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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41 조회 : 1,793




가을걷이 때엔 농부들의 발걸음이 그리도 분주했던 들녘, 논벌이었다. 허나 초겨울로 접어들자 사람들의 발길이 딱 끊긴 채 그토록 허전하게만 보였다.
그저 들녘에서 달갑지 않게 불어오는 스산스런 바람만이 앞가슴에 찬기를 가득 남겨주고 매몰스럽게 스쳐 지났다. 들녘을 가로 질러 읍내를 향해 줄져 서 있는 나무 전봇대의 전선줄이 바람결에 부딪쳐 ‘우웅우웅’ 소리를 냈다. 높다란 전신주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정연하게 서 있는 만큼이나 묻어나는 쓸쓸함이 절절했다.

앞자락 논배미에는 들녘을 헤집는 다스한 오후 햇살 속에 청둥오리 떼들이 논바닥에 떨어져 있는 낱알들을 부지런히 찾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라도 눈에 띄어 가뜩이나 허전한 마음을 다소는 달래주는 듯해 잠시인들 눈 안에 가득 담아두고 싶었다.

동네 우물터 옆 미나리 밭에 서쪽으로 기울려 하는 햇살이 다보록하게 비췄다. 삼식이네 초가지붕 굴뚝 위로 솟아오른 매캐한 연기가 대문 앞 상수리나무 우듬지를 휘감고 있었다.
희끄무레하게 퍼져난 연기가 저녁햇살에 뒤엉켜 바람결에 실실이 흩어져 정감이 가득 서렸다. 삼식이네 집이 온통 떠들썩한 것이 아마도 동네 어른들이 모여 민물 매운탕으로 술추렴을 하시려는 것 같았다. 일거리가 없는 농한기에 어른들은 그렇게라도 지루함을 메워 보려는 것 같았다.

참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삶 그자체가 너무도 궁핍하다 보니 말 그대로 척박할 수밖에 없고 늘어나는 것은 짙은 한숨뿐이었다. 그런 험난한 여건 속에서도 우리들 모두는 살아남으려 애써 발버둥을 쳤다.
저마다 억척스런 생명력과 강인한 정신력이 있어 그렇게라도 버텨 살아가는 험난한 시절이었다.

우물가 뒤쪽에 사립짝이 비스듬히 트여진 내 친구 주현이네 집이 보였다. 그 주현네 집이 좁다란 고샅길을 사이에 두고 옥순이네 집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주현이 어머니께서는 서울로 올라가 남에 집 굴뚝 청소를 하여 돈을 벌려고 집을 비운 남편을 대신하여 힘든 살림을 꾸려 나가셨다. 뒤뜰 대나무 밭에서 굵기가 실한 대나무를 베어와 길쭉한 대나무들을 벽에 기대어 놓고 한동안 바람을 쐬어 잘 말렸다.
그리고 건조가 잘 된 대나무를 칼로 길게 쪼개어 대나무로 소쿠리와 갈퀴를 연약한 여자의 힘으로 억척스레 만들었다. 온 손바닥이 베이고 갈라지며 며칠을 두고 만들어 마루 위에 쌓아 놓았다.
그렇게 만든 소쿠리와 갈퀴는 읍내 장사꾼이 도매로 사들여 읍내로 가져갔다. 그런 억척스런 생활력에 모은 돈으로 두 해 전 뒤뜰 우묵배미에 논 세 마지기를 사들였다.
그런 탓으로 세 식구가 그럭저럭 양식 걱정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큰아들인 주현이가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남들 다 보내려고 하는 중학교에 진학을 시키지 않으려 했다. 얼른 기술을 배워야 돈을 빨리 번다고 하시며 읍내 농 공장에 직공으로 보내려고만 했다.
그 바람에 주현이 어머니가 우리들 눈에는 엄청난 ‘구두쇠’같이 보였다. 더욱이 주현이 어머니가 지독스럽게 보였던 점은 두서너 해전 가뭄에 기근이 그리도 심했을 때였다.
먹을 것이 없다 보니 굶주림에 지쳐 맥이 떨어져 눈이 스르르 감기고 입에서 흙내가 날 정도로 배가 고파 고통이 극심했다.
주현이 어머니께서 갈대가 무성한 철로 변 개울가 부지에 불법으로 땅을 일궈 밭을 만드셨다. 하다못해 풋곡식이라도 얻어 어린 자식들과 살아남으시려 바동대셨다.
철도 부지를 불법으로 개간한 밭 때문에 단속하는 선로 보수반 아저씨들과 수도 없이 다툼질을 했다. 심한 경우엔 양쪽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온갖 심한 말싸움을 마다 않으셔 동네에서 ‘억척배기’ 라고 소문이 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에 쥔 땅덩어리 하나 없다 보니 어린 자식들과 살아남으려면 그리나마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우물가 종기형네 집에선 한약냄새가 진동을 했다. 담 너머로 숨 가쁘게 악을 쓰며 버럭버럭 질러대는 돼지의 비명소리가 들려 얼른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면소재지에서 푸줏간을 하시는 엄씨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하신다는 할머니 약값 때문에 키우던 돼지를 파신 것 같았다.

