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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25 조회 : 1,238




동구 밖의 아카시아 꽃 향기가 물씬 풍겨나는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

마을 사람들 저마다 서둘러 온 들녘에 모내기를 끝마쳤다. 그러나 이른 봄부터 지금까지 한 달 반 동안이나 비다운 비가 한차례도 내리질 않아 그리도 애를 태웠다. 마를 대로 말라 가는 땅에 발길에 스칠 때마다 푸석이는 흙먼지가 눈에 띌 정도로 부옇기만 했다.

가뭄은 온 대지를 타드는 갈증으로 목마르게 했다. 혹시나 단비가 내릴려나 싶어 무수히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줌 단비가 내려주길 그토록 빌고 또 빌었건만 냉랭한 하늘은 늘 딴청만 부렸다.

그토록 농부들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검게 타들어 가는 농부들의 마음을 뒤늦게서야 헤아리는지? 아니면 여름 장마가 시작되려는가? 하늘이 뭉클뭉클하게 뭉쳐지는 먹구름 덩이들을 무겁게 끌어안기 시작했다.

푸른 잎 사이로 영롱한 햇살이 비집고 들어서면 넉살맞은 매미들은 목청 돋우기 경연이라도 벌리는 것처럼 온 산골짝이 다 떠내려가라고 소리를 내질러 한편으론 짜증이 났다.

산새들이 키 작은 뽕나무 가지 위에 내려앉아 어울림이 아주 서툰 울음소리로 아침을 부르려 했다. 느그적거리는 아침 해는 아랫동네 안팎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앞들녘에 성큼 다가서려 했다.

비답지도 못한 비가 단작스럽게 한차례 내렸다. 그러나 비에 양이 턱없이 부족해 감질만 났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말라 들어가는 밭작물들이 그리도 안쓰러워 두루 살펴보려고 들녘 밭으로 향하는 동네 어른들의 발걸음이 급해 보였다.

“염병, 호랭이 물어 갈 놈의 날씨에 가뜩이나 속 문들어져 가는디, 무신 부야치기를 하는 건지 육시랄 놈에 두더지 새끼들까장 나서 넘 염장을 지를라고 하나, 온 사방간데를 미친 여편네 속것 뒤집듯이 죄다 들쑤셔 놓고 지랄염병을 하는지 모르것네, 그려.”

싸리나무로 엮은 울타리 너머로 카랑카랑한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려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지난해 늦가을, 새벽 이슬 맞고 동네를 떠난 하나뿐인 외아들이 어디 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근 반 년이 넘도록 소식 한번 없어 가뜩이나 애가 터지고 있는 기성이 형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이삼일 전 밤늦게 단작스레 내린 비로 푸석하게 마른 흙이 좀 눅눅해지자 아침부터 서둘러 밤늦도록 옮겨 심은 깻모가 영 시원치 않으신지 밭자락을 둘러보려 오신 것 같았다. 어린 깻모들이 이제 겨우 자리를 잡을 락 말 락 하는 밭두덕에 속알머리 없는 두더지들이 군데군데 마구 파헤쳐 잔뜩 속이 상하신 듯했다.

군데군데 노란 꽃잎 끝에 마치 탁구공만한 작은 열매를 맺고 있는 수박 밭에서 돋아난 잡풀을 뽑고 계시던 동근이 아버지가 공감을 하시는 듯 허리를 펴시고 기성이 어머니를 바라보며 웃고만 계셨다.

그때 철길 건널목을 넘어오시는 영호네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그놈의 누에는 진종일(盡終日) 얼마나 그리도 많이 뽕잎을 먹어 치우는지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뽕잎을 따서 나르는데도 늘 부족하기만 한 듯 잰걸음으로 밭을 향해 오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두엄가 한곳에 심어 자라난 어린 깻모를 텃밭에 옮겨 심었다. 그리고 조금 남아 있던 것을 순덕이 어머니가 뜨거운 물에 삶아 막된장과 들기름을 넣고 무친 깻잎나물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늘 하시던 대로 똬리를 머리에 얹어 젓갈 동이를 이시고 좁다란 밭둑길을 내려섰다. 그리고 ‘메에에, 메에에’ 하며 방정맞게 울어대는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계곡으로 향해 걸어가셨다.

