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지도 작지도 않아 그저 아담스레 보이는 옥순네 집 앞마당에 성그런 해가 오붓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키가 뻘쭘하게 큰 산나리가 두 서너 송이 주황색 꽃을 줄기 끝에 매달고, 한낮 햇볕이 그리도 반가운지 토담에 바짝 몸을 기대어 처연하게 서 있었다.
텃밭 가장자리엔 뻘쭘하게 둘러선 어린 옥수수 잎들이 선들거리는 바람에 미음(微音)을 내며 한가롭게 너불거렸다. 더불어 유난스레 키가 커 보이는 단수숫대 머리 위로 뽀얀 뭉게구름 한 덩이가 여유롭게 떠있었다. 그리고 장독대엔 붉은 꽃잎이 이제 막 피어오르려 하는 칸나의 두툼한 이파리가 햇살에 더욱 파릇파릇하게 보였다. 그 이파리를 손끝에 힘을 줘 누르면 이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느새 키가 허리춤에 닿을 만큼 무성하게 자랄 대로 자라 쇠어 버린 상추 줄기 끝머리 노란 꽃에 흰 나비 한 마리가 제 딴엔 제법 바쁜 듯 나부대고 있었다.
속살이 여물게 차올라 바람만 불어도 곧 떨어질 것만 같은 노란 살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살구나무 아래서 옥순이가 살구나무 밑둥치를 발로 차고 있었다. 그러자 살구 알이 ‘투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져 줍고 있었다. 그런데 살구나무 옆 돌무더기 위에 독이 없는 무자치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머릴 들어 긴 혀를 널름거리자 소스라치게 놀란 옥순이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줄행랑을 쳤다.
그래서 후다닥 헛간으로 뛰어가 지겟작대기를 들고 뛰어가 보니 금새 돌팍 틈새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돌 틈 사이를 몇 번씩 들척거려 보아도 영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옥순이는 마냥 두려운 듯 꼭 잡아야 한다고 거듭 성화를 하며 작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서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지팡이에 노쇠한 몸을 의지하신 팔순이 거의 다 된 옥순이 친할머니께서 마당 안으로 들어오시며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아니, 넌 누구냐? 벌건 대낮에 다 큰 처녀 혼자 있는 집에 불쑥 대고 있게. 어서 썩 나가지 못허고 뭘 쳐다보고 있냔 말여?”
할머니가 내용을 잘 모르시고 화를 잔뜩 내시자 당황한 듯 옥순이가 뛰어와 할머니를 부축하면서 말을 했다.
“할머니! 내 친구 상민이라구. 등메골 사는 엄니 친구 아들 상민이라구유.”
연로(年老 )하셔서 귀가 잘 안 들리시나, 고개를 자꾸만 갸웃거리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뭐라구? 당최 뭐시라구 하는지 통 알어먹을 수가 없네 그려.”
그러자 옥순이가 답답한 얼굴로 할머니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조금 큰소리로 말을 했다.
“맨날 나랑 같이 학교 댕기는 우리 동네 사는 내 친구 상민이라구유.”
그제서야 겨우 알아들으셨는지 반신반의(半信-半疑)하시는 눈초리로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들 눈이 있는디 어쩔라구 그러냐?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아무리 한동네 살어두 그렇지. 서로 지간에 지킬 건 지키고 살아야지, 안 그러냐?”
몇 차례 거듭 말씀을 하셔 숨이 차오르시는지 마루에 철푸덕 앉으시며 그래도 믿음이 덜 가는 눈초리로 자꾸만 나를 바라보셔 거북스러워 밖으로 나오려 했다. 그러자 옥순이가 조금은 미안스런 얼굴로 대문 앞까지 따라 나오며 말을 했다.
“우리 할머이가 옛날 구식 노인네라서 아직은 신식을 몰라서 그러닌께 오해는 하지 말어.”
옥순이의 말에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고 고샅길로 나섰다
지난 전란 때, 한쪽 다리에 총탄이 박혀 군인 병원에서 수술을 하셔 다리를 많이 절으시는 종남이 아저씨네 집 마당에는 겨우 대여섯 살 남짓한 꼬마둥이가 살이 차오르지도 못해 푸릇푸릇하기만 한 토마토를 따서 놀다 들켜 혼쭐이 나고 있는지 소리를 크게 내어 울고 있었다.
우물가 집 진식이네 집에는 진식이 어머니가 깨져 금이 간 항아리에 세멘트를 얇게 이겨 발라 오줌독이라도 하시려나, 항아리에 철사 줄을 둘러 펜치로 잘근 동여매고 계셨다.
