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내 동구 밖에서 늠실거리던 해가 둥구나무 그림자를 길가 한복판까지 기다랗게 드리워 놓았다. 그리고 마을에서 제일 높다란 빙앗간 지붕 위에 덥썩 올라앉아 동네 구석구석을 한 곳도 빠트림 없이 자세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등성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노란 송화가루가 솔 향기를 가득 풍기며 쪽마루 위에 까지 날아왔다. 마루 위를 손으로 쓱 문대면 끈끈하게 묻어 날 정도로 쌓였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을 한 후로는 순덕이 어머니께서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러 다니셨다. 그래서 늘 마음에 부담을 느꼈는데 조금이라도 도와드리려는 마음으로 물을 길어 부엌 물두멍에 가득 채우고 나니 마음이 그리 편하고 홀가분했다.
어제가 옥순이 아버지 기일(忌日)이었다. 그래서 제사 음식을 나눠 먹자며 꼭 오라고 하여 약속을 지키려 옥순이네 집에 가려고 집을 나서 언덕배기에 올랐다.
겨우내 그리 조용해 가끔씩은 심심하게도 느껴졌던 방앗간이 ‘팡팡팡팡’ 요란스레 소리를 내어 채신머리없이 돌아가는 보리방아를 찧는 발동기 소리가 온 동네 고샅길에 울려 들녘 멀리까지 새어 나갔다.
방죽 앞에는 논산 읍내 천주교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종이형 두 내외가 다정스레 동네로 들어서고 있었다.
골목길 입구에서는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곱게 빗고 새하얀 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으신 옥순이네 어머니가 길모퉁이 담벽에 붙어 있는 선거 벽보를 곁눈질로 슬쩍 보시는 듯했다. 그리고 내일은 옥순이네가 모내기를 하여 일꾼들 점심 찬거리를 준비하려고 읍내 장에 나가시나, 둥구나무 앞으로 걸어오셨다. 논에서 소를 몰아 쎄레질하시느라 아랫도리 바지를 무르팍까지 바짝 감아올려 양쪽 장딴지에 진흙이 잔뜩 묻어난 순아네 할아버지께서 점심을 드시러 집으로 가시는 길에 둥구나무에 모이신 노인들하고 담소를 나누시고 계셨다.
인물이 면내에서는 제일 빼어나게 이쁘다고 온 사방에 소문이 난 담뱃대 만드는 집 금실이 누나가 허리를 끈으로 졸라매는 노란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이마에 흘러내리는 몇 올의 머리카락을 추어올리며 사뿐히 걸어와 자리에 앉아 계시던 동네 노인 분들에게 고루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며 점심을 드시라고 하자 둥구나무 밑에 앉아 계시던 노인들도 점심을 드시려 각자 집을 향해 걸어가셨다.
풀을 뜯는 염소가 짧은 꼬리를 방정맞게 흔들고 있는 냇가 나무다리 위에 기현이가 삼식이네 집으로 술심부름을 가는지 노란 주전자를 손에 들고 달랑달랑 소리를 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종구가 가들막거리며 자전거에 담배 한 보루를 싣고 달려와 일을 하고 계신 목수 아저씨들에게 얼른 건네주고 잽싸게 자전거를 몰아 엉덩이를 조금 들고 씰룩씰룩하며 화산리에 있는 교회로 내빼고 있었다.
곧 모내기를 하려는지 논에서 소를 몰아 써레질을 하시다 집으로 돌아오시던 종구 아버지가 목수들이 오전 내 손질해서 세워 놓은 나무 기둥들을 뒤척이며 한 바퀴 쭉 둘러보셨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목수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목수 아저씨들이 잠시 발을 멈추고 담벽에 붙어 있는 선거 벽보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몇몇 동네 사람들은 이젠 선거라면 진저리가 나는지 벽보를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그냥 냉정하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들녘 밭에서 바지게 위에 감자를 한가득 지고 오시던 상수 아버지가 선거 벽보 앞에 지게를 받쳐 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런데 호박 넝쿨 더부룩하게 둘러진 낮은 흙담 너머로 상수 어머니가 고개를 길게 내밀고 상수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아! 밥 다 식어 가는디 시장하지도 안는감유 빨랑 집으로 오지 않고, 그게 뭐시 그리 대단한 거라구 들여다보고 있는가 당최 모르것네유.”
상수네 아버지가 들은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계속 바라보고 있자 상수네 어머니가 불만이 가득 찬 목소리로 다시금 재촉하셨다.
