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에 어슴푸레 먼동이 터 오면 하늘의 은혜로움으로 저마다 곱게 피어난 꽃송이들이 지난 밤새 이슬에 눅눅해진 몸을 추스리려 눈을 반짝 뜨고 찾아드는 햇살을 향해 저마다 가녀린 머릴를 들었다.
영롱한 채운(彩雲) 사이로 들척들척 찾아든 아침 해는 똘방진 모습으로 산자락을 사뿐하게 내려섰다. 나뭇가지엔 산새들이 청량한 울음소리로 고결(高潔)한 아침의 문을 열고 있었다. 초연한 저 산과 나무들은 숱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고루 내어 주고도 무엇 하나 바라질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들 모두는 산과 나무들에게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떠오른 해가 너무도 탐스러워 똑바로 바라보면 금새 눈이 시려와 눈을 꿈뻑거릴 때마다 눈망울에 각기 다른 여러 개의 색깔이 번갈아 가며 신기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청솔가지를 태우는 매캐한 송진내가 마당 밖으로 가득가득 흘러나와 초가집 뒤쪽 굴뚝엔 연기가 땅바닥에 희끗한 모습으로 낮게 깔리고 있었다. 순덕이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에 넣어주시려나, 어제 어머니가 사 오신 서대를 고추장 듬뿍 발라 석쇠에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져났다.
어머니께서는 하루 종일 이 동네 저 동네로 발품을 팔아 장사를 하시느라 허다한 날 점심을 거르셨다. 허기진 배에 목마름까지 겹쳐오면 찬물로 배를 채우셨다. 어쩌다 운이 좋은 날에는 남의 집 밥 먹는 틈에 끼어 밥을 얻어 드셨다. 그도 여의찮아 정 참기 어려우시면 허기진 배를 움켜쥐시고 돈 쓰기가 아까워 몇 번을 망설이시다가 읍내 소화다리 옆 찐빵집에서 소다 냄새 물씬 풍기는 찐빵을 두어 개 사 드셔 우선 허기를 달래셨다. 비록 없이 살더라도 어린 자식을 남들 앞에 기죽이지 않으시려 애를 쓰셨다. 도시락 반찬 하나라도 그리 신경을 쓰셨다. 그런 내 어머니는 흑거미가 제 살을 뜯어 새끼에게 먹여 키우듯이 일생동안 모든 것을 나를 위해 늘 헌신하며 사셨다.
내 어렸을 적 그 추운 겨울날, 얇은 옷을 입고 찬바람 매섭게 몰아치는 냇둑 길을 걸어 학교에 가는 모습이 애잔스러워 팔꿈치가 해어졌다는 거짓 이유로 어린 마음 언짢아할까 봐 달래 놓고, 입고 계시던 털 스웨터를 풀어 내 겉옷을 두툼하게 떠 주셨다. 그런 진한 모정의 힘으로 험난한 세월을 잘 버텨 자랐다.
강인한 모정은 무딘 돌을 부식 시켜 가루를 내고 강한 쇠붙이도 용광로처럼 녹아내릴 것 같으니 세상 그 무엇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숭고(崇高)한 사랑임에 틀림없었다. 겉으로는 늘 작게만 보이는 어머니의 품이 나에게는 스스럼없이 기대어 버틸 수 있는 큰산처럼 보여 든든하기만 했다.
추수가 거의 끝나 가는 늦가을엔 겨울 이부자리를 준비 하시느라 순덕이 어머니와 다듬이질을 하시면 그 작은 몸에 억척스레 두들겨 대는 맞방망이 소리가 그리도 크게 들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오르는가 하고 경탄스럽기만 했다.
하얀 광목천을 다듬이질하셔서 고르게 펴시듯 어머니께서는 모진 굴곡(屈曲)의 세월도 두드려 곱게 펴시려는 것 같았다. 또한 주어진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겉으로는 태연하신 척 하시며 참아내시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어머니의 근엄한 모습에 내 어린 가슴이 슬퍼지려해 온통 아려왔고, 세월따라 어린 나는 하루하루 오달지게 자라나고 있었다.