하나 밖에 없는 딸자식을 읍내 강경으로 시집보내고 군대 간 아들 제대할 날만 눈 빠지게 기다리며 손주 녀석을 등에 업고 계신 종금이 누나네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집 며느리가 부엌에서 밑반찬으로 작은 씨알 감자를 졸이고 있는가? 진한 간장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사는 형편이 넉넉치 못한 용구네 집에서는 손바닥만 한 논 자락에 심은 보리가 양이 적어 방아 찧기가 어중간했는지 용구 어머니께서 절구통에 보리를 넣고 절구질을 하고 있었다.
둥구나무 밑에선 밀짚모자를 눌러쓰신 목수 아저씨들이 목도에 기둥나무를 걸어 어깨에 둘러매어 목재들을 옮기고 있었다.
개울가 낙수 터에는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를 타고 오르려는 작은 피라미들이 힘겨운 율동을 하고, 논배미 가장자리엔 동네 아이들 서너 명이 끝이 뾰쪽한 철사 갈쿠리가 달린 긴 대나무 자루를 움켜 쥔 채 개구리를 잡아 닭에게 주려고 깡통 안에 넣고 있었다.
들녘 논 자락 너머 화산리 방앗간에서 나는 발동기 소리가 동네 방앗간에서 나는 소리와 뒤섞여 불규칙하게 들려왔다.
앞 산자락 밑 펑퍼짐한 잔디밭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 윗저고리 앞자락에 면소재지 염씨네 점방에서 사 온 종이 위에 인쇄된 계급장을 가위로 오려 밥풀로 이겨 붙이고 어설프게 발을 맞춰 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싸우고 싸워서 세운 이 나라, 동포여 일어나라 나라를 위해, 손 잡고 백두산에 태극기 날리자.”
검둥이가 꼬리를 잘래잘래 흔들며 나오는 사립짝 안 쪽마루 위에 산에서 방금 내려오셔 배가 고프신 듯 순덕이 어머니가 밥을 드시다가 내가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얼른 부엌으로 가시려 했다. 그래서 내 친구 집에서 먹었다고 손짓으로 표현을 하자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루에 놓인 망태기 안에서 산 내음 뭉클하게 나는 산더덕과 산뽕나무에서 따온 불그레한 오디가 넓적한 칡 이파리에 싸인 채 담겨 있었다.
온통 검은 그을음이 범벅인 굴뚝 옆 추녀 밑에는 정교한 무늬로 줄을 쳐 놓은 거미줄에 아직은 거미 줄에 걸려 든 먹잇감이 없어 허전한 듯 거미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다 인기척에 놀라 추녀 밑으로 잽싸게 숨어들었다.
늘 적막한 산골. 소나무 위에 조개구름이 넉넉한 오후 햇살에 곱살하게 물들 무렵, 면소재지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살아오는 동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아 마음을 다독거려 바라만 보았던 저 산자락을 선들바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휙 하니 한번 휘돌곤 스쳐 내려 살랑이는 바람 사이로 나지막이 속삭이는 잎새들의 언어에 자연의 묘미(妙味)를 그나마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땅개비 새끼가 풀잎 이곳저곳을 간지리며 촐싹촐싹 뛰는 오솔길 언덕바지에 불그레하게 익으려 하는 산딸기 넝쿨 속에서 갑자기 ‘푸드득’ 소리가 나는 듯싶더니 이내 ‘껑껑’ 하고 소리를 내어 지르며 푸른 목덜미에 흰 줄이 그어진 수꿩이 하늘로 솟구쳐 날아올랐다.
그러자 싸리나무 숲 사이 너럭바위 위에 앉아 있던 산다람쥐가 고개를 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낯선 방문객의 발걸음이 낯선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금 멀리 간격을 두고 짯짯이 바라보고 있었다.
가파른 둔덕을 가로질러 풀숲으로 걸어오느라 숨이 턱 밑까지 차 올라 호흡이 가빠지고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팔목에 퍼런 실핏줄이 선연(嬋姸)하게 보여 내가 살아 존재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굽이굽이 서린 한 그리도 많아 발목을 붙들려 해도 피할 수 없기에 내 몸을 잠시인들 감싸려 드는 산바람에 시름 찬 서러움을 모두 모아 그리 띄워 보내고만 싶었다.
화산리 면사무소 벽보판 앞에 두어 사람 정도가 선거 벽보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짜 막걸리에 검정고무신이 나돌던 지난 선거 때처럼 그리 분잡스럽지 않으면서도 새로이 들어 설 다음 정권에 기대를 거는 민초들의 열기가 자못 높아 보였다.
선천적 장애로 키가 남달리 작으신 아저씨가 운영하시는 화산리 이발소의 나무 쪽마루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드르륵’ 레일에 바퀴가 걸린 유리 문짝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바라보았다.
화산리 동네에 사시는 듯한 아저씨 한 분이 이발소 안으로 들어오시자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계시던 이발소 아저씨가 반가워하며 말을 건넸다.
