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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90 조회 : 1,599




자연의 섭리 따라 다소곳하게 찾아온 봄의 생동으로 긴 겨우내 움츠린 산골짝이 암회갈색 헌옷을 벗고 연초록 비단자락을 고루 둘렀다. 연풍(軟風)의 목말을 타고 온 한 조각 선연한 구름이 저 혼자서 온 산야를 진득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따스한 한나절 햇살도 무료(無聊)를 달래려는 듯 내달리는 기차의 차창 표면에 힘껏 부딪쳐 투명한 만큼 눈 시리도록 번쩍였다. 그리고 북행하는 열차가 내뿜은 잔연(殘煙)이 부는 바람에 흩어져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타다다당, 타다다당’ 철로의 이음새 부분을 통과하는 날카로운 울림 속에 기차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마을 앞을 잽싸게 스쳐 지났다. 이렇듯 초자연 속에 자릴 잡은 내 고향 들메 마을은 진정 하늘로부터 축복 받은 곳임에 틀림이 없었다.

산골짝에서 흘러내리는 도랑물이 속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였다. 해말끔한 도랑물 위에 탐스레 비친 쪽빛 하늘을 보고 못 보는 것은 저마다의 몫인 듯싶었다. 뒤쳐진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지글거리는 욕망의 시기심으로 충혈된 인간들의 모난 심성의 마음에 눈으로는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봄바람이 물에 비친 청량한 하늘을 시새움하는 듯 살랑살랑 물결을 흔들어 놓았다. 그로 인해 물 위에 잔잔한 파문을 거침새 없이 남겨 그토록 참하게 바라보이던 하늘을 조각조각 흩트려 놓았다.

선거철마다 어김없이 불어오는 들뜬 바람이 지난 한달 여 동안 손바닥만 한 동네에 불어 그리저리 말도 많았다. 집권자들은 순박하기 그지없는 이 땅의 선량한 민초들을 볼모로 관권과 금권을 총동원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부정선거를 강행(强行)했다. 그래서 민족사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오점의 한 획을 그어 그 슬픈 서막이 열리는 제4대 정부통령(正副統領)을 뽑는 투표일인 1960년 3월 15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동구 밖에는 제1투표소인 채운 면사무소로 투표를 하러 가는 동네 어른들이 차비를 하여 한두 분씩 모여들었다.

봄이 성큼 다가서자 겨우내 그리도 골목길을 시끄럽게 가득 메웠던 ‘딸그락, 딸그락’ 가마니틀 소리가 잦아졌다. 하지만 보리밭에 인분을 내는 일과 마늘 밭에 돋아나는 풀을 뽑고 호미로 김을 매려 농사일이 바쁘신 어른들은 이른 아침나절에 서둘러 투표를 마치려고 벌써 지서 앞 건널목을 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자유당에서 공짜로 받은 검정 고무신을 신으시려니 동네 사람들 이목이 마음에 걸리신 듯했다. 그래서 새 신발을 집에 그냥 놔두고 알맞게 닳은 평상시에 신으시던 고무신을 신고 옥순이 어머니와 함께 투표를 하려고 화산리로 향하셨다.

동네 어른들 말씀으로는 다음날 새벽 정도에 정부통령 선거의 당선 결과가 발표된다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온 동네를 그리 헤집어 투표와 지지를 당부하고 다니시던 동근이 아버지와 종구네 아버지도 동네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며 면사무소를 향해 발걸음 하셨다.

‘소금 먹은 놈이 물킨다.’고, 다들 하기 좋은 말로 달라고 사정한 일 없는데 자꾸만 마시라고 해서 공짜인 줄 알면서도 막걸리를 마셨고 공짜로 주는 물건 고무신과 국수뭉치를 차마 뿌리칠 수 없어 받았다고 말을 하겠지만 자유당 운동을 하시는 열성 당원인 동근이 아버지와 종구 아버지에게 싫던 좋던 그렇게 저렇게 얽히고 얽히다 보니 설령 투표를 하러 가기 싫어도 코 꿴 송아지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극히 작은 숫자지만 일부 지각이 있는 분들과 생각이 좀 깊으신 우현이 아버지는 자유당에서 주는 것 다 받아먹고 투표하는 날 투표장에 헝겊 천 열고 들어가서 투표용지에 붓두껍으로 빨간 도장 찍을 때 정신 바짝 차리고 바로만 찍으면 된다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과연 자기 소신껏 투표를 하실 분이 동네에 몇 분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가끔씩은 해 보았다. 권력에 맹종하고 이해관계(利害關係)에 따라 자기 소신도 헌신짝처럼 버려 또다시 권력의 그늘에 들붙어 살려고 하는 종구네 아버지와 같은 그릇된 어른들의 행태가 영 마음에 거슬렸다.

