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동쪽 소릿재에 한 무리 새털구름이 한가롭게 쉬어 놀고 그 위로 쪽빛 하늘이 드넓게 펼쳐졌다. 그리고 구름과 마주 닿은 산릉선들이 연초록색 선을 또렷하게 잇고 있어 자못 운치를 자아냈다. 그와 더불어 마을 앞산은 깃털로 잔뜩 몸을 부풀려 알을 품고 있는 어미 닭처럼 들메 마을을 포근하게 아듬었다. 마을 앞 들녘을 가로 지르는 철로엔 지난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숱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호남선 철롯길을 오르고 내렸다. 번쩍번쩍하게 빛이 나는 철롯길은 멀리서도 눈 시리게 바라보였다. 그 위를 달리는 검은 화물열차는 등화터널을 가삐 벗어나 산모롱이를 한차례 휘어 돌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봄의 화신(花信)을 전하고 싶은지 북녘으로 힘차게 내달렸다.
뒤뜰엔 키가 딱 고른 청초한 조릿대 숲이 길게 띠를 두르고 있었다. 검푸른 이끼로 얼룩진 돌담 가엔 산수유가 팥알만 한 눈망울을 아당지게 터뜨리려는지 하늘 향해 기지개를 켰고 있었다. 노란 개나리의 꽃잎들 위에도 아지랑이가 일렁이어 이내 가벼운 현기증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제멋대로 휘어진 가지 끝에 붉은 눈망울 당글당글하게 매단 매화가 봄을 만끽하려는지 마음껏 웃음 지으니 성급하게 초행에 나선 벌들이 활달한 날갯짓으로 산수유 꽃망울 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 쪽마루 기둥 모서리에 내려 앉아 잠시 쉬어가려나 작은 날개를 살포시 접고 있었다. 오막조막한 조약돌을 은근슬쩍 건드리며 흐르는 투명한 개울물이 물오른 버들강아지의 부연 눈망울을 재빨리 바라보며 스쳐 지나고 있었다. 푸른 머리 곱살하게 너울쩍거리는 청보리밭엔 잠시 쉬어 가는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니 해마다 봄은 뉘 알게 모르게 그렇게 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듯 사계의 구분이 확연한 산골짝에 자연의 숨소리를 가슴 활짝 펴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준 저 하늘에 늘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을 뿐이었다. 굳이 애를 써 표현키 보다는 눈으로만 보아도 흡족한 산 모습들이 눅눅한 아침이슬에 싫지 않을 정도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오묘한 마력(魔力)을 가진 봄이 길모퉁이를 돌고 돌아오느라 발길이 조금 더딘가? 아니면 그 먼 길에 숨이 차올라 잠시 쉬고 있는가? 성급하게 기다리는 마음보다는 훨씬 더디 오고 있었다.
파릇파릇 어린 쑥이 새롯새롯 돋아나는 산자락 끝머리에 달라붙은 크고 작은 화전밭들이 앙증맞게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해를 거듭해 여러 차례 야금야금 화전 밭을 일궈 놓았다. 그리고 주인도 각각 다른 만큼 밭 자리 모양도 다양 각색하여 여러 개의 층을 불규칙하게 이뤘다. 눈앞에 골이 좁아 더욱 기다랗게 보이는 청보리밭이 알찬 푸르름으로 연연하게 다가섰다. 그런 모습들이 탐스레 보였는지 머리 위로 펼쳐진 높은 하늘엔 새하얀 뭉게구름이 몰려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뭉게구름이 서서히 물러감을 반복했다. 그와 더불어 드넓은 봄의 들녘과 맞닿은 아물아물한 지평선이 끝 모를 외로움을 다시금 안겨 주었다. 언덕마루 서낭당 당산나무 밑에 쌓아 올린 돌무더기가 아침 햇살에 똘방지게 보였다. 그리고 냇가엔 겨우내 우리 안에 메어만 있던 검은 염소 가족들이 모처럼 나들이를 나온 듯했다. 참으로 앙증맞게 생긴 어린 새끼를 두 마리씩이나 뒤에 달고 있었다. 어미 염소의 선홍색 젖꼭지를 암팡지게 물고 늘어지는 어린 새끼들이 그도 좋은지 어미는 새끼들 등 언저리를 커다란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골짝 도랑 건너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올라서니, 큰길가 벼랑바위 앞에는 옥순이가 먼저 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학식 때부터 시작된 지난 한 달 동안의 학교생활에 익숙지 못한 탓인지 긴장 속에 자주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그래서 면소재지 약방에서 생명수를 몇 차례 사 먹었는데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런 탓에 서둘러 가야 할 학교 길에 갑자기 용변이 급해졌다. 마땅히 일을 볼 만한 편의 시설이 있을 리 없어 당황한 모습으로 허둥댔다. 그러다 용변이 더욱 급해져 빳빳한 노트 한 장을 냉큼 찢어 두 손으로 급히 비벼 문지르며 어쩔 수 없이 둔덕 아래로 내려섰다. 그러면서도 혹여 오가는 사람들 눈에 띌까 싶어 주위를 자꾸만 두리번거리며 도랑가 깊숙한 곳으로 쫓기는 닭처럼 달려갔다. 