버지께서는 앞산에 싸리나무를 베러 가신 듯 보이질 않으셨다.
비좁은 마당에 짚더미를 흩트려놓고 세 분이서 철퍼덕 자리를 잡고 앉으셔 무엇이라 이야기를 나누시며 이엉을 열심히 엮고 계셨다.
술 주전자를 들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 기성이형님이 제일 반가운 듯 일손을 멈춰 술 주전자를 얼른 건네받았다. 그러자 눈치 빠르신 아주머니께서는 부엌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 찌개가 놓인 술상을 들고 마당 쪽으로 나오셨다.
그렇게 볏짚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는 마당에 세 분이 답숙하게 앉아 도란도란 술잔을 주고받으시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때 마당 한 가장자리에 엎드려 있던 검둥이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무화과 나무가 서 있는 울타리 구석 쪽을 바라보며 마구 짖어댔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계시던 경수 아저씨가 고개를 들어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시며 말을 했다.
“오메, 저그 신고산 타령 성님 오시네유.”
그러자 삼식이 아버지께서 그리 싫지 않으신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음, 그렇구먼 참, 저 사람두 동네 술냄새 맡고 다니는 디는 누구두 못 말리지, 어떻게 그리 귀신같이 알구 찾아오는지.”
술을 그리도 좋아하시는 병수 아버지가 언제 사셨는지 자전거 한 대를 끌고 원두막을 지나 텃밭 둑길로 걸어오셨다. 마당에 계신 어른들을 향해 반가운 듯이 한쪽 손을 흔들었다. 키가 남들에 비해 훤칠하게 크신 병수 아버지가 사립짝 앞에 자전거를 받쳐 놓으시며 말을 하셨다.
삼식이 아버지가 친구 또래인 병수 아버지에게 반가운 투로 말을 건네셨다. 그러자 병수 아버지가 부엌 쪽을 힐끔 쳐다보시며 목소리를 낮춰 궁금하신 듯 말씀하셨다.
“저기 부엌에 있는 저 아줌씨가 이번에 상민이네 집에서 같이 살기루 했다는 그 사람인감? 속내는 으짤란가 몰라두 겉으로 보기엔 참 곱살허니 차분허게 생겼네 그려.”
병수 아버지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자 곁에 앉아 있던 경수 아저씨가 말을 이으셨다.
“아, 형님 당췌 그런 말씀일랑 하지 마시유. 넘에 아줌니 이쁘니 어쩌니 허다가 형수님이 들으면 으쩔라구 그래유. 그나마 한 숱때기 따슨 밥이라두 못 얻어먹구 내쫓기시면 어쩔래유?” “예끼, 이 사람아! 내가 어디 공처가던감 그리구 내가 넘 아줌씨헌티 이러쿵저러쿵하건는감, 안 그려?”
병수 아버지가 껄껄 웃으시며 말을 마치셨다. 그리고 갈증이 나셨는지 술 사발 안에 새끼손가락을 넣고 휘 저으셔 목울대를 크게 움직이시며 술 한 사발을 벌컥벌컥 시원스레 마셨다.
뒷산에 오르셨던 기현이 할아버지께서 나무 밑동이 하얀 싸리나무를 알맞을 만큼 지게에 지시고 마당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러자 자리에 앉았던 병수 아버지가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셨남유? 싸리 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유. 어여 오셔서 한참 쉬세유.”
기현이 할아버지가 지게를 마당가에 세우시며 병수 아버지를 향해 말씀을 건네셨다.
“그려, 집안에는 별일이 읍는감, 글구 시방 들어오다가 보닌게 싸립짝 앞에 세워둔 자전거 그거 자네껀가? 그거 쓸만헌 것이 돈푼께나 좀 줬나 보네 그려.”
기현이 할아버지가 곰방대에 잘게 썰은 잎담배를 꾹꾹 눌러 담으시고 성냥개비를 그어 불을 붙이셨다. 그러자 병수네 아버지가 기현이 할아버지 말씀 끝에 대답을 하셨다.
“뭐, 별시럽게 돈은 많이 안 들어갔네유. 저는 극구 마다구 했는디, 지 집 사람이 읍네 오갈 때 차비라두 아끼라구 한 대 사 줘서 끌고는 댕기는디 끌구 댕길랑께 영 불편하구만유. 아 모처럼 깨불알 친구들이라두 만나서 반갑다구 어울려서 술 한 잔이라두 할려구 허면 자꾸만 자전거 땜시 신경이 써 져서 그전처럼 많이는 못 마시긋드라구유.”
그러자 부연 담배 연기를 한 움큼 하늘로 내뿜으시던 기현이 할아버지게서 빙긋이 웃으시며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아, 그거 참 잘됐네 그려, 자네 집사람이 아주 방도를 잘 냈구먼, 아 을매나 좋은 일인가, 이참에 술두 좀 줄이구 그러면 자네 몸두 좋아질 꺼구.”
그렇게 말씀을 하시던 기현이 할아버지가 동네에서 술을 파시는 삼식이 아버지가 마음에 걸리시는 것 같은 얼굴 표정을 하셨다. 그리고 이내 삼식이 아버지 얼굴을 은근슬쩍 바라보시며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띠우셨다.
그리고는 애꿎은 땅에 야물딱지게 박혀 있는 돌등에 곰방담뱃대 꼭지를 ‘탁탁’ 두드리시며 큰기침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