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르게 펼쳐진 넓은 앞들녘의 논배미들이 모내기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파릇파릇한 모습으로 채워져 갔다. 그 모습이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크레용으로 조금씩 조금씩 푸른색을 곱게 칠해 빈 공간을 촘촘히 메워 가는 것과 비슷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철을 만난 황새와 왜가리들이 느르적느르적한 걸음으로 논 가장자리로 나와 긴 목을 내밀어 이저리 살피고 있었다. 모잡이를 하는 동네 어른들에게 ‘어이’ 하며 신호를 보내는 삼식이 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가 시원한 막걸리가 나오는 새참을 재촉하는 듯했다.
그래도 친구 아들이라고 끔직하게 챙겨주시려는 듯 방금 곱게 빻은 미숫가루를 시원한 우물물에 한 그릇 가득하게 타 주셔 고마운 마음에 시원스레 마셨다.
그때까지도 부엌에서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옥순이가 다시금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슬슬 동네 우물터에 가려고 앞마당으로 내려섰다.
퍽이나 분잡스럽게 나는 잠자리들이 옷깃에 스칠 듯 말 듯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둥그렇게 긋고 있었다. 밭 가장자리 왕원추리 이파리 위에 볼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사마귀 한 마리가 무엇을 보았는지? 누런 눈을 휘둥글게 홀쭉한 배를 질질 끌며 살금살금 기어오르고 있었다.
독성이 강한 농약이 그리 많치 않았던 시절이라 풀숲 주위를 조금만 살펴보면 사마귀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사마귀는 밭농사에 해를 끼치는 해충을 없애주는 이로운 곤충이었다. 놀거리가 별로 없던 아이들에게는 좋은 놀잇감이 되었으며 민간요법으로는 어린 아이의 경기를 다스리는 약으로 더러는 쓰여졌다.
그리고 세상모르고 낮잠에 취해 있는 분꽃 잎사귀 위에 알룩달룩한 무당벌레 서너 마리가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오목조목 이목구비가 또렷하게 생겨 야물딱지기만 한 내 친구 옥순이의 잘 그을린 얼굴처럼 햇볕에 반사된 감나무의 검 푸른 이파리가 선명한 빛으로 잔뜩 반질거렸다. 나뭇가지에 달린 작은 감들이 보일락 말락 하여 더없이 싱그럽게만 보이는 대문 밖을 나서는데 뒤뜰에서 옥순이가 빨래를 하고 있는지 빨래 방망이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마당 안으로 울려 퍼졌다.
아침나절 내 삼식이네 집 상수리나무에 온통 떼를 써 칭얼대는 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이젠 지겨웠다. 서서히 달아 오르는 해는 곱살스런 모습으로 나지막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는 우물가 향나무 머리 위로 자릴 옮기려 했다.
양지바른 삼식이네 집 담벼락 앞엔 겨우 대여섯 살 남짓한 이장님댁 막내둥이와 저고리 소매 끝에 콧물을 문댄 자국이 햇볕에 뻔질거리는 삼식이 여동생이 앉아 있었다. 깨어져 버린 사금파리들을 주워 모아 그 속에 흙가루와 호박잎을 손톱으로 잘게 뜯어 넣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는 키득거리며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덧없이 지나간 내 어렸을 적 어느 날, 감나무 밑에서 옥순이와 철없이 소꼽놀이를 하며 놀았던 기억들이 불현듯 떠올라 싱긋이 웃고 말았다.
우물가 인식이네 집에는 식구들이 들녘에 일을 하러 나갔는지 집이 텅 비어 있었다. 때가 되기엔 아직도 한나절이 훨씬 더 남았는데 벌써 배가 고푼지 염치를 모르는 검정 돼지가 주인을 애타게 찾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참을 정신없이 우리 안을 이저리 나댔다. 그러자 앵두나무 밑에 움츠려 조는 듯하던 꼬리 긴 수탉이 성큼 일어섰다. 그리고 땅바닥에 흙먼지가 일도록 날개를 힘차게 푸덕이며 목을 쑥 빼내밀어 시도 때도 모르고 멋쩍게 울어댔다.
