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한가운데 늦가을 해는 또렷하게 떠 있었다. 찬연한 햇빛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내가 사는 작은 초가집 지붕 위를 따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가슴 시리도록 창창하게 맑은 하늘에 전투기 두 대가 서쪽 하늘 끝머리에서 거세차게 날아왔다. 두 줄기 하얀 비행운을 하늘에 굵게 남겼다. 그리고 이내 꼬리 끝이 보일락 말락 하게 동쪽 하늘가에 몰려 있는 구름 사이로 잽싸게 몸체를 숨겼다.
부엌문 앞에서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시는 듯 손짓을 하셨다. 점심 밥상을 아주머니와 함께 들어 마당에 내려놓고 일을 하고 계신 어른들께 식사를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읍내에서 사다 놓으신 궐연(파랑새, 탑, 건설, 모란 등)이 골고루 섞인 담뱃갑을 어른들께 드렸다. 일을 하시러 오신 어른들이 모처럼 만에 대하는 궐연 담배라 그런지 제가끔 흡족하신 표정으로 입맛에 따라 궐연을 골라 호주머니에 넣으셨다.
아주머니와 함께 부엌 바닥에 개다리소반을 펼쳐놓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사람이 찾아왔는지 검둥이가 크게 짖어대 밖을 내다보았다.
아랫집 기현이가 사립짝 앞에서 얼쩡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기현이 손을 붙잡고 마당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밥상 앞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밥그릇과 숟가락을 챙겨 기현이 앞에 놓아주면서 많이 먹으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몹시 수줍어하며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더니 슬며시 웃었다.
변변찮은 음식이라도 개의치 않으시고 맛있게 드시는 어른들과 기현이의 모습에서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아침참에 남은 술이 담긴 함지박을 밥상머리 한쪽에 놓아 드렸다. 경수 아저씨가 막걸리를 휘휘 저어서 한 사발을 ‘벌컥벌컥’ 소리를 내시며 시원스럽게 마셨다. 우윳빛 같은 막걸리가 묻어난 입언저리를 손등으로 쓱 문대시며 소피가 급하셨던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마당가 한쪽에 있는 뒷간으로 가시려다 잠시 뒤로 돌아 기성이형을 부르셨다.
“야, 기성아! 저기 벼랑바위 앞에 가는 게 종금이랑 종금이 엄니 맞지? 모녀지간에 곱게 꽃단장 허구 어디들 가는지 모르긋다.”
식사를 끝내고 막 일어나던 기성이형이 울타리로 바짝 다가가서 경수 아저씨에게 말했다.
“예, 종금이가 맞는구만유. 근디 옷차림새루 보닌께 가까운디루 가는 건 아닌 거 같구 읍내라두 나갈라는 모양인디. 뭔 일이 있는 거 같내유. 지 엄니까장 같이 가는 거 보닌께.”
식사를 마치시고 가는 벼줄기 끝 부분을 짧게 끊어 이 사이를 쑤시며 자리에 앉아 계시던 삼식이 아버지가 두 사람을 번갈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기성이 자네가 보기는 잘 봤네 그려. 오늘 강경 읍내에서 그 머시냐 베틀공장 기술잔가 뭔가허는 사람허구 약혼식 올리구, 사진 한판 박는다구 허든디.”
그러자 기성이형이 눈을 끔벅거리면서 다시금 말을 이었다.
“참, 가실이 좋기는 좋은가 보네유. 다들 지 짝 찾아 시집장가들 가는 거 보면유. 그리구 보닌께 우리 용만이 성님 으쩌면 좋데유. 종금이두 시집가 버리면 인제 무신 낙으루 살라는가 모르것네.”
그러자 뒷간에서 큰 기침을 하고 허리띠를 추스르며 나오시던 경수 아저씨가 말을 했다.
“야, 기성아! 그나저나 종금이 오빠 종열인가는 지금 어디 있다냐? 죽었는지 살었는지 통 소식이 없으니, 먼저 짬에 읍네루 나가다가 지서 앞에서 오 순경인가 만났는디. 나헌티 자꾸만 종열이 소식을 묻는디 내가 뭘 알아야 알려주든지 말든지 허지.”
그렇게 경수아저씨와 기성이형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삼식이 아버지가 다소 우려스런 표정으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씀을 하셨다.
“종열이두 참 큰일이다. 언제까지 숨어살 수두 없을 껀디, 어쩔라구 그러는지 몰르것다. 넘들 다 갔다 오는 군대 뭐시 무섭다구 피하는지, 누구는 그 고생 안 해봤는감 참 알다가두 모를 일이여.”
제일 먼저 자리에 앉아 볏짚을 한 움큼 쥐고 이엉을 엮고 있던 기성이형이 다시 말을 했다.
