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흘 전부터 날씨가 차분하질 못해 마음이 싱숭생숭하게 오락가락 하더니 아침 일찍부터 진눈깨비가 뿌리려는지 음침한 하늘은 칙칙한 만큼 거무튀튀하게 보였다. 짙은 먹구름 사이를 비집고 억센 몸부림으로 동트기를 한 아침 해는 연무(煙霧)처럼 뿌연 안개 속에 불그레한 자태로 햇무리를 이뤄 흐릿하게 보였다. 동녘 먼 산들의 모습도 운무에 가려 희뿌옇게 바라보였다. 더불어 그지없이 삭막한 나목(裸木)의 세세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힘없이 흔들려 윙윙거리기만 하니 덧없이 스쳐 지나는 계절이 안겨 주는 비정(非情)함에 마음속이 그저 허허할 뿐이었다.
굴뚝 위로 검뿌옇게 솟아오르는 아침 연기가 지붕 위에 낮게 내려앉고 있었다. 다소 어둑한 방안엔 까만 눈망울 반짝거려 배시시한 얼굴로 머릴 들어 이젠 제법 컸다는 듯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순덕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저만의 소리를 냈다. 부엌에서는 밥솥 가장자리로 허연 거품을 일며 끓어 넘치는 소리가 방문 사이로 들릴 듯 말 듯 했다.
살을 베일 듯이 날이 추워지자 어머니께서는 젓갈 행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생계 방법이 없는 네 식구를 홀로 무겁게 책임지신 어머니께서는 뜨개질 솜씨가 남다르게 좋다고 인근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그런 탓에 해마다 겨울철에는 동네 뜨개질은 물론 면 소재지에 있는 집들이 맡겨 오는 스웨터와 조끼 그리고 동그란 방울이 커다랗게 달린 아이들 겨울 모자와 털목도리 같은 뜨개질을 하셔 어렵게 살림을 꾸려 나가셨다.
그리고 이따금씩 읍내에서 젓갈 도매상을 하시는 조씨네 아주머니께서 읍내에 아는 분들이 알음알음으로 부탁을 하여 맡아 오는 뜨개질거리를 모아 주셨다. 어찌 보면 조씨네 아주머니는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흐린 등잔불 밑에 뒷산에서 불어오는 솔바람과 부엉이 소리를 들으시며 밤이 이슥해지도록 뜨개질을 하셔 한겨울을 그렇게라도 모질게 넘기려 애를 쓰셨다.
어머니께서는 뜨개질을 하고 남은 형형색색의 털실을 모아 색깔을 이리저리 균형 있게 맞춰 순덕이의 잠자리 덮개를 곱게 짜 주셨다. 온기 가득한 아랫목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순덕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귀여운 듯 틈틈이 바라보시며 밤늦도록 뜨개질을 하셨다. 어머니 옆에서 밤공부를 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한참을 자고 난 후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 보면 방문이 허옇게 밝아 오는 이른 새벽녘까지 어머니께서는 그때까지 뜨개질을 하고 계셨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속 아려 오는 형언(形言)키 어려운 아픔 한 덩이가 목 줄기를 타고 되새김질 하듯 치올랐다. 그러면 한숨처럼 한차례 숨을 깊숙이 들이마셔 차가운 새벽 공기에 쓰린 마음을 달래보고는 했다.
동네 영택이 아버지가 입고 다니시는 회색 조끼와 옥순이 어머니가 입고 계신 분홍색 스웨터와 그리고 이번에 시집을 간 종금이 누나의 빨간색 스웨터도 어머니가 떠 주셨다. 두 눈이 아프고 어깨가 뻐근하도록 일을 하시는 그런 모습이 바라보기에 애틋하였는지 아주머니는 뜨개질을 빨리 배워 조금이라도 일손을 도와 보시려고 틈이 나면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헌 스웨터에서 풀어낸 헌 실을 아주머니에게 주시어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늦은 밤에는 밤참으로 무구덩이에 함께 묻어두었던 배추뿌리를 꺼내셔 그리 곱게 깎아 두 눈이 나눠 드시며 서로의 외로움과 삶의 고달픔을 달래셨다.
동네 옥순이네 집으로 뜨개질하러 가시는 어머니께서 동구 밖 나무다리를 막 건너서려 하셨다. 방죽가 옆 작달막한 보리밭에서는 기현이 할아버지가 등 뒤에 두 손을 모아 뒷짐을 지시고 추위에 얼지 죽지 말라고 보리를 꾹꾹 밟아 주고 계셨다. 그리고 부지런함을 동네에서는 따라갈 사람이 없는 순아네 할아버지가 연무대 두부공장으로 비지를 실으러 가시려는지 큰길 위에 소달구지를 여유롭게 몰고 가셨다.
