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아침 해는 여명을 뚫고 격동(激動)의 몸부림을 치며 동녘 하늘에 떠올랐다. 그렇게 떠오른 해는 다정스러움이 가득 배인 그윽한 눈빛으로 온 주위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가마득한 동쪽 산마루엔 그 언제부터인가 그리움 하나 암팡지게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어슴푸레하게 되뇌여지는 기억들을 더듬으려 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풀어보려고 아침 해를 향해 답을 물어보아도 그 또한 입을 꾹다물어 말이 없었다. 그로 인해 시름 찬 애증만 반추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밟히고 또 밟혀도 다시금 일어서고야 마는 질경이의 강인함을 빼닮고 싶었다. 또한 그런 질곡 어린 삶의 범주 안에서 모질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준 대자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산자락마다 다북다북 들어찬 솔숲을 가볍게 스쳐 온 산바람이 가볍게 얼굴을 간지렵혔다. 그리 스쳐가는 바람이 아쉬웠나, 울타리 밖에 손바닥을 쫙 펼친 모양을 꼭 빼닮은 무화과 나무의 연초록 이파리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싱겁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어정쩡하게 바라보기 싫은가? 옆자리에 서 있던 아직은 키가 덜 자란 해바라기가 다가오는 해를 향해 슬그머니 머리를 돌렸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송화도 그런 모습이 우습게 보였는지 붉은색 연한 꽃잎을 가볍게 처들고 있었다.
자주색 감자꽃 등 너머로 푸릇푸릇한 마늘이 텃밭을 반쯤이나 채우고 있었다. 쫑긋하게 내민 마늘종이 더는 힘에 겨운지 유월의 훈풍에 살포시 고개를 숙여 간들거렸다.
어머니께서는 해마다 늦가을엔 작달막한 텃밭에 호미로 골을 이뤄 쪽쪽이 쪼개 놓은 씨 마늘을 정성들여 심어놓으셨다. 그리고 겨울 추위에 잘 견디라고 노오란 왕겨를 더부룩하게 뿌려 놓고, 마음 부듯해 하시며 느긋하게 다음 해 봄을 기다리셨다.
동빙한설(凍氷寒雪) 휘몰아치는 긴 겨울을 잘 견뎌 봄의 미풍이 몰고 온 신록과 더불어 마늘밭이 푸르름을 맘껏 뽐내었다. 그 때쯤이면 철딱서니 없던 어린 나는 마늘 잎사귀를 따서 양손으로 비벼 허옇게 부풀어 오른 겉껍질을 입으로 잔뜩 불며 놀았다. 그리고 새끼 손가락 굵기만한 작은 풍선 모양을 만들며 두 눈 가득 청잣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목화솜 같은 뭉게구름이 얼핏 눈길을 주며 흘러가는 낮은 흙담장에 갓 피어 오른 붉은 찔레꽃이 엊그제 시집온 새색씨 같이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탱글탱글 누런 보리이삭이 파아란 하늘 향해 머릴 곧추세우고 휘어 내린 줄기 가득 자주빛 등나무꽃이 소담스레 피어났다. 더불어 지질맞게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 따라 검푸른 옥수숫대는 하루가 다르게 불쑥불쑥 자라나고,너른 들녘 논배미엔 허리 굽힌 농부들의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텃마당 마늘밭에 잎사귀와 줄기가 노릇노릇해지면 하얀 수건 머리에 둘러 쓰신 어머니께서 밭자락에 허리 굽히셔 조심스레 뽑아 올린 마늘 밑둥치에 들려붙은 흙을 털어내셨다. 그리고 허릴 쭉 펴시며 땀이 가득찬 신발을 벗으셔 검정 고무신 안에 들어 찬 흙가루를 탈탈 털으내시며 뽑아 놓으신 알찬 마늘 뿌리를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셨다.
“워메 어쩌믄 내 새끼 이쁜 머리통 매냥 요리도 곱살허게 자랐다냐!”
