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이 밤을 지새워 함께 놀던 샛별 하나를 제 곁에서 매몰차게 떼어 놓으려 했다. 그리고 다시는 안 볼 듯이 시침을 뚝 떼고 있는 모습이 어쩜 그리도 능청스럽게만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침 세수를 하려고 집 앞으로 흐르는 개울가에 닿았다. 겨울의 끝남을 알리려는지 개울가에 서 있는 버들강아지가 움트려 생동의 몸짓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아궁이에 마른 장작 잔뜩 밀어 넣었다. 그토록 갈망하는 작은 욕망처럼 너울대는 불길을 등 굽혀 얼굴이 발그레해지도록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송진 냄새가 지긋하게 풍겨났다.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불잉걸 속에 회한의 온갖 시름들을 모두 태워버리고만 싶었다. 낮은 추녀 밑으로 검은 연기 소옴소옴 피어올랐다. 지붕 끝머리 추녀 밑을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는 참새들의 몸놀림 더욱 분주해졌다. 그리고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허리춤 바싹 추어올린 아침 해는 서둘러 산 밑을 내려서 돌로 쌓은 다랭이 보리밭을 스치듯 지나고 있었다. 또한 내가 사는 작은 초가집의 마당으로 찾아들었다. 바람은 먼 들녘 길을 혼자 가기 외로운지 해를 향해 서둘러 뒤따라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방 안에 들어서려 토방 앞에 서니 봄의 등 언저리를 간질이는 훈훈한 산바람이 가볍게 스쳐 지났다. 사는 형편이 그리 어렵다보니 변변한 책상 하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개다리소반(小盤)위에 올려놓고 공부를 했다. 소반 위에 흐트러져 있는 책과 연필의 각기 다른 색상에 눈길을 빼앗긴 듯 순덕이가 책을 집으려 달려들었다. 그래서 얼른 옆으로 밀쳐내자 크게 노여웠던지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야, 상민아! 너는 애기를 그리 매정하게 밀어붙이면 어떡하냐? 허긴 책두 소중하다마는 그래도 그렇지, 애를 달래야지 그러구도 말로만 우리 순덕이 순덕이 하면 뭐하냐? 정말루 마음속으로 이뻐해야지 안 그러냐?”
그래도 싫지 않으신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셔 순덕이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무턱대고 따라오려고 설쳐대는 검둥이 머리를 쓰다듬어 떼어 놓고 사립짝 앞을 나서려니 어머니 품에 안긴 순덕이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그저 어른들이 하는 대로 따라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텃밭에 노는 장닭의 붉게 늘어진 볏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선홍색으로 선명하게 보여 아름답기만 했다. 그렇듯 나를 에워싸고 있는 그 모두가 한없이 정겹기만 하여 늘 고마움 속에 내가 치러야할 몫 또한 클 것만 같았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큰길가엔 읍내 여자 중학교가 입학식을 하는지 멀리서도 선뜻 눈에 띄는 하얀 칼라가 달린 교복을 새참하게 차려입은 옥순이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옥순이가 자기 어머니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참나무 가지 사이로 참하게 바라보였다.
마치 계단처럼 파릇파릇하게 층을 이룬 보리밭 끝머리가 이어 닿는 산자락 밑엔 이름 모를 산새들이 봄을 성급하게 부르는 듯 서로 앞 다퉈 지저귀고 있었다. 그리고 청라(靑螺)의 언덕에 높이 날 그날만을 기다리나 숨찬 날갯짓하여 한쪽으로 휘몰이를 했다.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겨울의 잔 부스러기들이 푸석하게 남아 있는 둔덕엔 다시금 파릇하게 돋아나는 어린 쑥 순이 수줍은 듯 얼굴을 보였다. 혹시라도 발밑에 밟힐까 두려워 조심스레 발걸음 했다. 눈앞에 면 소재지의 모습이 점점 다가서니 평소에는 그저 그렇게 큰 관심을 두고 보지 않았던 교회 십자가가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서먹함 없이 편안하게 눈 안으로 들어왔다.