대나무 바리장대로 치켜세운 빨랫줄 위에는 물기가 잘 말라 푸석해 보이는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옷가지가 널려 있는 빈틈 사이사이에 어린 새끼들에게 물려 줄 먹잇감을 입에 문 어미 제비들이 먼 길에 오느라 숨이 찼던지 해맑은 햇살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몸을 들썩이며 잠시 쉬고 있었다.
추녀 안쪽 서까래에 매달려 있는 속이 텅 빈 뒤웅박이 불어오는 바람에 슬렁슬렁 흔들렸다. 그러자 그런 모습 바라보기 꽤나 우스웠던지 울타리 위에 줄기를 뻗어 자릴 잡은 노란 호박꽃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동네에서 단 한 집, 대문이 없이 사는 경수 아저씨네 집에는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신 떠벌이 아주머니가 김치를 담그시려는 듯했다. 열무와 쪽파가 담긴 둥그런 대소쿠리를 마루에 내려놓으시고 먼지가 부옇게 내려앉은 마루를 마루 걸레로 대충 훔치신 후 토방에 물을 뿌리셨다. 그런 후 수숫대로 엮어 만든 부엌 빗자루로 널브러진 흙먼지를 마당으로 내리쓸고 있었다. 말끔하게 닦은 경수 아저씨 흰 고무신도 마루 기둥에 기대어 놓아 꼬들꼬들 잘 마른 것 같았다. 물에 불려 놓았던 하늘색 꽃무늬가 그려진 사기요강을 볏짚 쑤세미로 잘 닦아 햇살에 비치는 요강이 반질반질하게 빛이 났다.
평소에 좀 떠벌리는 성급한 성격보다는 찬찬하신 면도 있는 듯 보였다.
마당 안 둥그런 대나무 닭둥우리 옆에 서 있는 개복숭아나무에 두 아들이 달라붙어 개복숭아을 따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두 아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야! 느덜 복상 따먹는 건 말 안 할 틴께, 고망쥐같이 남새밭에 들어가면 못 쓴다.”
그러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복숭아에 묻어 있는 깔끄러운 털을 아랫바지에 대고 쓱쓱 문대었다. 그리고 입 안에 냉큼 넣고 좀 덜 익어 그런지 뒷맛이 씁쓰레한가? 온통 몸을 움츠려 얼굴을 찌푸렸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집 앞 도랑가에서 돌복숭아를 따먹었던 기억이났다. 잘 익은 돌복숭아를 손으로 꾹 누르면 뭉글하게 하얀 속살이 쑥 밀려 나와 입 안에 넣고 혀로 누르면 빨간색의 씨앗이 나와 뱉어버렸다. 시큼 달큼한 맛으로 간식거리로 삼아 먹었다. 때로는 빨간 씨앗을 입 안에 넣어 어머니가 장터에서 사다 주신 황소 눈알만한 알사탕처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놀았다.
동네 한복판 연자방앗간에는 오전 내 발동기를 돌리시던 순태 아저씨가 점심때가 되어 쉬시려는지 팔목 양쪽에 끼고 있던 헝겊 천 토시를 빼시며 위아래로 보릿겨가 묻은 옷을 훌훌 털고 계셨다.
방앗간 마당에는 긴 여름 하루 내 집에만 계시기 무료하셨던지? 방앗간 공터에 마실을 나오신 옥순이네 할아버지에게 순태 아저씨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장죽을 입에 무시고 담배를 뻐끔뻐끔 빨고 계시던 옥순이네 할아버지께서 하늘을 한바퀴 휙 둘러 보시고 말씀 하셨다.