“참, 종열이 성님두 무지허게 답답하네유. 자꾸만 대책 없이 피해만 댕겨서 될 일두 아닌디 더군다나 혼자 몸두 아니구 옆에다 여자까장 데리구 다니니 고생이 오죽허것시유. 허기사,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심정 남들은 몰라두, 저는 쪼끔은 알 것 같네유.”
기성이형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생각을 하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뒤를 따라 볏짚을 깔아놓은 바닥에 자리를 잡으시던 경수 아저씨가 기성이형 말을 거드셨다.
“그럼, 지 혼자서 떠난 게 아니구, 누굴 데리구 같이 떠난 거네 피해 댕기면서 살라면 지 혼자 몸뚱아리두 벅찰 건디, 으디서 밥이라두 얻어먹구 사는지 참말루 걱정이다. 그럼 같이 간 게 누구라구 허데?”
볏짚을 손에 한 움큼 쥐고 세게 동여매어 엮으면서 기성이형이 모두 들으라고 말을 했다.
“아, 광다리 사는 인삼 장수 아줌니 안 있는감유? 그 아줌니 큰딸 정난이라는 애랑 어렸을 때부터 서로 눈이 맞어서 사귀었는디, 아 글쎄 그 아줌니가 종열이 형 한티는 죽어두 딸을 못 준다구 하면서, 자꾸만 자기 딸을 금산 읍내 한약방에 점원으로 일하는 사람헌티 서둘러 시집을 보낼려구 해서, 지난봄에 둘이서 소리 소문두 없이 떠나 버린 거 아닌감유.”
넉넉하게 엮어 놓은 덕석을 한쪽으로 밀어 놓으시고 담배를 태우시던 삼식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참, 딱하게 됐다만은 그래두 군대는 갔다 와야지. 그리구 모르면 몰라두 잡히기라두 허면 형무소에 끌려가서 콩밥 먹어야 될 건디 참 딱하다 딱혀, 그건 그렇구 가시내 얼굴이 이쁘긴 이뻤던 모양이구먼 그려. 지 신세 조지는 줄두 모르구 그렇게 큰일을 덜컹 저질러 놓은 걸 보면.”
그러자 기성이형이 얼굴에 가볍게 웃음을 띠면서 대답을 했다.
“뭐시 그리 이쁘데유 몸이 뚱뚱한디 그냥 그렇구 그렇게 생겼어유. 그래두 제 눈에 안경이라구 서루 좋아서 죽구 못 사닌께 뭐 눈에 뭐가 보이겠시유, 그러니까 그렇게 통 큰 일을 저질른 것이지유. 그 성님두 빨랑 와서 자수허구 군대나 갔으면 좋것구만유.”
잠시 말을 끊고 이엉을 엮으시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수 아저씨가 다시 말을 했다.
“참, 사랑이라는게 무습기는 무서운 것이여, 그러니 제가끔 좋아서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그리들 날뛰지, 아참, 내 정신 좀 봐라. 기성아 너 우리 집에 빨랑 가서 허청 멍석 위에 올려놓은 사닥다리 좀 가져와라. 큰 거 말구 작은 거 가져 와두 상민이네 집 지붕이 낮으닌께루 그걸루두 충분할 끼여, 얼릉 댕겨 와라 빨랑빨랑 혀야 해 떨어지기 전에 일 다 끝마치지.”
경수 아저씨께서 일을 서두시는 듯이 기성이형을 바라보며 재촉하셨다. 기성이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탈탈 털며 사립짝 밖을 나서 동네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밥을 먹을 때부터 자꾸만 볼을 매만지며 거북스러워했던 기현이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자기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나 이빨 썩은 디서 자꾸 피가 나구 엄청나게 아파서 도저히 못 참겠어유.”
기현이 말을 들으신 할아버지가 미리 준비를 하셨던지 위 주머니에서 굵고 노란 실을 꺼내셨다. 그리고 기현이 입을 크게 벌려 살펴보신 후 썩은 치아에 굵은 실을 걸어놓은 다음 기현이에게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기현아, 저기 봐라! 저기 뱀 큰놈 나왔다.”
정말로 뱀이 나온 줄 알고 얼굴을 돌려 보려고 하는 기현이 턱을 기현이 할아버지가 탁 치셔 이를 뽑으셨다. 그리고 기현이 할아버지가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 하시면서 뽑은 이를 우리 집 지붕 위로 높이 휙 던지셨다. 그런 다음 부엌으로 들어 가셔 물두멍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 가지고 오셔 기현이게 건네주시며 입 안을 헹구라고 하셨다. 그러자 기현이는 몹시 아픈 듯이 물을 한 모금 입에 물고 우물우물한 다음 밖으로 내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