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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03 조회 : 1,297




그해 봄은 비답지 못한 비가 감질(疳疾)날 정도로 겨우 한두 차례 내렸다. 그리 거듭되는 가뭄에 온 주위가 퍽이나 건조하기만 했다.

아침나절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괜시리 마음만 싱숭하게 여우비가 한차례 스쳐 지났다. 그리고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중천으로 떠오른 아침 해는, 지붕 위에 늘정하게 머물러, 조막만한 안마당을 빈틈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해진 운명을 거역하지 않고 주어진 삶의 몫을 묵묵히 이어가시는 내 어머니의 참 모습에서 든든한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서, 봄 가뭄의 메마른 땅속에 더욱 뿌리를 깊이 내려 온몸을 지탱하려 안간힘을 다하는, 민들레의 힘든 고뇌처럼 느껴졌다.

단 한 점 혈육인 어린 자식을 그리 요사스레 화사(華奢)하게 키우진 못해도, 험난한 세상 당신이 살아 온 질곡의 삶을 조금이라도 답습치 말고, 보다 낳은 온화한 삶의 터에 착근을 시키려 안간 힘을 다하셨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생각보다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음흉하게 꾸물럭거리는 욕심들로 돌돌 뭉친 추악한 인간의 거친 숨결이 녹녹치 않아, 한 송이 어린 꽃을 피우기는 커녕 당신의 몸조차 지키기 어려운 때도 퍽이나 많았다.

지주의 눈치나 살피며 소작농으로 힘든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근근(僅僅)이 살아 남으려 저마다 안간 힘을 썼다. 허나 염원하는 소망의 문 턱은 그리도 멀기만했다. 마치 잎줄기가 까칠하게 메말라 아픔을 토하듯 우유빛 같은 흰 눈물을 흘리는 민들레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망연(茫然)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어머니는 겉으로 언뜻 보기엔 몹시도 빈약해 보였지만 그럴수록 꿋꿋한 모습으로 의연(毅然)함을 잃지 않으려 하셨다. 더불어 척박하기 더할 나위 없는 곳일지라도 더욱 낮은 자세로 그 자리를 굳굳하게 지키려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행상을 하시느라 하루에도 몇 십 리 길을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을 돌고 돌아 발뒤꿈치와 새끼발가락에 옹이가 박혔다. 그렇게 굳어진 뚝살을 따뜻한 물에 불려 칼로 깎아내리는 내 어머니 모습에 주체하기 힘든 아픔이 살을 베어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능력이 없는 나는 그저 못본 척 시침을 뚝 떼고 말았다. 온 주위에 어둠살이 내리면 아래 턱잎부터 슬며시 몸을 오므리는 민들레꽃처럼 옹골진 내 아픔도 그렇게 잠시인들 접고만 싶었다.

그런 울먹여지는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두 손을 흔들며 노는 순덕이를 번쩍 끌어안고 방문 밖으로 나왔다. 낮은 추녀 끝 흙벽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먹이 찾아 나서려 채비를 서두나 작은 부리로 서로 몸을 부벼 뒤척이고 있었다. 머리 위 둥지에서는 제비의 분비물(分泌物) 두서너 덩이가 쪽마루에 단작스럽게 떨어졌다.

발등에 주름이 잡혀 주름 따라 허옇게 해진 검정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혹여라도 어머니 눈에 띄어 마음 쓰일까 하는 생각에, 눈에 잘 안 띄게 얼른 쪽마루 밑으로 바짝 밀쳐놓았다.

발길 뜸한 산골짝에 뉘 한 사람 반갑게 찾아 줄려나, 돌무더기 가득 쌓인 텃밭 너머 연초록 잎새 듬성듬성 숲을 이루는 늙은 돌감나무 가지 끝에 , 포동포동한 까치 한 마리가 납작 엎딘 초가집을 내려다보며 이른 아침부터 요란스레 우짖었다.

철길 너머 논에는 기현이 할아버지가, 무릎까지 아랫도리를 바짝 걷어올려 못자리를 돌보시고 있었다. 늘 그맘때쯤이면 활처럼 굽어진 화산리 산모퉁이를 돌아 폭주하듯 달려오는, 남행 열차의 뭉클뭉클하게 내뿜는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솟아 오른 연기가 바람결에 실실히 흩어지고, 줄을 이뤄 이어진 객차들의 유리창마다, 부채살처럼 퍼져 나는 선명한 아침 햇살에 눈이 잔뜩 시려왔다.

