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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24 조회 : 1,323




자욱한 물안개가 온통 시야를 가려 아침 해 가장자리에 뿌연 햇무리를 이루었다. 그런 탓인지 앞산 산봉우리들이 마치 하늘에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뙤약볕이 등짝을 만만찮게 달궈놓을 것만 같았다. 가뭄 때문에 슬슬 조갈(燥渴)이 나려고 하는 농부들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날씨는 마냥 쾌청할 것만 같았다. 그런 어른들의 타들어 가는 속내를 알 리 없는 철부지 우리들은 빡빡머리에 햇살이 따갑도록 내리쬐어도 그저 노는데 지장이 없는 그런 날씨가 더 바랄 수 없이 좋기만 했다.

장독대에는 안개에 흠씬 젖어 축축해 보이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곰살맞게 줄을 이루고 있었다. 찔레나무 덤불숲에선 아직 덜 익은 열매를 그라도 쪼으려나, 조만조만한 멧새들이 저마다 가지 사이를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희무스름하게 바라보이는 들녘 앞자락 논배미에서는 어제처럼 오늘도 모내기를 서둘러 마치려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멀찍하게 보였다. 눅눅하게 깔린 안개 때문인지 일하시는 모습들이 다른 날 보다는 흐리게 보였다. 미루어 짐작컨데 이제 모내기 철도 다 끝나가는 듯했다.

도랑가에 세수를 하러 사립짝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텃밭에서 솎음을 하셨나, 잎이 가늘고 연한 연초록색 열무를 한 주먹 움켜쥐시고 밭고랑을 나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녁들 다 지 새끼들 배 안 굶길라고 아침부터 저리들 정성을 드리는디, 이참에 비라도 한바탕 오면 을매나 좋을랑가 모르것구먼 저 놈에 하늘은 으짠 일루 비 한방울은 커녕 낯반대기만 뺀질거리니, 깨딱했다가는 어느 해 가뭄처럼 물 없어 사네 못 사네 소리가 지천으로 나올까 봐 겁부터 덜컹 난다, 그건 그렇구 옥순이네는 모를 잘 심었는가 어쨌는가 모르것구나? 그저 하기 좋은 말루 가깝다 가깝다 헐뿐이지 눈만 뜨면 지나 내나 뭐시 그리 바빠 터졌는지통 얼굴 코빼기도 보기 힘드니. 내 원 참! 사는 게 뭔지 모르긋다.”

어머니께서 얼굴에 조금은 씁쓰레하신 표정을 지으시며 밭둑으로 나오셨다.

“엄니! 안 그래도 궁금해서 어제 옥순이네 집 들렀더니, 모내기는 다 끝내버린 모양이더라구, 근디! 옥순이가 뭔 놈에 거머리한티 그리 심허게 뜯겼나, 밤에 자면서 을매나 긁어댔던지 홑이불에 피가 잔뜩 묻었더라구, 그런데 내가 지네 집 마루에 앉으려고 하닌께 무신 도둑질하다 들키버린 것 매냥 홑이불을 후다닥 들고 부엌으로 도망을 치는지 모르것데.”

그러자 내 말을 듣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피식 웃으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그런가 보다. 그놈의 논배미가 좀 깊은 자리라서 거머리가 그렇게나 많다구 허드니, 애가 되게 뜯겨버린 모양이구나.”

그렇게 말씀 하시는 어머니 말을 듣고 그랬었구나! 하고 생각을 하려는데 집으로 가시려 발걸음을 돌리시던 어머니께서 다시금 혼잣말을 하셨다.

“허! 그 어린 게 벌써 그렇게 컸나? 세월 참 빠르지, 그것이 다 컸다구 몸엣것을 다 허게.”

그러시다 어머니께서 나를 의식하시는 듯 얼른 말끝을 흐리셨다. 그래서 나는 방금 들은 ‘몸엣것’ 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엄니! 몸엣것이 뭐여?”

내가 다그치듯 묻자 어머니가 좀 당황하시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야가 나 혼자서 무심코 헌 말을 옆데기서 여시 같이 그만 들어 번졌네 그려. 그러닌게 그게 뮈시냐면 여자들이 어른이 될라구 그러는 거닌께 니가 지금 알려구 안 해두 돼. 지둘렸다가 뭐시냐 나중에 어른이 되면 차차루 다 알게 되는 거닌께, 쓰잘데기없는디 신경 쓰지 말구 허라는 공부나 열심히 혀. 방학이라구 달구새끼들 마냥 뻔질나게 동네 이 고샅 저 고샅길 나댕기지 말고, 내 말 알아들었냐? 글구 얼른 똘강에 가서 세수나 허구 와라 싸게 밥 먹게.”

