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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29 조회 : 1,286




『풍진 세상 먼저 간 지아비 생각나면
삼베치마 허리끈 야무지게 졸라매고
가득가득 한 서린 다섯 고랑 다락 밭
아픔을 가누려 밭을 매던 내 어머니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보릿고개
애끓는 어미 속 타는 줄 그도 모르고
까까머리 코흘리개 두 눈이 빠져라
갈근갈근 기다리던 보리밥 한 그릇

철없는 어린 자식 배곯리지 않으려
보리밥에 한 움큼 섞어 넣은 완두콩
노을빛이 꽃잎마다 곱디곱게 물들면
자혜롭던 얼굴이 버룻처럼 떠오른다.

자드락밭에 하얀 꽃들 그리 피어나도
섭한 눈물 아물아물 흐릿하게 보이니
통한으로 타드는 마음 애절키만 하여
뉘 알 리 없는 후회 섧디섧게 울먹여

돌돌뭉친 설음에 몸 가누기 어려운데
산을 넘는 구름이 못내 외면 하여도
가득가득 시린 마음 저만은 아는 듯이
앞산 두견새 애탄(哀歎)하게 울어주네.』


'후두둑후두둑'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는데 봉창 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방문을 덜컹 열고 쪽마루에 나섰다. 그간 무심했던 하늘이 가물대로 가물어 타들어만 가는 농부들의 애잔스런 마음을 뒤늦게라도 헤아려 주는 듯 올해 들어 첫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참으로 너나할 것 없이 동네 사람 모두에게 반갑기 그지 없는 단비임에 틀림이 없었다.

검은 비구름에 휘감긴 앞산은 제 모습을 점점 잃어 어둑어둑하게 바라보였다. 비 구름에 시야가 가려 어슴하게 바라보이는 동네 어귀에는 때를 기다렸던 농부들이 앞을 다퉈 들녘 밭으로 향해 그 모습들이 그렇게나 활달하게 보였다.

늘 바지런하신 어머니께서는 식구들 중에 누구보다 더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셨다.그리고 그리 내리는 비가 싫지도 않으신지 품이 낙낙한 허드레옷을 몸에 걸치시고 아래에는 검정색 물을 들인 몸뻬바지를 입으셨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보잘것없이 작은 다랭이 밭이지만 밭두렁에 호미로 고구마 순과 콩을 심고 계셨다.

아마도 늘상 버릇처럼 차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옹골지게 들러붙은 그리움을 그렇게라도 달래시려는 것 같아 그런 모습을 아무런 말 없이 바라만 보아야 하는 내 마음이 그지없이 처연키만 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디마디 서린 한이 그리도 컸기에 누지를 수 없는 감정을 연약한 아녀자의 몸으로 버텨내기에는 무척이나 힘이 드실 것 같이 느껴졌다. 그로인해 때론 마음이 갈팡질팡할지라도 어린 자식과 꼭 살아남아 억울한만큼 버텨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에서 나오는 강한 투지로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작은 땅덩어리라도 보이면 고구마 순을 그리도 많이 심었다.
다른 작물에 비해 극한 가뭄만 피하면 손 쉽게 키울 수 있을 뿐더러 쌀과 보리 다음으로 긴 겨울을 나는데 긴요하게 쓰이는 양식으로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그 역활이 참으로 컸었다.