추녀 끝머리 짧은 담벼락에 햇살이 오붓하게 찾아드는 한낮쯤이 되었다. 소매 끝에 히뜩히뜩하게 콧물 자국이 묻어난 동네 꼬마 머슴아이들과 두툼하게 솜을 넣어 꿰맨 저고리 소매 밑자락에 때가 얼룩진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양지쪽에 몸을 비집고 앉아 아이들만의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하는지 낮은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정월대보름날이 아직은 먼 듯싶은데 동네 아이들이 서둘러 놀이거리를 삼으려는지 빈 깡통을 주워 못과 망치로 깡통의 밑바닥과 옆 부분에 촘촘히 구멍을 내어 불놀이를 하려했다. 긴 철사 줄에 달랑달랑 매달린 불 깡통을 들고 펄쩍펄쩍 뛰면서 들녘 논두렁으로 달려가는 모습도 보였다. 옆에서 기웃대던 동네 강아지는 의미도 모른 채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 대며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동구 밖에는 광다리 마을에 사시는 인삼장수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나름대로는 애지중지 키운 자기 딸과 동네 종열이 형이 둘이 좋아 정분이 넘쳐 저지른 일에 혼인의 육례(六禮)를 가늠도 못하고 자식까지 턱 낳았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혼례도 못 치루고 동네 남우세스러워도 어쩔 수 없이 시댁에 들어와 살고 있는 딸자식과 외손주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을 것이다. 사돈 댁에 발걸음을 하고 싶어도 타 동네 사람들 이목(耳目)이 두려워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입장이 그렇다보니 종금이 누나 혼례식 날에도 머릿속으로 날짜만 알았지 사돈댁에 오지도 못하고 아는 인편에 겨우 부조만 했다. 그런 인산장사 아주머니가 네모난 대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핑계 삼아 슬며시 동네 어귀에 모습을 보인 것은 잔치가 끝난 지 대엿새가 지난 후였다.
지난가을 내내 마른 가뭄으로 앞들 웅덩이에 물이 턱없이 줄어들었다. 웅덩이 물에 수심이 낮아지자 짙은 아침 안개 걷히고 오후 한낮 햇볕이 잘 깃들면 갈잎이 무성했던 가장자리에 웅덩이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였다. 맑은 물속으로 붕어들이 드문드문 보여 얼마 동안 눈요깃거리도 되고 운이 좋아 조금이라도 잡으면 매운탕을 끓여 밥반찬이라도 해보려는 심사로 철 늦은 겨울 낚시를 해보려고 주현이와 약속을 했다. 주현이네 뒤뜰엔 크고 작은 대나무가 풍족해 해마다 낚싯대를 틈틈이 만들었다. 제법 솜씨 있게 잘 만드는 주현이가 끝이 낭창낭창한 대나무에 무명실를 매달고 실 끝에 빈 침을 잘 구부려 숫돌에 가늘게 갈아 만든 바늘을 달고 적당한 크기의 돌을 달아 추를 삼았다. 그리고 억새 줄기로 낚시찌를 만들어 단 낚싯대를 만들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고샅길로 들어서 우현이네 집 앞을 지나려니 동네 어른 몇 분이 모여 조금 심각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늘 차분하게 말씀을 하시는 우현이 아버지의 말소리가 담 너머로 들렸다.
“아니! 그럼 참말로 기성이가 정희랑 새벽에 마을을 떠나버린 거네 이걸 어쩌면 좋디야? 다 큰 애들이 어디 가 무슨 일이야 있것냐? 만은 이 추운날에 정희는 홀몸두 아니라면서 고생일 건디 어디루 간 거여? 기나저나 내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떠난 애들을 뭐라구만 못허지 뭐. 기성이가 그리 업디어 파리 모양 빌 듯 했는디두 동섭이가 영 맘을 안 풀구 끝까지 고집을 부렸으니 그럴 만두 허지. 뭔 놈에 고집이 그리두 센지, 내 원 참.”
우현이 아버지가 영 못마땅하신 어투로 말을 접으려 하시자 골목 건너 편 앞집에 사시는 진식이 아버지가 말을 이으셨다.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허는 말인데 동섭이 형님이 정희를 얼마나 집에 가둘려구 했는지 시집간 종금이가 한번 놀러 갔다가 혹시나 기성이허구 연락을 해 줄려나 싶어 똥줄 빠지게 된통을 당했다구 허데유, 기왕지사 그리 된 거 그 정도 했으면 못 이기는 척하구 받아 주었으면 이런 일 안 났지유. 그러니 아무리 황소고집이라두 이젠 어쩔 거시유. 애들이 훌라당 도망을 쳤으니 어디다 대구 큰소리 칠 꺼냐구유.”