그 순간만큼은 마음 부듯해 하시며 그늘진 얼굴에 웃음을 흠뻑 지으셨다. 그리고 어쩌다 산에 오르내리는 동네 사람들이라도 만나면 내놓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살림에 그것이라도 자랑하고 싶으셨나, 마늘 둥치를 번쩍 들어 보이셨다.
우리 집 마늘은 땡글땡글한 육쪽마늘이라고 하시며 엮어 놓은 마늘을 꾸러미 채 들춰 보이시던 순박하기 이를 데 없던 내 어머니이셨다. 숨 조여 오는 척박한 삶 속에 아린 마음을 그리라도 삭히시려 한 해 동안 땀으로 공들인 각고(刻苦)의 결실을 볏짚으로 정성스레 묶으셨다.
그러다 오일에 한번씩 서는 풍성거리는 읍내 장날엔 자식 다음으로 그리 아끼시던 마늘 두서 접 중에 한 접를 들었다 놓았다 몇 번쯤 반복하셨다. 그러시다 하루내 텅빈 집 홀로 지키는 어린 자식 마음에 걸리셨나 작심을 하신 듯 젓갈 동이에 담으시고 읍내 장터에 내다 파셨다.
그 돈으로 어린 자식 그리도 갖고 싶어 했던 새하얀 고무신과 입으로 물고 그리 힘껏 흔들어도 찢어지지 않는다는 질기고 질긴 알록달록 무늬 고운 나일론 양말을 사다 주셨다. 철없는 나는 새 신발과 나일론 양말이 그리도 좋아 깡충깡충 뛰면서 동네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리고 한낮 햇살 기울려 하면 그늘진 쪽마루에 앉으셔 어린 내가 미처 몰랐던 이런저런 얘기들 자상하게 들려 주셨다. 그러면서 김치를 담그시려나, 하얀 종지 가득 차게 햇마늘 껍질을 벗겨 도마 위에 올려놓으시고 마늘 한쪽을 어렵게 두 손가락으로 잡으셔 부엌칼 자루 밑둥치와 납작한 칼등으로 그리 빨리 솜씨 있게 두들겨 곱게 다졌다.
그리고 풋마늘 잎사귀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나물 반찬을 무치셨고 기다란 마늘 종은 된장에 깊숙이 묻어 한 해를 걸러 맛깔스레 밑반찬을 만드셨다. 식초를 넣은 간장에 통마늘을 푹 삭힌 마늘장아찌를 정성스레 껍질 벗겨 찬물에 말은 보리밥 위에 한 알씩 얹어 주셨다.
그리고 마늘을 엮은 두릅을 바람이 잘 통하는 곳 벽에 걸어 그렇게 애지중지 말리셨다. 긴 여름 다 보내고 가을을 넘겨 긴 겨울이 다가도록 한쪽 한쪽 빼먹다 보면 어느새 메마른 볏짚에 푸석푸석 빈껍데기만 남았다.
어머니가 빈 두릎을 두엄자리에 태우시며 ‘그래두 읍는 살림살이에 엄청나게 보탬이 됐는디.’ 하시며 씁슬하게 웃으셨다.
매주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저녁이면 늘 반복되는 일이 하나 있었다. 빨랫거리를 밤새도록 푹 담가 놓아야 때가 빠진다고 하시며 빨리 벗어 놓으라고 어머니께서 그리도 성화를 하셨다. 어젯밤에 벗어 놓은 위아래 하복이 비눗물에 흠씬 젖어 노란 양은 세숫대야 안에 가들막하게 담겨 쪽마루 한쪽에 놓여 있었다.
앞 들녘 냇둑 길엔 아침 일찍부터 모내기를 하러 들녘 논배미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 나가시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활기차게 보였다.
냇둑에 풀 뜯으러 나가는 줄 맨 누런 암소는 뒤따라 오는 어린 새끼에게 해찰하지 말고 얼른 따라오라고 걸음을 재촉하듯 ‘음머’하고 고개를 들어 소릴 내며 걷고 있었다.
