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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60 조회 : 1,498




산은 해끄무레한 겨울 하늘 아래 묵상(默想)을 하듯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하얀 눈이 다보록하게 쌓인 산을 바라보려니 눈이 꽤나 부셨다. 이젠 오랜 침묵을 깨고 영혼(靈魂)의 양식이 될 고언(苦言) 한마디쯤은 해줄 듯싶은데 산은 끝내 말 없었다.
벅찬 삶 뒤엉켜 시름하는 척 하니 우매를 일깨우듯 산골짝을 휘젓는 삭풍(朔風)이 귓불을 세차게 때린다. 마냥 숙연해지는 마음을 부추기듯 마른 나뭇등걸과 바르르 떠는 나뭇가지들의 가는 신음소리만 빈 하늘가에 잔잔하게 맴돌았다.
아침 햇살 다소곳이 찾아드는 조릿대 숲 사이에선 가느다란 현(絃)을 손끝으로 튕겨 울려오는 고운 음률(音律)처럼 길을 트는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더없이 청아(淸雅)하게 들려왔다. 바람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등 돌려 산자락을 벗어나고 있었다.

볏짚에 가지런히 묶여 얼 듯 말 듯 뭇줄거리 시래기가 찬바람에 이저리 나부껴 자꾸만 들척여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줄기 앙상한 키 작은 싸리나무도 모진 설한풍(雪寒風)에 세차게 흔들려도 꼿꼿하게 허리를 펴 꿋꿋이 견디어 내니 눈앞에 쉽게 바라보이는 작은 것들에 쉽사리 웃고 울려 하는 가벼운 우리들의 일상(日常)이 마냥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개울물 위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이 참으로 탐스럽기만 했다. 눈앞에 보이는 십 리 읍내 길이 새하얀 눈길로 이어졌다. 그 길 위를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들이 점점으로 자그맣게 보였다. 아마도 오일장을 보려 아침 일찍부터 서두는 것 같았다. 신작로 자갈 위로 오고가는 크고 작은 차들이 널따란 들녘을 가로 질러 가고 있었다.

겨울 햇살 봉창 틈새를 비집는 방에 어머니께서 함지박 안에 알뜰하게 모아 두었던 계란을 볏짚으로 매끄럽게 묶고 계셨다. 읍내 조씨네 가게로 다 짜 놓은 털옷을 가져다주려 읍내로 나가실 채비를 서두시는 듯했다.
얼마 후 어머니께서 짐을 챙겨 방을 나서려 하자 방 안에 앉아 놀고 있던 순덕이가 잠시인들 헤어짐이 싫었는지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그도 안쓰러워 나서던 발길 멈추시고 순덕이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아 볼을 마냥 비벼 주셨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아주머니의 단아(端雅)한 모습이 환하게만 보였다. 비록 청국장 냄새 찌든 비좁은 삶의 공간에서도 마음만은 더없이 훈훈했다.

시야 (視野)에 바라보이는 광활(廣闊)하게 비옥(肥沃)한 저 들녘은 땀 흘린 만큼이나 우리들 모두에게 풍요(豊饒)를 안겨 주었다. 그 풍요가 이루어지는 터에 어떻게라도 비집고 자리를 잡아 보려는 내 작은 간절한 소망(所望)은 늘 제자리에서 키 재기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모든 여건들은 그리도 눅눅치 않았다.

벼랑바위 앞에 어머니가 옥순이 어머니와 함께 두 분이 어깨를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늦은 밤 학교에서 동네로 돌아오던 옥순이와 내 모습과 너무도 흡사해 싸리 울 너머로 의미 있는 웃음을 띠워보았다.

윤기 있어 빛깔 고운 누런 암소가 코뚜레를 한 콧잔등 위로 허연 김을 내쉬어 ‘달랑달랑’ 방울소리를 내며 걸어가고 소달구지 줄을 손에 거머쥔 촌옹(村翁)의 등판에 햇살은 넉넉하게 비추고 있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란으로 아비를 잃고 자란 터라 할아버지와 온갖 정이 그리 많이 들었던지 어린 순아가 추위도 잊은 채 나무다리 위에서 작은 손을 자꾸만 흔들고 있었다. 그도 보기 딱하신지 순아네 할아버지는 커다랗게 한 덩이 아픔을 긴 한숨으로 마디게 내쉬었다.
그렇듯 전란은 주위에 모든 것들을 매몰스레 앗아 갔다. 더불어 크고 작은 아픔들을 잉태(孕胎)하여 그 상흔(傷痕)의 자리에서 우리 모두는 지난날의 아픔을 잊은 듯 서서히 자라났다. 하지만 때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지각(知覺)없는 몇몇 어른들의 몰지각한 행동에 잊고 살았던 쓰라린 기억들을 하나둘씩 되새겨 치유(治癒)될 수 없는 상처를 다시금 남겨지기도 했다.

동네 고샅길로 들어서자 논산 읍내에서 동네 영택이네 집에 새로 살러 왔던 아주머니가 소리 없이 집을 떠난 후 한동안 소리가 나질 않았던 영택이네 집 축음기에서 아주 커다랗게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이 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나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그런데 노랫소리가 유난스레 서글프게만 들려왔다.

우물가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무슨 이야기인지 진지하게 하고 있어 물을 긷는 척하며 귀를 기울여 보았다. 입심 좋은 삼식이 어머니가 식구들이 입고 벗어 놓은 내복을 빠시며 맨 먼저 말문을 여셨다.