“어서 오시유. 형님 어떻게 모내기는 했는감유?” “아니 내일모레나 혀볼라구 허는디, 요즘 사람들이 깨우쳐서 너나 할 것 없이 죄다 도회지루 빠져나가 일꾼들 구하기가 엄청나게 힘들구먼 그려. 기나저나 선거철인디두 왜 이리 조용한가 모르것네. 허긴 농사철이라 그렇다고는 허지만...”
그러자 쪽마루에 앉아 신문을 들척거리시던 장화리에 이장 일을 보시는 분이 말을 거들었다.
“그나저나 용꽃 양조장 사장이 선거 때마다 물 만난 오리처럼 궁딩이를 이리 씰룩 저리 씰룩거리며 오만 간섭 다 하며 다니고 배달꾼들이 달구지에다가 한가득 술통 싣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나갈 때가 봄날이였지, 이리 조용하니 은근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거구먼 그려.”
그러자 가위 질을 열심히 하시던 이발소 아저씨가 다시 말을 이으셨다.
“아! 왜 아니래유? 한물간 사람들이 면내만 해도 어디 한둘인감유? 그 뭐시냐 선거만 끝나면 한 자리씩 해 먹나 싶어 저마다 읍내 양복점에서 양복들 맞춰 입고, 금새 천하를 주무를 듯 저 큰길 한복판을 갈지자걸음으로 으스대며 걸어가더니 어느 날 세상이 홀라당 뒤바뀌닌께 쥐 죽은 듯이 꽁지 내리고 모두들 집에 틀어박혀 있는 꼴들이라니 내 원참.”
한참을 열심히 말을 하시던 이발소 아저씨가 머리를 다 자르신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며 함석통에 든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 비누 거품을 허옇게 내고 있었다.
그런데 몸을 앞으로 잔뜩 구부리고 머리를 감고 있던 손님이 한 마디 거들려는 듯 말을 했다.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지, 옛날 같으면 지서장 그림자도 못 밟고 다닐 사람들이 제 세상 만난 것처럼 거침새 없이 지서주임하고 농담을 하니 세상 좋아지기는 좋아졌지 뭐.”
그러자 이발소 주인 아저씨가 손님 머리를 말려 주려고 수건을 꺼내 드시며 말을 했다.
“아 말이사 바른 말이지. 요즘 순사들 끗발이나 있남유? 도리짓고땡 판에 3짜 8짜 껍데기 두 장 들고 질질 매는 따라지신세지유, 뭐.”
그러자 내일 모내기를 한다고 하던 턱밑에 수염이 거뭇거뭇한 아저씨가 다시금 말을 이으셨다.
“아 그런디 요기서 지서장 하던 그 사람이 순사질 그만두고, 연무대 훈련소 앞에서 가게 하나 얻어 가지고 퇴직금 받은 거 하고 모아 둔 돈 합쳐서 군인들 상대로 물건 잡고 돈 빌려 주는 전당폰가 뭐신가를 한다구 하던디.”
그러자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신문을 뒤적거리다 한쪽으로 밀쳐놓으시던 또 다른 아저씨 한 분이 말을 했다.
“아, 그래서 옛말에 화무는 십일간이구 달이 차닌게 기운다고 안 하던감?”
그 아저씨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건으로 손님 머리를 말리고 계시던 이발소 아저씨가 씩 웃으시며 말을 이으셨다.
“형님 화무는 십일간이 아니구유, 화무 십일홍이지유.”
서당방이라도 다녀 구학문을 배운 것처럼 아는 티를 내보려고 했던 아저씨가 멋쩍은 얼굴로 다시 말을 했다.
“아따 동생두 그냥 그리 알구 대충 넘어가면 되는 거지, 뭘 그리 꼬지꼬지 따지고 드는가? 까놓고 보면 그 말이 그 말인디 뭘 그러는가! 그건 그렇구 그 차석은 미꾸라지같이 잘도 빠져나갔지, 온 사방 간데를 좀 요살스럽게 뻔질나게 다녔남? 아마 할 수만 있다면 용천배기 콧구멍에서 마늘씨라도 빼먹을 사람이지.”
그렇게 어른들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옆에 앉아 계시던 어른 한 분이 차례가 되어 이발을 하려고 의자에 앉았다. 목둘레에 하얀 가운을 둘러 주시던 이발소 아저씨가 창밖을 내다보셨다.
그때 푸줏간을 하시는 엄씨 아저씨가 짐 자전거 짐받이에 돼지를 싣고 가는데 돼지가 허연 거품을 내며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이발을 하려고 차례를 기다리며 쪽마루에 앉아 있던 장화리 구장이라는 분이 말을 했다.