울타리 너머로 조금은 격양(激揚)된 목소리가 들려 울타리 밖을 내다보니 종구네 아버지와 동근이 아버지가 원두막에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참외 밭에서 풀을 뽑고 계시던 동근이 아버지가 종구 아버지 얼굴을 올려다보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어디 돈을 감춰 놓구 그 돈을 자네한테 안 주면 내가 성을 갈 것네 그려. 나 사는 꼬라지 자네가 더 잘 알 건디, 그리 막무가내로 볶아대면 어쩌것는가? 그러니 사는 형편이 넉넉한 자네가 좀 느긋하게 올가실까지만 기둘려 주면 가을바심 끝나구 나서 갚을 테닌께 그리 좀 해주게나. 글구 나사 그 척박한 땅에다 뭐 심궈 먹을 생각은 애시당초부터 없었네. 자네가 하두 그놈의 기와 공장인가를 해보구 싶다구 졸라대서 그때만 해두 흘러가는 제반 사정이 그런대로 좋길래 같이 사서 기와 공장을 차려 볼라구 했던 것이지. 복살머리 없을라니께 그리 믿었던 자유당이 힘없이 무너질 줄 자네나 나나 꿈에라도 생각이나 했는감? 모든 게 허사로 끝장이 나서 이참에 그기다 자네가 집을 짓는다고 하길래 집 짓는 김에 몽땅 쓰라구 헌 말인디, 뭘 그걸 가지구 새삼시럽게 꼬타리를 잡아 가마솥에 콩 볶아대듯 들볶아대면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말을 끝마치신 동근이 아버지가 가슴이 답답하신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종구 아버지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는 듯 담배를 한 개피 꺼내 권해도 전혀 반응이 없는 종구 아버지가 다구진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셨다.
“성님! 입은 삐뚤어졌어두 말은 바로 혀야 한다고 내 말 좀 잘 들어 보시유. 내가 첨부터 성님헌티 기와 공장을 하자구 한 잘못으로 여직까장 아무런 말없이 소 죽은 듯 가만히 성님 눈치만 보구 있었는데, 그놈의 4,19 일어나구부터는 이타절타한 말 한자리 없이 내 집에 발걸음두 딱 끊구 그 뭐시냐? 다 지난 일이지만 이번에 집짓는디 대들보 올리는 상량식 날에두 지나가던 사람들두 죄 들여다보는데 성님은 나 몰라라 하니 입장을 바꿔놓구 생각을 혀 봐두 성님 같으면 안 서운하것는감유? 그리구 그 큰 놈의 땅덩어리를 나보구 다 쓰라구유? 지금 있는 논 밭뙈기두 그 오시랄 놈의 용만이란 놈이 모두 내팽개쳐버리구 바람난 수캐처럼 훌러덩 동네를 떠나버려서 처치하기 힘들어 죽것는디. 그건 무리지유.”
밭 자락에 앉아 속이 타들어 가시는지 담배만 거푸 피워대시던 동근이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여셨다.
“자네 내 말 잘 들어 보게나.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자네에게 무신 코딱지만큼이라두 서운한 마음이라구는 하등에 있을 리 없는 거구. 세상이 뒤집어져서 그런 일이 생겨 기와 공장 일이 어처구니없이 끝나버리니 동네 사람들 얼굴 보기두 왠지 쑥쓰럽구, 더군다나 경준이(병수네 아버지)가 이제는 제 세상 만났다구 들먹들먹 고개를 바짝 쳐들구 할 말 못 할 말 다 떠벌리구 댕기는 꼬딱서니두 보기 싫어 그랬네. 더군다나 여편네가 첨부터 그리 말렸는디두 들은 대꾸두 않구 저질른 일이라, 날마다 들볶아대는 마누라 깽매기 두드리는 소리 안 듣구 살려구, 밥숟가락 빼면 득달같이 원두막으로 도망치다시피 오는데, 동상은 무신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는가?”
그렇게 동근이 아버지가 또다시 한숨을 크게 내쉬자 종구네 아버지가 다시 말문을 여셨다.
“그기사 이심전심이라구, 세상 바꿨다구 나불거리고 다니는 눈꼴스런 모습 그저 바라보구 살아야 하는 속 터지는 맘이사 내나 성님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그래두 어찌됐던 간에 서로 좋아서 벌여 놓은 일은 성님답게 깔끔허게 마무리를 해야 되지 않는감유?”
