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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14 조회 : 1,253




좁아터진 단칸방에서 몰큰몰큰한 석유 냄새와 꿉꿉한 곰팡내가 가득 배어났다. 잠에서 깨어나 발치 밑을 바라보았다. 홑이불이 제멋대로 구겨진 채 둘둘 말려 있었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신 어머니께서는 읍내 장터에 나가시기 전에 밭 자락을 한번쯤 둘러보시려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대충 매만지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순덕이가 깨어날까 싶어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다.

순덕이 어머니는 어제 산을 오르내리시느라 몸이 무척이나 피곤하신 것 같았다. 지난밤에는 듣기 심할 정도로 코를 고셨다. 그리고 손짓까지 하시며 헛소리를 하셨다.

항상 어리게만 보이던 순덕이도 제 딴에는 컸다고 제법 말썽을 부렸다. 슬금슬금 식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문풍지을 손가락으로 찔러 재미있는 듯 드문드문 구멍을 냈다. 그러다가 식구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혼이 날까봐 지레 겁을 먹고 손가락을 입에 물어 배시시 웃는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삶의 체계에 본능적으로 순응하려는 사물들이 내는 역동(力動)의 여음(餘音)이 방문 밖에서 귓가에 크고작게 들려왔다. 뉘라서 이리 굴곡 심한 세상일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그리 두루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금 번져오는 답답한 심경에서 벗어나려 문밖을 나섰다.

산을 향해 소리 낮춰 말을 하려 하니 내 모습이 조금은 애처롭게 보였나? 그리라도 포근히 감싸 주려는 듯 산자락을 끼고 떠도는 축축한 물안개가 자욱하게 서려 있었다. 그 물안개 사이로 산들이 어릿어릿하게 모습을 보였다.

구름 낮게 깔린 흐린 하늘 아래 잔뜩 쉰 목소리를 내어 지르며 증기기관차가 달려가고 있었다. ‘뭉클뭉클’ 머리 위로 뿜어내 솟아오르는 허연 수증기에 무엇이라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한 자락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뒤뜨락에 더부룩하게 자라 바람결에 몸 맡겨 바들거리는 맥문동(麥門冬)의 가는 잎이 왠지 애처럽게 보였다. 대추나무 이파리 끝에 이슬방울이 송송 매달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방울방울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계절이 6월의 초입으로 들어서서자 앞 들녘 군데군데엔 농번기답게 구슬땀을 흘려 저마다 필요한 만큼의 먹거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분주하게 보였다. 서둘러 보리를 베어내고 논을 갈아 엎어 써래질을 하여 망종(芒種)을 전후로 아무리 늦어도 소서까지는 마쳐야 하는 바쁜 모내기철이 다가왔다.

농번기에는 부엌에 낮잠 자던 부지깽이도 벌떡 일어나 한몫을 거들어야 하고 죽어 누워 있는 송장도 일으켜 세워 일을 시켜야할 정도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기만 했다.

실없이 논으로 따라나선 누렁이도 덩달아 바쁜가 논둑에 서서 쉴 새 없이 둘둘 말린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길가에 드문드문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온통 함께 바쁜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로 서로 어울려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못줄이 둘둘 감겨 있는 끝이 뾰족한 나무 꼬챙이를 손에 쥐신 기현이 할아버지가, 입에 곰방대를 무시고 ‘어이’ 하며 소리를 내어 논 가장자리에 나무 꼬챙이를 꼽으려 하셨다. 그러자 소리에 맞춰 논물 속 반대편에 나무 꼬챙이를 들고 서 있던 삼식이 아버지가 덩달아 ‘어이!’ 하고 소리를 내어 물 속에 못줄이 둘둘 말린 나무 꼬챙이를 꽂았다. 동네 어른들이 팽팽하게 늘어진 못줄의 빨간 부표 앞에 빠른 손놀림으로 정교하게 간격을 맞춰 가지런히 모를 심고 있었다.

아랫바지를 무릎까지 바짝 걷어올린 경수 아저씨는 좁다란 논둑에 작대기를 받쳐놓은 바지게 위에서 볏모 뭉치를 꺼내 들고 물이 잘름잘름한 논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풍덩풍덩’ 소릴 내어 던지고 있었다.

