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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79 조회 : 1,559




그땐 내 나이가 어리다고만 할 수 없어 매사(每事)를 정연하게 판단할 능력이 미흡하게나마 있었다. 그런 탓에 그 무엇이 어떤 이유로 내 아버지의 목숨을 그리도 허무하게 앗아갔는지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그 당시 내 아버지께서 처해 있었던 긴박했던 상황에 대하여 내 주위의 어느 누구한테도 단 한차례 뜻 깊은 설명을 들은 일이 없었다.

그저 동네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에 내 아버지의 죽음은 전쟁이 남긴 통한의 산물이라는 것을 듣기 싫은 귀동냥했을 뿐이다. 내 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슬픔에 늘 간장이 촌촌(寸寸)이 잘라지는 아픔으로 살아왔다.
세월이 감당키 어려운 숱한 아픔의 언어(言語)들을 송두리째 삼켜 말문을 닫으니 도륙(屠戮)난 살점처럼 짓뭉개진 상처는 고통의 늪에서 그리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와 더불어 커다랗게 엄습하는 슬픔에 버릇처럼 울먹이려 하면 과묵한 등메산은 살금살금 소리 없이 눈앞에 다가서 내 아버지의 포근했던 등짝처럼 듬직하게 머물러 주었다.

산자락 밑 푸릇푸릇한 보리밭 너머 가파름한 언덕길에 햇살이 영롱한 빛으로 찾아들면 산속의 아침은 침체된 고요 속에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른 등피 갈참나무 빼곡하게 들어선 언덕배기가 더없이 적막하게 보였다.
눈이 내려 쌓인 날엔 기다란 코빼기 검정 고무신의 어머니 발자국과 내 작은 신발 자국만이 새하얀 눈 위에 고적한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이따금씩 아랫동네로 콧바람 쐬려 들락거리는 검둥이 발자국뿐이었다.
스산한 산바람이 홀로 노는 다랭이밭 원두막에는 멧새 몇 마리가 마치 주인처럼 햇살 깃드는 마룻바닥에 촐싹거려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도 싫증이 나는지 둔덕 아래 뽕나무 밭으로 포롱포롱 날아가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연주자처럼, 자그마한 오솔길이 언젠가는 격 없이 찾아줄 산객 한 사람이라도 반갑게 맞으려는 마음에, 연초록 움이 눈망울을 터트리는 봄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잔솔나무 창창하게 들어선 산릉선을 바라보니 햇살에 비친 자태가 의연하게 보였다. 냇가를 건너 둔덕너머 면소재지로 이어진 큰길가로 내려서니 저만큼 벼랑바위 앞에 옥순이가 옥순이 어머니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푸릇한 쪽파 밭 너머로 바라보이는 솜틀공장에서 ‘떨거덕 떨걱, 떨거덕 떨걱’ 돌아가는 기계의 소음이 불규칙하게 들려왔다. 들녘 한가운데 둥글납작하게 자릴 잡은 초가지붕의 주막집이 눈앞에 까칠한 모습으로 다가섰다. 임시 정류장에는 중학교 합격자 발표를 눈앞에 두고 읍내로 가려는 사람들로 여느 때와는 달리 꽤나 붐볐다.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에 바라는 만큼이나 좋은 성적을 얻고 싶었지만 직접 눈으로 합격자 발표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해 갈구하는 기대치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졌는지 아직까지는 불투명했다. 서두는 조바심이 몸 가눔을 어수선하게 하니 기다리는 인내심 또한 배우며 살아가야 할 듯싶었다.

지서 앞을 지나 건널목을 넘어서는 발길들이 초조함 속에 발표를 기다리는 마음들처럼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런 행렬 속에 함께 걸어가 바람 스산한 주막집 정류장 모퉁이에 발길을 멈추었다. 느릿느릿 다가올 버스를 기다리느라 저마다 목을 길게 내밀어 버스의 앞모습이 나타날 논산쪽 방향의 구부러진 길모퉁이를 줄기차게 바라보고 있었다. 임시 버스정류장엔 역시 시험을 치르던 날처럼 숱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분잡했다. 그 틈새에서 변함없이 석란이와 석란이 어머니 모습도 보였다. 석란이 어머니는 지사장 부인이라서 그런지 면내 사람들로부터 드문드문 인사를 받으며 답례로 가볍게 연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서장 사모님 자리가 번거로운 만큼이나 지체가 높기는 높은 듯싶었다.