둥구나무 앞을 지나 흙먼지 푸석이는 울퉁불퉁한 큰길로 걸어온 옥순이와 내가 서로 맞닿은 곳은 벼랑바위 앞이었다. 큰길로 내려서 옥순이 어머니에게 고개를 다붓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작달막한 옥순이 얼굴을 바라보니 짤막하게 머리를 자른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얼마 전까지 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예쁘게 땋았던 앙증스런 그 모습은 간곳없고 뒷머리가 싹둑 짧게 잘려 나간 단발머리에 가뜩이나 작은 얼굴이 더 작게만 보여 조금 이상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웃는 내 모습이 못마땅한지 옥순이가 화가 난 듯 말을 했다.
“야! 아침부터 너는 왜 그렇게 나만 쳐다보고 웃냐?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냐? 그렇게 철따구니 없이 비실비실 웃게.”
그러자 옆에서 같이 걸어가시던 옥순이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니가 머리를 바짝 잘라서 그러는가 보다. 시방은 괜찮지만 나두 첨엔 니 머리 쳐다보닌게 영 맘에 안 들구 낯설어 웃고 말았는디, 뭘 그런 걸 가지구 그러냐? 그나저나 찻시간 늦겄다. 어여들 가자.”
지서 앞 건널목을 건너면서 더욱 외롭게만 보이는 산 밑에 자릴 잡은 내 집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싸리 울타리 앞에서 세 식구가 눈을 모아 걸어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 훈훈한 마음에 다시금 손을 흔들었다.
면소재지 큰길로 들어서니 저마다 입학식에 가려는가 여자 동창생 네댓 명과 남자 동창생 서너 명의 모습이 보였다. 겨우내 한적하게만 보였던 달구지 길이 새 교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걷는 우리들의 모습으로 활기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서로들 만나기가 무섭게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는데 여학생들이 깡충대는 모습이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보였다. 지난 국민학교 시절에 우리 반 부반장을 하였던 키가 큰 영선이가 자기 삼촌인 학교 소사 양씨 아저씨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오는 모습도 보였다.
지서 정문 앞에는 진작 발령이 나서 새 부임지인 연무대로 갈 것인데 정부통령(正副統領) 선거(選擧)로 발령(發令)이 뒤로 미뤄진 석란이 아버지가 서 있었다. 단발머리 석란이가 자기 아버지인 지서 주임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방정스런 만큼이나 알이 작은 안경을 콧등에 걸친 지서 차석(次席)도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었다. 지난번 종구와 싸운 일로 곤욕을 치룬 일도 있고 해서 제발 아무 말 없이 비켜 가길 바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어코 나를 향해 한마디 말을 건넸다.
“어, 저놈! 지난봄에 들메동네 이주사 외동아들 이빨 분지러서 지서에 왔었는디, 쌈박질 잘하는 만큼이나 공부도 제법 하기는 하는 모양이네 그려, 떡하니 학교 가는 거 보닌께.”