작은 손안에 꽉 들어찰 정도로 고만고만한 멧새들이 밤나무 숲 사이를 분잡스럽게 누비고 있었다. 뒤뜰 장독대에서 어머니가 아침 밥반찬을 하려고 작년 늦가을 내 친구 주현이와 동네 앞 샛강에서 해질녘까지 잡아 온 갈게를 끓인 간장에 절여 놓아 잘 삭혀졌는지 동그랗게 배가 부른 작은 단지 안에서 게를 한 마리 꺼내 맛을 보고 있었다.
며칠 전에 읍내 장에서 사 온 소나무 판자로 만든 접이식 둥그런 밥상을 방 가운데 펼치고 식구들이 빙 둘러앉았다. 밥을 먹으려는데 순덕이가 노란 달걀을 깨어 넣고 참기름과 간장을 둘러 비벼 준 작은 밥그릇을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는가 하고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뒤돌아 앉았다. 그리고 서툰 숟가락질에 밥풀을 방바닥에 질질 흘리면서 먹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웠는지 몰랐다.
읍내로 나가셔서 장사를 하시는 하루 동안 아무런 일 없이 잘 돌아오시라고 사립짝 앞에 나와 손을 흔들어 주는 우리들의 모습을 몇 번쯤 뒤돌아 바라보시며 걸어가시던 어머니께서 이윽고 서낭당 고갯마루를 넘으셨다.
마당 안으로 들어선 순덕이 어머니가 앞산을 바라보며 연신 손짓을 하시며 어눌하게 말씀을 하셨다. 나와 같이 산에 오르자고 하시기에 공부를 하여야 한다고 손짓으로 표현을 하자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순덕이를 등에 바싹 둘러업으시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신 후 쪽마루 기둥에 걸려 있는 꼴망태와 끝이 뾰족한 호미를 들고 산으로 오르려 가파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모처럼 홀로 텅 빈 집에 남아 있으려니 왠지 새삼스럽게 적적해져 며칠 전 성구한테 얻어 온 책 ‘청춘을 불사르고’를 한번 읽어 보려고 했다.
마당에 들어서니 빨랫줄 위에 널린 하복 윗도리와 아랫바지에 배인 잔잔한 비누 냄새가 내 어렸을 적 스스럼없이 파고들었던 포근한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배어 나오던 그 냄새와 엇비슷하여 퍽이나 정감이 갔다.
불현듯 어머니 생각이 다시금 떠올라 얼른 싸리 울타리에 발걸음 하여 울타리 너머로 바라보니 어머니가 철로 건널목을 넘고 계셨다.
‘엄니’하고 큰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거리가 좀 멀었던 탓으로 들리지 않으셨는지 어머니께서는 그냥 길을 걷고 계셨다.
햇살 뜨겁게 달아오르는 마당 끝머리 두엄 가에서 어미 닭들이 지렁이라도 잡으려는지 발로 두엄을 어지럽히며 헤치고 있었다. ‘훠이, 훠이’하고 소리를 질러도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조금도 물러서질 않고 얄밉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날 내가 쪽마루 앉아 읽었던 ‘청춘을 불사르고’ 라는 책은 김일엽 스님이 쓰신 자서전 형식의 소설이었다.
작가 김일엽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를 거쳐 해방된 조국의 개화기에 여류 시인이자 작가로서 활동하다가 뜻한 바 있어 속세를 출가하여 충남 예산에 있는 수덕사에 승적을 둔 여승의 신분이었다. 지난날 자신이 겪어 온 삶을 바탕으로 직접 체험한 일들을 섬세한 필체로 산문 형식으로 쓴 글이었다.
필체가 때론 칼날같이 예리하면서도 감칠맛 나게 매끄러운 문체에서 가슴 뭉클하고 깊은 감명도 받았다. 그리고 글 속 구석구석에서 묻어나는 철학적 이치의 묘미는 글을 읽는 나로 하여금 무상(無常)의 참된 이치를 깊이 깨닫게 하여 얻어지는 기쁨을 직접 느끼게 헸다.
