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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39 조회 : 1,200




봉곳하게 솟아오른 산봉우리를 가볍게 넘어선 아침 해가 산자락을 속속들이 누벼 찬란한 빛을 다사롭게 남기며 산 밑을 향해 홀가분하게 내려섰다. 산바람은 짙디짙기만 한 산 내음을 가득 담고 햇살보다 먼저 저만큼 앞을 서 여유 있게 들녘으로 발걸음 했다.

동쪽 저 멀리 까마득하게 바라보이는 산릉선이 하늘과 맞닿은 듯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의미 깊은 그리움들이 하나둘씩 옹골지게 자릴 잡고 있었다.

산자락 군데군데를 맴돌아 실실이 흩어지는 운무 속에 촉촉한 털끝을 부리로 매무새 있게 가다듬는 산새들의 해맑은 울음소리가 청아하기 더없는 자연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가 굽어드는 계곡으로 은은하게 펴져나 귓가에 미음(美音)으로 감미롭게 들려왔다.

그리고 뒤척이는 아침 해는 너른 앞 들녘에 내려서려나 이저리 두리번거렸다.

뒤뜰 밤나무에는 연녹색 탐스런 둥그런 밤송이들이 가느스름한 이파리 사이로 점점 눈에 띄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립짝 앞 텃밭엔 물이 잘 오른 기다란 오이가 줄기 끝에 싱싱하게 매달렸다. 그에 뒤질 새라 진자줏빛 가지들도 끄트머리가 조금씩 굽은 몸을 들어 성근 햇살에 등을 그을리고 있었다. 옆 자락 원두막 밭에는 크기가 배구공만한 크기로 자란 수박들이 연회색 빛이 도는 푸른 잎사귀 사이로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냈다.

작열하는 태양은 온 대지를 뜨거운 열기로 달궈 성하의 계절임을 한 번 더 표출하는 듯했다. 그런 오묘한 대자연 속의 오붓한 공간에서 살아 숨을 쉬고 있는 그 자체에 그저 만족하며 살려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어머니와 우리 식구들이 늘 처해진 삶이 빈약할지라도 아무런 탈 없이 오래도록 살길 바랐다.

성글게 자리를 잡아 가는 고구마 잎들에 아침 이슬이 가득가득 들어찼다. 밭두렁 위를 가뿐하게 나는 산새들은 아침을 찬미하듯 밭고랑 위를 낮은 자세로 여유롭게 날고 있었다.

저 산자락에 묵묵히 서 있는 숱한 나무들이 세월 따라 옹골차게 몸을 불려 나이테를 이루듯이 굴곡진 내 삶 또한 강한 면모로 변해갈 것임에 틀림없었다. 살아오는 동안 애틋하게 남겨진 내 삶의 기억들이 때론 가슴 가득 울렁이는 작은 희열로 다가섰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톱날에 절삭(切削)되는 나무들이 터트리는 울음처럼 가슴 아리도록 힘든 아픔에 남모르게 흐느꼈던 지난 일들도 숱하게 있었다.

이젠 두 발로 일어서 뒤척거리며 여린 날갯짓도 제법 하는 처마 밑 둥지 안의 어린 제비 새끼들이 눈을 뜨자마자 제 몸무게만큼은 배를 채우려 어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배고픈 울음소리로 마냥 보챘다. 그러자 그런 모습이 바라보기 그도 안쓰러운지 어린 새끼들을 위해 어미는 둥지를 청소하듯 뒤척이며 어린 새끼들이 남긴 배설물을 입에 물고 먼 길로 먹이 사냥을 나서고 있었다.

마치! 내 어머니가 어린 나를 위해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아 힘든 장삿길을 나서는 것처럼...

순덕이 어머니에게 여름방학을 하는 날이라 종업식만 마치고 오전 일찍 집에 돌아온다는 말씀을 미리 못 드려 내막을 모르시고 정성 들여 싸 놓으신 도시락을 쪽마루 위에 그대로 놔두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먹이를 찾는 닭들을 쫓으며 잘 뛰어노는 순덕이를 두 손으로 불끈 들어올렸다. 가슴에 차오르는 오누이의 깊은 정만큼 끌어안아 주려 하니 그런 내 속도 모르는지 아주 불편한 듯 몸을 엇비듬히 틀어 품에서 얼른 빠져나가려 했다.