설거지를 마치신 순덕이 어머니가 아랫마을에 물을 길러 나서려 물지게를 챙기려는 나를 한사코 말리셨다. 그리고 순덕이를 등에 둘러업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셔 텃밭 길을 내려섰다.

파란 하늘빛을 그리 고웁게 빼닮은 꽃잎 속으로 노란 수술을 슬며시 내어 민 달개비꽃이 소담스럽게 보였다. 울타리 숲 너머 텃밭 한 귀퉁이엔 잔뜩 뽐내듯 별모양의 도라지꽃이 파랗게 피어 있었다. 그 사이에 하얀 흰꽃도 듬성듬성 보였다.

밭 가장자리 둔덕을 따라 융성(隆盛)하게 뻗어난 줄기에 매달린 호박들이 푹신한 풀잎들을 베개 삼아 서둘러 낮잠을 자려 했다. 그리고 채 마르지 않은 이슬을 마시려는 듯 연초록색 여치들이 가느다란 다리에 힘을 줘 풀잎에 올라앉아 기다란 더듬이를 놀리고 있었다.

다북하게 줄기를 뻗고 있는 담쟁이 넝쿨에 멧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푸른 잎사이를 이저리 헤집어 낮은 소리를 내어 가냘피 우니 그 또한 여름을 부르는 듯싶었다.

한낮을 향해 들어서는 햇볕은 마루 기둥나무에 억살스레 내리쪼이고 있었다. 그때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 얼른 바라보았다.

다른 벌들에 비해 몸이 길고 가는 오빠시(땅벌)들이 몰려왔다. 그 많은 곳 중에 하필이면 추녀 안쪽 기둥에 벌집을 지으려 했다. 그래서 조금 망설이다 얼른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에 쓰려고 따로 놓아둔 자싯물(개숫물)을 한 바가지 떠 와 확 뿌렸다.

그래도 벌들이 좀처럼 물러서려 않고 그 기세를 더욱 부리는데도 검둥이는 나처럼 피하지도 않으며 멍청스레 바라만 보고 있어 오빠시가 참 억척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에 내 친구 주현이와 앞산에 풋나무를 하러 갔을 때 일이 생각났다. 주현이가 참나무에 달린 오빠시 벌집을 장난삼아 지겟작대기로 건드렸다. 그러자 벌들이 새까맣게 떼 지어 몰려와 지게를 벗어 놓고 그대로 도망치고 말았다.

내 딴에는 잘 피한다고 했는데도 눈 언저리와 손등에 두 곳이나 쏘였다. 얼른 산을 내려 집으로 와 된장을 잔뜩 붙여 보아도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부엌 시렁 위에 있는 식초로 함께 문댔던 기억이나서 웃고 말았다.

눈에 보이는 추수를 끝낸 산밑 보리밭들이 쟁기질로 모두 갈아엎어 불그스름한 흙이 푸석하게 매말라 좀 황량하게 보였다.

동네 어른들 말씀에 ‘감꽃이 떨어질 무렵에 들콩을 심고, 보리를 벤 자리에 고구마 순을 놓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가뭄이 끈질기게 지속되다 보니 이저리 못하고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이제나저제나 비가 내리기만 기다리는 듯했다. 그런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답답해졌다.

옆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산골짝이 고요하기만 했다. 지난날에도 늘 그랬지만 빈집에 혼자 남아 있으려니 조금은 적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랫마을에 마실을 가려고 사립짝을 나서 철길 건널목에 닿았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시고 동구 밖 나무다리를 건너시는 순덕이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 조금은 미안스러웠다.

철길 건너 모내기가 벌써 끝난 기현이네 논둔덕엔 기현이 할아버지가 아무리 가물어도 더는 못 참겠던지 괭이로 구덩이를 파 재를 뿌리시며 콩을 심고 계셨다.

