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슬을 빼닮은 하늘에 유유히 흘러가던 은회색 구름이 산봉우리 위에 머물러 잠시인들 쉬어 가려는 것 같이 보였다. 완연하게 떠오른 아침 해는 산바람이 밉살맞게 등을 밀쳐 떠나감이 아쉬운 듯 손짓하는 산봉우리를 등 뒤에 남겨 놓고 들녘으로 내려섰다.
나또한 광연(廣衍)한 해를 길벗 삼아 그토록 차올랐던 온갖 고뇌 모다 떨쳐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무엇에게도 시달리지 않는 자유로운 한 마리 새처럼 확 트인 청록(靑綠)의 들녘을 마음껏 훨훨 날고 싶었다.
돌무더기 틈사이로 담결(淡潔)한 아침 이슬에 함초롬히 젖은 야생화가 처연하게 보였다. 양지바른 둔덕에 소곳하게 핀 씀바귀 노란 꽃의 청초함에 마음이 시려 자박자박 걸어도 보았다. 때로는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숨이 차올라 괜스레 투덜대기도 했다. 햇살에 반사된 고운 빛으로 금빛 물결 잘름거리는 개울물을 점벙점벙 건너려면 개울가에 새뽀얗게 또랑또랑한 눈을 뜬 실버들이 눈에 띄어 한번쯤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마을을 바라보니 낮은 흙 담장 너머로 수줍은 얼굴 반쯤 내민 백목련이 잎사귀 없는 줄기마다 피어나 마치 허공에 둥실 떠 있는 듯 보였다. 하얀 목련화의 소담스런 모습에 내재(內在)된 깊은 의미도 한 번쯤은 차분하게 음미해 보는 차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느긋하게 찾아온 심성(心性) 고운 봄은 신록의 자태 속에 그리 오래 머물려 하질 않아 슬금슬금 다가서는 초여름에 시원스레 자리를 내주려 차분하게 준비를 하는 듯했다.
손끝으로 조그만 건드려도 금방이라도 툭 터져 짙디짙은 파란 물이 떨어질 것 같은 쪽빛 하늘은 마냥 드높기만 했다.
선연한 아침 햇살에 눈이 시려 가늘게 뜨고 다시금 먼 산을 바라보니 흐르는 구름 모습 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잃어버린 내 아버지의 얼굴이 환영처럼 떠올라 마음 한 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른 아침부터 사립짝 앞 텃밭에서 어머니와 순덕이 어머니가 호미로 밭고랑에 상추와 쑥갓 그리고 얼갈이배추와 완두콩을 심고 계셨다. 비록 선천적 농아로 태어나셔 말문이 막혀 혹여! 남들이 보기에는 우습게 보일는지 몰라도 가득 차오르는 햇살에 머리 숙여 일하시는 순덕이 어머니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현숙하게만 보였다.
햇살에 반사되어 선하게 연분홍빛을 띈 구름이 시시각각으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에굽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외딴 초가집이 아침 햇살을 듬뿍 받으며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암청색 늙은 소나무의 충충한 솔숲 사이로 까치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짙은 송진 냄새 풍기는 앙바라진 소나무 아래 푸른 이끼 가득 낀 반석 옆으로 잔뜩 늘어진 소나무 가지들의 그림자가 밭머리에 드리워 지고 있었다.
아담스런 싸리울 밖으로 바라보이는 마을 앞 들녘에는 영롱한 아침 햇살을 담뿍 받으며 밭고랑에 봄씨를 넣는 손길들이 제법 분주하게 보였다.
잘름잘름하는 논물에 두 발을 담그고 못자리를 하고 있어 그저 평온한 전원의 삶을 이어가니 흙에서 태어나 흙만을 바라보고 흙의 진리에 따라 땀 흘려 애를 쓴 만큼 거둬들이며 사는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네 삶 속에 거창한 정치적 논리가 존재할 리 없었다.
그저 삶의 순환 고리에 매달려 순리를 거역치 않고 사는 민초들의 순백한 의식 속에는 실로 큰 변화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바깥세상 일들에 이해관계가 얽힌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시대적으로 어둡기만 했던 그 시절 극히 낙후된 문화 여건 속에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소식이 가물거리는 희미한 등잔불만큼이나 어둡게 뒤쳐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 입을 건너 한참을 지난 후에야 뒤늦게 겨우 전해지는 소리에 동네 사람들 모두는 그리 깊게 관심을 갖지 않아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역사의 흐름 속에 변화의 커다란 한 획을 긋는 4.19 학생 의거 하루 전날인 1960년 4월 18일, 지나간 한 주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주일의 첫날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순덕이 어머니가 정성스레 고추장 양념을 발라 불에 구운 더덕과 독특한 향이 풍겨 나는 산나물 무침이 들어 있는 도시락을 책가방에 담았다. 내 동생 순덕이가 아장아장 걸어 나와 작아 앙증스럽기만한 손을 내밀고 고개를 귀엽게 잘래잘래 흔들고 있는 사립짝을 나섰다.