강아지풀이 목을 길게 빼어 내민 밭 가장자리 풀숲엔 빨갛게 농익어 가는 뱀딸기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그리고 시들어 가는 노란 꽃잎 끝에 손가락 굵기의 덜 자란 오이가 길쯤길쯤 자라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었다. 밭두렁 한쪽엔 오랜 가뭄 탓인지 진한 자주색 가지가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사립문 밖에 홀로 서 있는 아직은 덜 자란 해바라기도 오랫동안 참았던 심한 갈증을 풀고 싶은지 내리는 장맛비에 몸을 흠씬 적시러나 가뜩이나 훨출한 목을 더욱 길게 내어 내밀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모처럼만에 내리는 단비가 그리도 반가워 좋기만 한데 그런 비가 썩 달갑지 않은 듯 심드렁한 모습으로 쪽마루 밑에 움크리고 있는 검둥이만은 제 딴에 다른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아랫 마을에 있는 제 짝을 찾아가려고 비가 잠시 멈추기만 하면 틈사이로 이내 찾아들 것 같은 강한 햇볕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산골짝이 떠내려갈 듯 그리도 목 아프게 울어대던 매미와 쓰르라미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내리는 빗줄기를 피하려 어느 사이 나뭇 잎사귀 뒤로 몸을 감춰 울음소리를 접은지가 꽤나된 듯 싶었다. 그리고 늘쩡거리던 사마귀와 무당벌레도 호박잎을 지붕으로 삼아 재빨리 몸을 숨긴 것 같았다. 낮은 처마 끝에선 마른 볏짚 줄기를 타고 ‘툭툭’ 떨어지는 빗물 소리가 해낙낙하게 귓가에 들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때문에 선뜻 마당으로 나서지도 못해 어정쩡한 모습으로 추녀 밑에 웅크리고 있는 닭들이 배를 채울 먹이를 찾지못해 불만스러운지 서로 뒤척거리며 이따금씩 ‘꼬곡꼬곡’ 소리를 내고 있었다.

늘 그랬지만 해마다 그맘때쯤이면 여름 장마로 접어들었다. 속된 말로 남의 집 추녀 밑에 펼치는 노점 좌판도 하나 없었다. 그래서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으로 발가락이 부르터 물집이 잡히도록 발품을 팔아 젓갈장사를 하시는 어머니께서는 장마 기간 내 장사를 하실 수 없었다. 그런 입장이다 보니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스런 말이지만 먹고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저 장맛비가 멈추길 답답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네 식구의 생계가 걱정이 되었다. 너무도 가진 것이 없어 어머니의 단순한 노동력에 의존해 살아가는 터라, 더는 어찌해볼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애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빗물에 젖은 옷을 벗으시고 횃대에 걸린 저고리를 꺼내 갈아입으시며 말씀하셨다.

“햇볕이 쨍쨍한 날에는 우산장수하구 소금장수 얼굴이 쭈그러진다고 하더니, 그 말이 나를 두고 허는 말인가? 장마가 들이닥치닌께 새비젓 장수 하는 내 꼬라지가 영판없이 그 짝이 나버려 살살 애간장을 태우는구나. 허지만 그라도 어쩌것냐, 비가 퍼붓으닌께 너나 할 것 없이 살판이 났다고 저리들 좋아라 하는디, 우선 지간에 농사짓는 일이 제일 우선이지 안 그러냐? 아참 저참 해서 비 오는 틈바구니에 어쩌다가 햇살이라두 들라치면, 우리 순덕이랑 조막만한 밭뙈기라두 둘러보구, 자꾸만 비 퍼붓을 땔랑은 집 안 구석구석 소제라두 해야 쓰겄다.”

말을 끝내신 어머니께서 부억에서 일 하고 계신 순덕이 어머니를 도와주시려나, 순덕이를 보듬고 방 문을 나섰다.

홀로 방에 앉자 있으려니 자꾸만 아랫목에 놓인 줄어드는 보리쌀 자루에 의식적으로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조여오는 삶에 대한 압박감으로 식구들 모두 속내는 타들어 가지만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써 그런 수심에 찬 얼굴 표정을 애써 감추고 살려 하였다.

그렇게 타들어 가는 우리들의 깊은 속마음을 그도 모르는 채 뜨거운 햇볕을 피해 눅눅한 풀숲 그늘 밑에 잔뜩 들어앉아 가쁘게 숨을 할딱할딱하던 개구리들이 때를 만난 듯 점점 굵어져 가는 빗줄기 속에 청승맞게 울어댔다. 활짝 열어젖힌 방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너른 들녘엔 비구름에 물안개가 가득 서려 앞 들녘 끝 자락 읍내 건물이 아예 한 점도 보이질 않아 조금은 답답한 마음에 서운하기도 했다.