“아! 뭔 놈에 하늘이 아까까장만 해두 구름이 두어 덩이 보이더니만, 시방은 구름 한 점은커녕 구름이라고 생긴 건 아예 코빼기도 안 보이니께, 감질나게라도 비가 내리기는 영 글른 모양인구먼. 다덜 그럭저럭 모는 심어 놓은 모양인디 이 마른 가뭄을 어찌들 견딜라나 벌써부터 걱정이 되네 그려. 안 그런가? 지각끔 모내기들 허느라고 물이란 물은 죄다 끌어다 써서 들리는 말로는 그 뭐시냐 상평리 저수지 물도 거짐 다 말라 가는 모양이던디, 또 한차례 물 때문에 온 동네 난리법석을 떨것구먼 그려.”
그러자 두 손으로 옷을 털고 난 순태 아저씨가 옆으로 다가서며 말을 이으셨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르신님 말씀대로 이리 비가 안 와 번지면 설차니 큰 문제가 될 건뻔하구, 그 어느 해처럼 물 땀시 서로 아마빡 들이박고 난리가 한바탕 버러질 건디, 그러니 이 일을 어찌면 좋을란가 모르것구만유? 아! 땅바닥에 배를 쭉 내밀고 있는 돌팍들도 손을 대보면 매냥 뜨끈뜨끈한디, 어짤라구 대책없이 하늘은 똥구녁 찢어지게 가난한 집 물죽 쑤어 놓은 멀국마냥 맬간하기만 하니, 이리 가물어 가지고 어찌 덜 헐런지 참 답답하기만 하네유. ‘원님 덕분에나발 불더라’고 다들 그럭저럭 저수지 덕분에 갠신히 모내기는 하고들 있는 모양인디, 그 다음 번이 문제지유. 논바닥 물 빠짝 말라 볏모가지가 담뱃잎사구처럼 누렇게 타들어 가면, 나락농사 망쳤다고 이녁들 너나 할 것 없이 오장육부(五臟六腑) 속창새기 다 썩어 문들어져 갈 건디, 에이구.”
순태 아저씨가 참으로 이저리 답답하신 듯 애꿎게 옷만 훌훌 털으셨다. 마누라 하나 없어 살갑게 맞아 줄 사람도 없는 빈집이지만 시장한 참에 찬밥이라도 한술 뜨시려 집으로 가시려는 것 같았다.
텃마당에 심어 놓은 밭 마늘을 거두시는 기성이 형 어머니에게 얻으신 듯한 통마늘을 별다른 반찬이 없으니 그저 찬 냉수에 밥 말아 막된장에 쿡 찍어서 밥반찬이라도 하실려나, 발동기 돌리시며 쉬엄쉬엄 까신 마늘쪽 한 움큼을 손안에 쥐시고 고샅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재잘재잘 라디오 소리가 들려오는 종구네 집 안마당을 스치듯 힐끔 한번 쳐다보시며 집으로 향하셨다.
오전 내 돌아가는 발동기 소리가 멈추자 때를 기다린 듯 연자방앗간 측백나무 울타리에 내려앉았던 참새 떼들이 ‘후루루룩’ 소리를 내며 방앗간 양철 지붕으로 날아들었다. 머리를 갸웃거려 주위를 살피다 이내 땅 밑으로 내려앉아 보릿겨가 쌓여 있는 곳에 우루루 몰려들었다.
대숲으로 둘러싸인 종식이 형네 집엔 종식이 형 부인이 군대에 간 종식이 형을 대신하여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며칠 전 뒤뜰 천수답 닷 마지기 다랑논에 모내기를 끝마치신 듯해 보였다. 모내기가 끝나 좀 한가한 틈을 내어 오랜만에 광다리에 있는 친정집에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위아래 흰 치마 저고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젖먹이 어린 아기를 등에 업어 영택이네 집 측백나무 울타리를 반쯤 끼고 돌아 바쁜 걸음으로 동구 밖으로 나섰다.