나보다 한 삼 일 먼저 방학을 한 듯 옥순이의 모습이 동구 밖 어느 곳에도 보이질 않았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친구임에는 분명하니 왠지 모르게 조금은 허전했다.

목 긴 억새풀들이 바람에 몸을 비스듬히 뉘려 하는 둔덕마루에 올랐다. 늘 정답게만 바라보이는 앞산이 눈에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서 이제는 눈을 감고 있어도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기억될 것만 같아 세월이 흐른 만큼은 더욱 살갑게 가까워진 듯했다.

녹색 물결을 장황하게 이루는 앞 들녘 벼 이삭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뤄 잠시 마음을 빼앗기려는데 어디선가? ‘휘이이익 휘이이익’하는 소리가 들려와 머릴 돌려 바라보았다. 진녹색 등에 앞가슴 부분이 온통 하얗게 생긴 참새보다 더 작은 휘파람새가 눈에 띠었다. 봄부터 여름까지 쉴 새 없이 먹이를 물어 날라 애지중지 키워 놓은 어린 새끼를 구렁이에게 그만 먹잇감으로 빼앗겼나, 계곡 바윗등을 이저리 옮겨 가며 맞바라보이는 우거진 풀숲 그 어디쯤 몰래 숨겨 놓은 둥지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애절하게 울고 있어 조금은 짠하게 느껴졌다.

가파른 계곡이라 그런지 물 흐름이 빨라 장맛비에 제법 물이 불어나 실하게 물소리를 내던 산 아래 계곡물이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졸졸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지난 장맛비에 불어난 물살에 떠밀려온 것인지? 썩은 나무둥치들이 군데군데 개울가 흙바닥에 깊숙이 박혀 있어 바라보기에 조금은 흉물스러웠다. 그리고 물살에 떠내려 온 모래들이 물에 씻겨 듬성듬성 하얀 모래톱을 이루었다.

산을 깎아 만들어 굽이진 계단식 밭에는 제법 알이 영글어 가는 옥수수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쑥쑥 곧게 자라나는 수숫대가 산바람에 서로 몸을 부대껴 이파리들이 간지러워 내는 정감 있는 소리가 ‘사그락사그락’ 들려왔다.

서낭당 언덕배기에 오르려 둔덕길을 내려서려는데 눈에 익은 듯 모습이 나보다는 한참을 앞서 걸어가기에 자세히 바라보았다. 병막 터에 사는 정섭이 형이 어젯밤에 말한 대로 읍내 경찰서에 종구 아버지를 고소하러 가는지 바쁜 걸음을 했다.

종구네 새집 터에는 집이 커서 그런지 여러 개의 방 문짝을 짜고 있는 목수들과 방구들(온돌)을 놓고 있는 토수들이 일을 서두르시나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은 사람들 발길이 그리 많이 닿질 않아 덜 다져진 듯 푸석하게 보이는 널따란 마당에 서 계시는 종구 아버지는 주막집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정섭이 형을 뚫어지게 바라보셨다.

어젯밤 정섭이 형이 남긴 마지막 말이 무심코 한 말이 아닌 듯싶어 조금은 신경이 쓰이시는지 검정 새 기왓장이 올린 기다란 흙담 너머로 뻘쭘하게 바라보시다 밭둑길을 걸어가던 나와 슬쩍 눈이 마주치자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 그러는지? 체면을 세우려는가? 겸연쩍게 냅다 헛기침을 한번 하시며 방구들을 놓고 있는 토수들이 흙을 이기고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리셨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같은 반 아이들처럼 기분이 들뜬 것은 아니지만 거듭거듭 시간에 쫓기는 아침 일과로부터 벗어나 느슨해질 것 같은 여유로움에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그보다는 우선 체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여름방학을 위한 종업식 때문에 오전에 학교 수업이 끝나 책가방을 안 들고 학교에 가니 몸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늦어진 시간에 버스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에 서둘러 뛰어가려니 운동화 속의 발에 땀이 차올라 운동화 바닥에 발바닥이 끈적끈적 들러붙으려 했다.