종구 아버지께서 처음보다 조금은 가라앉은 말투로 말을 끝내자 동근이 아버지도 조금 부드러워진 어투로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나오는 말인 즉, 나두 자네헌티 서운허기는 매한가지일세. 자네가 집자리를 앉힐 때 어디 나하구 한마디 상의라두 혀봤는감? 그저 대충 눈짐작으로 자네 입맛대루 반절 뚝 짤라 덜컹 집을 세웠으니 남은거라구 집 뒤에 가려진 눈먼 땅이 되번져서 천상 죽을 때까장 그 자리에 타산 안 나오는 밭작물이나 맹깔없이 심어 먹구 살아야지. 그걸 어디다 쓰것는가? 그래서 이참저참해서 쓰는 김에 자네가 다 썼으면 하구 말을 해 본 것이네 그려.”
앞 들녘 논배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던 종구 아버지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시며 다시 말을 남겼다.
“성님 암튼 지간에 그때까장 기달리는 것두 그렇구... 허니 내가 다 쓰던지 아니면 어쩌던지 좀 더 생각을 혀보구 수일내루다가 성님헌티 답변을 줄틴께, 그리 알구 계시유.”
인간관계의 설정이라는 것도 필요의 값어치와 이익과 손실의 대차(貸借)에 따라 그 알뜰한 신의(信義)도 존재하는가 하는 생각을 무릇 하여 보니 두텁지 못한 인간의 속내가 그저 한없이 떨떠름하기만 했다.
매번 선거철에는 두 분이 자유당 열성당원이라고 자처하면서 입 안에 들어 있는 것도 냉큼 빼줄 것처럼 형님, 아우님 하면서 밥숟가락 빼기 무섭게 좁은 고샅길이 윤이 나도록 뻔질나게 들붙어 다녔다. 그런 두 분의 욕심에 차게 승리로 귀결(歸結)지려하던 3.15 부정선거를 단초(端初)로 들끓는 민심 속에 4.19 학생의거로 세상이 변하자 누구의 잘못을 가늠키도 전에 간교한 인간의 속성은 재빠르게 변해 가는 듯싶었다.
책가방을 들고 서둘러 서낭당 언덕배기에 오르니 이른 아침 북쪽 서울역을 출발하여 해가 서산에 기울락 말락하는 초저녁에나 남쪽 종착역인 목포에 닿을 듯한 시커먼 증기기관차가 육중한 몸매를 과시하며 비릿한 석탄 냄새를 물씬 풍겨 고막을 터트릴 듯한 괴성을 허공에 내어 질렀다. 그리고 남쪽으로 머리를 향해 파름한 들녘으로 힘찬 질주를 했다.
그러자 염소가 기차 소리에 깜짝 놀란 듯 줄이 끊어져라 펄쩍펄쩍 뛰어 모가지에 매달린 줄을 배배 틀어 멍청스럽게 제 스스로 몸을 감고 있었다.
건널목 앞에서 기차가 지나쳐 가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귀가 따가운지 손으로 귀를 틀어 막고 있었다.
서편 들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산날맹이에서 부는 바람이 산골짜기에서 서로 만나 힘을 더 보태 산자락을 내려 다시금 들녘으로 불어왔다. 그렇게 불어오는 바람이 풀과 나무 이파리를 흔들어 어루만져 지나가는 바람 끝이 서늘키만 했다.
그런 가뭄 속에서도 꼿꼿하게 자리를 잡아 가는 벼들이 똘방진 모습으로 성글게만 보였다.이제 가을이 오면 저 들녘도 황금빛 미파(微波)를 이룰 것이란 성급한 설렘을 가져 보았다.
그때 옥순이가 걷기 좋은 동네 앞 큰길을 놔두고 일부러 그러는 것같이 빙 둘러 철로 길을 따라 면소재지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몸엣것이란 말이 들려온 순간부터 시작된 이상스럽다는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 조금 답답한 마음에 옥순이를 건널목에서 엉거주춤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서로 눈이 마주치자 살며시 웃어주기는커녕 쌩하게 그냥 못 본 척하며 앞서 걸어가 이런저런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멍해지고 말았다.
언덕 아래 논 자락 둠벙에선 물결을 세차게 치고 솟구쳐 오르는 물오리의 털 끝 자락에서 우르르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햇살에 새하얀 옥구슬처럼 쏟아져 내렸다.