“아! 빨랑 오라닌게유. 그기에 돌아가신 시숙 어른 얼굴이라도 나왔남유? 그리 눈 빠져라 들여다보고 있게, 그리구 그 사람들이 어디 밥매겨주남유? 뭐 그 사람들이 우리네들 사는 꼬라지 이렇다고 쌀 한 바가지 보태 줄 것 같은감유?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지.”
상수 어머니가 자꾸만 치근대시자 상수네 아버지가 영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셨다.
“아따! 그 여편네 넘들 보기 남사스럽게 어지간히 들볶아댔쌌네 그려.”
상수 아버지께서 못이기는 척 두어 마디쯤 투덜대시며 지게를 지시고 집으로 향하셨다.
한낮 햇볕이 따끈거리는 고샅길에는 민균네 어머니가 며느리하고 점심 못밥이 들어 있는 싸리 광주리를 머리에 이시고 걸어 오셨다. 그리고 모내기를 도와드리려 모처럼 만에 집에 온 연무대에서 사진 기술을 배우고 있는 성균이 형이 서너 달 후면 첫돌이되는 아들을 보물단지처럼 풍에 안고 민균이는 양 손에 막걸리가 담긴 술주전자를 들고 논으로 향했다.
진식이네 집에는 할아버지 점심을 차려 드리려고 들녘 밭에서 들어오시던 진식이 어머니가 진식이 입 언저리에 잔뜩 묻어 있는 검정 자국을 보며 물으셨다.
“야! 진식아. 너 그 입가장자리에 묻은 게 뭐냐? 너 또 그 못된 놈들 하고 어불려서 넘네 보리밭 자락에 철썩 들러붙어 보리 모가지 죄 따서 보리 서리했구먼 그려. 제발 내 속 좀 태우지 말고 얼른 물 한 바가지 떠서 냉큼 씻지 못하것냐? 공연히 니가 안 한 것까장 덤터기 쓰지 말고 빨랑 씻으라닌께 뭘 하느라고 꾸물거리고 있냐 얼른 씻지 않구.”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시며 눈을 가볍게 흘기고 부엌으로 가시자 마루에 앉아 계시던 진식이 할아버지는 가벼운 말썽을 부려도 손주 녀석이 마냥 좋으신지 실실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진식아 너 보리 서리 한 게 아니구 동무들이랑 가재 잡아 구워 먹고 놀은 거지?”
그러자 마당가 새숫대야에 손을 담그려던 진식이가 마치 구원을 받은 것처럼 능청스레 웃고 있었다.
조금 멀리 들녘 너머로 화산리 교회의 종소리가 성스럽게 들려오고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 햇볕에 노란 호박꽃이 꽃잎을 조금씩 움츠리고 넙죽넙죽한 잎들이 축 늘어진 담벼락에 애호박 하나 아등바등 매달려 있었다.
동네 사람들 거의가 들녘에 일을 나가 텅 빈 고샅길은 마냥 호젓하다 못해 쓸쓸하기만 했다. 밭에서 뽑아 온 마늘을 볏짚으로 야무지게 엮고 계시는 순아네 할머니와 순아 어머니의 모습이 마당 안으로 보였다.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발끝에 납작한 돌맹이가 발에 걸려 내려다보았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눈에 나는 다래끼가 옮겨 가라고 장난삼아 놓은 듯해 사방을 둘러보니 동네 아이들이 그리 좋은지 손뼉을 치며 깔깔대고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런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기 좋아 그냥 웃고 말았다.
종구네 집 가죽나무 우듬지에 한낯 햇살이 짱짱하게 내리쬐이고 있었다. 가죽나무 꼭대기에 뻘쭘하게 매달린 철사 줄로 둘둘 감아 놓은 라디오 안테나가 멀리서도 바라보아도 온통 은빛으로 빛났다. 그래서 오만스런 부(富)의 상징물처럼 반짝반짝 위세를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라디오 소리가 담 너머로 들려오는 널따란 마루에 네모난 커다란 밥상을 펼쳐 놓고 종구 아버지와 목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앞마당에 거위가 처음 보는 목수들의 모습이 낯선지 가볍게 날개를 푸덕이며 머리를 쭉 빼 내밀어 울고 있었다.
연자방앗간 공터에는 동네 아이들이 대나무로 만든 물총으로 서로 몸에 대고 물을 쏘아대며 놀고 있었다. 방앗간 앞에는 기성이 형 어머니께서 보리방아를 찧으러 오셔서 담 너머로 종구 아버지와 서로 눈이 마주치자 못 본 척하고 얼굴을 돌리셨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순태 아저씨가 촐싹대며 말씀을 하셨다.