네다리가 꽁꽁 묶여 목덜미가 축 늘어지고 두 볼깃살이 두툼한 수퇘지 한 마리를 짐자전거 짐받이에 야무지게 졸라매고 있었다. 아저씨께서 자전거 짐받이에 실린 돼지의 무게가 힘에 겨우신 듯 몸을 앞으로 잔뜩 구부린 채 온힘으로 페달을 밟아 고샅길로 나섰다.
잔뜩 겁에 질린 돼지는 불그레하게 충혈이 된 두 눈에 입 가장자리에는 허연 거품을 내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사립짝 앞에 서 있는 종기형 어머니는 그 동안 애써 키운 돼지가 그렇게 팔려나가자 못내 아쉬운 듯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옥순이네 집엔 밑동 굵은 감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대문 앞에 떡 버텨 서 있었다. 옥순이가 두엄 가에서 마른 감나무 이파리들을 한데 긁어모아 불에 태워 ‘탁탁’하는 소리가 매캐한 연기 속에 들려왔다.

옥순이가 연기에 눈이 매운지 얼굴을 찡그리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루에서는 옥순이 어머니께서 깍두기를 담그려는지 도마 위에 굵은 무를 올려놓고 ‘톡톡’ 자르며 말씀하셨다.

“그나저나 니네 엄니는 동네 사람들이 쓸 김장 젓갈을 언제 가져올려구 그러는지 모르긋다. 날이 슬슬 쌀랑해지닌께 드문드문 한두 집씩 물어보든디 어쩔랑가 모르긋네. 그 여편네 요새는 돈버는 재미 붙였나, 통 코빼기두 안 보이구. 허긴 바쁘기는 할 꺼구먼.”

그러자 나뭇잎을 태우고 있던 옥순이가 말을 했다.

“엄마, 금년에두 우리랑 상민이네랑 같이 김장하는 기여?”
“어쩌긋냐? 샘 물길 가까운 여기서 혀야지. 그 먼디까장 물을 길어 나를 수도 없으닌께, 글구. 어디 한두 포기 막김치 담는 것두 않이구. 없는 사람들 헌티는 뭐니 뭐니 혀두 짐치가 한해 식량인디. 하냥 담궈야 쓰지 않긋냐?”

부엌에서 바가지에 담긴 소금을 가지고 오셔 예쁘게 잘라 놓은 무 조각 위에 소금을 솔솔 뿌리셨다.

텃밭에 심어 놓은 쪽파가 반그늘에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담 너머 기수 아저씨네 마당에는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오려는지 기수 아저씨가 물지게를 지고 문밖으로 나오셨다.
그 모습을 본 옥순이가 자기 어머니에게 또다시 말을 했다.

“엄마, 왜 물을 그 새댁이 안 길러 가구 아저씨가 길러 간데? 그 새댁은 하루 종일 방에서 뭘 하는지 남자가 채신머리없게 물을 길러가게 하는지 모르것네.”

쪽파 껍질을 벗기고 계시던 옥순이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남자들이 처음엔 다 그런 거다. 니 애비두 그전에 내가 물 길러 간다구 허면 내가 물지게를 얼른 빼앗아 가지구 우물가루 가구 그랬는디, 에휴.”

방안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의 군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찍은 옥순이 아버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런 모습에 갑자기 숙연해진 나와 옥순이는 애꿎게 땅바닥에 놓인 나뭇잎만 불더미 위에 슬슬 올려놓았다.

머리가 좀 길어진 듯싶어 모처럼 면소재지 이발소에 가려고 마음먹었다. 옥순이네 집을 나서려는데 옆집 영택이네 집에서 영택이 아버지가 큰소리를 치셔 바라보았다.

