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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31 조회 : 1,735




틈틈이 들깨깻묵과 양초 칠로 매끄럽게 닦아놓은 교실과 복도의 마룻바닥이 번질번질하게 윤기가 났다. 싸늘한 날씨 탓인지 마룻바닥에 닿은 발바닥이 마냥 시려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탓에 우리들 모두는 여기 저기 책상 위에 제가끔 걸터앉아 떠들고 있었다.

꽤나 쌀쌀한 날씨에 저마다 마음속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교실에 난로를 피워주길 간절히 바랐다. 허나 빈약한 학교 재정에 웬만한 추위는 그냥 버텨내려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뜨끈뜨끈한 난로가 그려지건만 교실 한 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채 불이 꺼진 난로는 오히려 차가움을 더욱 부추겼다.
그나마 오후로 접어들자 유리창에 햇살이 가득하게 퍼져 교실 안의 싸늘한 냉기가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빙 둘러앉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반장인 명식이와 석란이는 화산리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했다.
그리고 부반장인 영선이 옆에는 성태와 응선이 그리고 옥순이와 내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마다 책상 속에서 도시락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다행히 학교 급식소에서 뜨거운 보리차를 끓여주어 움츠러드는 추위에 큰 위안이 됐다. 그날 당번들이 함석 물통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보리차를 가득 담아 들고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로 앞 다투어 도시락 뚜껑을 여는 소리가 교실 안으로 번져났다. 각자 물을 떠 가지고 식은 찬밥을 뜨거운 물에 말아 제가끔 싸온 반찬들을 책상 한복판에 모아 놓고 점심식사를 했다.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교실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쪽빛 하늘 아래 오전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키가 작은 아이들의 모습이 귀염성스럽게 보였다. 네모난 교실 창밖으로 멀리 내다보이는 흐릿한 산릉선 너머 논산 훈련소 사격장에서 나는 총소리가 또랑또랑하게 들려왔다

점심시간이 끝난 후 첫 수업시간이 되자 오전 내 내 움츠렸던 몸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배는 더부룩해져 스르르 찾아오는 졸음에 자꾸만 눈이 감겼다.
이따금씩 학교 앞 큰길가 대장간에서 불에 달구어진 쇠붙이를 두드리는 쇠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수업시간에 앞서 졸음을 쫓으시려는 듯 담임선생님께서 큰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자, 모두들 나를 따라서 어깨를 쫙 펴고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려 ‘반달’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짙은 밤색 양복 겉주머니에 꽂혀 있던 만년필을 꺼내 드시고 지휘를 하셔 우리들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모두들 소리를 크게 내어 부르는 우리들의 합창소리가 교실 유리창 너머 텅 빈 교정 안으로 울려 퍼져 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양복 아랫바지 주머니 속에서 은단 갑을 꺼내시어 은단 몇 알을 입에 무시고 다시 말씀을 하셨다.

“자, 인제 정신들이 드냐? 그럼 조선의 역대 임금들 이름을 외워 보기로 한다. 너희들 중에 그 이름을 다 외울 수 있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아라.”

그러자 모두들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다. 그렇게 머뭇거리자 선생님께서 조금은 걱정스런 얼굴로 우리들을 바라보셨다.

칠판 위에 ‘딱딱딱딱’ 분필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글을 쓰셨다. 선생님께서 칠판 위에 써 놓으신 글씨를 한자 한자 가리키시며 큰소리로 선생님을 따라 읽도록 하여 우리들 모두가 몇 번쯤 큰소리로 따라 읽었다.
그리고 역사 공부에 아주 중요하고 꼭 필요하니 머릿속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우리들은 모두 칠판 위에 글씨를 바라보며 한자 한자 빼놓지 않고 공책에 적었다.

‘땡땡땡, 땡땡땡’ 교무실에서 교감 선생님이 치시는 종소리가 울려 다섯 번째 수업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매일 실시하는 모의시험 준비들을 하느라 화장실에 용변을 보러 가는 사람을 빼놓고는 모두들 자리를 뜨지 않고 복습했다.

체육에 특별한 재주가 있는 덩치가 남다르게 큰 성태는 학습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읍내 중학교를 졸업하고 멀리 대전이나 서울에 있는 체육을 전문으로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려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역도선수가 되겠다는 말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했다. 그래서 자기 집에 동그랗게 시멘트를 부어 만든 역기를 매일 매일 열심히 들고 연습을 한다고 하며 자랑을 심심찮게 늘어놓았다.