그리 얼마쯤을 기다리자 강경읍내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여 저마다 버스에 올랐다. 비포장도로 위에 쉴 새 없이 덜컹대는 시골버스 안에서 옷에 기름 냄새 잔뜩 찌든 키가 땅딸막한 조수 아저씨가 비좁아 터진 틈 사이를 어렵게 비집고 있었다.
비좁은 통로에 승객들 사이를 이리저리 비켜서며 한 사람도 놓치질 않고 기름때 손톱 끝에 까맣게 가득 낀 우악스런 손으로 억척스레 차비를 받아 손바닥 안에 꽉 움켜쥐고 있었다. 차창 밖 차가운 공기가 버스 안의 사람들이 내뿜는 온기와 마주 닿아 창문마다 흐릿하게 얼룩이 져 손끝으로 가볍게 문대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버스가 들녘을 밀치고 나가는지 들녘이 버스를 밀어내는지 혼동스러울 정도로 널따랗게 텅 빈 들녘이 커다랗게 움직여 한 바퀴를 빙 돌아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가 어둑하게 들릴 정도로 기름 냄새 속에 울려 나오는 낡은 엔진 소리가 더없이 소란스러웠다.
심심찮게 몇 번을 반복하여 덜컹대는 버스가 오르막 금강 둑에 오르려는지 엔진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차체가 비스듬히 기울자 자리를 못 잡아 차안에 서 있던 승객들이 한차례 뒤로 밀리자 차 안은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온통 소란스러워졌다.

차가 읍내 다리를 건너 큰길로 들어서자 그제서야 평온을 되찾은 듯 차 안이 조용해졌다. 버스가 이내 남교동 임시 버스 정류장에 닿자 지난번처럼 강경여자중학교로 발표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읍내 도로 위를 오가는 차들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소달구지 바퀴에 부딪치는 자갈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길가를 달려가는 짐자전거가 울리는 방울소리와 두부 장수와 생선 장수들이 흔들어대는 종소리가 사람들의 소리와 한데 어울려 도시의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붉은 벽돌로 높다랗게 쌓아 올린 읍내 경찰서 아치형의 정문 앞에 꽤나 계급이 높으신 분이 들어가시나 초소 앞에 총을 메고 서 있던 순경이 목이 터지게 소리치는 구령 소리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잠시 붙들었다. 육중한 붉은 벽돌 건물 안 어느 곳에서 ‘삐비삐삐. 삐비비삐삐’ 하고 들려오는 무선 전신기 소리가 거침새 없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읍내 중심부를 가르는 소화다리를 건너서니 굴뚝으로 솟아오르는 검은 석탄 연기 속에 달달한 물엿 녹는 냄새가 풍겨 밖을 바라보았다. 흰 모자에 하얀 가운을 입고 공장 문을 분주하게 들락거리는 처녀들의 모습이 보여 눈깔사탕과 유과를 만드는 과자 공장인 듯싶었다.
길가 건너편엔 어머니가 얼마 전에 파마를 하고 오신 읍내 하나 밖에 없는 미장원의 나무 막대를 잘라 사각으로 짠 형틀 위에 함석판을 덧붙여 정교하지 못한 붉은색 글씨로 써 놓은 간판이 조금은 허술하게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사진관에는 아주 유명하다는 남자 영화배우와 여배우의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큼직한 액자 속에 넣어 사이좋게 나란히 걸려 있었다.

황산동 주차장에서 내려 얼마쯤 걸어가려니 제법 널찍한 학생복 전문으로 하는 양복점의 재봉틀 소리가 문밖으로 들려왔다. 유리창엔 ‘축 합격, 축 입학’이라고 하얀 종이 위에 붉은색 잉크로 쓴 기다란 종이가 붙어 있어 아마도 우리들 교복을 맞추는 곳인 것 같았다.
학교가 바라보이는 황산동 끝머리 자전거포 마당에는 주인아저씨가 자전거의 둥그런 속 튜브를 물속에 넣어 한 바퀴 돌리면서 펑크 난 곳을 찾고 있는 모습이 여유롭게 보였다.