“아줌니 어찌 됐던 지간에 서로 사돈지간인디, 그리 얼굴을 돌리면 어쩐대유?”
그러자 옆에 계시던 기성이 형 어머니가 곱게 눈을 흘기시며 순태 아저씨의 말을 받으셨다.
“아! 누구 맘대루 사돈을 한데유? 뭐시냐 하늘을 봐야 별을 따던가 말던가 하지, 아직까장 머리도 못 올리고 타관 객지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구 있구먼.”
그렇게 말끝을 흐리시자 순태 아저씨가 좀 짓궂은 표정으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닌께 뭐시냐 아침나절에 둥구나무 밑에서 보닌께, 새 사위한테 줄라고 그러는지? 집도 하나 크게 지어 줄려고 내로라하는 목수들 불러다가 일 시키고 있던디, 아주머니두 진작 알고 있었지유?”
그렇게 순태 아저씨가 능청을 떠시자 기성이 형 어머니가 그런 말이 속으로는 싫지 않으시면서도 손을 내저으시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그런 말 마시유 언감생심(焉敢生心)도 유분수지, 그런 일은 절대루 없을 것이구 잘은 몰라두 필연(必然)코 따른 끙끙이 속이 있을 거구먼유. 그러지 않고는 멀쩡한 집 놔두고 그 외떨어진디다 새로 집을 지을꺼시유 않그래유?”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고 싶지 않으신지 손에 들고 계시던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시고 먼저 방앗간 안으로 들어가셨다.
방앗간 맞은편에 있는 동근이네 집엔 미국 닭이라고 하는 머리 생김새가 푸르뎅뎅하여 좀 사납게만 보이고 목줄기가 온통 빨간 칠면조 수놈이 꼴에 체면치레는 하려고 그러는지 뒤 꼬리털을 잔뜩 치켜들고 암놈 곁을 빙빙 돌고 있었다.
초가집을 둘러싼 울타리 사방에 온통 뽕나무가 둘러 서 있는 영호네 집에는 뽕나무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아직은 덜 익어 불그레한 오디를 한두 개씩 따서 입에 넣고 무척이나 신맛이 나는지 이내 몸을 움츠려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이장댁 담 모퉁이 돼지 우릿간엔 새로 사다 넣은 돼지 새끼가 주둥아리에 누런 보릿겨를 잔뜩 묻힌 채 머리로 들썩거려 풀을 헤치고 빨빨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이장댁 아주머니가 마당 안 텃밭에서 마늘을 뽑으시다가 담 밖에서 놀던 아들이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리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두 어른들이 서로 앞 다퉈 문밖으로 뛰어나오셨다.
막둥이가 담벼락의 호박꽃 속으로 벌이 들어가자 살짝 오므려 잡으려다가 그만 벌에게 쏘이고 말았다. 그러자 펄펄 뛰며 두 발을 구르자 벌에 쏘인 손등에 된장을 붙여주고 구멍이 뻥뻥 뚫린 헌 러닝셔츠를 입으로 바짝 물고 찢어 칭칭 동여매줘도 막둥이는 손등이 욱신욱신 아픈가 계속 울고 있었다.
길 건너 경수 아저씨네 집에는 담벼락 대추나무에 붙들어 매어 길게 늘어진 빨랫줄 위에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나는 제비들이 모여 앉아 재잘거리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김치를 담그려 채소거리를 씻어 들고 오시던 아주머니가 마루에 앉아 작은 손 안에 앵두을 한 움큼 쥐어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앵두물이 옷에 묻으면 안 빠진다고 잔소리를 심하게 하셨다.
논산 읍내 농업고등학교에 다니는 종기형이 지게에 보리 다발 지고 종기형 어머니는 감자를 캐서 담은 삼태기를 들고 뒤따라오셨다. 그리고 한나절 내 들녘 밭에서 일을 하시느라 목이 그리도 타셨던지 우물 터로 얼른 뛰어가셔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벌컥벌컥 마시고 계셨다.
우물가엔 농번기(農繁期)라 동네 아낙네들이 그리 없고 주현이 어머니 혼자서 물 길어 가느라고 물동이에 물을 퍼 담고 있었다.
‘얼기미 사유, 얼기미’하며 체 장수 아주머니가 온몸에 주렁주렁 얼기미를 달고 고샅길을 걸어 나오시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모다 덜 들녘에 죄다 일하러 나가서 그런지 동네가 텅 비어 사람들이 없구먼 에휴.”
