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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22 조회 : 1,906




한낮의 해가 앞마당에 넉넉하리만큼 따스하게 머물러 주었다. 사는 형편이 여의치 못해 마을에서 제일 늦게 지붕에 이엉을 올리게 되었다. 때가 너무 늦은 탓에 날씨가 좀 싸늘했다.
어른들이 일을 하시는데 날이 추워 힘드실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어 일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어른들이 이엉을 엮으시려고 마당에 온통 볏짚들을 펼쳐 놓고 일을 하셨다. 그러자 놀 자리를 잃은 닭들이 문밖 텃밭에서 어정거렸다.
이젠 제법 날갯짓을 하며 푸덕대는 어린 병아리들도 눅눅해진 땅을 발로 후벼 열심히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방죽가 미루나무 우듬지에는 솔개란 놈이 빙빙 돌며 먹이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러자 어미 닭이 제 새끼들을 날름 채 갈까 봐 ‘꼭꼭꼭꼭’ 소릴 내어 새끼들을 한데 불러 모으려 했다. 그러자 꼬리 긴 늙은 수탉도 제 몫을 하려는 듯 목을 길게 빼 내밀어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기현이 할아버지께서는 앞산에서 베어 오신 싸리나무 가지로 문짝을 엮고 계셨다. 한동안 말없이 이엉을 엮고 계시던 경수 아저씨가 조금은 진지하신 표정으로 삼식이 아버지에게 말씀 하셨다.

“성님! 기성이가 없으닌께 허는 말인디 아까 기성이 말헐때 눈빛 봤어유? 뭔가 깊이 생각하구 있는 모양이던디. 동섭이 성님은 어쩔려구 그렇게 자꾸만 턱두 없이 똥고집만 부린데유. 아닌 말루 그러다가 종열이처럼 정희 데리구. 어디루 훌러덩 떠나 버리면 그 성질머리에 머릴 싸매고 죽는다구 벌러덩 드러누워 벌릴 건디. 그저 못이기는 척하구 받어주면 다들 좋아할 껀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긋네유.”

그러자 삼식이 아버지가 다 엮으신 이엉을 지붕 밑으로 옮기려 둘둘 말아 어깨 위로 들어 올리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러게나 말일쎄, 그러닌께 답답하다는 거지, 달리 하는 말이것는가? 아 어쩔건가? 이미 뱃속에 애는 커나가구 있는디 그게 고집으루 될 일인감. 두구 보게나 내 말이 맞을껀게 결국에는 동섭이가 그놈에 고집 꺽구 말건께. 절대루 길 두구 뫼루는 못 가는 법이여.”

말을 끝마치신 삼식이 아버지가 무척이나 답답하시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약간 찡그리셨다. 그러자 경수 아저씨가 일손을 잠시 멈추시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으시며 말을 이으셨다.

“그런디 까치마을루 이사간 기순이네는 잘 살구나 있는지 궁금허구만유 너무 갑자기 떠나 버린께 뭔가 잃어버린 거 같이 쪼매 허전하기두 허구 그렇네유.”

경수 아저씨네 집에 사다리를 가지러 갔던 기성이 형이 한쪽 어깨에 사다리를 걸치고 철길 건널목을 넘어 오고 있었다. 추녀 밑에 가져다 한 군데에 싸놓은 이엉을 손가락으로 세시던 삼식이 아버지가 다시 말씀을 하셨다.

“그려, 그건 자네 말이 딱 맞는 말일세. 그날 둥구나무 밑에서 동근이 애비두 말했지만 그렇게 해서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디. 그렇게 동네 떠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죄 짓는 것만 같드라구. 언젠가는 나두 저승 가서 즈그 애비하구 만날 건디 그때 가서 내가 뭔 말을 해야 옳을란가 모르것네.”

한숨을 크게 울 너머 하늘을 향해 내쉬시며 말씀하시자 경수 아저씨도 그런 삼식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이 말을 거드셨다.

“그나저나 객지라서 외롭구 힘두 부칠건디. 거기 어딘가서 사진관 일한다는 성균이라두 만났는가 모르것네유. 서루 만나면 의지가 되구 좋을 긴데.”

손바닥에 침을 뱉어 이엉을 이을 때 쓰시려고 겉고삿을 꼬던 삼식이 아버지가

“자네는 잘 몰라서 그러는가 본디 기순이가 아마 애써 만날라구는 안 할 걸세. 자네두 함 생각혀 보게나 기순이 갸가 왜? 그렇게 서둘러 떠난는가를. 그 뭐시냐 그게다 지 허물이 있으닌께 지 동생 귀남이 때문에 입소문 피할라구. 지 애비 뼈 묻힌 곳두 버리구 그리 급히 서둘러 떠나 버린거 아닌감?”

경수 아저씨가 삼식이 아버지 말씀에 공감을 하시는 듯이 서둘러 말씀을 하셨다.