학교 교문 앞에 닿자 이미 먼저 와 합격 여부를 살펴보고 나오는 사람들과 게시물을 보러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미 발표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 백엽상 앞에 이르자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는 머리 위 교실 추녀 밑 안쪽 벽에 아주 길게 늘여 붙인 게시물이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어머니보다 먼저 힘껏 달려가 다급하게 바라보았다. 수험번호가 빨라 찾기 쉬웠던 탓인지 맨 왼쪽 끝머리 부분 한자로 세로글씨로 쓴 二자와 七자 사이에 내 번호인 四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 순간 가슴이 터질 듯 반가웠고 얼굴이 온통 달아올라 두 귀에서 ‘윙’ 하는 이음이 한동안 계속 들려 왔다. 몇 번을 번갈아 바라본 후 발길을 돌려 어머니에게 뛰어가며 큰소릴 쳤다.

“음니! 나 붙었어 붙어버렸당깨.”

그리고 힘껏 달려가 치맛자락에 매달리니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미덥지 않으신지 계속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리고 게시물 앞에 다가서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말없이 내 손을 끌어당겨 잡으시는 어머니의 손끝이 바르르 떨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잿빛 쑥돌로 세운 커다란 본관 건물 끝머리 서무실로 들어가서 합격증을 받고 입학금 납부 고지서와 1학기 등록금 고지서 그리고 교과서 대금 납부 고지서를 챙겼다. 마지막으로 교복 맞춤 대금 고지서까지 받고 보니 무슨 돈 내라는 고지서가 그리도 복잡하게 많은지 어머니가 한 주먹 가득 들고 나오셨다.

아직도 매서운 추위가 한두 차례는 더 남아 있는 것 같아 볼일을 보러 읍내로 나오려면 다소는 어설프기만 했다. 그리고 읍내까지는 거리가 멀어 일부러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설 제사를 앞두고 차례상을 차릴 준비도 그렇고 하여 나온 김에 준비를 미리 하려고 했다.

학교 앞에 문방구가 두 군데 있었는데 왼쪽에는 그 동네 이름을 따서 지은 ‘낭청 문방구점’과 오른쪽에는 ‘금강 문방구점’이 나란히 있었다. 금강 문방구로 들어가 맨 먼저 교모를 사는데 교모 안에 붙어 있는 종이 스티커에 ‘대,중,소’로 표시된 치수를 보고 크기에 맞는 모자를 골라 쓰려니 어머니가 앞에서 모자를 눌러 씌워주시며 조금은 넉넉한 걸로 사라고 하셨다.
모자를 고른 다음 모자에 부착하는 배지와 교복 칼라에 붙이는 학교 배지를 샀다. 그리고 학년을 표시하는 숫자의 배지를 고른 후 난생 처음 끈 달린 손에 드는 가방을 골랐다. 그런 다음 문방구 아저씨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과목별로 노트를 한 아름 샀다.

그중에서 제일 생소하게 느껴져 지금도 기억에 또렷한 것은 오선이 그어진 음악 노트처럼 선이 여러 가닥으로 그어진 영문 습자로 ‘알파벳’을 쓰는 노트였다.

손안에 가득 잡히는 크기의 네모난 병에 들어 있는 잉크와 나무 막대로 깎아 만든 펜 자루와 펜촉을 몇 개 샀다. 그리고 미술 시간에 쓸 튜브로 된 그림물감과 팔레트를 사고 나니 짐이 제법 한 가득 되었고 그제서야 중학생이 되었다는 느낌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려 뒤로 돌아서 치마를 가볍게 들추시고 속옷 주머니에서 돌돌 뭉쳐 놓은 돈을 꺼내 펼치셨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세신 후 다시 한 번을 더 세어 주인아저씨에게 꽤나 많은 돈을 지불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려니, 그 돈이 어떤 돈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퍽이나 부담스러웠다.

그 돈은 바로 이 년 전 여름날 종구 아버지의 빗 독촉 성화와 심한 욕설에 못 이겨 남의 손에 팔아넘긴 삶의 뿌리인 들녘 논 서마지기의 대금으로 받은 돈이었다. 그 돈 중에 일부를 떼어 종구네에게 진 빚의 원금과 이자를 갚았다. 그리고 남은 돈이 아버지 묘를 옮길 돈과 내 등록금을 낼 돈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전까지 온통 들떠 있던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한여름 소낙비를 몰고 산을 넘는 검은 구름 떼처럼 마음 한쪽으로부터 서글픔이 가득 몰려왔다. 그로 인해 나도 모르게 젖어 오는 눈시울에 어머니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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