국회의원이란 사람과 사둔에 팔촌만 걸려도 그걸 무슨 큰 자랑거리라고 온통 으쓱대며 관공서고 어디서라도 큰소리를 치며 오만간데 떠들고 다니는 모습이 정말 꼴 보기 사나웠다. 그리고 선거철만 되면 젓갈장사도 뒤로 밀쳐놓으시고 집안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어머니의 모습에 부모가 하시는 일이기에 차마 거슬리게 말은 못해도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아 떨떠름하기만 했다.

영문 펜 습자 교본에 알파벳 대소문자를 인쇄체와 필기체로 각각 20번씩 쓰는 숙제를 마치고 앞마당에 나서 앞 들녘을 바라보니 두 해 전 이맘때쯤의 일들이 문득 떠올랐다.

논두렁 밭두렁이 파릇파릇하게 모습을 바꾸면 우리들은 흰 구름 다정스레 떠 있는 봇둑에 쭈그려 앉아 마냥 키득거렸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속이 하얀 삘기를 뽑아 입 안에 넣으면 달작지근한 물이 입 안에 가득 고였다. 그리고 입 언저리에는 마치 풀을 뜯고 난 흰 염소의 주둥아리처럼 풀물이 파랗게 번져났다.

그맘때쯤 들녘 논배미에서는 순아네 할아버지가 소를 몰아 쟁기질을 하셨다. 철부지 우리들은 서로 앞을 다퉈 좁아 미끄러운 논둑길을 달려갔다. 그리고 푹 파인 구멍에서 꿈틀거리며 밖으로 막 나오려는 미꾸라지를 잡아 뻣뻣한 볏짚 줄기에 아가미를 꿰어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그런 다음 손톱 끝에 흙이 잔뜩 끼도록 갈아 엎어놓은 흙덩이를 헤쳐서 겉껍질이 검고 속살이 하얀 올미를 주워 먹었고 주머니 속에도 넣어 아랫바지 호주머니 부분에 진흙이 군데군데 묻어났다.

앞 산언덕에 다정하게 뿌릴 내린 두 그루 노송(老松)이 흔적을 지우며 조용히 기울어 가는 오늘을 눈여겨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설렘으로 다가서려 주춤하는 내일을 묵묵히 기다리는 듯했다. 그렇게 해는 광연(廣衍)하게 동이 터 오는 새벽부터 침묵 속에 어둠이 짙어가는 늦은 밤까지 산자락 들메마을과 서로 마주치는 눈빛 속에 소리 없는 대화를 꾸준하게 나누려는 듯했다.

산자락 사이에 대소쿠리처럼 오묵하게 자릴 잡은 들메골에 봄의 미풍(微風)이 이따금씩 불어오고 다스하게 감싸주는 고마운 햇살이 그 모두를 찬연하게 비춰 주었다. 그런 잔잔한 흐름 속에 우리들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었다.

아침 등굣길에 학교 정문 앞에서 훈육주임 선생님과 기율부원들이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들을 한 사람씩 불러 앞에 세웠다. 그리고 옆머리와 뒷머리가 좀 길다 싶은 생각이 들면 손에 들고 있던 가위로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군데군데 ‘싹뚝싹뚝’ 잘라 마치 쥐가 파먹다 남긴 고구마처럼 볼썽사납게 만들어 놓았다. 그와 더불어 호되게 기압을 주던 모습이 눈에 떠올라 면소재지 이발소에서 미리 이발을 하고 등잔불 호롱에 넣을 석유 기름을 사러 기름병을 들고 사립짝을 나섰다.

면소재지로 가는 샛길로 질러가려고 가파른 오솔길로 올라섰다. 그리고 산 중턱에 오르니 산자락 밑 면소재지로 이어진 큰길에는 부근 6개 부락에 사는 어른들이 투표장에 가려고 줄을 이어 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지난가을 운동회 날 학교로 몰려가던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다.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면사무소 앞에는 투표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모습으로 기다랗게 줄져 서 있었다. 투표장인 면사무소 정문 앞에는 검은색 정복에 커다란 칼빈 소총을 어깨에 메고 있는 순경 아저씨의 모습도 보여 투표일임을 실감케 했다.

한낮 햇살에 주인 잃은 묘들이 시름처럼 졸고 있는 희끄무레한 덤불숲 사이로 봄을 재촉하는 작은 산새들이 듣기 좋을 만큼 저들만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푸른 보리밭 사이로 이어지는 눅눅하게 습기에 젖은 황토 길의 풋풋한 냄새가 또 하나의 새로운 정감을 잔잔하게 불러일으켰다.