하늘을 찌를 듯이 민출하게 뻗어 난 두 그루 미루나무가 의지가지로 사이좋게 서 있는 방죽가에, 지축(地軸)을 흔드는 기차의 굉음에 놀란 하얀 오리들이, 두 날개를 푸덕이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그도 평온하기만 했다. 그런 모습들이 한데 어울려 꾸밈없는 정취(情趣)와 도드라진 쾌적함이 물씬 묻어나는 것 같았다. 더불어 그리 자유로운 전원의 모습을 탐이 날 만큼 붓끝으로 섬세하게 그려 놓고 싶었다.

'휘이익, 휘이익' 뒤뜰 다랭이 밭 뽕나무에서 휘파람새의 귀엽게 울어대는 울음소리가 고요한 산골짝의 적막을 깨트렸다. 눈치 빠른 검둥이는 나보다 한발 앞서 사립짝 앞에 나와 있었다. 마냥 나를 따라 나서려는 순덕이를 떨치고 학교에 가기가 조금은 힘들어졌다.

밭두덕을 내려서 개울을 건너려니 타는 목 갈증을 축여주는 해맑은 개울물이, 가뭄 탓으로 물이 줄었나 개울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시원스럽지 못하게 질금질금 흐르는 개울을 건너 연초록 은행잎이 바라보이는 둔덕마루 위에 올라서니, 동구 밖에는 모처럼 만에 집에 다니러 온 내 친구 주현이의 모습이 보여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주현이의 부진한 성적 탓도 있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과 욕심 많은 자기 어머니의 그릇된 판단에 의해. 동네에서 유일하게 후기 중학교에도 진학을 못했다. 그래서 논산 읍내에 있는 농공장 주인집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모처럼 만에 자기 집에 입고 벗을 봄 옷가지를 가지러 왔다 가는지, 마을 어귀 나무다리 위에 옥순이와 함께 다정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빨리 보고 싶어 책가방을 옆에 끼고 내리막 둔덕길을 달려 벼랑바위 앞에서 기다렸다.

국민학교 졸업 후 무척이나 오랜만에 만나는지라 반가워 말문이 막혀 그저 바라만 보며 웃고 있었다. 우리들처럼 학교에도 못가고, 어린 몸에 남 밑에서 일하고 있는 주현이가 안쓰러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 주현아! 니네 주인이 맘 편하게 잘해주기는 허냐? "

방금까지 나를 보고 반가워 웃고 있던 주현이가 얼굴 표정을 바로 하면서 말 대답을 했다.

" 음, 첨에는 쬐금 그랬어, 주인 아저씨 성깔머리가 바윗돌처럼 차갑고 무뚝뚝해서, 점심때 술 심부름 시키는 것 하고 일하면서 연장 가져오라고 하는 말 빼고는 말이 없어 무지하게 서먹했어, 그리고 그 큰 공장 안 땅바닥에 손 시렵게 찬물을 뿌려 가며 대패질로 벗겨낸 나무껍질과 톱밥 가루를 혼자서 매일같이 청소를 하는데 조금 힘들기는 해, 그리고 공장 구석에 베니아 판으로 막아 놓은 조그만 방에서 혼자 자는디, 판자 틈새로 바람은 엄청나게 새어 들어왔단다. 그래서 아무리 이불로 감싸도 얼굴은 못 가려 코끝은 시려 오고, 천장(天障)에는 쥐들이 밤늦게까지 '우르릉 탕탕' 거리고 다녀 심란(心亂)해서, 괜히 일 배우러 왔나 하고 후회도 많이 했는디, 지금은 몸에 익어 그런지 그냥 있을 만혀, 피가 다른 넘 밑에서 기술 배울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안 그러냐? "

옥순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아주 의젓하게 말을 해, 겉으로 표현을 할 수 없었지만 주현이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공연(公然)히 미안키만했다. 그런 기분으로 나와 옥순이가 말없이 조용해지자, 눈치 좀 빠른 주현이가 다시 슬며시 웃으면서 말을 붙였다.