‘투두둑투두둑’ 팽팽하게 펼친 지우산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부산하게 들려왔다. 마음 더욱 서둘러지는 등굣길에 구부러진 밭길을 내려서 논배미 가장자리에 닿았다. 모처럼만에 내리는 비가 그리 좋은지 논 자락에 숨어 있던 등딱지가 거북이 모양을 닮은 푸르죽죽한 자라가 논 가장자리로 발발거리며 기어 나오려다 발자국 소리에 얼른 몸을 감추려 벼 포기 사이로 숨어들었다.

온 대지를 후줄근하게 적시려는 비는 물꼬를 트려는 듯 계곡물을 부추겨 청량하게 소리를 내었다.

타고난 성격이 좀 조급한 종구 아버지가 그리도 매일매일 이른 아침부터 집을 짓는 목수들과 인부들을 들볶아대며 설치신 보람이 있어 보였다. 종구네 새집 기와지붕은 마무리가 잘되어 웬만한 큰비에도 끄떡이 없을 것 같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추적대는 장맛비가 전혀 싫지 않은 것은 그해 이른 봄부터 시작된 가뭄이 그만큼 심했던 까닭이었다.

어수선한 비바람 속에 온몸이 비에 흠씬 젖어도 농부들의 마음은 하늘의 배려에 감지덕지했다. 저마다 심는 시기를 놓쳐 애태우며 미뤄 왔던 고구마 순과 콩을 심는 밭일을 하느라 온 들녘 밭들이 사람들의 모습으로 활력이 넘쳐났다. 그런 모습 바라보는 나 또한 포근함으로 가슴이 눅눅하게 젖어들었다.

어룩어룩한 빗줄기 속에 시야가 흐려졌다. 그로 인해 앞자락 산 모습이 제멋대로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어두운 하늘 아래 빗줄기 사이로 땅이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둔덕마루에 꿋꿋하게 머릴 들어 비를 맞고 있는 개망초 꽃을 바라보니 매찬 삶에 역동하는 모습이 퍽이나 끈질기게 보였다.

커다란 솔나무가 다보록한 숲에는 황새와 왜가리가 비가림을 하고 있나 가볍게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리고 당산나무 굵은 새끼줄에 매달린 울긋불긋한 헝겊 조각들이 빗물에 젖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쓸슬하게만 보였다.

벼랑바위 밑자락에 들붙어 가뿐 숨을 내쉬던 푸른 이끼도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온몸을 곧추세워 빗물에 흠씬 젖어들고 있었다.

앞산 자락 면소재지 앞 들녘 밭에도 단비 속에 콩하고 고구마순을 심고 있는 남정네들과 아낙네들이 비에 젖어 일을 하는 모습이 한결 분주하게 보였다.

내 친구 옥순이가 또다시 시침을 딱 떼고 쌩 돌아서 그냥 스쳐 지나면 쑥스러워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는 뭔가 좀 풀렸겠지 하는 생각에 동구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 봐도 마을 앞 방죽가에 종기형과 밉쌀맞은 종구 모습만 보였다. 결국 옥순이의 모습은 보이질 않아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을 했다. 그러다 차 시간에 늦을까 싶어 하는 수 없이 주막집 정류장으로 향했다.

일제강점기에 지었다는 약방집 빨간 양철지붕 위에 땡강땡강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느지감치 부산스런 걸음으로 논배미에 가시는지 잡화(雜貨) 점방을 하시는 염씨 아저씨가 밀짚으로 촘촘히 엮은 덕석을 몸에 걸쳐 한 손에 삽을 들고 약방 앞을 지나 건널목 오르막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염씨 아저씨가 우리 논 서마지기를 사들였기에 서로 얼굴이 마주치자 다시금 들녘 논배미 서마지기에 대한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길 건너 지서의 흐릿하게 물안개 잔뜩 서려 사무실 안이 잘 보이지 않는 유리창의 모습처럼 마음이 온통 답답하기만 했다.

