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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52 조회 : 1,422




시야(視野)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소릿재 산마루가 파르스름하게 바라보였다. 그 산마루턱에 아침 해가 어김없이 찬연하게 떠올랐다. 언제나 햇살은 버릇처럼 내 작은 집의 봉창을 훤히 밝혔다.
뒤척이듯 잠에서 깨어나 둥근 서까래가 듬성듬성하게 보이는 낮은 방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머리맡에는 한 쌍의 사슴 모습이 들어 있는 오색의 십장생도(十長生圖) 무늬가 인쇄된 종이로 잘 바른 반다지가 조촐하게 놓여 있었다.
그 반다지 옆에 놓인 싸리나무 소쿠리 안에 한가득 담긴 올망졸망한 빛 노란 탱자 알에서 은은하게 향이 퍼져 나와 석유 냄새와 흙냄새로 찌든 방안의 냄새를 한결 부드럽게 했다.

아침밥을 먹기 전에 동네 우물가에서 한차례 물을 길어 나르려 마음먹었다. 이젠 몸에 배일대로 배인 습관처럼 물지게를 지고 사립짝 밖으로 나섰다. 북풍(北風)시린 산 밑을 벗어나려니 온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내가 사는 산 밑 초가집으로부터 마을 우물까지의 거리가 꽤나 되어 추운 겨울날에는 물을 길어 나르는 일도 만만 치 않았다. 허나 별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어 추위 속에서도 물을 길어 올 수밖에 없었다. 처한 삶의 환경이 그렇다보니 마을에 새로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가는 일은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저 먼 훗날 작은 내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실낱같이 작은 희망을 가져 볼 뿐이었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될는지 몰라 한동안은 온갖 어려움 속에 꾸준히 물을 길어와야만 될 것 같았다.
푸석이는 마른 흙먼지가 고무신 앞 언저리에 심심찮게 묻어나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시원스레 앞이 휑하게 트여진 언덕에 올랐다. 찬바람은 쭈뼛쭈뼛 뻗어난 갈참나무 가지를 흔들어 버거운 울음을 자못 애잔하게 터트렸다.
한차례 썰물이 빠져나간 쓸쓸한 갯벌처럼 텅 빈만큼 허한 잿빛 논벌에 한 무리 겨울 철새들이 나래를 접어 살포시 땅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논벌을 가로지르는 도로 위에는 읍내 강경 채운산 밑자락에 있는 군부대 급양대에서 보급품을 싣고 연무대 훈련소를 향해 달려가는 군용트럭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군용 트럭 대여섯 대가 선두(先頭) 차의 꼬리 끝을 따라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일정한 간격을 두어 정연하게 달리고 있었다. 읍내로 이어진 폭 좁은 기찻길 옆 소로엔 읍내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색깔이 서로 다른 하나의 점(點)처럼 아주 자그맣게 보였다.

마을 앞 둥구나무 앞에는 오랫동안 기피자 생활을 했던 종열이 형이 지서에 자수를 하러 가려는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가 연로하신 종열이 형 어머니는 종열이 형 손을 붙들고 연신 흐느끼셨다.
그 옆에는 눈시울이 젖은 종금이 누나도 함께 서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기에 힘이 들었는지 종열이 형이 화산리쪽 지서를 향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착잡한 심정으로 마을을 떠나는 종열이 형를 동네 아낙네들이 낮은 담장 너머로 얼굴을 들어 안타깝게 바라만 보았다.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구부러진 동네 고샅길에는 나보다 몇 걸음 앞을 서 걸어가는 생태 장수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몸에 딱 맞는 바지게 위에 생선이 담긴 나무상자를 몇 퀘 올려 지시고 ‘생명태 사려.’ 하고 소리를 외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길모퉁이 상수네 집에 뒤뜰엔 높다란 아름드리 상수리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마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마당에는 흙벽돌을 쌓아 놓고 윤기 잘난 가마솥을 얹어 불땀 좋은 장작불에 상수리 묵을 쑤는 것 같았다.
상수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두 손바닥을 펼쳐 불을 쬐고 있었다.

