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날씨는 퍽이나 변덕이 심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짙은 구름과 물안개로 시야가 온통 가려져 이내 곧 한차례 질금질금 비가 내릴 것처럼 보였다. 그랬는데 한낮에는 잔뜩 흐렸던 하늘이 시침을 뚝 떼고 해맑은 모습으로 다가서 좀처럼 날씨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여름의 징표인 양 녹음이 절정을 이루는 칠월이 나에게는 통한의 달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 삶에 큰 버팀목이었던 내 아버지의 목숨을 무참히 빼앗아간 그 설움 때문이었다.
과묵한 저 산은 늘 포근함으로 그런 나를 다독여 주체할 수 없는 그 아픔까지도 말없이 쓸어 모아 달래주는 듯했다. 더불어 그렇게 한(恨)스럽게 숨을 거두신 내 아버지 영면의 터에도 햇살이 해맑게 내리쪼였다.
그렇게 마음 뿌듯하게 다가서는 산에 대한 소유권이 제도적으로는 인위적(人爲的)인 관계 설정에 의해 종구 아버지 앞으로 되어 있었다.
짙은 잿빛 구름과 운무에 가려진 아침 해가 부연 자태로 갑갑하게 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짙은 회색 물안개가 온 들녘에 자욱자욱 낮게 서렸다. 그로 인해 논배미에 애벌김을 매는 농부들의 거무스레한 모습이 마치 실루엣처럼 보였다.
마을을 정겹게 휘감아 도는 냇가엔 장맛비에 불어난 물살이 두툼하게 쌓아 올린 모래톱이 허옇게 속살을 드러냈다. 모래톱에 닿을 듯하게 거뭇거뭇한 등을 보이며 물살을 타고 오르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피라미가 여러 마리 보였다. 그러자 뒤통수에 허연 잿빛의 가는 털을 나부끼는 해오라기가 몸을 잔뜩 움츠려 구부린 목으로 흐르는 물살을 바짝 들여다보고 있었다.
두엄가엔 잎사귀가 어른 손바닥을 쫙 펼친 것처럼 커다랗게 보이는 무화과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푸릇푸릇 탱글탱글한 열매 끝에 닿은 물안개가 앙증스레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단지 가벼운 서운함이 있다면 그것은 물안개에 가려진 아침 햇살이 투명하게 비치지 못함이었다.
짙은 잿빛으로 변해가는 기울떡한 뒷간 썩은 지붕 위에는 지난 장맛비에 듬성듬성 제멋대로 오글오글 돋아난 누런 버섯들이 너저분하게 보였다. 그런 모습에 답답해지려는 마음은 버릇처럼 다시금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면 언뜻언뜻 가슴을 스치는 아픔 속에 푸른 솔 내음을 질리도록 맡으며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우두커니 머물고 싶었다.
처해진 가난 속에 그 무엇 하나 자력으로 귀결(歸結)시키지 못하는 아쉬움에 조갈스런 마음은 하루라도 빨리 자라나 어른이 되었으면 했다. 그런 마음은 역경에 처할 때마다 더욱 간절했다. 무릇 세월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운불행(時運不幸)으로 암울하기만 했던 시기였다.
살아오는 동안 때론 뼈저린 좌절감도 맛보아야만 했다. 그렇듯이 몹시도 삶이 지쳐 갈 때엔 새삼스레 어린 그 시절로 회귀(回歸)했으면 하는 동경심(憧憬心)을 수없이 자아냈다. 그런 현실적인 우려감이 발목을 잡아 각박한 의식 속에 바보스레 엉거주춤한 행동을 반복하니 설 자리를 잃은 몸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그저 제 턱에서 힘들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장사를 멈추시고 무엇이 그리도 바쁘신지 아랫동네를 밤낮으로 부지런히 드나드시던 어머니께서 읍내로 가신다고 하시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옥순이 어머니와 함께 마을과 면소재지를 잇는 서낭당 가름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멀리 벼랑바위 앞에는 종구 아버지가 읍내에 나가시려는지? 아니면 새로 짓고 있는 기와집이 잘 지어져 하루하루 멋스럽게 변해 가니 마음이 되돌아와 오랜만에 교회에 다시 나가시려나? 그 비싸다는 새하얀 모시옷을 위아래로 정갈하게 입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다 자랐는지 몇 마리 제비 새끼들이 온통 시끄럽게 지저귀는 쪽마루 위에는 희끄므레한 햇살이 찾아들려 했다.