텃밭의 옥수수 알들을 영글게 하려고 세차게 내리쬐는 햇살이 싫었던지 토방 앞 그늘진 곳에 넙죽 엎드려 있던 검둥이도 조금은 무료한 듯 보였다. 길쭉한 입을 냅다 크게 벌려 천연덕스럽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추녀 밑 둥지를 바쁘게 들락날락거리는 제비들은 검둥이 눈을 피하려는 듯했다. 마당 가 텅 빈 허공을 나는 대여섯 마리 회색 잠자리가 높다랗게 떠 날갯짓을 힘차게 하니 세월의 흐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부엌 한 켠에 놓인 물지게를 어깨에 걸머지고 아랫동네 샘터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그리 새하얗게 꽃을 피웠던 아카시아 나무 밑에는 바람에 떨어진 꽃잎들만 널브러져 있고 꽃이 진 나뭇가지가 왠지 모르게 자꾸만 까칠해 보였다.
철로길 건너 기현이네 집의 새까맣게 그을린 굴뚝이 스며드는 햇살에 반질반질하게 보였다. 벽 밑에 놓여 있는 벌통 안팎으로 벌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그런 벌들의 모습이 퍽이나 신기한 듯 기현이가 몸을 잔뜩 움츠려 쪼그리고 앉아 벌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현이 할아버지와 옆집에 사시는 흥남이 아저씨는 보리 이삭들이 다북하게 쌓여 있는 마당에 도리깨질을 하고 계셨다. 일을 하시다 목이 마르셨던지 군데군데 쭈그러진 노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큼직한 국그릇에 넉넉하게 막걸리를 부어 들이키고 계셨다.
탱자나무 밑 감자밭 고랑엔 흥남이 아저씨와 함께 살려고 재혼을 하신 아주머니가 뿌리 따라 크고 작은 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뽑혀 나오는 하얗고 파란 감자를 캐어 볏짚 삼태기에 담고 있었다.
동네 앞 둥그나무 아래엔 동네 아이들이 모여 소란스럽게 떠들며 쭈그러진 깡통차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둥그나무 밑에 깔아 놓은 덥석엔 동네 노인들이 앉아 계셨다. 그중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시던 진식이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다.
“아! 저리 큰 통나무들을 여럿이서 다듬는 걸 보면 나가는 품삯도 만만치 않을건디, 이참에 동섭이가 큰맘을 먹고 집을 거하게 지을 모양이구먼. 지금 사는 그 좋은 기와집일랑 뭣땀시 그냥 놔두고 외딴 산 밑자락에다가 집을 다시 질라고 그러는지 나사 도통 모르것네 그려.”
자못 궁금하신 얼굴로 옆에 계신 노인 분에게 묻는 듯이 말을 거시자 진식이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두어 살 정도 적게 보이는 공방 집 노인 분께서 말을 받으셨다.
“아! 그런 사람들이사 어디 마음만 먹으면 뭐는 못할 거라구유. 누구 말마따나 가진 게 돈뿐이구 발끝에 걸리는 게 나락 가마니라는디, 그나저나 그 밭 자락으로 길이 좁고 사나워서 도락꾸가 직접 못 들어가닌께 그러는가? 집터로 직접 가지 않고 요기서 재목을 다듬는 걸로 보면 요기서 다 다듬어 가지고 달구지로 다시 실어 날를 모양이구먼유.”
뻐끔뻐끔 곰방대 끝을 입으로 야무지게 빨으셔 담배 연기를 밖으로 내뿜으시던 진식이 할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셨다.
