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사방이 파랗기만 한 하늘에 뭉게구름 두어 덩이가 한가로이 유회(遊回)를 하고 있었다. 칠월의 끝머리 한낮 해가 열렬(熱烈)한 자태로 중천에 또렷하게 떠올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을 발산(發散)했다.
작열(灼熱)하는 태양은 하늘 한 부분을 하얗게 탈색시켜 잠식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여세로 후끈후끈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뜨거운 지열에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입 안이 온통 타들어 갔다. 그리고 등판까지 흘러내리는 땀에 반팔 소매 하얀 교복 윗도리 안의 러닝셔츠가 몸통에 끈적끈적 들붙었다.
담임선생님이 모두에게 나눠 주시는 생활통지표에서 채 마르지도 않은 듯 기름 냄새가 물씬 묻어나 아마도 읍내 인쇄소에서 갓 인쇄를 해온 듯싶었다. 통지표를 받아들기 전부터 몹시도 두근거리던 마음 속 감정의 폭이 컸던지 통지표를 받아든 손끝이 가볍게 떨리기도 하였다.
지난번에 실시한 중간고사의 성적을 반영하여 각 과목의 성적과 학급 및 학년 석차를 정한 듯싶은 숫자들이 깔끔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와 세심하게 살펴보는데 옆자리에서 성적표를 살펴보고 있던 성구가 화가 나는 듯 투덜거렸다.
“참! 웃기고 있네. 영어 수학이야 워낙에 성적이 딸려 시험을 엉망진창으로 쳤으닌께 성적이 안 좋은 건 어쩔 수 없다구 허지만서루 실습 도구 안 샀다구 말대가리(생물 선생님 별명)헌티 밉게 보여 찍혔나 점수가 영어 수학보담두 휠씬 안 나와 번졌네, 에이 씨.”
태권도 인가를 배운답시고 게을리 한 공부 탓은 전혀 하질 않았다. 그러면서 무언가 영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삐죽거려 혼잣말처럼 지껄이고 있었다. 그런 소리를 한 귀로 들으며 성적표를 바라보니 나 역시도 생물 점수는 마음에 착 와 닿질 못하게 어정쩡한 점수를 받아 과목 중에 제일 부진했던 수학에 뒤를 이어 겨우 중위권의 성적을 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방금 들었던 성구 말에 변덕스럽게 심적인 동요를 일으켰다.
너나 할 것 없이 지극히 어렵기만 했던 그 시절, 비단 나와 성구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급우들은 그런 열악한 교육 환경을 면치 못하였으니 부족한 학습 도구가 비단 생물 시간에 필요한 실습용 해부 도구뿐만이 아니라 더러는 보조 참고서 격인 영한사전과 국어사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수업을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탓에 빈부의 차이는 그런 작은 것 하나부터 거리감을 주었다.
읍내 한복판에 떡 벌어지게 상권의 노른자를 차지하고 사는 몇몇 아이들과 비록 동떨어진 시골 마을에 살지언정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땅덩어리가 많은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비교적 윤택한 삶을 살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터놓고 말도 못하는 빈약한 우리들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생활이 넉넉한 읍내 아이들이 군데군데 웅성거리고 있어 저들 나름대로 만족하는 듯 여유로움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의 분위기에 휩싸여 살아가야만 하는 내 처지가 너무도 초라하고 연약하게만 보여 그 모두를 운명으로 치부하여 받아들이기엔 강한 거부감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한낮인데도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단작스럽게 비치는 교실 가장자리를 빼놓고는 응달이 가득 들어차 어둑하여 침울하기만 보이는 교실과 복도처럼 무엇인지 모를 무거움이 마음을 착 가라앉게 했다.
그래도 남아 있는 감성의 증폭으로 다시금 울렁대는 마음은 작은 돌멩이 하나만 던지면 금새 밑바닥부터 부옇게 솟아올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흙탕물처럼 내면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내 아픔의 의식들이 작은 가슴을 헤집듯 들쑤셔 가슴의 중간치를 아리게 했다.
그러면서도 한쪽으로는 너무나 긴장했던 지난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의 끈기 어린 향학열(向學熱)이 오매불망(寤寐不忘) 바라고 원하였던 중학교 합격이라는 목적을 이뤄 조금은 들떠 있었다. 그런 탓에 느슨해진 몸과 마음이 정신적 해이를 불러일으켜 방심한 탓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얻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나태함이 오늘의 냉엄한 결과를 빚어냈나 하는 물음을 내 자신에게 몇 차례나 반복했다.