제철을 만났는가? 앞산 높다란 소나무 숲에서 날아온 목이 긴 황새 한 마리가 하얀 날갯깃을 커다랗게 활짝 펴 기다란 두 다리를 쭉 뻗쳐 논자락 위를 낮게 날아 빙빙 한두 바퀴 돌아
어딘가에 자리를 잡으려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찬란하게 퍼져나는 아침 햇살에 뿌연 흙먼지 자욱하게 이는 주막집 삼거리 길가엔 군데군데 하얀 교복 윗도리를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자기네 집 모내기할 때 일꾼들에게 내놓을 들녘 못밥에 푸성지게 반찬이라도 내려 인심 한번 후하게 쓰려나, 돼지고기와 생선이라도 사러 읍내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아낙네들 모습이 선들바람이 ‘휘휘’ 휘저어 흔들거리는 버드나무 가는 줄기 사이로 정겹게 보였다.

푸른 잎 무성하게 담숭담숭 줄져 서 있는 가로수 끝머리를 이어 아침 햇살은 환하게 길을 트고 있었다. 너른 들녘 논배미 어디메선가 그칠 듯 말 듯하게 뜸부기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오고 차창 밖으로 미끈하게 뻗은 가로수들이 휙휙 스쳐 지나고 있었다.

키 작은 버드나무 한두 그루 우두커니 외롭게 서 있는 금강둑길에 줄을 이어 자전거를 몰고 등교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살갑게 눈에 와 닿았다. 읍내로 들어서는 강경천 수문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하얀 포말(泡沫)을 이루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후덥지근한 차내 공기를 식혀 주듯 조금은 시원스럽게 들렸다.

  길게 늘어진 느슨한 밧줄을 질질 끌며 비스듬하게 비탈진 강둑에 버텨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누런 황소 등 언저리에 아침 햇살이 넉넉하게 내리쪼이고 있었다.

찬연한 햇살이 욕심껏 비치는 읍내로 들어서자 서툰 솜씨로 큼직하게 글을 써 나지막한 추녀 위에 걸어 놓은 간판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붉은 벽돌 건물 벽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담쟁이 넝쿨이 억척스레 보이는 강경상업고등학교의 울창한 측백나무 울타리 너머로 머지 않아 다가오는 6.25 사변 행사 때문에 그런지 아침 일찍부터 밴드부에서 악기에 음의 조율을 맞추려고 제가끔 불어대는 악기들의 다양한 불협화음(不協和音)이 꽤나 시끄럽게 차창 밖으로 들려왔다.

시커먼 석탄 가루가 수북수북하게 쌓여진 골목길을 지나 성구네 집으로 가려고 연못 앞을 지나려니 급히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에 놀랐나 연못가 숲에 나와 숨을 ‘할딱할딱’ 가삐 내쉬던 개구리들이 앞을 다퉈 ‘텀벙텀벙’ 소리를 연달아 내며 다급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찌 보면 작은 만큼은 아담해 보이는 작은 철도 관사 성구네 집 모퉁이에는 성구가 방금 꺾어 온 듯싶은 아카시아 이파리를 토끼집 안쪽으로 깊숙이 넣고 머리를 돌리다 내 눈과 마주치자 성구가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토끼집 옆에 놓인 의자 위에 몇 권의 헌책들이 올려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철이 한참은 지나간 학생잡지 ‘학원’과 일엽 스님이 쓰신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책이 있었다.

성구가 나를 바라보며 어제 빈 병을 팔려고 읍내 고물상에 갔었는데 헌책이 있어 볼려고 주인 아저씨한테 얻어 온 것이라며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그래서 시기가 지난 ‘학원’ 잡지는 그냥 놔두고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책만 한번쯤 읽어 볼까하는 생각에 도시락을 넣은 책가방 가운데 칸에 넣고 성구와 함께 분주하게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 틈에 끼어 걸어갔다.

그 무렵 학교가 끝난 후에 읍내를 걸어가는 학생들이 옆구리에 ‘학원’ 책을 드문드문 끼고 다녔다. 하지만 살기 어렵던 형편에 그런 잡지 하나 사 볼 경제적인 여력이 없었다. 어쩌다 운 좋게 같은 반 급우에게 부탁을 하여 하루 내지는 이틀 정도 빌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지긋지긋하던 교련 시간이 없어져 아주 홀가분해진 듯했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다.’라고 어쩌다 비라도 한차례 뿌리고 나면 진흙 논자리에 성토를 하여 만든 운동장인지라, 진흙에 묻혀 있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잡초들이 빈틈없이 솟아올라 아침 조회가 끝난 후에나 그리고 실과 시간에는 어김없이 한낮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 병아리들처럼 모두 쪼그려 앉아 손톱 끝에 푸르뎅뎅하게 풀물이 들 정도로 제초 작업을 했다.

