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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32 조회 : 1,615




계절의 흐름은 작은 사물 하나까지도 계절에 걸맞게 변화를 일으켰다. 싸리나무로 엮어 놓은 울타리에 바짝 메말라 오그라든 호박잎들이 볼썽사납게 군데군데 보였다. 그저 손끝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바스락 소리를 내며 이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어찌 보면 여름의 흔적을 그리 쓸쓸하게 남겨 놓은 듯싶어 바라보는 마음이 허전키도 했다.

마을 초가지붕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조개껍질을 엎어 놓은 것처럼 올망졸망하게 보였다. 늘 그렇듯이 아침 햇살은 소담스럽게 그쯤에 머물려 했다.

마을 끝머리쯤에 자릴 한 기수 아저씨 댁이 산뜻한 모습으로 바라보였다. 엊그제 동네로 시집온 기수 아저씨 부인되시는 분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분을 천주교에서 받은 세례명을 따라 ‘루시아’ 라고 불렀다.
원체 독실한 신자인지라 자기 집안은 물론 사촌까지 온 친척 식구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읍내 천주교에 다녔다. 그런 영향으로 이번에 새로 장가를 간 기수 아저씨도 ‘루시아’ 아주머니와 함께 천주교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신혼인 두 내외분이 결혼식 때 입었던 새 양복에 곱다란 색깔의 한복을 차려입고 마을 앞 큰길을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일요일이라 읍내 성당에 가는 것 같았다.

마을 앞 나무다리 위에는 순아네 소달구지가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가고 있었다. 소달구지 위에는 긴 장죽에 부연 담배연기를 내뿜으시는 순아네 할아버지의 모습이 여유롭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옆자리엔 알록달록한 색깔의 꿩에 깃털을 중절모에 끼워 잔뜩 멋을 부리고 갈색 양복을 입으신 영택이 아버지가 몸을 흔들며 함께 타고 가셨다.

영택이네 새어머니를 위해 값이 엄청나게 비싸고 번쩍번쩍 빛이 난다는 자개농을 들여놓는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아마도 그 자개농을 가지러 읍내 농 만드는 공장에 가는 것 같았다.

벼랑바위 옆 둔덕 너머엔 면 소재지 한약방에 가시는 종기형네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흥남이 아저씨네 집에서는 들녘 논배미에 꿩약을 놓아 잡아 온 청둥오리 한 마리가 마른 볏짚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시절 동네 어른들이 산에 꿩과 들녘 텅 빈 논배미에 내려앉는 청둥오리를 잡으려고 약을 놓았다. 아주 가느다란 바늘로 콩에 구멍을 내어 청산가리를 아주 조금 넣은 다음 그 구멍을 촛농으로 살짝 때워 눈속임을 했다.
그리고 늦저녁 해질 무렵에 앞들 큰 강가 개어귀와 수렁배미에 꿩약을 흩어 놓아 청둥오리를 곧잘 잡으셨다.

흥남이 아저씨가 잡아오신 청둥오리 색깔이 너무도 곱살하게 보여 호기심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아 대문 앞에 가까이 다가서 바라보았다. 오색 빛깔의 무늬가 정교하게 얼룩진 청둥오리의 모습은 눈이 아프게 보아왔던 방죽가 흰 오리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그 빛깔이 너무도 탐스레 보였다.
그러나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축 늘어진 채 죽어 있는 청둥오리를 바라보니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그렇게 잡은 청둥오리 고기를 단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 그 맛을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동네 어른들은 청둥오리 고기가 둘이서 먹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쫄깃쫄깃하게 맛이 좋다고 하셨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반가운 초겨울 첫손님인데 그렇게까지 약을 놓아 청둥오리를 잡아야만 하는가? 하고 생각을 거듭 해보았다. 그런 흥남이 아저씨가 몰인정하게 보여 왠지 모르게 조금씩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동네에서도 겨울철이면 어른들이 일거리가 별로 없게 되자 소일꺼리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뒷산에 꿩약을 놓고 싸리나무 가지 사이에 토끼 올무를 놓았다.
동네 어른들이 이른 아침에 꿩과 산토끼를 잡아 오는 모습을 자라오는 동안 여러 차례 보았다.

동구 밖 둥구나무 밑에 용만이 형의 모습이 보였다. 종구네 집이 어제 장날에 읍내 수리조합장네 집에서 젖을 뗀 독일산 셰퍼드를 가져왔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게 났다.
털 색깔이 거무튀튀한 강아지를 동네 사람 모두들 보란 듯이 용만이가 줄에 매달아 운동을 시킨다고 거들먹거렸다.

그 개는 족보도 있고 두 귀도 뾰족하게 서 있어 아주 영리한 짐승이라고 했다. 그리고 키워 놓아 성견이 되면 주인을 위해 용감하게 충성을 다 바치는 아주 값이 비싼 개라고 입에서 침이 튀어나올 정도로 자랑을 했다.
동네 꼬마 아이들은 그 말에 깊은 뜻도 모르는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서 줄에 매인 강아지를 둘러쌓아 바라보았다.