그렇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저마다의 느낌들을 안고 방학을 맞이했다. 푸르게 잘 자란 잔디밭에 햇살에 녹아내릴 듯 이글거리는 백엽상이 단출하게 서 있는 교정을 벗어나 서너 명 씩 교문 밖으로 빠져나와 각자 집으로 향했다.
높다랗게 잔뜩 치솟은 미루나무 끝머리 너머로 바라보이는 채운산 산자락 밑에 자리한 간장공장 높다란 빨간 벽돌의 굴뚝이 터져 나가도록 시커먼 연기가 한 점 바람 불지 않는 하늘로 뭉클뭉클하게 솟아올랐다. 그런 모습이 가뜩이나 후덥지근하여 짜증이 나는 더위를 부추기는 듯했다.
읍내 중심부를 향하여 훤하게 뚫린 신작로엔 한낮 햇살에 뜨거울 만큼 등이 달아오른 올망졸망한 자갈들이 널찍하게 깔려 있었다. 두텁지도 못한 검정색 운동화 밑창에 자갈들이 닿을 때마다 가뜩이나 뜨거운 지열로 욱신거리는 발바닥에 작은 통증을 주었다.
도로 양쪽 논배미에는 이제 머지않아 벼 줄기 끝머리에 하얀 벼꽃을 피우려나, 정연한 모습으로 들어차 있는 벼들이 몸집을 서서히 불려가고 다보록하게 자라난 줄기와 이파리들로 논배미 밑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젓갈전으로 들어서는 길모퉁이 자전거포 옆에 있는 참기름집 검정색 양철지붕이 타오르는 햇살에 마냥 이글거렸다. 찌는 더위도 모르는지 몇 마리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지붕 위로 날아오는 듯싶더니 기름집 앞마당에 흩뿌려진 깻묵 부스러기를 찾으려는지 이내 잽싼 날갯짓으로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몸에 두른 털빛을 햇살에 영롱하게 비추고 빨간 두 다리를 앙증맞게 곧추세워 오가는 사람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구구대고 있었다.
조금 우묵한 골목 안 제재소에서는 ‘찰그닥 찰그닥’ 세차게 돌아가는 모터에 감긴 피대가 커다랗게 둥근 쇠바퀴의 뺨을 때리듯 들려왔다. ‘쌔애앵 쌩 쌔앵’ 꽤나 덩치가 커 보이는 큰 원목이 예리한 톱날에 베어지느라 단단한 나무에 부딪는 쇳소리가 골목길 밖까지 들렸다. 공터 앞을 지나 성구네 집에 닿으니 성구가 나에게 다시 한 번 다짐을 하듯 말을 했다.
“야! 상민아. 내가 아까 학교에서 애기한 거 있잖냐? 이번 방학에 기차 타고 여행 가자고 한 것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냐? 뭐, 별루 갈 맘 없으면 역부러 갈라구는 허지마.”
가진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내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듯 유연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만큼 성구 역시도 속마음은 친구인 나와 함께 어디론가 가고 싶은 눈빛이 가득 들어차 보였다.
어찌 보면 그러한 마음들은 쪼들리는 삶 속에서 이러저러하지도 못해 갈피를 못 잡고 늘 주저하며 살아가기에 눈에 띌 정도의 변화가 있을 리 없어 그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답답함으로부터 잠시라도 탈피하고 싶은 생각인 것 같았다.
네모반듯하게 조각난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공장 터로 텅 빈 논바닥에 기다랗게 줄을 매어 놓은 염소도 더위에 지쳤는지 철도 부지에 다복하게 늘어 서 있는 댑싸리 그늘 밑으로 피해 땅바닥에 엎드려 앞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직은 먼 곳에서 달려오고 있는지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기적소리에 신경이 좀 쓰이는가? 양쪽으로 짤막하게 뿔이 돋아난 머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작달막한 관사 유리창을 비집고 들어서는 햇살이 나무판자로 좁다랗게 이어진 복도의 마루를 뜨겁게 달궈 발바닥에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다.
오전 내 더위를 참은 탓인지 목마름에 갈증이 나 입 안이 온통 건조하다 못해 껄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나무 꼬챙이에 동그랗게 얼어 달라붙은 팥이 군데군데 섞여 있는 연한 밤색의 시원한 ‘아이스케키’가 그렇게나 먹고 싶었다.