만개한 붉은 홍매화가 절정을 이뤄 요염하게 보이는 울타리 모퉁이를 지나 밭둑길을 걸어 산기슭 계곡물을 건너려 하니 동네 앞 나무다리 위에 키 작은 옥순이가 눈에 띠었다. 손에 든 책가방이 무거운지 한쪽으로 기운 어깨에 가뜩이나 작은 키가 더욱 작게만 보였다
끝이 보이질 않는 넓은 들녘의 가득가득 담긴 물결에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부채살처럼 고루 퍼져 커다랗게 황금빛을 이루어 마음 설레이게 했다.
논산 장날이라 그런지 면소재지 행길가에는 읍내로 장을 보러 나가는 발길들이 퍽이나 분주해 보였다. 그리고 순아네 소달구지가 ‘달랑달랑’ 방울을 울리며 가파른 철로 건널목 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몇 해를 두고 그리도 갈구하였던 기와공장 일은 체념을 하신 듯 종구네 아버지와 동근이 아버지가 자세한 바깥소식이라도 들어 볼 요량으로 겸사겸사 읍내로 가시려나? 소달구지 뒤를 바짝 따라가고 있었다. 종구도 책가방을 들고 어른들 뒤에 몇 발짝 떨어져 걸어가고 있었다.
논산 읍내로 향하는 버스는 장날이라 그런지 주막집 정류장이 그리 사람들로 붐벼도 반대편인 강경으로 가는 버스는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하루 간격을 두고 열리는 그 다음 날인 강경 장날엔 역시나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차 안이 붐볐다. 남학생들보다 사람들에 밀려 버티는 힘이 약한 여학생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려는 탓인지 자그마한 얼굴에 늘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하는 옥순이가 제법 숙녀다운 모습으로 벼랑바위 앞으로 다가와 왠지 조금은 서먹했다.
가파른 철로 건널목에 오르니 앞으로 바라보이는 지서 정문 앞에 지난번 지서주임이었던 석란이 아버지보다는 훨씬 젊어 보이는 새로 온 지서주임에게 종구네 아버지와 동근이 아버지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지서의 분위기는 모든 순경들이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상시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초록빛으로 성글어 진 가로수 숲을 가르며 스쳐 지나가는 버스의 차창 너머로 달리는 버스가 내뿜는 흙먼지를 피하려 길 가장자리로 바짝 비켜선 자전거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알록달록한 자운영 꽃과 푸릇한 독사풀이 알맞게 조화를 이룬 넓은 들녘엔 논과 밭을 가는 소들의 정겨운 모습이 띄엄띄엄 보여 꾸밈새 없는 참신한 시골마을의 풍요로운 정취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장화리 마을 앞 논 가장자리에 방치되어 있는 부서져 녹슨 탱크는 그때까지도 치우질 못해 흉물스럽게 자릴 잡고 있었다.
조금 멀리 철길 위에는 연무대에서 강경으로 오는 아침 통학 열차가 뒤꽁무니에 객차 세 칸을 달랑 달고 덜렁거리며, 역사에 진입을 알리려는지 커다랗게 기적을 울리며 읍내로 들어서는 철교를 향해 달려왔다. 역 구내로 들어서는 곡각지점에 높다랗게 서 있는 철제 시그널은 달려오는 열차가 반가운 듯 손짓을 하고 있었다.
연륜이 깃든 만큼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팽나무가 늘 버텨 서 있는 언덕 아래에는 강경 여자 중고등학교와 강경 상업고등학교가 자릴 잡고 있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남교동 간이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 그리도 분잡하던 버스 안이 한적해졌다.