뭔 일이 있었는지 영택이 아버지가 토방에서 부엌문 앞에 서 있는 중례누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마구 큰소리를 치셨다. 그러자 중례누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고 있었다.
그러자 무에 양념을 넣고 버무리시던 옥순이 어머니께서 그런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저 집은 또 시작이구먼. 모르면 몰라두 중례 시집갈 때까장은 조용할 날이 없을 꺼구먼. 그러니 새 마누라 얻은 죄로다가 새중간에서 저 양반만 죽어나는 거지 뭐. 허긴 그 여편네랑 중례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으닌께. 중례 입에서 어머니 소리가 그리 쉽게 나오질 않는 거구, 그러다 보니 서로 자꾸 눈치만 보게 되는 거지. 그러니 잘사는 집두 걱정, 우리같이 못사는 집구석두 제가끔 걱정거리 하나씩은 꿰차구 사네 그려.”

고샅길로 나와 우물가를 지나 이장님댁 앞을 지나려할 때였다. 기성이 형이 마당에서 지게를 받쳐 밀가루 포대를 지게 위에 얹어 놓고 일어서려다 골목길로 걸어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상민아, 이거 배급 나온 밀가루인데 어젯밤에 니네 엄니가 나헌티 부탁혀서 시방 니네 집으로 지구 갈려는 참인디, 마침 잘 됐다. 같이 가면 쓰것다.”

기성이 형이 배급 나온 밀가루를 바지게에 걸머지고 앞을 서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얼마쯤 걸어 종구네 집 앞에 이르렀다.

종구가 마당에서 작두를 놓고 볏짚을 한 움큼 집어 작두날 밑으로 들이밀고 있었다. 그러자 종구 아버지는 쪼그려 앉아 있는 종구 손을 조심스레 살펴보시며 허리를 조금 굽혀 발로 작두 손잡이를 밟아 볏짚을 짧게 잘랐다.
그동안 머슴 일을 하던 용만이가 떠나고 나자 어쩔 수 없이 두 부자가 소여물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고샅길을 함께 걷던 기성이 형이 정희 누나 문제로 종구네 아버지와 서로 눈이 마주치기가 꿉꿉했는지 애써 눈길을 피하려 했다.

저녁때가 되어 그런지 동구 밖 둥구나무 아래는 낮 동안 머물던 생사탕 아저씨와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방죽가 언덕 위에 방패연이 떠올라 있질 않아 경수 아저씨도 집으로 돌아가신 듯했다. 해거름녘에 그라도 언덕배기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것은 기현이 뿐이었다. 기현이가 연을 다시 만들었는지 동네 아이들과 함께 싸늘한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꼬리연을 날리고 있었다.

방죽에서 여유롭게 자맥질을 하던 오리들이 한두 마리씩 서서히 방죽 둑 위로 오르고 있었다. 마당가에는 기현이 할아버지가 입에 긴 장죽을 무시고 손주 녀석의 연 날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철롯길에는 얼마 전에 읍내 중국요리 집에서 선을 보았다는 그 과수댁 아주머니와 흥남이 아저씨가 무엇이라 말을 나누며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해가 그도 쓸쓸하게 보이는 언덕배기에 올랐다. 앞서가던 기성이 형이 지게를 받쳐 세워놓고 둑 아래 밭으로 내려가 급하게 소피를 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상민아, 니네 엄니헌티 증말루 잘해 드려라. 어젯밤에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보닌게 찬바람 쐬면서 장사허시느라구 니 엄니 입술이 많이 부르트셨드라. 그리구 니들랑은 우리덜처럼 반거충이 되지 말구 열심히 공부혀서 꼭 잘되야 헌다. 내년에 니들이라두 중학교 시험에 합격허면 면 소재지를 나가두 기를 필 건께 그렇게들 혀라. 상민아 내 말 알어들었지?”

기성이 형이 밑으로 내렸던 아랫도리 고의춤을 위로 바싹 추켜올리며 언덕 위로 올라섰다. 그러더니 지게를 걸머지고 집을 향해 앞을 서 걸어갔다.

사립짝 밖에는 아주머니와 검둥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태엽을 감듯 머릴 돌려 앞산을 둘러보니 노을빛 서린 비좁은 산길이 더없이 호젓하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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