아랫마을에 가려고 울 밖을 나섰다. 얍삽한 매미란 놈들은 안개에 젖지 않으려 몸을 잎사귀 뒤에 숨기고 있는지 울음소리를 멈췄다. 그리고 싸리 울타리 밑에는 안개에 젖은 빨간 채송화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더불어 앞산 자락 어느 곳에서 덜 자라 어린 듯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뻐꾸기가 저를 버리고 간 친 어미 대신하여 그토록 키워준 의붓어미와 헤어짐이 못내 서러워 더욱 섧게 우는가? 애처롭게 작은 여음을 남기고 있었다. 저 또한 나처럼 아픔이 송글송글 묻어나는 그리움 한 자락을 저 산자락 그 어느메의 기억 속에 남기려는 듯했다.
제 욕심껏 자라난 잎사귀들로 나뭇가지들이 무겁게 머리를 숙이고 있는 참나무가 들어찬 펑퍼짐한 언덕배기에 올랐다. 참나무의 거무스름한 등껍질을 타고 흘러내린 투명한 빛을 띤 끈끈한 진액이 동글동글하게 맺혀 있었다. 검은 등껍질의 초록빛 속에 금빛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풍뎅이가 허옇게 부풀어 오르는 나무 거품 속에 착 들러붙어 있었다. 그리고 나무 밑자락에서부터 등을 타고 오르내리는 개미들도 한몫을 하려는 듯 부산하게 움직였다.그래도 아름드리 굵은 참나무는 미동도 없이 홀로 버텨 온 세월의 흔적들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자욱했던 수연(水煙)이 서서히 걷히는 건널목 앞에 서 있으니 스쳐 지나는 열차의 진동으로 땅이 심하게 울려 내 작은 몸도 함께 그 떨림 속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여행객들이 무심코 창밖으로 내던져 버린 겉 포장지에 ‘교통부, 철도강생회’라고 인쇄된 종이가 들러붙은 얇은 나무 도시락 껍질이 기관차의 밑자락에서 이는 세찬 바람에 땅위로 잠시 떠올랐다 푹 내려앉았다. 그리고 뱅글뱅글 돌며 열차를 따라붙는 듯하더니 이내 뒤로 밀려 비스듬히 기운 철둑 아래로 힘없이 나뒹굴었다.
샛노란 해바라기가 텃밭 가장자리에 뻘쭘하게 서 있는 철길 건너 기현이네 집에는 읍내 장터에 가시려나 기현이 할아버지가 맵시 있게 손수 만드신 왕골 망태기 속에 이것저것 주섬주섬 장짐을 챙기고 계셨다.
빡빡 깍은 머리에 동글동글하게 허연 도장 부스럼이 올랐는지 서너 군데에 빨간 도장밥(인주)을 잔뜩 바른 기현이는 빈집에 홀로 있기 갑갑하여 함께 따라나서려 몇 차례 떼를 써 승락을 받았는지 사립짝 앞에 먼저 나와 장구경에 대한 기대에 가득찬 얼굴로 서 있었다.