오가는 차량들의 경적소리와 사람들의 행렬로 번잡스러워지는 시내 중심부(中心部)에 자릴 잡은 경찰서가 퍽이나 권위적으로 보였다. 일제 강제 점령기 때 세운 붉은 벽돌의 경찰서 건물 앞을 지나는데 별다른 변화의 이상 징후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듯 읍내의 분위기는 시내 중심 상가 상인들과 버스 종점인 황산동 공용 주차장에 모여드는 승객들의 모습이 보통 때와 다를 바 없이 차분함 속에 평온하기만 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란 미루나무에 둘러싸인 넓은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아침 조회를 했다. 그 자리에서 교장 선생님이 평소 때와는 달리 조금 굳은 얼굴로 말씀하셨다.
“학생 여러분들도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지난 3월 15일 정부통령(正副統領) 선거(選擧)가 끝난 후, 경상남도 마산과 부산을 시작으로 연일 들끓는 학생들의 소요(騷擾) 사태(事態)로, 나라의 기강이 해이(解弛)해지고 사회 질서가 극도로 어지럽혀져 가는 마당에, 학생 여러분은 어떠한 이유라도 일부 정치집단들의 가두 연설회나 현 시국을 비난하는 모임 장소에, 일체의 출입은 물론 참여를 하여서는 안되며, 지금 사회에 난무하고 있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고, 여러분은 학생의 신분을 잃지 말고 맡은 바 학업에만 충실하기 바란다.”
조금은 강경해 보이면서도 아주 깊은 우려가 깔린 어투로 말씀을 마치셨지만 상급 학년 선배들은 물론 대다수의 학생들은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하였으나 세속(世俗)에 떠도는 소문으로 겨우겨우 들어온 사실과는 조금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자기의 느낌과 생각을 겉으로는 표시를 못하고 그저 각자 나름대로 서툴게라도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은 나 역시도 선생님의 말씀에 의문부호(疑問符號)를 남겼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며칠 전 버스 주차장에서 털보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경남 마산에서 고교생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죽은 시체가 바닷가에 떠올라 그 처참한 죽음에 분노한 마산 전체 시민들이 총귈기(總蹶起)를 하였다는 말이 교장 선생님 말씀처럼 세상에 떠도는 거짓 유언비어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 생각의 혼란스러움 속에 깊히 빠진 미약한 나로서는 그 사실에 대한 진위 여부를 명쾌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전무(全無)해 종일토록 전전긍긍했다.
노란 개나리가 뒤덮은 학교 뒤편 울타리에 머물던 햇살이 3교시가 시작되는 종소리가 교정에 울려 퍼질 쯤 유리창을 넘어 책상 모서리에 살포시 내려앉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3교시 국사시간에 입담이 좋으신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이미 국민학교 사회시간에 눈이 아프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배운 삼국시대 신라의 건국에 대한 교과 내용에 상세하게 살붙이기를 하는 정도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3교시가 끝나자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성구가 밖으로 나가자고 말을 했다. 그래서 성구의 뒤를 따라가니 이미 여러 명의 다른 반 아이들도 철조망 앞에 와 있었다.
내 친구 성구가 노란 개나리꽃 다북하게 줄기 뻗은 철조망 너머 지붕 낮은 초가집에서 파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엿가락처럼 가늘고 길게 늘여 두 가닥으로 꽈서 기름에 튀겨 설탕가루를 듬뿍 뿌린 꽈배기 두 개와 삼립 크림빵 두 개를 샀다.
철조망 틈사이로 구겨진 돈 25원을 건네주고 빵과 꽈배기를 받아 나에게 절반을 나눠 주었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였지만 살기가 힘든 우리들에게는 한 개에 10원 짜리 크림빵도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성구가 나를 툭 치며 훈육 선생님 오기 전에 빨리 먹으라고 재촉을 했다. 삼립 크림빵은 내 동생 순덕이 얼굴이 문득 떠올라 얼른 아랫바지 호주머니에 넣었다. 입 가장자리에 묻어나는 설탕가루를 검정 교복 소매 끝으로 쓱 문대며 먹으니 그 맛이 정말 꿀맛 같았다.
그렇게 티 없이 서로 어울려 웃고 떠들며 빵과 과자를 먹고 있는데 모여 있던 아이들 중에 누군가가 소릴 쳤다.
‘야들아! 기율부 온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자 새총 소리에 놀라 마치 떼를 지어 혼비백산(魂飛魄散)으로 도망치는 참새들처럼 각자의 교실을 찾아 숨어 버렸다.
어찌 보면 그렇게 순박하게 자라나는 우리들과는 정반대로 그 즈음 나라 안 사정은 실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연면(連綿)한 역사의 흐름은 하루가 지난 다음 날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獨裁) 정권의 불의에 항거하여 서울의 각 대학을 필두로 전국 곳곳에서 학생의거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