들주막 버스 정류장엔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주막 집안마당에서는 주인 아저씨가 푸른빛에 불그레 익어가는 자두를 한 개 따서 맛보시려나, 입에 물고 우직스럽게 깨물고 있었다.
그때 수탉이 암탉을 윽박지르듯 날개를 치며 부리로 머리를 쪼아 억지로 등 위에 올라타려 했다. 그러자 아저씨께서 수탉을 보고 한말씀 하셨다.
“저 우라질 놈에 달구새끼가 아침부터 재수 없게 꼴갑을 떨고 있네.”
말을 끝내신 아저씨가 서둘러 닭들을 몰아 쫓은 후 가게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새살스런 가겟집 아주머니는 들녘 논에 물꼬를 살피러 나왔다가 아침 해장술 한잔하려 들어오는 첫 개시 손님이 그리 반가운지 생글거리며 잽싸게 방 안에서 가게로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가게로 들어선 주인 아저씨는 아무리 서로 아는 처지의 동네 장사라지만 그리 대수롭지도 않은 잔술이나 팔면서 넘 남정네 앞에 그리 호들갑 떠는 마누라가 영 탐탁치 않으신지 눈살을 가볍게 찌푸려 괜시리 헛기침을 하며 여닫이문을 열고 있었다
버스가 읍내 정류장에 도착하여 철도관사 성구네 집으로 가는데 비교적 조용한 역사(歷史)에는 연무대에서 들어오는 아침 첫 통근 열차가 웬일로 시간을 잘 지켜 제시간에 도착을 한 것 같았다.
증기기관차가 시커먼 굴뚝 위로 연기를 희뿌옇게 흐트리고, 엄청스레 커다랗고 둥근 쇠바퀴 부분에서 허연 김을 내뿜으며 여유롭게 멈춰 서 있었다.
구름사이를 뚫고 쏟아지는 햇살이 따근거리는 여름 더위에 운동장을 에워싸고 있는 민출한 미루나무에는 아침부터 매미들이 요란스레 울어댔다.
그날은 학교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이는 6.25 행사가 있었다. 책가방을 교실에 두고 교무실에서 치는 종소리에 맞춰 전교생이 운동장에 각 학급 별로 줄을 맞춰섰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이미 통념이 되어버린 반공 사상 고취(鼓吹)의 내용이 담긴 훈시를 들었다. 그리고 악대부의 반주에 맞춰 6.25 노래를 커다랗게 부른 후 교실로 향하여 줄을 맞춰 걸어갔다.
처참한 전쟁은 실로 우리들로부터 그리 숱한 것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이런저런 슬픔 중에서 제일 큰 슬픔이 혈육 간에 영원한 이별인 것 같았다.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놈들의 만행으로 우리 반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 급우들이 무려 열한 명이나 되었다.
금강을 나룻배로 건너 통학을 하는 급우가 사는 마을에서는 같은 날 자그마치 다섯 분이나 한꺼번에 돌아가셨다.
늘 자연의 섭리를 거역치 않고 흙을 파 씨앗을 뿌려 가꾸고 거두어들이며 살아온 순박하기만 하던 시골 마을이 어느 한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다. 그로 인해 유가족들은 생살을 찢는 아픔에 몸부림 쳐야만 했으니 전쟁이 남긴 참화(慘禍)가 그토록 진인하기만 했다.
그렇게 한국전쟁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처참한 비극을 남긴 채 훗날을 살아가야 하는 어린 우리들에게 영원히 떨칠 수 없는 커다란 아픔의 멍에를 한가득 걸머지게 했다.
늦저녁 무렵부터 우중충한 하늘이 짙은 먹구름으로 덕지덕지 무늬를 이뤘다. 쇠잔한 햇살이 두툼한 구름 벽을 쉽사리 뚫질 못해 노을빛이 다소 갑갑하리만큼 벌그스름하게 보였다.
하루의 학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들녘 주막집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구불구불 좁다란 산길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녘 느지막이 동쪽 하늘에서 서쪽 하늘로 세찬 물결처럼 흘러가던 구름이 산봉우리에 가득 몰려들었다.
어렵사리 얼굴 비치던 저녁샛별(太白星)이 밀려오는 먹구름에 겁이 덜컥 났던지 어디론가 몸을 감춰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가뜩이나 적막한 산골짜기 온 주위가 어둡다 못해 침울키만 하여 금시(今時)라도 비가 줄기차게 내리쏟아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