그러자 지서장님이 나를 바라보셨다. 지난번 일로 부끄럽고 부담스런 마음에 얼른 인사를 드리고 도망치듯 뛰어서 정류장으로 향했다. 들 주막 정류장엔 읍내 여중학교 입학식에 가시는 학부형들과 여학생들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 남학생들이 지난번 시험 때 보다는 그 숫자가 반절을 넘게 훨씬 더 줄어들어 전기 입학시험에 불합격된 친구들이 그도 많은 것 같았다. 더불어 후기 입학시험도 전기 입학시험을 치룬 우리들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했다. 그 합격 여부가 이미 발표되어 먼 훗날 국가대표 역도 선수가 되겠다고 하던 같은 반이었던 동창생 성태와 일류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며 그리도 익살스럽게 교실에서 웃음보따리를 곧 잘 터트리던 장난꾸러기 응선이가 후기 입학시험에 합격되었다는 소식을 친구들을 통해 들었다. 그런데도 정작 같은 동네 지척에 사는 종구의 합격 여부는 며칠이 지난 후 겨우 입소문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동창인 여학생들의 단발머리 얼굴 모습이 한결같이 어색하게만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남학생인 우리들이 모여 자꾸만 웃음이 나와 웃고 있는데 여학생들이 우리들을 보고 수근덕거리며 속주머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 서로 돌려가며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입학시험 때보다는 버스 안이 덜 분잡했다. 그래도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로 통로가 막혀 비좁았다. 심심찮게 덜컹거리는 버스 안을 조수 아저씨가 역시나 변함없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야무지게 버스 요금을 받고 있었다. 비좁은 차 안에 조수 아저씨와 몸이 서로 스치자 남학생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 여학생들은 그리도 싫은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리고 조수 아저씨가 오고가다 하얀 옥광목 칼라에 재수 없게 기름때라도 묻나 싶어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 듯해 보였다.
버스가 시내 초입 머리 남교동 간이 정류장에 멈춰섰다. 그러자 절반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내려 차 안이 조용해졌고, 그제서야 띄엄띄엄 빈자리도 보였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읍내 작은 골목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내 사는 마을과는 달리 분주하게 보여 역시나 이곳이 도시는 도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게 트여진 큰길가에 늘어선 상점들의 모습들도 언젠가 시간이 나면 두루두루 자세히 눈에 익혀 두어 도시가 주는 낯선 서먹함에 빨리 익숙해지고 싶었다. 그런 소도시의 모습 속에 유난스레 특이한 모습이 하나 눈에 띄었으니, 도로 가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리도 많게 보여 기다랗게 늘어진 자전거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
그 후 시간이 좀 지나 학교생활에 서먹함이 누그러질 무렵 자세히 알게 된 일이었지만 도로 사정과 교통편(交通便)이 열악(劣惡)하여 그리도 활달치 못했던 그 시절, 그 먼 길로 학교에 가야만 하였으니 버스 편이 없는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별 도리 없이 비싼 돈을 주고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녀야만 했다.
강경 읍내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채운면과 은진면 일부 지역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전라북도 익산군 용안면과 망성면 쪽으로 길이 나있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연무대와 역시 전북 익산군 황화면 일부의 지역이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부여군 세도면과 성동면으로 도로가 나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학생들이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아침 등교 시간과 해질 무렵 하교 시간에는 시내를 통과하는 자전거의 행렬이 저마다 청운의 꿈을 담은 날개를 힘껏 펼치고 소도시의 거리를 가득 메우며 자유롭게 달려갔다.
그런 연유로 학생들의 자전거를 수리해 주어 생업을 일삼는 자전거포가 시내에 몇 군데 있었다. 그 중 우리 학교 입구인 황산동에 있는 자전거포와 강경 상업고등학교 앞 찐빵가게 옆에 있는 자전거포가 성업을 이루었다. 들려오는 말에는 웬만한 촌 동네 부자라고 나서는 사람들 일 년 죽도록 농사짓는 것 못지않게 수입이 짭짤하다고 했다.
땅바닥에 닿을 듯 휘어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는지 파릇하게 보였다. 교문 앞에 이르자 땅딸막한 작은 키에 눈이 부리부리하게 생긴 학생부 훈육주임 선생님과 삼학년 기율부 선배들이 교문 앞에 턱 버텨 서있었다. 그 옆에는 기율을 위반한 학생들 몇 명이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엉덩이를 쳐든다고 훈육 선생님이 지휘봉으로 내려치시며 벌을 주고 계셨다. 또 다른 일부 학생들은 쪼그려 앉아 두 귀를 잡고 토끼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1학년 신입생들은 아직 학교생활에 서툴다고 사정을 보아주는지 기율부원들이 모자의 마크와 교복 양쪽 깃에 삐딱하게 달린 배지를 바로잡아 주어 두려움에 앞서 마음이 포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