대나무를 고르게 엮어 만든 대문짝이 있는 민균이네 집에선 작년 가을에 금강 둑 밑 장화리에서 시집을 온 큰형수가 아기를 낳은 것 같았다. 곱살하게 꼰 새끼줄에 검정 숱과 새빨간 고추가 정갈하게 매달려 있었다.

길 건너편 우현이네 집에서는 우리 집 검둥이와 자주 어울려 놀던 털 색깔이 하얀 복실이가 새끼를 낳은 듯했다. 마루 밑 볏짚 둥우리 속에서 어미의 젖꼭지를 찾으려 옹알대는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현이가 갓 태어난 강아지 새끼를 마루 밑으로 들여다보려 하자 어미가 으르렁거렸다.

뽕나무가 사방으로 울타리 쳐진 영호네 집에는 영호가 옆집 사는 진식이 하고 대추나무 가지를 꺾어 작은 윷을 만들고 있었다. 마루 위에 올려놓고 부엌칼로 자르려고 하자 영호네 어머니가 부엌칼을 다 버려 놓는다고 소리를 치셨다.
그리고 문고리에 헝겊 줄이 달린 방문을 활짝 열어 방 빗자루를 거꾸로 거머쥐시고 뛰어나오셨다. 그러자 놀란 영호와 진식이가 후다닥 고샅길로 빠져나와 동구 밖으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줄달음질하고 있었다.

길모퉁이 동근이 아저씨네 집에는 칠면조가 머리에 붙은 빨간 혹을 기다랗게 늘어뜨려 제 딴엔 위용을 떨치려는 듯해 보였다. 꽁지의 깃을 둥그렇게 활짝 펴 아침 햇살에 온몸이 번득거렸다.
마루 위에서는 동근이 아저씨가 우체부 아저씨가 전해 주신 날짜가 지난 신문을 돋보기를 쓰시고 밖으로 들릴락 말락 하게 읽고 계셨다.

고샅길을 걸어 동네 한 가운데에 있는 종구네 집 앞에 닿았다. 밤색 짙은 중절모에 두루마기 자락을 걸치신 종구네 아버지가 교회에 가시려는 듯 대문 밖을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마루에 서 있는 정희누나를 향해 밖에 나와 돌아다니지 말고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처럼 손짓을 하며 걸어가셨다.

연자방앗간 공터에는 주현이 동생 수영이가 동네 아이들이 땅에 오목하게 구멍을 파놓고 유리 구슬치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순태 아저씨가 종금이 누나네 어머니와 함께 벼 방아를 찧으려는지 방앗간 안으로 들어가셨다. 아마도 약혼식이 끝난 종금이 누나를 서둘러 시집을 보내는데 이것저것 준비를 하시느라 돈을 장만하시려고 방아를 찧으려는 것 같았다

동네 이장님댁 돼지우리에는 검정돼지가 불룩하게 나온 배를 내어 밀고 네 다리를 쭉 뻗어 눈만 껌뻑거리며 능청맞게 누워 있었다.
대문 앞 양지바른 쪽 담 밑에는 내년에 학교에 들어갈 막둥이의 모습이 보였다. 검정콩에 호박꼬지를 넣은 버무리떡을 손에 가득 들고 제 딴에는 아껴 먹으려는 듯이 한 손끝으로 조금씩 떼어 입에 넣고 있었다.

앞집 경수 아저씨네 집에는 마당 안에서 아이들이 닥나무 껍질을 꼬아 만든 팽이채로 팽이를 치며 놀고 있었다. 그중에 큰 아들이 윗머리 부분에 색칠을 곱게 한 팽이를 서툴게 치고 말았다. 그러자 팽이가 몇 바퀴 도는 듯싶더니 이내 땅 위에 쓰러지자 무엇이라고 투덜거렸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던 경수 아저씨가 그래도 그런 자식들의 모습이 마냥 귀여우신지 가볍게 웃고 계셨다. 그리고 마루에 앉아 방패연을 만드시려는 듯 대나무를 낫으로 가늘게 깎아 연살을 만드셨다.

경수 아저씨는 동네에서 연을 제일 잘 만드시는 흥남이 아저씨 다음으로 연을 잘 만드셨다. 그리고 솜씨가 좋아 나무 막대를 매끄럽고 정교하게 깎아 팔각형 모양의 연자새(얼레)를 만들어 온 동네 아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경수 아저씨가 만드신 연의 머리에 붙이는 둥그런 조각에는 꼭 초록색 물감으로 칠을 하셨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지만 동네 아이들은 경수 아저씨가 만드신 연을 수박연이라고 불렀다. 종구가 작년 늦겨울까지 그 수박 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흥남이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연의 밑자락에 바람을 뜻하는 한자로 (風) 이라고 쓴 방패연을 가지고 놀았다.

작년 늦겨울까지는 종구와 함께 뒷산 언덕마루에 올라 다정하게 연을 띄웠다. 저녁노을이 금강 둑 너머로 기울어 온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추위에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연날리기를 했다.
그런데 올봄에 비석골에서 종구와 큰 싸움이 있고 난 후부터는 서로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서먹해졌다. 그래서 작년 겨울처럼 연날리기를 다시 할 수 있을지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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