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 하늘에 어둠의 벽을 깨고 미명(未明)의 속살을 뚫은 장엄한 해가 불그레하게 솟아올랐다. 그리고 여린 내 몸뚱이에 14라는 세월의 테를 둘렀다. 더불어 시류에 농축(濃(縮)된 시름들의 너저분한 흔적들을 말끔히 지우려는 듯 그해 1960년 경자년의 첫날 아침이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햇살에 비친 방 문풍지가 창백할 만큼 한결 새하얗게 보였다. 그로 인해 가로 세로로 엮어진 문살무늬가 더욱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방문 머리에 걸어 놓은 한 쌍의 복조리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했다. 그저 순리를 거역치 않고 큰 욕심 없이 살려고 노력할 것이니 하늘이 나에게 그 어떤 작은 고통과 시련 하나라도 부여하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중학교 입시 문제로 지난 한달 동안 강한 압박감 속에 지속되었던 긴장감이 풀리자 마음이 느즈러져 온몸에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침 일찍부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한동안 들려와 잠자리에서 일어나려 해도 몸이 자꾸만 는적거렸다. 어머니가 서둘러 잠을 깨워 일어나 보니, 새로 사 오신 속옷 한 벌과 목양말 한 켤레를 반닫이에서 꺼내 주시며 여느 날과는 달리 차분하게 말씀을 하셨다.
“새해 첫날부터 게으름 부리면 일 년 내내 게을러진다 얼른 밖에 나가 세수하고 이걸로 갈아입고 차례 지낼 준비해라 순덕이 에미하구 나는 아침 일찍부터 코딱지만 한 부엌에서 제사 음식 준비하느라고 고생을 하는디 얼른 일어나야지. 그렇게 게을러 터져서 읍내까지 학교는 어떻게 다닐려는지 하는 짓거리 보면 참말로 걱정이 된다.”
핀잔을 하시듯 가볍게 눈을 흘기시며 부엌으로 나가셨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켜서 반다지 위에 올려놓고 순덕이 어머니와 어머니가 들어오시기 전에 잽싸게 속옷부터 갈아입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세수를 한 후 방 안에 들어와 윗목 한구석에 놓여 있던 일 년에 단 두 번 정도 사용하는 커다란 제사상을 내려놓고 상 위에 하얀 모조지 전지 한 장을 깔아 놓았다. 그리고 문종이 위에 ‘현고 학생 부군 진주 강씨 신위 (顯考 學生 府君 鎭州 姜氏 神位)’라고 쓴 지방(紙榜)을 벽에 정성스레 붙였다.
어머니와 순덕 어머니가 하루 종일 정성을 다해 준비하신 제사 음식을 차려 놓고 향로에 향을 지피고 잔을 올린 후 앞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려니, 갑자기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 같았다. 옆에서 바라보시는 어머니와 순덕이 어머니 모습도 한결 숙연해 보여 한 동안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꼬까옷을 곱게 차려입고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던 순덕이가 제사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들이 신기하게 보여 갖고 싶었는지 자꾸만 달라고 손을 내밀어 떼를 쓰는 듯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앞에 계시던 순덕이 어머니가 당황스러워하시며 아기를 받아 달래려 하시자 어머니께서 아기를 건네주려 않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아이구, 내 새끼가 그게 그렇게 갖고 싶어? 순덕아 큰아버지 제사 지내고 나면 우리 새끼가 달라는 대로 다 줘야지 아이구 내새끼 안 주고 누굴 줄끼여 그렇치?”
더욱 떼를 쓰는 순덕이를 달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제 서로 만난 지 겨우 반년이 지났는데 몸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것처럼 느껴져 이제는 서로 끈끈한 정이 들 만큼 들은 듯했다.
제사상 앞에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떡국이 담긴 그릇을 수저로 저으시고 젓가락을 조기 위에 올려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상민이 애비 날두 추운디 요기까장 오느라 고생했으닌께. 마음 푹 놓구서 천천히 골고루 많이 드시구 가시유.”