어머니께서 먼저 집으로 들어가시고 원두막을 지나 개울목으로 걸어가면서 방금 어머니가 하신 말씀 중에 ‘몸엣것’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늘 동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에 가뭄이 들면 산자락 밑 계곡물부터 바짝 마른다더니 얼마 전까지는 그런대로 흐르던 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영 시원스럽지 못하게 들려와 세수를 하면서 앞을 바라보니 동네에서 좀 떨어진 외진 곳이라 아직은 손이 덜 탔는지 개울가에 딱 한 그루 단작맞게 서 있는 개복숭아나무에 복숭아 몇 개가 먹음직스럽게 달려 있었다. 그래서 순덕이에게 주려고 따서 풀 잎사귀에 문대고 물에 잘 씻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순덕이에게 개복숭아를 주려하자 어머니가 깜짝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야! 너 지금 정신머리 있냐 없냐? 그걸 어린거한티 덜렁 주면 어쩐다냐? 이제는 제법 우아래루다가 이빨이 다 났던디, 좋다고 한 입 덥석 베어 물어 꿀꺽 삼키다 잘못되 번져서, 목에 걸려 버리던지 아니면 덜컹 얹히기라두 허면 어쩔라구 그런다냐.”

어머니께서 순덕이 손에 들고 있는 개복숭아를 얼른 뺏어 입에 넣으시고 그 시크름한 것을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드셔서 시지도 않으신지 잡수셨다. 그러자 순덕이가 그런 속내도 모르고 자기 것을 빼앗겼나 싶어 좁은 방 안이 터져 나가라 소릴 내어 울고 있자 어머니가 우는 순덕이를 보듬어 달래주셨다.

순덕이 어머니가 자글자글하게 끓이신 된장찌개에 어머니가 솎아 오신 연한 열무에 밥을 얹어 식구들이 밥을 먹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어머니께서는 잠시 쉴 틈도 없이 서둘러 한 손으로 벽에 걸린 수건을 들고 사립문 밖으로 나가시며 말씀하셨다.

“에이구 죽으나 사나 또 나가볼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구 부지런히 꿈지럭거려야 그나마 먹고살지.”

참으로 그리 푸념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모습이 바라보기에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

그리 자욱하던 안개가 앞 들녘부터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 여파(餘波)가 산 밑자락으로 번져 밭둑길 지나 둔덕배기에 오르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희끗희끗하게 보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다시금 뱃속으로부터 치밀고 올라오는 뜨거운 숨결이 내 작은 입 안에 거북스럽게 담겨졌다. 그런 아픔이 도래될 때마다 버릇처럼 아버지의 유택을 바라보았다. 그리 허무하게 떠나버린 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맴돌았다.

지난번 면소재지에 이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저녁녘 시간이 늦었다는 허울 좋은 이유로 아버지 묘소를 잠시라도 둘러보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난 일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산에 오르고만 싶었다.

그런 아린 마음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나, 산마루로부터 불어오는 선들바람이 포리똥나무의 얇고 가느다란 나뭇잎을 흔들어 마치 바람개비처럼 나붓거렸다. 그런 가는 흔들림 뒤에 오는 바람이 있음을 모르고 사는 부질없는 우리들의 삶이 너무도 가볍게만 느껴졌다. 한번쯤 살펴보려 하는 마음에 여유를 두지 않는 저마다의 조급한 속성 때문인 것만 같았다.

순덕이 어머니는 산나물 채취가 끝나 산에 오르시질 않고 머리에 물동이를 이시고 동네로 향하셨다.

제발 좀 같이 데려가 달라는 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검둥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앞을 세워 산에 오르려 흙내 물씬 나는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안개가 걷힌 산자락은 물기에 젖어 그 푸른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울창하게 자란 산죽(山竹)의 거친 댓잎이 볼에 닿아도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잘 익은 산딸기가 먹음직스럽게 빨간 몸을 드러내 몇 알을 따서 입에 넣으니 싱그러운 풀 내음과 더불어 혀끝에 닿는 달달함이 그저 좋았다.

언덕마루에 오르니 참기 힘들 정도로 숨이 가득 차올랐다. 오솔길 옆 바위틈에 흰 백합을 닮은 산마늘 꽃이 바위에 가득 들러붙은 푸른 이끼와 조화를 이뤄 한결 시원스레 눈에 띄었다.