“하여지간에 손바닥만 한 동네에 여편네들이 뭔 놈에 말들이 그리두 많은지, 기순이네 집이 그렇게 떠나구 나서 뒤로 말 들어보닌께, 기순이 엄니가 동네에 입소문 단속헐라구 근 이 년 동안이나 동네 이 집 저 집으로 나눠 준 미국 물건두 적지는 않은 거 같던디, 다덜 그리그리 받어 먹구나서 뒤에서는 똥구멍으루 호박씨 까는 소리들이나 하니 내 원참.”
“그러게나 말일세 뒷구멍에서는 양코배기 어쩌구저쩌구 떠벌리면서, 미제 물건 나눠 줄 때는 다덜 하나 더 않주나 하구 침을 흘리면서 덥석 받아먹고,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밀 듯이 자기는 한 개두 안 받아 먹은 것 모양 시침을 딱떼구, 있는 흉 없는 흉 다 보는 것 보면 그게 어디 사람으로서 헐 짓이냐구.”
“성님 말이 맞구만유, 그래서 지는 그 일 있구 나서 우리 집사람 밤으루는 절대루 문밖에 못 나가게 허는디두 그게 지 생각처럼 잘 안되드라구유, 고망쥐처럼 언제 빠져나가 마실을 가는지 귀신 같이 빠져 나가더라구유, 그렇다구 문고리에 붙들어 매 놀 수두 없는기구 내 원 참, 참 그리구 요새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든디 성님은 아시유?”

삼식이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 지붕 밑에 있는 사다리를 제자리에 놓으시려다 궁금하신 듯 경수 아저씨에게 물으셨다.

“아 이 사람아 앞뒤 꼬랑탱이 다 짤라먹구 물으면 내가 뭔지를 알구 얘기를 허근는가!”

경수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서 지붕 쪽으로 다가서시며 내심 궁금하신 듯 다그치시는 삼식이 아버지에게 말씀해 주셨다.

“그게 뭐시냐면유 지가 잘못 들었나는 모르것는디유, 영택이 아버지가 이번에 읍내에 포목점 한다는 과수댁 아줌니한티 새루 장가든다구 허든디유.”

지붕 밑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어 물으시던 삼식이 아버지가 조금은 의아스런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글쎄 원체 속맘을 잘 안 털어놓는 사람이라 나두 자세히는 모르것는디, 흘러다는 말은 얼쭉 그말이 맞는 모양이더라구, 허기사 자기 마누라 죽어 나간지두 벌써 몇 해가 지났구, 그만큼 혼자 살며 어린것덜 데리구 마음고생 그만치 했은께, 이제 새사람 만날 때두 되었지 뭐 자네 생각은 안 그런가?”

아래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시던 경수 아저씨가 무엇인가 느낌이 깊게 와 닿으시는 표정으로 말씀을 하셨다.

“허긴 성님 말씀 듣구 보닌께 그건 맞는 말인거 같네유, 그 아줌니 속병으로 그리 끌다가 돌아가신게 엊그제 같은디, 세월이 벌써 그렇게 지나가 버렸네유, 그때가 지가 장가들던 그해 한겨울이었는디 벌써 애가 둘씩이나 생겼버렸으니.”

동네로 사다리를 가지러 갔다 온 기성이 형이 두 분 옆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말을 했다.

“아까 사다리 가질러 갔다 오면서 보닌께 종기네 엄니가 면소재지 한약방에 약 가질러 가시는 거 같던디, 암튼 그 집두 큰일이네유 종기 할머니 칠순잔치 할려구 준비 다 해 놓은 모양인디, 노인 양반이 벌써 여러 날 저렇게 누워만 계시니 으짜면 좋데유.”

그때 철로 건널목 건너 언덕배기 쪽에서 음정과 박자가 많이 다른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구나.”

우직하고 다사스럽기만 한 용만이 형이 술을 조금 먹은 듯 언덕배기를 내려서 우리 집을 향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검둥이가 잽싸게 사립짝 밖으로 나가 용만이 형을 바라보며 목을 치켜들고 짖었다.

사다리를 딛고 지붕 위에 이엉을 올리시던 경수 아저씨가 용만이 모습을 보셨는지 한 말씀 하셨다.

“오늘 뭔일이라냐 용만이가 대낮부터 술 한잔 하고 노래를 다 부르게 모르면 몰라두 종금이 약혼헌다구 하닌께 속이 터져서 저러는가? 암튼 노총각 애간장 타는 모양이네 그려.”

그러자 추녀 밑에서 이엉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려 주고 있던 기성이 형이 입을 가볍게 삐쭉이며 말을 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두 안 허는디 혼자 김칫국부터 마실려구 그러는 거지유 뭐, 종금이는 눈꼽만큼두 마음이 없는디 그게 되는 건감유, 남 속두 모르구 저렇게 혼자 짝사랑을 하면서 몸 달구고 다니는 거지유.”