그런데 남의 속사정도 모르는 옥순이는 빨리 오라고 자꾸만 소리를 치니 뒤에 따라오고 있는 종구와 종구네 아버지가 들을까봐 두렵고 마음은 퍽이나 급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매사에 눈치 빠른 옥순이가 알아챘을까 싶은 부끄러운 마음에 불안하게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끙끙대다 겨우 우선 급함을 면했다. 속이 시원한 기분으로 둔덕 위에 올라 책가방을 들고 뛰어갔다. 그런데 지난 설 대목에 읍내 좁다란 장거리 송방에서 어머니가 사다 주신 목양말이 얼마 신지도 않았는데 목 부분의 고무줄이 힘없어 늘어져 자꾸만 발등으로 내려왔다. 아래로 내려오는 양말이 발목을 간질여 얼마나 성가시게 구는지 차라리 벗어 버리고 그냥 맨발로 뛰어가는 것이 더 편할 듯싶었다.
한참을 기다렸을 옥순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급히 뛰어가니 옥순이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입을 실쭉거리며 놀려대는 투로 말을 했다.
“야, 상민아. 너는 학교에 갈 생각은 않고, 아침부터 뭐땀시 또랑가로 엉덩이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허겁지겁 뛰어갔냐? 어디 읍내 장에 내다 팔라구 다슬기라도 한 바가지 잡아 왔냐? 을매나 잡았는지? 좀 보자.”
옥순이가 손을 입에 대고 멈출 줄 모르고 비웃는 듯이 키득거려 나도 부끄러운 마음에 지지 않으려고 툭 쏘아붙였다.
“야! 너도 그전 가을날 밤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 급해서 죽는다고 나한테 책보자기 버리듯이 던져 놓고 냇둑 밑으로 내려가 볼일도 봤잖냐? 그리고 무신 놈에 계집애가 채신머리도 없이 방귀 뀌는 소리도 엄청스레 크게 들리더라.”
그렇게 말을 해 놓고도 참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와 커다랗게 웃자 옥순이 얼굴이 금방 붉어지면서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야! 너는 아침부터 재수빡머리 없이 그딴 소리는 뭣 땀시 하는데, 아침부터 넘 염장 그렇게 질러 노면 니 속이 그렇게도 후련하고 좋냐? 에이구.”
옥순이가 식식거리면서 뒤도 다시 안 돌아보고 앞만 보며 걸어갔다. 그래서 책가방을 옆에 끼고 얼른 뛰어가서 미안하다고 하자 가뜩이나 조그만 입을 꼭 다물고 단단히 화가 난 듯 개구리를 노리는 독사눈처럼 나를 노려보며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봄의 새 옷을 갈아입으려는 듯 거무스름한 빛이 사그라드는 탱자나무 울타리 주막집 정류장엔, 졸업 후 한동안 보지 못했던 남자 동창생들의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서로 반가워하며 하고 싶었던 말들이 그리도 많았는지 조금은 소란스레 이야기를 나누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논산 읍내에 있는 두 군데 후기 중학교의 입학식을 뒤늦게 시작하는지 논산 쪽으로 가려는 학생들과 학부형들로 무척이나 북적거렸다. 그 중에 검정 교복을 입은 종구와 밤색 중절모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종구네 아버지의 얼굴도 보였다. 그렇게라도 함께 축하해줄 아버지라도 곁에 있는 종구가 그날따라 더욱 부럽기만 했다. 그리고 어쩌다 종구와 서로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내가 먼저 말을 걸기도 전에 종구가 미리 얼굴을 돌려 의도적으로 딴전을 피우고 있어 서로의 교감이 이루어지기에는 더 많은 세월의 흐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 암묵적인 반목은 종구 아버지도 매한가지였다. 사는 형편이 자기보다 훨씬 못한 나와 옥순이가 다들 보라는 듯이 전기 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단 하나 밖에 없는 외동아들인 종구가 우리들처럼 전기 시험에 응시를 못하고 겨우 후기 학교에 입학을 하였으니 그 잘나터진 자존심에 어디다 내놓고 이렇다 하고 말 한자리 못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로 인해 얻어진 실추된 자존심과 매사에 지지 않고 남을 꺾으며 살아온 이기적으로 편중된 성격에 우리들의 그런 모습이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활달한 우리들의 모습이 눈에 걸린 가시 같았고, 시기의 대상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해 봄에 비석골에서 자기 아들의 아랫니를 두 대씩이나 부러뜨린 감정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아 그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보니 나는 그 분의 눈에 밉다 못해 영원히 안 보고 싶은 그런 역겨운 존재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강경 읍내를 출발하여 논산 읍내로 가는 버스가 먼저 도착했다. 