검정 콜타르칠이 햇살에 끈적이게 녹아내리는 나무 전봇대가 한낮 더위에 억지로 졸음을 참고 있는 한적한 역사의 앞마당에 닿았다. 대합실 안에도 찜통더위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그런지 겨우 두서너 사람 정도 보여 왠지 허전하기만 했다. 대합실 유리창 밖으로 화물칸을 이동시키려나, 열차의 끝 모서리에 매달려 파란색 깃발을 흔들고 있는 철도원의 모습이 바라보일 뿐이었다.
읍내 버스 정류장에 닿았다. 출발을 하려고 엔진에 시동을 걸어 부릉부릉 몸을 떨고 있는 버스에 올라타 햇볕이 드는 유리창 쪽 자리를 피해 반대편 응달진 쪽의 자리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출발한 버스가 로터리를 굽어 돌면 내가 앉아 있던 응달진 자리가 다시 양지쪽으로 변할 것 같아 이럴까 저럴까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내 등을 툭 치며 웃고 있어 머리를 돌려 바라보니 읍내에 볼일을 보러 나오셨는지 고추 농사를 많이 지시는 준섭이 아버지가 반가우신 듯 나를 보며 웃고 계셨다.
마을에서 불과 시오 리 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여느 때 동네에서 가볍게 만나는 것보다 읍내에서 우연찮게 만나고 보니 더욱 반갑기만 했다. 그래서 향리(鄕里) 사람에 대한 정을 더욱 실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읍내 중간 지점 소화다리 못 미쳐 얼음과자 공장에는 빙과 기계의 바퀴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창문 유리창을 통해 버스 안까지 들려올 정도로 요란했다. 빙과 공장 출입문 앞에는 기다란 대나무 장대에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진청색 바탕에 흰색으로 얼음빙(氷)자를 쓴 깃발이 세로 모양으로 달라붙어 바람이 불지 않는 탓인지 느슨하게 처져 있었다.
강경천 수문 다리를 지나 버스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힘겹게 브레이크를 잡으며 ‘끼익끽’ 소리를 연신 몇 차례 내며 내려서고 있었다.
너른 들녘 푸른 논배미에는 심심찮게 내려앉은 황새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 염병을 할 놈의 황새새끼는 멀쩡헌 냇둑은 기냥 냅싸두구 하필이면 논바닥에 내려앉아 저 지랄병을 하구 싸댕기는지 모르겄네. 아직까장은 괜찮지만 이제 을매 안 있으면 나락꽃이 필 건디 저 지랄로 온 사방간데를 돌아댕겨 꽃이라두 떨어트리면 알갱이두 못 맺구 쭉쟁이만 남는디.”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준섭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들으라는 말인지 아니면 그냥 혼자 하시는 말인지 구분키 어렵게 연방(連方) 못마땅하신 표정으로 말씀을 하고 계셨다.
메마를 대로 메마른 신작로 위에 깔려 있던 흙먼지가 달려가는 버스가 일으키는 바람에 다보록하게 일어나 차창 밖으로 허옇게 번져났다. 그리고 버스 꽁무니 뒤에 찰싹 달라붙듯 흙먼지가 물씬물씬 솟아올라 그렇게나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들도 잠시 동안이라도 딱 숨을 죽인 듯 조용하기만 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스쳐 지나지 못한다.’는 말처럼 버스에서 내리신 준섭이 아버지가 나를 향해 먼저 가라고 하시며 목이 타셨는지 막걸리라도 한 사발 드시려나, 정류장 점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숱한 면내 사람들의 오고 가는 발에 밟혀 땅거죽이 반들반들한 면 소재지로 향하는 큰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아침나절에 읍네 대서방에 고소장을 쓰러 갔던 정섭이 형의 모습이 보였다. 집안 볼일을 다 보고 일터가 있는 대전으로 올라가려고 버스를 타러 주막집 정류장으로 가는지 앞에서 걸어오다 나와 가까이 맞닥뜨리자 흔연(欣然)하게 웃으며 갈 길이 바쁜 듯 급히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미루어 짐작하건데 어젯밤 동구 밖 둥구나무 밑에서 종구 아버지와 정섭이 형,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심한 말다툼의 결말이 그리 좋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