가쁜 숨 가다듬어 가파른 언덕배기에 오르니 산자락을 타고 서 있는 몇 그루 밤나무에 희읍스름한 밤꽃이 그리도 많이 피어 있었다. 밤나무들이 지난 일 년 동안 그저 무덤덤한 암녹색의 모습을 그토록 보여 단 한 번이라도 고운 모습을 튼실하게 보여주지 못해 푹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이제서야 곱살스런 자태를 보여 주려나, 산자락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은 비린듯한 밤꽃의 강한 냄새가 진동을 하여 맑은 산 공기를 농밀(濃密)하게 하고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꽃들이 줄기마다 가득 매달린 채 휘늘어졌다. 어쩌다 늘어진 가지 끝이 머리끝에 닿으려 하면 밤꽃 모양이 마치 풀벌레가 닿은 듯 삽시간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작은 동네는 그 규모가 작은 만큼이나 더욱 친숙하게 눈앞에 다가섰다. 마을 초가지붕 사이로 허옇게 보이는 밤꽃이 피어 있는 밤나무 서너 그루가 바라보였다.

보리를 베고 나서 그런지 텅 비워 있는 보리밭 자락이 조금 쓸쓸하게 보였다. 동네 어른들 말씀이 ‘보리 베고 난 밭 자리에 대우콩을 심는다.’고 했다. 소를 몰아 쟁기질을 하여 갈아엎어 놓았으나 지속되는 가뭄 탓인지 아직은 파종(播種)을 못하고 있었다. 늘 그맘때쯤에 심는 고구마 순도 마른 가뭄 날씨로 아직은 심지를 못한 채 모두들 주춤하는 듯해 걱정스러웠다.

눈을 돌려 동쪽 머리를 바라보니 지난 6년의 세월 동안 내 꿈과 추억들이 어우러졌던 국민학교인 모교의 건물들이 작달막하게 내려다보였다. 그리 정들었던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산자락 바로 밑 병막 터에는 두 노인 분이 밭일을 하시고 갈아 뒤엎어 놓은 보리밭 자락에 산비둘기들이 종종걸음 하고 있었다.

그 뒷자락에 산나리 꽃 두어 송이 피어 있는 내 아버지 묘소엔 그동안 산을 오르내리시던 순덕이 어머니가 틈틈이 돌보셨는지 잡다한 풀들이 전혀 보이질 않게 말끔하게 보였다. 그래서 순덕이 어머니에게 다시금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아버지의 유택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서러워만 지는 마음이 자꾸만 울먹여지려해 마음속으로나마 나지막하게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 상민이 왔어유. 이제 그렇게 누워만 계시지 말고 일어나셔 제 절 받으세유, 엄니는유 읍내 장터로 장사 나가셔 하냥 못왔구먼유.”

엎드려 절을 올리려니 짙게 묻어오는 싱그러운 풀 내음과 흙냄새 속에 실로 무수히도 많은 느낌들이 비좁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렇듯이 아버지에 대한 내 그리움은 아픔을 동반한 채 때로는 작은 원망이 미움으로도 변하여 참기 힘든 울먹임만 남기고 말았다.

염치 좋게 소나무에 온몸을 걸쳐 곁방살이를 하려는 칡넝쿨에 매달린 넓적한 잎들이 시름 찬 산객(山客)을 맞이하려 저마다 손을 불쑥 내밀고 있는 듯해 보였다.

잔뜩 서러워지는 마음에 사정없이 내리쬐며 뜨겁기만 한 한낮 햇볕이 타는 갈증을 더했다.
산자락을 내려서 계곡에 닿으니 계곡물은 바짝 말라 들어가기 시작하여 깊은 곳에 고여 있는 물도 겨우 종아리를 힘없이 감았다 풀어 스쳐 지날 뿐이었다.

계곡 가에 서 있는 때죽나무에선 세차게 울어대는 물매미 소리가 타는 갈증을 더욱 부채질하는 듯했다. 때죽나무는 별모양의 새하얀 작은 꽃을 조롱조롱 매달아 은은한 향을 띄우며 나무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 옆으로 번창하게 뻗어나 둥그런 모습의 숲을 이루었다. 박달나무나 참나무는 나뭇결이 질기고 단단하여 도끼 자루나 괭이자루를 만들고 그리고 지게 작대기로도 흔히 쓰였다.

뭉게구름이 개망초 꽃 머리 위로 유유하게 흘러가는 한 여름엔 내 친구 주현이와 때죽나무 열매를 돌로 잘 빻아 물 흐름이 거의 없는 얕은 둠벙에 골고루 뿌렸다. 독성(毒性)에 취해 물 위로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힘없이 떠오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홀라당 벗고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겨우 손가락 한두 마디 만한 작은 고추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덜렁 드러낸 채 물고기들을 반대로 훑어 잡아 둥그런 함석 물통에 담으며 그리도 좋다고 마음껏 웃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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