다소 울먹이시며 순덕이를 보듬으신 한 손으로 눈언저리를 훔치셨다. 나도 마음 한 켠이 울먹거렸고 말을 못하시더라도 눈치가 엄청 빠르신 순덕이 어머니가 보기에 그러하신지 어머니 손을 꼭 붙잡으셨다.
제사상을 물리고 나서 몸에 그리 좋다고 음복을 하라며 하도 성화를 하셔 입에 겨우 한 모금 대는 시늉만 했다. 그리고 네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오붓하게 식사를 했다. 정말 모처럼 만에 먹어보는 흰 쌀밥과 떡국 그리고 상 위에 놓인 돼지고기 산적과 조기 각종 튀김에 나물반찬이었다. 그렇게 차려진 음식이 많아 솔직히 무엇부터 먼저 먹어야할지 몰랐다. 아니! 음식을 먹지 않고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불러올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어머니는 순덕이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조기의 가운데 부위에 연한 살을 조심스럽게 발라 작은 입 안에 쏘옥 넣어 주셨다. 순덕이 어머니는 그런 어머니와 순덕이 모습이 마냥 좋으신지 빙그레 웃으시며 숟가락으로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국을 뜨고 계셨다.
그런 정이 넘쳐나는 골짝 작은 초가집의 소박한 기쁨을 시샘하듯, 둔덕 아래 철길을 달려 북상하는 곳간 화물열차가 ‘뽀오옥 뽀오옥’하며 내어 지르는 기적 소리에 고막이 따가웠다. 그와 더불어 ‘타다당 타다당, 타다당 타다당’하는 레일에 부딪치는 바퀴 소리가 요란스레 울려 방 문풍지가 가볍게 흔들렸다.
밥상을 물리고 난 후 어머니에게 세배를 드리고 나서 세뱃돈을 달라고 하자 어머니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야! 니가 순덕이냐? 다 큰 것이 세뱃돈을 달라고 하게. 넌 인제 중학생이여. 만날 어린낸 줄 아냐? 내가 이번에 너 땜시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알기나 혀? 자그만치 등록금으로만 들어간 게 삼만환이여. 그리구 뭐시냐 교과서 대금 하구 교복 값 모자에 공책 값이 추가루 더 들어갈 것 같은디. 팔자 좋게 뭔놈에 세뱃돈 타령이냐?”
그 많은 돈을 나를 가르치기 위해 쓰셨기에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작년까지는 말 안 해도 세뱃돈을 챙겨 주셨는데 작두로 소여물 썰 듯이 싹둑 자르시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계신 순덕이 어머니에게 세배를 드리자 순덕이 어머니도 웃으시며 절을 받으셨다. 조금 서운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하자 어머니가 순덕이 어머니에게 눈을 찔끔거리시다 내 눈과 마주쳤다. 그래서 조금 전 까지 서운했던 마음이 사라져 웃었다. 그러자 어머니도 같이 웃으시며 약간의 돈을 손에 쥐어 주시며 말씀을 하셨다.
“이 세뱃돈은 정말로 너도 잘 알긋지만, 순덕이 애미가 순덕이 업고 가을내 틈나는 대로 산에 올라가서 도라지랑 더덕을 캐서 내가 읍내에 나가 팔아 그 돈을 꼬박꼬박 모은 거고, 그리고 내가 언젠가는 말할려구 했는디 아래께 니 책가방두 순덕 에미가 사 준 거여. 그러닌께 그런 것이나 알구 고맙게 생각하고 살어 그게 사람 도리닌께.”