" 야! 상민아 그라고 옥순아, 니들 나중에 커서 어른되면 장가가고 시집갈 때, 꼭 나한테 농짝 맞춰야 한다. 그때쯤이면 나도 기술자 되버려서, 읍내다가 크다랗게 농공장 하나 차릴라고 결심했으닌께 알았냐? "

그렇게라도 애써 아픈 자기 감정을 누르고, 오랜만에 만나 친구들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성숙한 자세가, 그전과는 달리 퍽이나 어른스러워 보였다.

앞산 마루턱에서 불어오는 선들바람에 운치 있게 아느작거리는 버드나무 아래 주현이와 함께 서 있었다. 얼마 후 논산 읍내쪽으로 가는 버스가 다가서자, 주현이가 차에 오르면서 나와 옥순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우리들 시야(視野)를 벗어나 멀리 사라질 때까지 주현이가 타고 가는 버스를 섭섭한 마음으로 바라만 보았다.

비포장도로 위를 덜컹거리며 달려온 버스가 읍내 황산동 정류장에 멈춰섰다. 성구네 집으로 가는데 역전 옆 넓다란 공터에서 귀가 따갑게 요란한 밴드소리가 들려 얼른 바라보았다.'동춘 써커스단' 이 들어와 높다랗게 처진 둥그런 천막에 울긋불긋한 깃발들을 높이 세워 놓고, 동네 영택이네 축음기에서 한동안 너무 많이 들어, 노래 가사까지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왔다.

'목포의 눈물'을 아주 구성지게 연주를 하여, 길가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잠시 발길을 멈춰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 교문 앞 양쪽으로 깊이 파인 연못 동산에는, 휘청휘청 휘어진 버드나무가 살갑게 눈웃음치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잔디 밭에 동글동글한 모습으로 맵씨 있게 다듬어 놓은 향나무 사이로 하얀 백엽상(百葉箱)이 보였다. 그렇듯 격을 이뤄 풍치(風致)를 더하는 교정(校庭)은, 언제나 포근함으로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1시간 여 동안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5교시 수업시간이 시작되자, 밀려오는 춘곤(春困)으로 모두들 꾸벅꾸벅 조느라 애를 썼다. 공민 과목을 담당하신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칠판 위에 " 에이브라햄 링컨 " 이라고 제목을 써 놓으셨다.

그리고 드문드문 졸고 있는 우리들의 잠을 깨우려는 듯, 대나무 뿌리로 칠판을 몇 차례 세게 치신 후 조금 큼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 에이브라햄 링컨은 켄터키주의 가난한 오두막집에 수제화를 만드는 구두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학으로 공부한 후 미합중국의 16대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물로서, 흑인 노예를 해방시켜 후세에 흑인들로부터 아버지라고 칭송을 받는다. 그리고 남북전쟁의 운명을 결정 지은 게티스버그에서 행한 연설에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천명(闡明)하여,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훌륭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라고 하시며'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의 대목을 몇 차례 합동으로 낭독(朗讀) 시키셨다.

바로 이날 4월 27일 오전 11시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 는 말을 남기고 하야(下野) 성명(聲明)을 발표했다.

하루 수업 중 마지막 시간인 문법시간이 되었다. 문법 교과서인 '말본' 책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수업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아직도 졸음에서 깨어나지 못한 급우들을 향해, 손에 들고 계시던 백묵 동가리(동강)를 던지시며 소릴 너무도 크게 지르셨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보다 성격이 좀 유별나셨다. 그리고 얼굴에 윤곽이 길쭉하게 생기셔 선배들이 지어 놓은 별명이 '말본'에 말자를 따서 '말대가리' 라고 불렀다. 우리들도 선배들 뒤를 따라 선생님들 몰래 우리들 끼리 그렇게 부르며 철없이 키득거렸다.

마지막 종례를 마친 후 성구와 함께 교문을 나서 학교 앞 금강 둑 위에 올랐다. 강 건너 넓다랗게 확 트인 '세도' 뻘 모래벌판이 시원스럽게 펼쳐 있었다. 클로버가 끝 모르게 이어진 강둑에서,'행운을 가져다 준다' 는 속설(俗說)을 믿고 한동안 열심히 네잎 클로버를 찾으려했다. 그런 후에 성구와 나는 저녁 노을빛이 어리는 강둑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 "

성구와 나는 목소리를 합하여 저무는 해거름 녘을 아쉬워하며 노래를 불렀다. 둑 밑으로 바라보이는 금강 물결은 선홍빛으로 번득번득 찬란한 빛을 띄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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