그리고 어디서 씨앗이 날아왔는지 아직 키가 작게 자란 왕골과 쇠비름은 비교적 뽑기가 좀 수월했지만 땅에 납작 들러붙은 질경이와 노인 분들의 지팡이를 만든다는 명아주는 그 뿌리가 너무 깊숙이 옹골차게 박혀 뽑아내기에 아주 애를 먹었다.

심심하면 거듭되는 제초작업으로 우리들 모두의 마음에 크고 작은 불만들이 새롭게 싹텄지만 선생님 앞에서 그런 불만을 드러내놓을 수는 없었다.

운동장 스탠드 옆에 심어놓은 플라타너스의 크고 넙적한 잎사귀에 햇살이 올곧게 내리비추고 있었다. 동글동글 야무지게 알이 영글어가는 나무 열매가 잎사귀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로 접어들자 검정 콜타르칠을 한 교실 나무판자 벽에는 뜨거운 햇살에 벽면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렸다. 그와 더불어 후덥지근한 교실 안 공기가 마냥 쏟아지는 졸음을 한껏 부추기는 듯했다.

교실 안의 분위기는 겉으로 보기엔 모두 다 수더분하게 격 없이 어울리는 듯해 보였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는 같은 급우들의 끼리끼리 어울림에서 어느 정도는 알게 모르게 드러났다.

지난봄 반장을 뽑는 비밀투표에서 읍내 국민학교 출신인 기득권을 등에 업고 선출된 반장 병권이와 읍내 양복점을 하는 성천이, 그리고 군내에서 지체가 높으신 분들과 부잣집 사람들만 출입을 한다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거문고와 장구 소리가 나는 요릿집을 하는 우리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아 학급 번호 1번인 남식이와 자기 아버지가 읍내 경찰서에 경비과장으로 근무한다고 은연중에 그리 과시를 하던 성우가 늘 함께 어울렸다.

그 중에 성우는 지난 4.19 학생 의거가 일어나 시국이 어수선해지자 자기 아버지가 부여 경찰서로 발령이 나서 떠난 후 거들먹거리던 행동이 좀 수그러든 것 같았다.

읍내 같은 국민학교 출신이라도 가정형편이 간고(艱苦)한 아이들과 변두리 지역에서 버스나 자전거로 통학을 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따로 어울려 놀았다. 겨울철 동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단벌이었고 여름 하복도 겨우 두 벌로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날에 빨아 번갈아 갈아입고 다녔다. 검정 운동화도 밑창이 다 닳을 때까지 한 켤레를 신고 다녔다. 그런 탓에 운동화 위에 주름이 생겨 틈새가 갈라져 허연 보풀이 일어나면 얼른 먹물로 문대고 터진 주름 자국을 애써 없애려 했다.

그런데 지난 중간고사를 보고 난 후 학업성적은 오히려 나처럼 변두리에 사는 집안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의 성적이 더 월등하게 양호했다.

비록 가난 속에 자랄지라도 공부만큼은 그 아이들에게 지지 않았다는 자긍심(自矜心)과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언젠가는 그 아이들보다 더 잘살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기죽지 않고 학교생활을 힘차게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느티나무의 울창한 숲 가지 사이로 희읍스름하게 바라보이는 ‘나바위’ 천주교 성당 건물 꼭대기 너머로 저녁 햇살이 불그레 몸을 태우며 기울어 가고 있었다. 기울어 가는 저녁 해는 육중한 학교 건물의 그림자를 아주 길게 드리웠다. 그 기다란 그림자를 밟고 성구와 나는 늘 하던대로 그날도 변함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읍내로 향했다.

한동안 그리도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곡마단도 이젠 어데로 떠나간 듯 조용하기만 했다. 조금 허전한 역사 앞 마당엔 둥지를 찾아 날아가려는 참새 떼들이 차비를 서두나 우루루 모여 있었다. 그와 더불어 저녁 통학 열차를 타려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빠져나오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기만 했다.

그래서 혹여 석란이 모습이 눈에 보일까? 하는 작은 조바심에 가슴이 가득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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