갑자기 마음속으로 뜨겁게 솟아오르는 고마움에 순덕이 어머니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니 순덕이 어머니도 흐뭇하신 듯 웃으셨다. 그렇듯 진실의 틀 안에 풋풋하게 묻어나는 유순한 정처럼, 윗목 작은 대소쿠리 안에 하얀 가래떡 위로 봉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다붓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반쯤 열린 사립짝 앞으로 바라보이는 동네 골목길엔 두루마기에 솜을 두툼하게 넣은 솜바지 저고리에 조끼를 받쳐 입으신 어른들과 설빔으로 얻어 입은 새 옷을 자랑이나 하는 듯 동네 아이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상수네 집 마당에서는 한두 살 아래턱인 동네 여자 아이들이 널을 뛰어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세뱃돈을 받은 성급한 아이들 두서너 명이 며칠 전부터 미리 눈여겨 머리에 생각해 두었던 장난감을 사러 화산리 염씨네 점방으로 가고 있었다.
방죽가 좁다란 논길에는 마음껏 머슴으로 부리던 용만이가 그렇게 동네를 떠나지만 않았어도 제사 음식을 손에 무겁게 들지 않고 뒤에서 편안하게 큰기침이나 하고 갈 건데 일꾼이 없다보니 밤색 중절모에 곤색 양복을 받쳐 입은 종구 아버지가 보자기에 싼 제사 음식을 손에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옆구리에 돌돌 말은 돗자리를 낀 종구가 자기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산소에 성묘를 가려는지 앞산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동구 밖에는 차례를 마친 동네 사람들이 각자 자기 조상님 산소에 성묘를 가느라 식구들끼리 모여 웅성거리고, 대전에서 트럭 조수 일을 하는 인식이 형과 인식이가 아주머니와 함께 비석골 산소에 가려는 것 같이 보였다. 둥구나무 앞을 지나는데 기성이형 어머니께서 성묘를 하러 가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성이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기성이형이 집으로 오질 않은 듯해 보였다. 기성이형 어머니께서 며칠 전에 우체부 아저씨가 전해주는 편지를 받으시고 그리도 좋아하셨는데, 끝내 기성이 형이 오질 않아 무척이나 서운해 하실 것 같았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큰소리치시던 광다리 사는 점쟁이 수랑골댁 아주머니 말도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져 속으로는 수랑골댁이 은근히 얄밉기도 했다.
그래도 명절이라고 기름 냄새를 맡았는지 이제나저제나 하고 토방 옆에 두 다리를 모으고 목을 들어 눈만 껌뻑거리며 처분만 기다리던 검둥이가 순덕이 어머니가 남겨진 음식물을 밥그릇에 부어주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그리고 조금만 더 안 주는가 하고 설거지를 하시려 부엌에 들어가신 어머니와 순덕이 어머니께서 부엌 문 밖으로 나오시길 속없이 기다리는 것 같았다.
설 명절을 쇠러 연무대 사진관에서 사진사로 일을 하는 성균이 형이 설 명절을 쇠러 카메라를 들고 자기네 집으로 돌아왔다. 부엌일을 마치신 어머니가 꼬까옷 곱게 차려입은 순덕이를 안으시고 순덕이 어머니와 함께 동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하셨다. 세월이 흐른 먼 훗날 서로 헤어져 살게 되더라도 가슴 아려왔던 기억들을 마음속 깊이 담아 두시려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시려는 듯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옥순이 어머니에게 세배를 드리려고 마을로 향했다. 학교와 학년 표시인 1자가 새겨진 배지를 검정 교복 칼라 양쪽에 달았다. 그리고 금색 中자 마크가 또렷한 모자를 쓰고 사립문 앞에 나와 동네 어귀 둥구나무 밑을 바라보는데 만감(萬感)이 교차되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 어렸을 적 그리도 무덥기만 했던 그해 여름날 둥구나무 밑에서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 더 많은 짓궂은 동네 형들에게 가난이 죄인 양 온갖 놀림을 당하며 들었던, 그 진저리나는 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얼나리 껄나리, 얼나리 껄나리 상민이는 땅거지래요 움막집 사는 땅거지래요 새우젖 장수 아들이래요.’
그리 따돌림 당했던 그런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는 작은 것 하나라도 이루었다는 자긍심(自矜心)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사계의 변화 속에 그리도 수없이 걸었던 언덕배기 오름길로 다정하게 발걸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