건너편 흥남이 아저씨 내외분도 장구경도 하고 볼일도 보시려나, 아저씨는 틈새에 부지런히 모은 오리알들을 젖은 헝겊으로 닦으시고 개가를 하셔 새로 살러 오신 아주머니는 모처럼 나들이에 한껏 멋을 부리려고 애를 쓰셨나, 동동 구리무에 딱분을 잔뜩 발라 보리방아를 찧고 나오는 것처럼 허옇게 번질거리는 얼굴로 안방 문을 열고 나와 마당을 내려섰다.
바로 옆집인 흥남이 아저씨네 집에서는 키가 잘막한 아주머니가 햇살이 없어 그리 덥지도 않은 날에 거추장스레 꽃양산을 펼쳐 빙그레 돌리시며 오리알을 닦고 계신 아저씨에게 얼른 장구경을 가자고 채근대고 있었다.
동구 밖 둥구나무 아래는 읍내 장터에 나가시는 동네 남정네들과 아낙네들로 여느 날보다는 조금 분잡스럽게 보였다. 쨍쨍한 햇살이 비치는 날보다는 조금은 찌뿌듯해도 오히려 흐린 날씨가 둥구나무 밑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놀기엔 더욱 적합한 듯했다.
우중충한 흐린 날씨에 하얀 꽃망울이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개망초가 빼곡하게 들어찬 냇가 나무다리를 건너 둥구나무에 닿았다. 어른들이 앉아 계신 평상엔 감히 앉을 엄두도 못 내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넙적한 바윗돌에 앉았다.
장마 끝에 무성하게 자라난 앞들 고추밭에 풀을 뽑으러 나서려던 준섭이 아버지가 잠시 쉬어 가시려는 듯 평상에 앉으시며 뉘 들어 보라는 듯이 말씀하셨다.
“참! 볼품이라고는 한 볼탱이두 없던 밭고랭이에 떡허니 고래등 같은 늘느리 기와집이 들어서니 산모탱이가 엄청나게 살아나번지구 둔덕 날맹이가 동백기름 잔뜩 처 발라 놓은 여편네 대갈빡 모양 뻔질뻔질허게 보이네 그려.”
사는 형편이 옹색하여 감히 따라가기는커녕 흉내도 낼 수 없어 속내로는 무척이나 부러우신지 둔덕 앞 밭자리에 우뚝 선 종구네 기와집을 바라보셨다.
그러자 ‘장마다 꼴뚜기’라고 말이 딱들어 맞는 행동이 참 경망스런 순태 아저씨가 촐싹대며 준섭이 아버지 말씀을 받으셨다.
“그러게나 말일세. 있는 사람들이사 그런 거 하나 졌다 뿌셨다 하는 것이 철딱서니 없는 동네 어린것들 빠꿈살이 하듯 하는디 뭔 넘에 팔자가 달랑 쪽박 하나 차구 나와서 요러큼 지지리두 못사니 참! 세상 고르지두 못하지.”
그러자 조금 전에 피우다 말고 귀에 끼워 두었던 담배꽁초를 다시 꺼내 성냥불을 그으시다 불이 잘 붙질 않자 애매한 성냥갑을 우악스레 쭈그러트리고는 발밑에 버려 발로 밟고 옆에 앉으셔 두 분의 말씀을 듣고 계시던 상수네 아버지가 한말씀하셨다.
“그나저나 저리 큼지막허게 임금님 사는 대궐처럼 집을 지었으니 안방 지켜줄 마누라는 있어야 궁합이 맞을건디. 동섭이가 동네 고샅길 오다가다 어쩌다 만나기라두 헐라치면 내 주둥박에서 그런 말 튀어나올까 봐 그러는지 뱀 꼬랑지 사리듯 후딱 먼저 가번져서 뭐라 말 한자리 못 건네보구 마니, 도대체 그놈의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은께. 솔직허게 요즘은 은근슬쩍 궁금해지기두 허는구먼 그려.”
그러자 그런대로 동네에서 근대적 생각을 갖고 사시는 경수 아저씨가 말을 이으셨다.