그러자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상수 아버지께서도 말을 거드셨다.
“나두 머리 다 영글은 딸년이 있어 뭐시라고 혀 짧은 소리는 못 허지만 부모 말 안 듣구 그리 지들끼리 나뒹굴은 것은 천 번 만 번 잘못헌 일이지만 그렇타구 일이 그 정도까지 된 거 그냥 동섭이가 팔자러니 하구 두 눈 딱 감고 받아 줬어야 허는디 참 아쉽네 그려 그러니 나중에 종열이처럼 애라두 턱 낳아 가지구 들어오면 빼두 박두 못헐 건디 남에 뼈 속 깊은거 다는 몰르것지만 그때 가서는 어쩔라구 그랬나 싶네.”
그때 부엌 문 앞에서 어른들이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우현이 어머니가 말을 하셨다.
“근데 뭐시냐. 아침나절에 샘터에 물 길러 가서 종구네 집 옆에 사는 사람들이 고만고만 하는 소릴 가만히 들어 보닌게 종구 아버지가 아침 댓바람에 기성이네 집에 찾아가서 기성이 엄니하구 대판거리로 엄청나게 싸움을 해서 난리가 아니였나 보데유. 좁아 터진 동네에서 서루다가 참구 살면 좋을 건데 에휴.”
우현이 어머니께서 부엌으로 들어가시고 어른들은 그 자리에 남아 이야기를 계속하고 계셨다.
동네 한가운데 종구네 집은 그 일 때문인지 대문이 굳게 닫힌 채 침울하게 보였다. 담 밖으로 사람 말소리 하나 들리질 않았다. 그렇게 떠난 기성이 형하고 동네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경수 아저씨네 집에는 동네 이장님하고 기성이 어머니가 경수 아저씨를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침나절 종구네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셔 목이 쉬셨는지 기성이 형 어머니가 반쯤 쉰목소리로 힘들게 말씀을 하셨다.
“아니! 다들 내 말 좀 들어 봐유. 내가 원 지들 보구 도망을 가라구 등을 떠밀었는가 종구네 애비가 아침부터 득달같이 찾아와서 잡아먹을 듯이 달겨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에 하두 어이가 없어 첨에는 잘사는 부잣집 딸이라 못사는 가난뱅이 우리 집으로 안 보낼려구 그러겠지 허구 그냥 참을려구 했는디 다 지난 쾌쾌묵은 옛날 얘기까장 뒤적거려가지고 다 끄내서 큰소릴 치더라고유,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우리 기성이 애비가 그 난리 통에 누구땜시 죽었는디유, 다들 잘아 것 아니유, 그 천하에 못쓸 놈인 자기 동생이 저질러 놓은 일이 않인감유,내원 참 기가 막혀 더는 참을 수 없어 나도 그만 대들어 버리구 말았지만 참말루 내가 무신 놈에 죄가 있냐구유. 그 쳐 죽일 놈에 자식새끼 낳아 놓은 죄 밖에는 없는디, 안 그런감유?”
끓어오르는 분노로 숨이 차시고 목이 아프신지 말씀을 멈추시자 이장님이 안타까운 얼굴로 기성이 형 어머니에게 말을 건네셨다.
“뭐냐! 아줌니 속이야 말이 아니것지만 이미 그렇게 떠나 버린 걸 되돌려 놀 수도 없는 것이구 설마허니 뭔 일이야 있겠어유. 그리구 기성이가 좀 영리하구 몸이 빠른감유. 어디다 내 놔도 입에 풀칠은 허구두 남을 것인께 너무 크게 걱정은 마시구 기둘려 보자구유. 지가 아무헌티두 연락 안 하구 살아두 내가 알기로는 여기 있는 경수 동상 헌티는 꼭 연락헐 꺼구먼유,그러니 마음 안정시키구 편하게 생각허세유.”
그러자 기성이 형 어머니가 감정이 덜 추슬러졌는지 조금 가쁜 소리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허긴 시방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닌게, 우리 기성이란 놈이 허다허다 안 되닌게 그리 떠날려구 진작부터 속으로 암암리 생각을 했던지, 그새 중간에 동네서 일하고 받은 품삯도 나소 될건디 나 한티는 일원짜리 한장 구경도 않 시켜주고, 지 혼자서 꼭꼭 싸매 두었던 것 같아 모르면 몰라두 우선 지들 먹고 살 건 다소 챙겨 간 것 같구먼유.”
이장님은 면사무소에서 각 마을 이장 회의가 있어 채비를 하고 나가야 한다면서 서두시는 척 집으로 돌아가시고 기성이 형 어머니는 경수 아저씨와 깊은 속사정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듯 두 분이 방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