해마다 누에를 많이 치는 영호네 뽕나무 울타리 밑 보리밭엔 파릇파릇한 보리 순이 꽉 들어차 앙증스레 돋아났다. 보리밭 옆 널따란 논바닥에는 방학이라 그런지 동네 아이들이 아침부터 일찍 모여 놀이를 하고 있었다.
널따란 논바닥에 커다랗게 정사각형으로 금을 그어 네 구석의 꼭짓점에 큰 돌을 놓아 표시를 했다. 그리고 ‘가위바위보’로 편을 갈라 진 쪽에 선수 한 사람이 작은 공을 상대에게 던지면 이긴 편의 선수가 순번대로 맨 손으로 공을 쳐서 멀리 보낸 다음, 네모난 선을 따라 빨리 뛰어서 한 바퀴씩 돌아 내기를 하는 지금의 야구와 비슷한 터치 볼 공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자기편 선수를 응원하면서 떠들썩한 소리를 내어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중학교 졸업반인 종기형이 흰 운동모자에 검정색 체육복을 입고 문방구에서 사 온 깡통을 펴서 만든 장난감 노란색 호루라기를 불며 심판을 보았다.
종구는 그 옆에서 종구네 아버지가 겨울이면 손에 늘 끼고 다니시던 검정색 가죽 장갑을 몰래 끼고 나왔는지 작은 손에 끼워진 어른 장갑이 크기에 맞질 않아 바라보기에 퍽이나 어색하게 보였다.

해마다 겨울 방학 철이 되면 늘 놀았던 연자방앗간 앞 공터 놀이터가 방앗간 건물의 커다란 그림자에 가려 음지가 되어 꽤나 추웠다. 그러자 양지 바른 방죽가 언덕 위에는 동네 코흘리개까지 모여 들었다.
해가 다 저물 때까지 연날리기를 하였고 동네 앞 널따란 논바닥은 자연스럽게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런 탓에 이른 봄 논갈이를 할쯤이면 아이들의 발에 밟힌 논바닥이 반질반질하게 질이 잘나 있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건너편 논둑길에 민균이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보리밭에 인분(人糞)을 주시려는 것 같았다. 지게 위에 길쭉하고 둥글게 나무로 만든 인분 통 가운데 구멍을 지푸라기로 돌돌 뭉쳐 단단히 막아 인분 바가지를 함께 지게 위에 얹어 등에 지시고 큰기침을 하시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북쪽 하늘 멀리 금강둑 밑 마을 장화리 동네 어귀 느티나무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작게 마주 바라보였다. 시계태엽을 감듯 문득 머릴 돌려 보았다. 온갖 시름을 두 어깨에 걸머지어 발길이 무거운가 더디 걷는 종열이 형이 안타까웠다.
그다지 좋지 못한 일로 곤욕을 치룬 일이 있어 늘 거리감이 있고 서먹함이 앞서는 지서였다. 바로 그 건물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종열이 형의 모습이 더욱 그랬다. 그때까지도 둥구나무 밑에는 종열이 형 어머니와 종금이 누나가 종열이 형 모습이 사라진 건널목을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뼈를 깍는 아픈 모정(母情)을 조금이라도 달래나 주려는지 그맘때쯤이면 늘 석탄을 실으러 먼 곳으로 달려가는 뚜껑 없는 곳간 화물열차가 마디 짧은 기적을 커다랗게 하늘 위에 남겼다.

그런 저런 시린 사연 아픔들이 응집(凝集)되어 세월 속에 하나의 성숙함을 낳았다. 그런 성숙함을 낳는 자연의 섭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채화리였다.
제가끔 처해진 삶이 비록 궁(窮)할지라도 오붓함이 가득한 묻어나는 작은 마을을 겨울 하늘은 더없이 넓은 품안에 끌어안아 다독거리듯 고운 햇살을 한데 모아 내려 주었다.

드높게 맑아 막힘이 없는 우리들의 하늘이 언제나 그쯤에 늘 변함없이 그렇게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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