그러자 논산으로 입학식을 치르러 가는 친구들이 차에 올라 떠나려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 손을 흔들어 주어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렇게 논산 읍내로 가는 버스가 등화동 고갯마루를 넘어서자 반대로 논산 읍내 쪽에서 강경을 향해 달려오는 버스가 조금 멀리 보여 길가 앞으로 나가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면 소재지에 사는 얼굴이 좀 낯선 3학년 선배가 양쪽 칼라에 호크도 잠그지 않고 앞 단추를 두어 개 정도 풀어놓은 채 그 많은 여학생들 앞에서 나를 불러 차렷 자세를 시켰다. 그리고 으스대는 모습으로 왜? 선배인 자기에게 인사를 안 하냐고 주의를 주어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선배 말에 반항을 하냐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며 거들먹거렸다.
조금 떨어져 있던 영선이는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고 옥순이는 조금 전에 내가 놀려댄 일로 속이 시원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새침때기 석란이가 얼른 달려와 앞을 갈로 막으며 말을 했다.
“중식이 오빠 왜 이래?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강상민이 얘는 착하단 말이야. 오빠 나를 봐서라두 그러지 말어 응?”
그러자 내 가슴을 서너 차례 쳤던 면소재지 사는 3학년 오중식이가 못 이기는 척하며 앞으로 경례 잘하라는 말을 남기며 버스가 오는 쪽으로 걸어갔다.
화가 턱밑까지 치고 올라 얼굴이 붉어지고 두 귀에서 윙하는 이음이 들렸다. 얼핏 보아 덩치가 거의 나와 비슷해 막상 맞붙어도 될 듯싶었지만, 밉던 곱던 잘난 선배님이기에 꾹 참고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작은 제약 하나도 중학교 생활이 국민학교 때와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꼈다.
그다지 붐비질 않는 버스 안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어 옥순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막상 그런 일이 있고나니 아까와는 달리 안 되었다는 표정으로 슬그머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창밖으로 얼른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영선이는 웃는 얼굴로 참고 살라는 표현을 얼굴로 하는 듯했다.
아침 조례시간이 되었다. 운동장 앞에 나무로 만들어 흰색 페인트칠을 곱게 한 교단 위에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생겨 우락부락한 느낌을 주는 ‘학도호국단’ 교련을 무섭게 가르치시는 별명이 ‘차돌’인 선생님이 마이크를 입에 대시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큰소리를 치셨다. ‘차렷 자세에서는 벌이 날아와 얼굴을 쏘아도 참고 움직이지 말라.’하시며, 전교생을 다그쳐 오와 열을 맞추고 계셨다. 교단 맨 앞에는 키가 제법 월등하게 큰 3학년 선배가 팔에 ‘대대장’이라는 완장을 차고 서 있고, 우리들이 서 있는 줄 사이 빈 공간으로 기율부원들과 팔에 ‘중대장’이라는 완장을 두른 3학년 선배들이 눈을 부릅뜨고 다녀 분위기가 좀 무겁다 못해 살벌했다. 그런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지루한 아침 조회가 끝나자 밴드부가 경쾌하게 연주하는 외국곡인 행진곡 ‘콰이강의 다리’ 연주에 긴장이 풀리면서 오와 열을 맞춰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모두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긴장했던 탓이었던지 오랫동안 참았던 소변을 보려고 한꺼번에 우르르 공동화장실로 몰려가 온통 북새통을 이뤘다. 무엇이 그리들 좋다고 서로들의 고추를 시침을 뚝 떼고 슬며시 바라보며 이제 겨우 낯이 익어가는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그리고 같은 학교 출신인 아이들은 만남이 그리도 반가워서 그러는지? 볼일을 보느라 내렸던 고의춤을 올릴 생각도 않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떠들어 댔다. 오줌 때로 온통 얼룩덜룩한 콘크리트 벽에서 배어나는 지린내도 자주 맡다보니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이 모두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무릇 마음이 각박해지면, 추억이라 되뇌어 보면서 웃어 볼 수 있는 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