흙먼지 가득 이는 신작로 양쪽의 좁은 도랑에 흐르는 물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주막집 버스 정류장에 닿았다. 나보다 먼저 도착하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정섭이 형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정섭이 형은 종구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아직도 덜 풀린 듯 읍내에 있는 대서방(代書房)에서 고소장을 써서 경찰서에 정식으로 고소를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런 탓에 어젯밤부터 시작된 두 집 사이의 감정이 좀처럼 누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검푸른 담쟁이넝쿨들이 붉은 벽돌 건물 벽면 끝까지 타고 올라 지붕까지 뒤덮으려 하는 읍내 상업고등학교 건물이 마냥 예스럽기만 했다. 엊저녁 해질 무렵 선혈 같은 붉은빛으로 물들였던 노을이 둑 너머 스러져가던 그곳 읍네 옥녀봉 봉화재 언덕마루가 바로 눈앞에 확연하게 바라보였다.

버스가 남교동 임시 정류장에 닿자 정섭이 형이 버스에서 먼저 내려 대서방으로 가려고 경찰서쪽으로 걸어갔다. 읍내 대로에는 국회의원 선거운동의 차량이 보였다. 아침부터 그 무엇을 또 누굴 위해 그리 잘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제발 미역국 안 먹게 한 표 보태달라고 애걸을 하는지? 귀에 따갑게 들릴 정도로 마이크를 붙들고 열심히 역설(力說)하면서 서행으로 소읍의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근 한 달여를 끌어 오며 지루했던 선거의 투표일이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와 종반(終盤)의 열기를 반영하는 듯했다.

역사 가장자리를 끼고 도는 골목길의 측백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높다란 급수탑 앞에는 엄청난 크기의 육중한 쇠바퀴가 부담스럽게 보이는 증기기관차가 급수를 하고 있었다. 기관차의 화덕에는 불그레하게 달아오른 석탄 덩이들이 무더운 날씨를 더욱 부채질하는 듯했다.
그때 남쪽에서 달려온 또 다른 열차의 역사 진입을 알리는 코맹맹이 누나의 안내 방송이 역구내로 울려 퍼졌다. 그러자 채운산 산자락에 기적소리를 남기며 열차는 플랫폼을 향해 속도를 낮춰 서서히 들어서고 있었다.

건널목에는 성구가 잘 따라나서려 하질 않는 염소의 목줄을 바짝 거머쥐고 끌면서 철둑 밑 논배미로 내려서고 있었다. 내가 먼저 소리쳐 성구 이름을 부르며 손을 높이 흔들자 내 목소리를 들은 성구도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관사의 부엌문을 열고 마루에 앉아 성구를 기다리는데 집 앞에 있는 간장 공장에 출근을 하려고 방을 나서던 성구 누나가 얼굴에 웃음을 띠며 부엌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찬장 속에서 조금은 덜 익어 보이는 토마토 한 알을 건네주어 손에 들고 엉거주춤하는데 성자 누나는 서둘러 공장으로 출근을 하려 집을 나섰다.

염소를 매어 놓으려 논배미로 갔던 성구가 부엌으로 들어서며 나보고 들어 보라는 듯이 말을 했다.

“워매! 쌍놈에 염소가 뭔 놈에 고집이 무지막허게 쎈지 인자는 제법 컸다구 안 끌려갈라구 앞발모가지를 쭉 뻗어부리면 절때루 안 끌려오구 어쩌다가 대갈빡이라두 흔들어 제끼면 되려 내가 뎁다 끌려간다닌께 그놈의 염소 새끼 매놀라다 공연히 손만 버렸네, 에이.”

투덜거리며 물두멍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서 손을 씻으며 나를 쳐다보고는 싱겁게 피식 웃었다.