방앗간 앞 동네 고샅길 한복판에는 목수 아저씨들과 함께 점심을 드시러 집으로 오시는 종구 아버지가 까뜰막까뜰막한 걸음으로 걸어오셨다.
그 뒤를 바짝 따라 용꽃 양조장에서 술 배달을 하시는 아저씨가 짐 자전거 짐바리에 막걸리 한 통을 달랑 매달고 삼식이네 집을 향해 천천히 달려가셨다.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선거철이 되었는데도 동네 분위기가 지난 선거 때처럼 전혀 들뜨지도 않고 더욱이 농번기라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그나마 이제는 그 흔한 공짜 술도 없어졌으니 양조장 아저씨가 동네에 막걸리 배달을 하여도 배달하는 양이 적어 그전처럼 신바람이 나질 않아 보였다.
들녘 논배미와 논배미 사이에 놓인 커다란 넙적바위에는 이장님댁 모내기를 하시던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 점심 못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나를 맨 처음 보신 경수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 큰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야! 상민아 요기 건건이도 푸짐허게 많으닌께, 싸게 와서 못밥 한 그릇 먹고 가라.”
나를 부르시는 경수 아저씨의 목소리가 마음속으로 고맙기는 했다. 허나 남들처럼 모내기할 논 한 평도 없는 내 처지가 그리 부끄럽기만 하여 마음에 용기가 좀처럼 나질 않았다. 그저 못 들은 척 시침을 뚝 떼고 방죽가 앞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경수 아저씨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아, 저놈 상민이 좀 봐! 그냥 와서 하냥 어불려서 밥 한그릇 먹고 가면 좋으련만 사내자식이 부랄값도 못하고 저렇게 숫기가 없을까? 쟈가 저러지 않았는디, 왜? 저러는지 모르겄네 그려.그나저나 두고 보면 알꺼지만 뭐니 뭐니 혀도 나중 참에는, 우리 동네서 저놈이 제일 먼저 큰일 한번 헐 꺼구먼.”
기성이 형이 그런 연유로 동네를 떠난 후로는 작은 것 하나에도 그리 신경을 써 주시는 경수 아저씨가 무척이나 고맙기만 했다.
느릿한 완행열차가 역에 닿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 해서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만큼 넉넉한 여유로움이 머무는 작은 간이역, 그 채운역을 향해 달려가는 증기기관차가 시커먼 굴뚝으로 연기를 모지락스럽게 내뿜으며 내 앞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비릿한 석탄 냄새와 누렇게 녹슨 쇳물 냄새가 뒤섞인 후덥지근한 수증기가 귓불을 때리며 ‘타다당타다당’ 기괴한 소리를 남기며 달려가고 있었다. 눈 안으로 들어오는 석탄 가루를 피하려 잠시 감았던 눈을 떠 보니 그 사이 기차는 두 가닥 철로길이 가물하게 보이는 그 끝자락에 뒷모습을 덩그라니 내보이며 쓸쓸하게 사라져갔다.
그렇게 언제나 열차가 스치고 지나면 뭔가? 모를 허전함이 찾아들었다. 아마도 그 것은 그리움이 남기는 잔잔한 여운인 듯했다.
내 두 눈에 바라보이는 철로는 한 치의 오차가 있을 리 없는 올곧은 길이었다. 하지만 모진 내 삶의 행로는 그리도 심하게 빗금들이 온통 얽혀진 고난의 험로(險路) 바로 그 자체였다.
눈이 시리도록 강렬하게 내리쪼이는 투명한 햇살이 앞산 잔솔 나무숲에 빈틈 하나 없이 고루 내리쬐어 그림자를 크고 작게 남겼다. 저 햇살이 그 모두를 소리없이 스쳐지나 듯 내 마음속에 늘 도사리고 있는 의미 깊은 아픔도 더는 말고 그쯤에서 함께 거두어 주길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