사립짝 앞으로 용만이가 다가서 기현이 할아버지에게 머릴 숙여 인사를 드리면서 일을 하고 계시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했다.

“날씨한질라 쌀살헌디 일들 하시느라구 고생들 허시네유 쉬엄쉬엄 허세유.”

그러자 지붕 위에 오르신 삼식이 아버지가 지붕 밑에 서 있는 용만이를 내려다보시며 말씀 하셨다.

“어이 용만이 뭔 일이 있는가? 대낮부터 뭔 술을 그리 마시게.”

낮술에 취했는지 이미 얼굴에 술기운이 발갛게 오른 용만이 형이 대답을 했다.

“뭔 일은 유, 그냥 기분두 그렇구 해서 형님네 집에 가서 탁배기 몇 잔 하구 올라오는 길이구먼유, 넘에 집일이나 거들구 사닌게 사람 취급두 못 받구혀서, 이참에 머슴 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든가 다른 디루 가 볼까 생각 중이구먼유.”

용만이 형이 마당에 놓인 술상 위에 술 주전자를 흔들어 사발에 넘치도록 부어 마시려 했다. 그러는데 경수 아저씨와 함께 지붕 위에 이엉을 덮고 계시던 삼식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 이 사람아 누가 자네 보구 이러니 저러니 허것는가, 동네서 자네헌티 그런 말할 사람들두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두 안될 일이지, 그런디 뭣땜시 갑자기 으디루 간다는 소리는 허구 그려.”

새끼줄을 추려 둘둘 뭉쳐 들고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오르려던 기성이 형이 그런 용만이 형 모습이 어줍지 않은지 말을 했다.

“뭐 보나마나 뻔하지유,종금이가 읍내루 약혼식 하러 가닌께 화두 나구 이참 저참해서 한잔 한 거구먼유 뻔한 거지유 뭐.”

술 한 잔을 서둘러 마시고 난 용만이가 입가를 손으로 쓱쓱 문대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다들 알구 있는 거닌께 짜시리 숨길 것두 없는 거구, 솔직히 저 혼자 아무리 좋아허면 뭐 헌대유 인제는 다 끝나 버린 건디, 동네 사람들 보기두 챙피스러워서 도저히 안될 것 같구 이참에 지가 동네서 없어져야 할 것만 같네유, 지가 읍시 살아서 남에 집살이만 안 했어두 이렇게까장은 안됐을 껀데.”

마당 안을 바라보시며 부엌문 앞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셨다. 부엌으로 가 보니 채둥우리 안에 있는 찐 밤을 가리키시며 먹으라 하시기에 두어 개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왔다.

어른들이 대나무 끝을 죽창처럼 뾰족하게 깎아 만든 꼬챙이로 지붕을 푹푹 찔러 이엉을 덮으려고 새끼줄로 묶어 마름을 하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참새들도 머리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어느새 해는 동네 앞 둥구나무 위를 벗어나 들녘을 넘어 서편 읍내로 다가서고 있었다. 기현이 할아버지는 손질이 끝난 사립짝을 울타리 기둥에 굵은 철사로 묶어 매달으셨다.

다른 날보다는 일찍 장사를 마치신 어머니께서 벼랑바위를 지나 억새풀이 가득 들어찬 둔덕을 넘어 집으로 오시고 있었다.

마당에서 혼자 뻘쭘하게 앉아 말없이 술잔을 비우던 용만이 형이 다들 일을 하고 있는데 혼자 앉아있기가 거북스러운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바지 엉덩이 부분에 들붙은 볏짚을 훌훌 털고 있었다.

“그럼 먼저 내려가 볼테닌께 다들 마무리 잘허구들 오세유.”

용만이 형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립문을 나서 텃밭 길로 내려섰다.

이제 지붕 일을 마무리하려는 것 같았다. 날카롭게 잘 드는 낫을 들고 추녀 끝으로 삐져나온 볏짚 끝을 추슬러 가지런히 자르시고 있었다.

그리고 삼식이 아버지께서 마당으로 들어서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시며 말씀 하셨다.

“어째 보기에 괜찮은 감유? 내 깜냥에는 성의껏 헌다구는 했는디 어쩔란가 모르것네유.”

쪽마루에 젓갈동이를 내려놓으시던 어머니가 지붕을 한번쯤 쭉 둘러보시고 이내 말을 이으셨다.

“예 아주 이쁘게 잘 됐구먼유 지 맘에 쏙 들게 맨들었네유.”

저녁 해는 제 할일을 다한 듯 읍내 봉화재 마루턱에 느긋하게 드러누우려 했다. 납작 엎드린 지붕 밑 굴뚝에서는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그 연기가 땅거미와 한데 어울려 추녀 끝자락에 뿌옇게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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