눈앞으로 바라보이는 너른 들녘이 한군데도 빠짐없이 볏모로 들어찼다. 무릇 생각하기에 인간의 협동심으로 이루어진 그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논길 옆 흥남이 아저씨네 탱자나무 울타리엔 뾰족하게 뻗어난 가시와 검푸른 잎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각조각난 무늬처럼 보여 싱그러움을 더했다. 눈깔사탕 크기만큼 자란 탱자 알들이 거무스레하게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한동안 비가 오질 않아 물빛이 흐려 보이는 물 위에 오리들이 여유롭게 자맥질을 하는 방죽가에 닿았다.

이마 앞으로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추어올리시던 순덕이 어머니가 나를 보시며 활짝 웃으셨다. 순덕이는 저를 업고 오느라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의 심정도 모른 채 나를 보자마자 두 손을 흔들며 엉덩이를 들썩거려 좋다고 까르륵거리며 웃었다.

순덕이가 몸을 마구 흔들자 순덕이 어머니께서는 두 손으로 물이 가득 담긴 물동이를 꽉 잡으시고 몸을 가누시려 안간힘을 쓰셨다.

개망초꽃이 눅늘어지게 피어난 개울가엔 동네 꼬마들이 아랫바지를 무릎까지 바싹 걷어올리고 물가에 자라난 풀들을 어레미로 휘젖어 등이 검은 새뱅이와 송사리를 잡고 있었다. 옷에 진흙이 군데군데 묻어난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어른들에게 혼이 날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들은, 말잠자리 꼬리 끝을 쫓아 검정 고무신 속에서 땀에 젖은 발가락이 삐져나오도록 담박질을 하여 뛰어가는 모습이 퍽이나 귀엽게만 보였다.

모내기 철에 그리 썰렁했던 둥구나무 아래엔 가뭄에 고구마 순과 콩을 선뜻 심지를 못해 주춤거리시는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 가뭄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아! 우라질 놈의 날씨가 이쯤에서 비가 한바탕 퍼부서주기만 허면, 내사 만사 제쳐 두고 날밤을 새서라두 밭일을 하것구먼. 저놈에 하늘은 넘 애간장 녹는줄 모르구, 날 쳐다보기를 의붓자식새끼 쳐다보듯 하니, 내참 어쩌면 좋을란가 모르것네 그려.”

몹시 속이 타시는 듯 아랫바지 속에 손을 넣어 한 귀퉁이가 쭈그러진 담뱃갑을 거내시며 마을 이장님이 말문을 트시자 옆에서 종구네 집 짓는 일을 하시는 목수들을 바라보시던 상수네 아버지께서 말을 이으셨다.

“아! 왜 아니것어. 이녁 마음이나 내 맘이나 매한가지지 뭐, 지금 이런 때 맘속 편한 사람 하나라두 있을 것 같은감? 그저 아는 거시라구는 눈꼽만 떼면 진종일 땅바닥만 바라보고 엎드려서 죽을 둥 살 둥 모르구 농사짓는 거 밖에 모르니, 그저 개울물에 떠내려 보낸 새로 산 흰 고무신이 아까워 허벙대듯, 멍청한 하늘만 맥깔없이 바라보는 거지 뭐 별 수 있겠남.”

그러자 한쪽으로 비켜 앉아 막걸리 내기 장기를 두고 계시던 준섭이 아버지가 두 분의 말씀을 거드셨다.

“그냥 실없이 허는 말이 아니라 이리 가물다가는 참말루 뭔 일이 날 것 같구먼 그려. 가물다 가물다 혀두 다른 해에는 더러더러 비가 내려서 아쉽거니 그냥 그럭저럭 넘겼는디, 이리 가물어 보기는 근 6년 만에 첨인 것 같구먼 그려. 태어나 배운 도둑질이 이것뿐이라구 그저 고추 농사라도 좀 져 볼라구 하닌게, 싹바가지 없는 하늘이 도통 도와줄려구 생각을 않는구먼 그려 에이구.”