또한 성태와 같은 마을에 사는 응선이도 공부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해 성적이 저조한 편이었다. 공부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틈나는 대로 서커스단 사회자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제법 맛깔스럽게 흉내를 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유명한 배우처럼 되고 싶다고 하면서 책상 위에 올라 서 배우들 흉내를 어설프게 내어 우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돌고개 성황당 마루 터 호두나무 아래서 주워 온 호두 알을 깨어 먹으면서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처럼 놀기만 했다.

오후 내 교실 유리창에 놀던 다스한 햇살이 슬며시 측백나무 울타리를 넘어 마을을 향해 비석골 쪽으로 발걸음 할 때쯤이었다.
직원 종례를 마치신 선생님들이 교문을 향해 자전거를 몰고 가시고 여자 선생님 두 분께서도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셨다.

언제나 어둠살은 높다란 학교 측백나무 울타리 밑 부분의 어둑한 부분부터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하루 수업이 끝나고 보충 수업 시간인 시험시간이 되었다. 모두들 눈을 감고 머리에 손을 얹어 선생님이 나눠 주시는 시험 문제지를 기다렸다.

얼마 후 시험 문제지를 모두에게 나눠주신 선생님이 모두들 눈을 뜨고 문제를 충분히 살펴보고 풀라고 하셨다. 등사를 하여 바로 나눠 주신 종이에서 묻어나는 잉크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험 문제지를 바로 뒤집어 펼쳐 놓고 문제를 풀어 나갔다.
등사할 때 기름이 짙게 묻어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선생님이 인쇄가 선명하게 된 다른 시험지로 바꿔주셨다.

기우는 저녁 해는 서서히 찾아오는 어둠살에 자리를 넘겨주려했다.

하루 중에서 제일 조용한 시험을 치루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교실 안이 서서히 어두워지자 선생님이 책상 위에 오르셔 깨금발로 교실 앞뒤 두 군데 전선줄에 매달린 전깃불을 켜셨다.
둥그런 전구알이 환하게 불빛을 비치자 모두 책상 위에 몸을 구부려 연필을 거머쥐고 시험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생각이 잘 떠오르질 않는 아이들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골똘했다. 그러나 평소 공부에 열중한 몇몇 아이들은 비교적 쉽게 문제를 풀어 나갔다.

늦저녁 찬 공기에 마룻바닥이 아침때처럼 차갑게 느껴져 잔뜩 시려오는 발가락을 양말 속에서 자꾸만 꾸무럭거렸다. 시험을 감독하시던 선생님이 어두컴컴한 밤중에도 시간을 알아볼 수 있다는 야광 손목시계를 자꾸만 들여다보셨다.

유리창 너머 새터마을 지붕 위에는 어스름한 하늘 위로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한집 두 집씩 전깃불을 밝히고 있었다.

선생님이 시험 끝을 알리셨다. 각자 머리를 손에 얹고 반장과 부반장이 시험지를 걷었다. 선생님은 다시 걷어 온 시험지를 서로 줄을 바꿔 나눠주셨다.

문제의 정답을 말씀하시고 우리들은 서로 바뀐 시험지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점이 끝난 후 시험지 맨 윗부분에 점수를 표기했다

어두움이 스멀대는 교단 위에 올라서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점을 맞은 사람이 있냐?”

토끼재에 사는 우석이가 혼자서 손을 번쩍 들고 말을 했다.

“양영선이가 백점을 맞았는디유.”

교실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영선이 얼굴을 모두 바라보았다. 그런데 석란이만 애써 영선이를 바라보지 않으려 했다

수업을 끝마치고 키 작은 내 짝꿍 옥순이와 어둠 짙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벗어나 큰길가로 나섰다.

둥그런 알전구가 불그레하게 불을 밝히는 대장간에는 하루 일을 마치신 아저씨가 땅바닥에 너저분하게 놓인 연장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있었다.
옆집 이발소에는 아직 수리가 덜 끝난 듯했다. 출입문이 달려 있지 않은 채 덩그러니 가게 안쪽 벽에 엇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유리창에는 빨간색 페인트로 굵다랗게 ‘고향이발소’ 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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