“아니! 그 영택이 새엄닌가하는 여편네는 그렇게 말 한마디 안 남기고 온 집구석을 벌집 쑤시 듯 죄다 뒤집어 놓구 가버려, 영택이 아버지가 속이 상해서 밥두 안 먹구 술만 찾는다구 영택이가 술 가질러 온 게 오늘이 벌써 이틀째인디 저러다 생사람 병이라두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겄네 그려. 동네 남정네들 중에 가까운 사람이 한번 찾아가 봐야 쓸 건디. 가만히 보닌께 다른 일두 아니구 남에 애정 문제에 끼어들기가 거북스러워서 서로들 슬슬 눈치만 보는가 본디 이를 어쩌면 좋데.”

그러자 영택이네 바로 앞집에 사는 동네에서 고추농사를 제일 많이 짓는 준섭이네 어머니가
말을 거들고 나섰다.

“아이구 왜? 아니 것시유 그 여편네 떠났다구 허는 말이 아니라 좀 별났남유? 아 글쎄 이틀이 멀다구 종례랑 그리 싸움박질을 하더니 떠나던 그날두 엄청스럽게 소릴 질러가며 싸우더니 그여 가버리구 말았구먼유, 그러니 새중간에서 영택이 아버지도 못할 짓이였지유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이라고 가더라도 뭔 말이라도 하구 가야지 말은 커녕 일자상서두 없이 그냥 가버린 모양이더라구유. 에이 휴.”

두 분이 그렇게 말씀을 나누시는데 옆에서 배추를 씻고 계시던 경수 아저씨 부인이 말을 하셨다.

“어쩐지 첨 동네에 올 때부터 얼굴에 짙게 화장한 거랑 옷차림새가 영 아니더라구유 말로는 읍내서 비단장사를 한다구 했지만 나는 첨부터 그 말을 절대루 안 믿었구먼유 그나저나 그 여자는 떠났으닌께 그렇타 치고 애들이야 중례가 다 컸으닌게 밥이사 해 먹으면 되지만 그 어른이 정이 들락 말락 할 때 가버려서 우선 간에는 상처가 클 껀디 어쩌면 좋데유?”

삼식이 어머니와 준섭이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는데 소식을 잘 모르시는지 옆에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인식이네 어머니가 미나리꽝 쪽을 바라보시며 말씀 하셨다.

“저기 영택이가 오는구먼 그려 어여 싸게들 입들 닫어 재수가 없을라면 애매하게 불똥이 우리들 한테 떨어질라.”

그리 한동안 말소리가 들렸던 우물터가 갑자기 숙연해지고 기분이 몹시 우울해 보이는 영택이가 술 주전자를 들고 미나리 밭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들 셋만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아낙네들이 빠르게 온 동네로 소문을 퍼트렸다.
술과 잡기(雜技)를 좋아하시는 ‘신고산 타령님’인 병수 아버지는 일찍부터 영택이 새어머니인 그 아주머니를 읍내 주점의 술자리에서 한두 차례 보아 온 터라 목로술집에서 작부노릇을 하던 그 아주머니에 대한 행적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택이 아버지와의 친분관계 그리고 그분들에 대한 예의로 그런 속사정을 끝내 감추고 말았다.
그렇게 병수 아버지가 전래동화에 나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요.’라는 내용처럼 함구무언(緘口無言)으로 잘 참고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영택이 새어머니와 중례누나가 심하게 말다툼을 하여 영택이 아버지가 중례 누나에게 평소와 달리 심한 욕설을 하며 꾸짖었다. 그러자 중례누나가 옆집인 병수네 집으로 피해 와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바라보던 병수 아버지가 이부자리 속에서 나눈 말이 병수네 어머니 입을 통해 동네로 날개 돋친 듯이 퍼져나가고 말았다.

그런 소문을 들은 중례 누나가 영택이 아버지가 읍내에 볼일을 보러 나간 사이 새어머니에게 따지고 들자 또 한 차례 큰 싸움이 일어났다. 중택이 새 어머니는 지난 과거를 비밀에 붙이고 한집에 살려고 했으나 일이 그쯤에 이르자 동네 사람들 얼굴 보기가 부끄럽고 중례 누나와의 감정이 끓어올라 이내 주섬주섬 옷 보따리를 챙겨 들고 마을을 훌쩍 떠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한편 그런 줄도 모르고 늦저녁까지 읍내에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영택이 아버지가 아주머니가 말없이 집을 떠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내 발길을 읍내로 돌려 사방에 수소문하였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의 행방을 끝내 찾지를 못하자 화를 못 이겨 좀처럼 입에 대지도 않으시던 술에 흠뻑 취해 늦은 밤에 읍내 시발택시를 타고 동네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 화풀이를 중례 누나에게 했다. 이에 참다못한 중례 누나가 영택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든 사이 집을 뛰쳐나와 동네 친구인 상순이 누나네 집으로 피신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겨우 삼십 여 가구가 모여 사는 그리 크지도 않은 동네인데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얽히고설킨 저마다의 사연들로 크고 작은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었다. 삶이 제법 풍요로운 집들도 나름대로 한두 가지의 속앓이를 했다.
그런 탓인지 평온하기만 하였던 동네 분위기가 냉기 가득 서려 침침(沈沈)한 겨울날처럼 자꾸만 뒤숭숭하게 들썩이어 우심(憂心)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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