그때 애꿎게 면소재지 쪽만 물끄러미 쳐다보시던 우현이 아버지가 말씀을 하셨다.

“밭농사두 그렇타치지만, 있는 물 없는 물 다 끌어대서 간신히 볏모 세워둔 저 논배미들은 어쩔 것인감? 이러다가 아닌 말루 나락농사 망치면, 너나 할 것 없이 쪽박차구 있는 집 찾아 허리 구부리구 장리빚이라두 내려고 줄 나래비 설 건 뻔하니, 참 그냥 넘길 일이 아니구먼. 참말로 수랑골 무당이라두 불러다 당산나무에 기우제라도 올려야 되는건지, 걱정이 태산 같구먼 그려.”

그렇게 우현이 아버지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기판을 바라보시던 삼식이 아버지가 털털하게 말씀을 하셨다.

“아! 어쩌니 저쩌니 혀두 성님네야 양식 걱정은 않고 사닌께 그렇타치지만, 우리네들 같이 낱 술 되박이나 팔며, 이 집 저 집 댕기면서 모품이나 팔구 사는 사람들이 걱정이지유 뭐.”

그러자 우현이 아버지께서 입바른 소리를 하시는 삼식이 아버지가 좀 못마땅하신 듯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그러자 삼식이 아버지도 불쑥 말을 던지고 나니 좀 끕끕하셨던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셨다.

마침 때맞춰 고샅길을 빠져나온 우물가 인식이네 삽살이가 멀찍이서 어슬렁거렸다. 내 뒤를 몰래 따라나섰던 검둥이가 넉살스럽게 어디선가 내달려 와 두 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어디론가로 향했다.

늘 동네에 크던 작던 간에 무슨 일만 있으면 ‘쿵쿵쿵쿵’ 소릴내어 촐싹대며 돌아가는 발동기처럼 나서길 좋아하시는 순태 아저씨가 한말씀 하시며 나섰다.

“참! 늘어진 개팔자라더니, 말 못허는 저것덜두 꼴에 짝을 맞춰 놀라구 허는디, 뭔 놈의 팔자가 팔 베구 누워 볼 여편네 하나 없이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등잔불에 시커멓게 끄실린 천장이나 모가지 아프게 쳐다보고 살으야 하니 내 원 참.”

말씀을 끝내신 순태 아저씨가 짧게 한숨을 내쉬자 한동안 아랫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진식이 할아버지께서 입에 물고 계시던 장죽 담뱃통를 바윗돌에 대고 탕탕 두드려 타다 남은 담뱃재를 터시며 말씀하셨다.

“어이! 순태 자네 시방 그걸 말이라구 허구 있는가? 다덜 가뭄 땜시루 정신 혼창이 나가 있는디 천하태평으루 그 놈에 여편네 타령이나 하고 있으면 쓰것는가 안 그려? 다덜 나락 농사가 잘되야 자네두 발동기 신나게 돌리는거구, 만에 하나 이리 계속 가물어 기근이라두 들라치면 자네 발동기두 못돌리게 되면 어쩔라구 그러는가? 내가 헌 말 고깝게 듣지 말구 잘 새겨들으라구.”

말씀을 마치신 진식이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네 고샅길로 걸어가시자 순태 아저씨가 뻘쭘한 얼굴로 입을 씰룩이며 말을 했다.

“내가 뭐! 노인네 들으시라구 헌 말인감? 다들 등짝 근질거릴 때 박박 긁어주고 죽을 때 손 붙잡어 줄 끄나풀이라도 있으닌게 넘 속타는거 잘 모르것지만, 나처럼 허구 헌날 베랑빡만 쳐다보며 살어 보라구, 어디 그런 소리 그리 수월케 나오는지.”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끝을 얼버무리며 떱떨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툴툴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펭’ 하고 코를 풀어 손을 바윗돌에 대고 쓱 문댄 후 동네 고샅길로 들어섰다.

마을 어귀에 어정거리는 해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그토록 조용하기만 하던 둥구나무 이곳저곳에서 매미들이 또다시 서로 앞을 다퉈 울어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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