면사무소 앞에 이르자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어른들과 투표를 하러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로 다소는 분잡했다. 그리고 도민증을 제시하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마치 북적거리는 읍내 장터의 파장 때 모습 같았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어머니와 옥순이 어머니 모습이 보여 앞에 다가서려는데 영택이 아버지가 곱살한 작은 꿩 깃털 하나가 옆에 꽂힌 검정색 중절모를 세련되게 쓰시고 검정색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채 정문 앞으로 걸어 오셨다. 그러자 정문에서 일을 보던 젊은 면 서기 한 사람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얼른 앞으로 걸어가 코가 땅에 닿게 인사를 공손하게 올렸다. 그런 모습 바라보시던 옥순이 어머니께서 말씀을 하셨다.

“참 장가가는 것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구먼 그려. 허긴 색시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을 한다고 하던디, 저 총각이 중례한테 홀딱 반해버린 모양이네. 저렇게 바짝 구부려 절을 올리는 걸 보닌게. 암튼 좋은 시절이여. 그놈의 사랑이 뭔지는 몰라두.”

그러자 옆에서 내 손을 가볍게 잡고 계시던 어머니가 말을 이으셨다.

“왜, 아니랴? 그러닌게 그 새벽에 동네 기성이 총각이랑 정희가 날날이 봇짐을 싸들고 서울로 도망을 가버리고 말았지. 기나저나 어디서 몸이라도 성하게 잘 살아야 할 건데, 잘들이나 있는 건지 모르것네.”

모처럼 만에 찾아뵙는 이발소에는 투표날 겸사겸사해서 머리를 깎으러 나온 사람들로 비좁은 이발소가 무척이나 붐볐다. 성질이 급하신 분들은 차례를 기다리느라 쪽마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보고 그냥 문을 닫고 새터마을에 새로 생긴 이발소로 가려는지 냉정하게 나가 버렸다.

어릴 때부터 선천적으로 등이 굽으셔 키가 내 키만큼이나 작으신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시며 매우 흡족해 하시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들메골 상민이 왔네. 어여 오너라. 그놈 참, 의젓하게 보이네. 정말로 멋지다 멋져. 이제 니 엄니도 어디 다녀도 어깨 쫙 펴시고 다니시것다. 암 그렇게 되어야지. 그 형수님이 혼자서 무거운 새우젓 동이 머리다 이고, 이집저집 댕기면서 그 죽을 고생하여 키웠는데, 잘되어야지. 암튼 거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빨리 깎어 줄께 알었지?”

나를 보시며 환하게 웃으셔 나도 따라 웃으며 자리에 앉으려는데, 주위에 계시던 다른 동네에 사시는 어른들이 내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셨다. 그런데 그중 낯이 설은 한 분이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셨다.

“그러닌께 쟈가 지난 난리 통에 죽은 그 기태 아들인가 보네 그려. 참! 세월 빠르지. 기태 죽어서 사람들이 난리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디, 그 자식이 저렇게나 컸으니...”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셔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두 분이 서로 친분이 돈독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기다려 이발을 마치고 문밖에 나서니 해가 벌써 오후 늦은 무렵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투표를 하려고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석유를 사려고 염씨 아저씨네 가게에 가려고 길을 걸으려니 짧아진 머리가 바람에 시원스럽게 느껴졌다.
염씨 아저씨네 가게에서 석유 기름과 순덕이에게 줄 납작 꽃무늬 과자를 종이에 싸서 들고 산언덕에 오르니 마냥 시작인줄만 알았던 아침이 어느새 해 기우는 저녁으로 다가섰다. 다시금 자각하는 것처럼 흐트러진 몸 추스르고 지평선을 바라보니 핏빛처럼 물들어 가는 금강 둑 언저리가 노을 속에 잠기려 했다.
이제 머지않아 고요를 몰고 오는 적막의 어둠살이 좁은 골짜기에 짙디짙게 내려 깔릴 것이니 그 무렵이면 단아한 새색시의 속마음처럼 보름달이 완연한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았다. 그리 떠 오른 보름달이 산골짜기 밤하늘에 잔잔하게 드리워질 것이니 인간들의 거친 숨소리로 얼룩진 바깥세상이 소란할수록 의연하게 버텨 서 있는 산골짝은 가만히 있어도 소중하게 빛이 날 것처럼 보였다.

오롯하게 보이던 오솔길을 걸어 언덕배기를 넘으니 산 아래로 내 작은 초가집 하나 정겹게 눈 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맞은편으로 벼랑바위가 듬직하게 바라보였다. 그 벼랑바위 위에 선한 달빛이 비추면 하늘에 별들도 총총하게 발걸음 했다. 언제나 그 무렵이면 내 어머니께서 벼랑바위 앞에 멈춰서 더디 오는 자식을 애태워 기다리셨다. 벼랑바위 그 곳엔 그런 끈끈한 모정도 함께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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