거침없이 내리는 빗속에 축축하게 젖은 건널목 내리막길을 내려서며 주막집 앞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려 자전거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자전거를 집에 두고 버스를 타려고 한꺼번에 몰려 들어 다른 날보다 조금은 분잡스럽게 보였다.

그날 따라 아마도 알 듯 모를 듯한 낯선 상급생들에게 인사를 부지런히 해야만 될 것 같아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주막집 추녀 밑에는 학생들이 벽쪽으로 바짝 들어서 비를 피해 가려는 제비들 모양 움츠려 비가림을 하고 있었다. 옥순이에 대한 궁금한 마음에 주위를 한번 휙 둘러보니 유난스레 키가 커 눈에 잘 띄는 국민학교 동창생 영선이가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웃어 주었다.그런데 그 키가 큰 영선이 옆에 고목나무에 매미가 달라붙어 있듯 키 작은 옥순이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나? 하고 안심을 하면서도 갑작스레 싸늘하게 변해버린 옥순이의 태도가 그 당시 어린 내 사리 판단으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아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했다.
흔들리는 차 속에서도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애써 눈길을 피하려 드는 옥순이가 은근히 미워졌다.

비가 내린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불어나는 읍내 강경천의 물이 수문 턱을 타고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그 물소리가 버스 안까지 들려왔다. 창 너머로 읍내 건물들이 점차 커다랗게 다가서고 빗속에 저마다 우산을 쓰고 학교를 향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비가 내려 더욱 한적한 작은 읍내의 길거리를 가득 차도록 메워 도시다운 면모를 보이며 생동감 있게 보였다.

황산동 버스 종점에서 내려 황산동 사거리를 지나 강경역 광장에 닿았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몇마리 비둘기조차도 보이질 않해 그도 썰렁하게 보였다. 멀리서 바라보면 가뜩이나 더욱 작게 보이는 성구네 철도 관사 뒤쪽 추녀 끝의 짧은 벽면에 단작스럽게 달라붙어 있는 토끼집이 있었다.

그 옆으로 성구가 여기 저기서 주워 온 나무 판자 조각으로 어설프게 덧대어 지은 우리가 있었다. 그 우리 속에 들이치는 빗줄기가 싫은지 염소가 ‘메에에’ 소릴내어 울고 있었다. 늘 그맘때면 역구내(驛區內) 담을 끼고 도는 골목길을 걸어서 철도 관사 앞으로 다가서는 나를 향해 내 친구 ‘깨곰보’ 성구는 사각 유리창 너머로 손을 번쩍 들어 흔들고 나도 따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기다리고 있던 성구와 함께 학교로 향하려 집을 나서는데 그 빗속에서도 우산을 받쳐들고 건널목을 말없이 지키시는 성구 아버지의 모습이 언제나 근엄하게 보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불타는 젊음을 철도 일에 바쳤고 그도 모자라 불운으로 한쪽 다리마저 잃으셨으니 그분 나름대로는 형언키 어려운 커다란 아픔 속에 철로에 대한 애증(愛憎)도 깊으신 듯했다.

그렇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모습에 연민스러운 정이 뭉클 솟아올랐지만 내 친구 성구가 마음 아파할까? 하는 생각에 성구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 하나에도 늘 조심스럽게 그런 감정을 조절하려 애를 썼다.

그런 벅찬 우리네 삶의 마디마디에 숨어들어 시름하는 아픔들을 꿰뚫어 보듬어 주려 굵은 빗줄기는 길가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의 잎들에 부딛혀 '쏴아.쏴아" 소릴 내며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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