“그 뭐시냐 저참에 혀 볼려고 했던 기와공장인가 그것이 물 건너가서 맘대루 안되닌께 꿩 대신 닭이라구 그기다가 집이라두 큼지막허게 져 볼라구 하는 모양이구먼 그려. 뭘 모르는 내가 얼핏 보아도 뒤쪽으로는 듬직허게 산이 둘러쳐 있고 앞으로는 들녘이 오장육보가 확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게 터져 있는 정남향(正南向) 방향이라, 집터 자리로는 나무랄 디가 없구먼 그려. 근데 그렇게 집을 지어서 누굴 줄려구 하는가? 아래께 그 뭐시냐 기성이란 놈허구 보따리 싸 가지구 내뺀 집 나간 딸내미 헌티서 무신 좋은 기별이라두 와서 그러나 모르것네. 허기사 그 딸내미두 홀몸이 아니라구 허던구먼. 애라도 덜컹 나서 동섭이가 빼도 박도 못해서 지들끼리 나가서 살라구 지급을 내줄려고 그러는지 암튼 그놈에 속을 모르닌게 궁금허기만 하네 그려.”
그리고는 옆에 앉아 계신 담뱃대 만드시는 노인 분 얼굴만 뻘쭘하게 바라보셨다.
두 어른신들의 말씀처럼 햇살이 잘 드는 양지쪽에는 재 너머 함박골에 사신다는 ‘도목수(都木手)’라고 하는 노인 분이 나무를 다듬고 계셨다. 손잡이가 기다란 자귀를 들고 잘 마른 커다란 통나무를 날이 잘 선 자귀로 쪼아 내고 있어 ‘통통통’ 하는 맑은 울림소리가 귓가에 듣기 좋을 만큼 들려왔다.
그리고 다른 목수 한 분은 나무 기둥 위에다 귀에 꽂아 두었던 연필을 빼 들고 철로 된 얇은 기억자 모양의 곱자를 들여대고 연필로 선을 긋고 있었다. 또 다른 목수 아저씨 한 분과 일을 거드시는 낯모르는 타동네 사시는 아저씨가 먹물이 솜뭉치에 가득 담긴 먹통에서 검은 줄을 길게 늘여 팽팽하게 당긴 다음 먹실을 들었다 놓자 나무 위에 검은 줄이 정교하게 그어졌다.
‘도목수’라고 하는 노인 분은 나무 위에 칼끝으로 금을 그어 가며 빠른 듯하면서 정교하게 움직이는 손놀림에서 오랜 세월 깊이 쌓인 연륜이 묻어나 보였다.
울창하게 우거져 내린 둥구나무 숲 사이에서 금새라도 ‘맴맴맴맴’ 매미 소리가 들려올 듯하여 한번쯤 머리를 들어 바라보아도 아직은 좀 이른 듯했다.
상수네 텃밭 가에 줄 늘어선 단수수 이파리 사이로 논둑에 앉아 새참을 드시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보였다.
고샅길 첫머리 집 진식이네 담벼락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기다랗게 하얀 벽보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사철이라 그런지 그전처럼 벽보를 들여다보는 어른들이 한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그 무렵 나라 안 정치 상황은 십여 일 전인 지난 6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실시되는 의원내각제가 통과되었다. 온 국민의 기대와 여망(輿望) 속에 힘든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명실상부한 민주 헌법이자 자유 헌법이 만들어졌다.
그 개정된 헌법에 따라 제4대 국회가 자동으로 해산되었다. 그리고 임시정부의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던 ‘허정’이 초대 내각 수반(首班)이 되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권을 이양(移讓)하려고 다음 정권의 정부통령을 간접으로 선출할 제5대 국회의 구성을 위해 양원제(兩院制)의 의원들을 선출할 선거를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다음달 하순경인 오는 7월 29일 실시되는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 별로 선관위에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의 경력 및 약력을 알리는 면면(面面)이 인쇄된 선거 벽보가 전국에 일제히 나붙기 시작했다.
불과 석 달전 3월 15일에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 이어 같은 해에 민의원과 참의원을 뽑아야 하는 선거를 또다시 실시하게 되었다.
그 당시 교육 환경의 열악(劣惡)과 낮은 교육열로 막말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문맹자가 그리도 많았다.
그런 탓에 선거철이면 숫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입후보자의 순위를 알리는 기호를 표시하는 곳에 아라비아 숫자 대신 알아보기 쉽게 작대기를 큼직하게 그려 넣어 표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