삼식이네 집과 우물가 인식이네 집 사이의 좁은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삥 둘러싸고 쳐다보며 응원을 하고 있어 소리나는 쪽으로 가까이 가보았다. 삼식이네 장닭과 인식이네 장닭이 서로 텃세를 부리나, 서로 몸을 부딪쳐 부리로 사정없이 벼슬을 쪼아 피를 철철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삼식이 어머니께서 부지깽이를 들고 뛰어오시며 소리를 치시자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을 치고 있었다.
측백나무로 울타리가 둘러쳐진 영택이네 집 마루에 놓인 축음기에서는 삼박자의 흥겨운 경기민요 ‘양산도’가 구성지게 흘러나왔다. 저녁나절쯤에 보리방아를 찧으려나 영택이 아버지께서 멍석 위에 보리를 고무래로 골고루 저어 가며 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계처(繼妻)로 들어 온 아주머니가 보약인지 꿀물인지 담겨 있는 하얀 사발을 영택이 아버지에게 드리고 있었다.
녹슨 통조림 깡통이 매달린 함석 대문 옥순네 집엔 옥순이가 마당 한구석 살구나무에서 살구를 따서 입에 넣고 ‘푸’ 하고 씨를 뱉어 내다가 내가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손을 흔들며 얼른 오라고 했다.
대문 옆에 서 있는 감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철없던 그 시절 ‘신랑각시놀음’을 하며 놀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나 혼자 싱겁게 웃으며 마루에 앉았다. 옥순이가 부엌 시렁에 올려놓은 소쿠리에서 제사 떡과 부침을 먹으라고 그릇에 내오며 말을 했다.
“며칠 전부터 우리 엄니가 니네 엄니헌티 밥 먹으러 오라구 했다는데, 장사하시느라 몸이 피곤하셔서 그런지 어젯밤에 오실 줄 알었는데 아무리 기달려도 안 오시더라.그리고 떡이랑 많이 남았으닌게 얹힐라 서둘지 말고 천천히 먹어.”
그리고 옥순이가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사발에 물을 떠 들고 오면서 다시 말을 이으려 했다.
“야! 상민아. 그런데 종구네 아버지가 먼젓번에 기와공장 한다고 종금이 언니네한테 산 밭에다가 또 기와집 한 채를 떡 벌어지게 짓는다고 동네에 소문이 잔뜩 난 모양인데, 너는 아냐?”
옥순이가 궁금한 마음에 재확인을 하고 싶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응 그런가 봐. 아까 니네 집에 오면서 보닌게 둥구나무 밑에서 목수들이 기둥감하고 대들보랑 그리고 서까래를 손질하고 있더라.” “뭔 놈의 집을 몇 개씩이나 가질려구 또 다시 집을 짓고 그러는지 모르것네. 누구는 그런 집은커녕 초가집 한 채도 없어서 난린데.”
그렇게 말을 하다가 옆에 있는 내가 마음에 걸렸던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상민아, 오해하지 말어. 내가 지금 한 말 너 들으라고 한 말은 절대로 아니닌께 알았지?”
자기가 무심코 한 말에 크게 마음이 쓰이는지 퍽이나 미안한 듯 작은 얼굴에 더욱 작게만 보이는 눈을 크게 뜨고 껌뻑거리며 계속 웃고 있었다. 멋쩍고 미안해 하는 옥순이 마음을 얼른 풀어 주려 한바탕 웃겨 볼 심사로 내가 말을 꺼냈다.
“야! 그건 아무렇지도 않고 우리 옛날처럼 시방 니네 엄니도 장에 가고 없으닌게 뭐 구질구질하게 차릴 것도 없이 가마니때기 한 장 펼쳐 놓고 신랑각시놀음이나 한번 할래?”
시침을 뚝 떼고 옥순이 얼굴을 빤하게 바라보자 옥순이가 기겁을 하는 모습으로 화를 냈다.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날이 뜨거워지닌께 머리가 돌아도 한참을 돌은 모양이구먼. 아이구 미쳤어, 미쳤지.”
내 얼굴을 바라보기에 꾹 참았던 웃음이 나도 모르게 입가로 터져 나와 참지 못하고 웃자 옥순이도 눈을 가볍게 흘기며 깔깔대고 웃었다.
우리들의 웃음소리에 놀란 듯 감나무 가지에 쉬어 가던 몸집이 제법 큰 새 한 마리가 후드득거리며 날개를 활짝 펴고 파란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날아갔다.
답답하기 더할 나위 없는 그 시절, 여리디 여린 우리들의 마음에 상처난 아픔의 흔적들을 지워 주려는 듯 옥구슬처럼 파란 하늘에 비늘구름이 다붓다붓 층을 이뤄 곱살한 모습으로 조화를 이뤄 번져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