“아따! 성님들두 할 일들이 그리 없으신가 걱정두 팔자시네유. 막말루다가 저 잘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져 본들 뭐 헐 것이구, 어디서 양귀비 뒷다리 같은 계집이라두 데려다 살어 본들 우리헌테 잔치랍시구 무신 콩고물 하나라두 떨어지는감유? 어림 반 푼 어치두 없는 일이지유. 말이사 바른말이지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던감유? 앉은 자리 풀 한 포기 나지두 않을 만큼 피눈물두 없는 사람들이라 우리들헌티는 말짱 쓰잘떼기없는 일이지유. 그러니 어차피 타고난 팔자머리 대로 사는 거 뭐 부러워하구 말 것두 없이 그저 그려러니 허구 사는 게 제일 뱃속 편치유 뭐.”
말을 마치신 경수 아저싸가 논배미 벼 이삭 사이에 숨어 자라나는 피를 뽑으시려는지 양손에 헝겊으로 만든 토시를 끼시며 평상에서 일어나 나무다리쪽으로 걸어가셨다.
그러자 방앗간 순태 아저씨가 조금은 비위가 상하신 듯 툴툴대는 어투로 잠깐 동안의 침묵을 깨시며 말씀을 하셨다.
“헌디 저 동상은 다 좋은디 누가 뭔 말만 헐라치면 말이 끝내기두 전에 우둥갱이를 자라 모가지 치듯 탁 짤라 내버리니 어떤 때는 사람 무안허게 만들어 부야가 치밀어 오르더라구.”
그때 늘 바른말 잘하시는 우현이 아버지가 한말씀 거드셨다.
“이 사람아. 그 동상이 허구 간 말 내가 듣기로는 하나두 틀린 디 없네 그려 뭐시냐 말이 나와서 망정이지 너나 헐 것 없이 타고난 복살머리들 지지리두 없어 힘든 세상 만난 죄루 그러려니 허면서 참고 살아 볼라치닌께 그렇지 그 사람들 허는 짓이 어디 사람이 할 짓이던감? 넘이사 어려워 죽든 말든 지간에 악착같이 장리변(長利邊) 이자 챙기기 바쁘고 좀 먹구 사는 티를 낼라구 그러는 건지 벌건 대낮부터 좁은 동네 고샅이 어디 제집 안방인가 그 뭐시냐 축음긴가는 돼지 멱따는 소리만큼 오살맞게 크게 틀어 놓구 지랄들이니 한참 사리 구분이 명석한 젊은 사람들 눈에는 그 꼴 저 꼴이 눈에 들것는감.”
그렇게 우현이 아버지께서 말씀을 끝마치며 이내 마땅찮으신지 혀를 끌끌차시자 그새를 못 참고 방앗간 일하시는 순태 아저씨가 또다시 나섰다.
“허긴 그리 따지구 보닌께 그 동상 말두 일리가 있는 것 같기는 허네유. 아,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구. 내가 입 열구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동네에서 내로라허구 사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인디 차마! 내가 누구라구 탁 터놓구 말은 못하지만 방아라두 찔라구 오면 자기 몰래 내가 어디다 쌀 한 주먹이라두 빼돌리나 싶어 그놈의 발동기 소리 다 끝날 때까장 오줌 누러두 안 가구 옆에 찰싹 붙어 밉살스레 뭐라구 한 마디 해주고 싶어 말이 턱밑까장 차올라두 말을 못하구 살려니 나두 오장육부가 상하기는 매일반이지유 뭐.”
한동안 숨 가쁘게 말을 마치신 순태 아저씨가 무척이나 아니꼬운 듯이 ‘켁’ 하고 큰소리를 내어 가래침을 땅바닥에 세게 뱉으셨다. 그러자 가래침이 맨질맨질한 돌팍에 희멀겋게 달라붙어 볼썽사납자 평소에 불만이 많았던 그분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발로 야물딱지게 싹싹 문대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