“둥구나무 매미도 오뉴월 한철이라고 하더니, 어쩟던간에 농번기에 저 양반만 살판났네유. 남들이사 소 돼지 잡는 백정이라고 뒤에서 수근덕거릴지 몰라도 꺼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장땡이라고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처럼 그래도 저 장사해서 아들 두 놈 모두 중학교까장 갈쳐 놓았으닌께 막말로 부모 노릇은 다 한 거지유, 뭐.”
그런데 어디선가 ‘삑이익 삑삑’ 하며 시끄러운 스피커 소리가 들려오자 의자에 앉아 머리를 자르고 계시던 아저씨가 말을 했다.
“아니, 저 돼지 멱따는 소리는 또 뭐시랴? 어디 가설극장(假設劇場)이라두 들어왔는감?”
그러자 키가 작으신 이발소 아저씨가 발꿈치를 약간 들고 손님의 윗머리를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런가 보더라구유? 미친놈들이 눌 자리 보고 발 뻗으라구, 지금이 어느 땐데 활동사진 필름을 돌릴라구 지랄들 하는가 모르것네유. 너나없이 진종일 일에 지쳐 방바닥에 눕기만 하면, 막말루 여편네 속살 들여다볼 여력도 없이 나가떨어져 코를 골고 잠드는디, 누가 졸리는 눈 비벼가며 볼 꺼라구 저 난리를 치는지 모르것네. 그것도 돈 한 푼 안 받는 공짜라면 몰라두 참 소갈머리들 없지.”
이발소 주인 아저씨가 끝내 못마땅하신 듯 밭은기침을 한번 하시고 말을 마치자 이발을 마치고 아래주머니에서 이발비를 꺼내시려 아저씨가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게 다 밥 처먹고 할 일 없이 읍내 다방이나 장터 바닥을 어슬렁거리며 노는 읍내 건달 쪼무래기들이 순진한 동네 처녀들 꼬실려구 저러구 다닌다는 구먼 그려.”
말을 끝내신 아저씨가 끝내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며 힐끔힐끔 거울에 이발을 마친 머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길게만 느껴졌던 하루 해가 서편 들녘 읍내 제방 둑 위로 오르려 어름어름할 즈음 이발을 마치고 이발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석유 한됫병짜리 빈병을 들고 큰길로 나와 염씨네 점방으로 가는데, 엄씨네 정육점에는 농번기라 도축을 했는지 돼지고기 앞다리와 뒷다리가 쇠갈고리에 묵직하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 정육점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엄씨 아저씨와 가벼운 실랑이를 하고 계셨다.
“우리 아들 들에 일 나가고 집에 없어. 고기 좀 나소 주라고 손주 녀석을 시켜 심부름을 보냈더니 고기라고 생긴 것이 죄다 비곗덩어리만 더덕더덕 붙어서 이거 어디 먹것는가? 자네가 한번 자상하게 쳐다보소. 집에서 식구들끼리 먹는 거라면 그냥 먹것는디, 뭐시냐 낼 모내기에 일하러 오는 일꾼들 줄 꺼라 욕 안 얻어먹으려고 그런닌께 다시 바꿔서 살코기 붙은 디루 잘 좀 베어 주게나.”
그러자 엄씨 아저씨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쇠 갈고랑이에 걸려 있던 뒷다리를 번쩍 들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한쪽을 들척이며 칼로 베어 떼어내고 있었다.
면소재지 염씨네 점방에 모든 사람들은 그저 물건을 사러 스스럼없이 들락거리지만 나는 늘 그 점방 앞에만 서면 잊었던 아니 잊으려 했던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 애를 썼다.
물론 어머니가 종구네 쌀 빚에 쪼들리다 못해 빚을 갚으려고 돈을 받고 판 논 서 마지기지만 금쪽 같던 우리 논을 사들인 분이 바로 점방 집 염씨 아저씨였기에 거부감이 있었다.
곱게만 자라야할 어린 심성(心性)이 모진 세태를 미약하게라도 거부하려는 본능적 저항심으로 그렇게 서서히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순덕이에게 줄 나무 막대에 꽂힌 고추 모양의 사탕을 사고 병목까지 가득 담긴 석유 병을 들고 걸으려니 손바닥에 묻어나는 석유 냄새가 비위에 거슬려 냄새를 없애려고 했다. 그래서 둔덕 너머 바위 옆에 있는 산초나무의 채 익지도 않은 열매를 한 움큼 따서 손바닥으로 세게 비벼 문댔다.
그리고 타오르는 노을빛을 벗 삼아 영원토록 변질 없는 정이 흥건하게 배어나는 내 사는 곳, 작달막한 초가집이 다감하게 내려다보이는 산언덕을 내려섰다.
티 없이 자라나야 할 어린 순덕이의 샛별처럼 반짝이는 까만 두 눈망울이사랑의 힘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나 홀로 바라다본 저 하늘도 무릇 외롭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