학교 교문 앞 연못 동산에 운치 있게 자랄 대로 자라 땅 끝에 닿을락 말락하는 흐드러진 버드나무에 언제 날아와 자리를 잡았는지 때까치 한 쌍이 둥지를 틀었나, 온통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니 운동장 스탠드 가에 줄 서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의 널따란 잎사귀 뒤에 몸을 숨긴 매미들이 아금박스럽게 울어댔다.

동네 어른들 말씀에 ‘강경 매미가 은진 매미보다 울대 힘이 세다.’고 하시더니 어찌나 세게 울어대는지 귀가 얼얼하여 내가 사는 산골짝의 매미 울음소리는 그래도 양반인 듯싶었다.

교실 안 분위기는 여름방학에 대한 기대감과 지루한 수업으로부터 일시라도 해방이 되는 듯해 자유로움에 온통 들떠 있었다. 사는 형편이 좀 여유로운 아이들은 벌써부터 멀리 대도시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 갈 생각들을 하고 별 볼일 없는 성구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내 눈치를 슬쩍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야, 상민아! 우리 이번 여름방학에는 그냥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무지허게 답답헐틴게 너랑 나랑 둘이서 기차 타구 어디루 훌러덩 가 볼래?”

무슨 생각을 하는 듯 주근깨가 득실득실한 작은 얼굴에 눈을 깜빡거리며 진지하게 말을 하는 성구를 바라보며 부정적인 어투로 말을 했다.

“야! 기차를 탈라면 돈이 있어야 허는디. 어디루 가자는 건지는 몰러두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다구 나더러 가자구 그러냐?”

그러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구가 성질 급한 값을 하는지 얼른 내 말을 받아쳤다.

“음 그건 걱정을 안혀두 내가 다 해결하는 방도가 있어 원칙대루는 차표 없이는 안되는 일이지만 내가 우리 아버지가 철도 공무원 신분증을 가지구 열차를 타고 가다 열차에서 차장이나 여객전무가 차표 검사를 하면 그때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주면서 가족이라구 말을 잘하면 그냥 봐 주닌께 너랑 나랑 둘 정도는 그냥 타구 가도 된다구 그리구 기차 타구 가면서 김밥이랑 사이다 사 먹는 건 내가 병 팔아가지구 모아 논 돈으로 쓸테닌께 너는 부랄 두 쪽만 차고 오면 되닌께 잘 생각혀 보구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우리집으루 와라 알었지?”

갑작스런 제안에 그저 멍하니 성구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데 성구가 가볍게 팔로 내 옆구리를 치며 여유롭게 웃었다. 사실 눈만 뜨고 나면 눈으로 보는 것이 증기기관차고 귀로 듣는 것이 기적 소리지만 실제로 기차를 직접 타 본 것은 국민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돌아가신 내 아버지 두 다리를 수술하려고 대전에 있는 큰 병원에 갔을 때 열차를 타 본 것이 세상 태어나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국민학교 때 사회시간에 책을 펼쳐 놓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말로만 들었고 나름대로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과연 얼마만큼이나 큰지 직접 느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깨곰보’ 영원한 내 친구 성구의 말처럼 비록 가진 돈이 없어 아무 것도 못 사 먹어 배가 좀 고파 오면 꾹 참고서라도 그날만큼은 모든 잡다한 상념들을 버리듯 모다 훌훌 털고 내 친구 성구를 말벗으로 삼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얼마큼 달려가다 조금 지친 듯 무료해지면 싱그러운 풀 향기 가득 담고 들녘을 가로질러 찾아오는 바람이 낮선 방문객의 발걸음을 꺼리지 않고 인적(人跡) 없어 더욱 고적하기만한 작은 간이역에 잠시 내려 눈앞에 다가서는 또 다른 산야를 잠시 동안이라도 마음 편히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다 한낮 햇살 등 언저리 뜨겁게 달구면 더위를 피하려 그라도 살갑게 받아 주는 나무 그늘 밑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그리고 넉넉할 만큼 쉬어 가는 완행열차에 또다시 몸을 싫고 그리 또 달려가노라면 늘 꿈꿔 왔던 그 어느 기점에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조심스런 기대감에 마음을 설레며 끝까지 달려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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