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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45 조회 : 1,170




팔월 초순 한여름 더위는 불어오는 바람 한 점 없이 참으로 견뎌내기 힘들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다.

눈앞에 빤히 바라보이는 산자락은 땅 밑으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열기로 온통 지글거렸다. 그런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담숙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아 듬직하게 보이는 저 산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숱한 질문을 거듭했다. 그러나 끝을 맺지도 못한 이야기가 산릉선 너머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런 탓에 마음 애틋해도 스스로 추스를 수밖에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가파른 고갯길을 쉬어 가던 구름이 넌지시 가리키는 그 어드메쯤에도 한 가닥 짙은 외로움이 도사려 있었다. 그러나 산이 늘 나와 함께 머물러 있었기에 난 외롭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외롭지 않으려 마음 달래는 만큼 아파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산등성과 맞닿은 그 하늘에 늘 잔잔하게 머무는 애잔한 그리움은 그 끝조차 가늠할 수 없는 길고도 먼 삶의 여정에 들붙어 함께 가는 것 같았다.

먼동이 터 오면 푸석한 잠에서 깨어나 내 주위를 형성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숱한 조우를 해야만 하니 만나는 사람들 중에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살갑기만 했다.

고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크고 작은 시비를 낳아 증오하고 원망을 하면서 살지언정 결국에는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이 또한 축소된 사회의 한 부분인 듯싶었다.

마을을 형성하는 일원으로써 처해진 현실이 내 사상과 주관에 반이된다 할지라도 적절히 타협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 타협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하나 둘 터득할 수 있었다.

한편 마을에서는 종구 아버지와 정섭이 형네 사이에 산 문제로 얽혀 있는 일이 일부 생각이 깊은 동네 어른들의 기우처럼 어렵게 되어 가는 듯싶었다. 더욱이 아침나절에 지서로 연행되었던 종구 아버지가 좀처럼 마을로 돌아 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런 우려가 점점 더해졌다.

한때는 종구 아버지가 온통 거들먹거리며 지서 문턱이 닳게 스스럼없이 들락거렸다. 그런데 변화되어 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면소재지 지서에 근무하는 지서장을 위시하여 일반 순경들까지도 모두 다 새로운 얼굴로 자리바꿈을 했다.
그로 인해 서로의 관계가 서먹하여 퍽이나 거리감을 느낄 정도로 소원(疏遠)해졌다. 그래도 그쯤에서 일이 잘 마무리 될 것이라는 대다수 동네사람들의 생각이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한참 동안을 지서에 머무는 듯싶던 종구네 아버지가 읍내 경찰서까지 호송(護送)을 담당한 순경 한 명과 함께 지서 문밖을 나서고 있었다. 그러자 그 누구보다도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은 종구였다. 그런 종구가 자기 아버지와 잠시 동안 뭐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싶더니 자전거를 타고 이내 교회로 향했다.

지난해 여름 갑작스런 병고로 어머니를 여의고 외롭게 살아가는 처지에 정신적으로 큰 버팀목이 된 교회 여전도사님을 만나러 가는 것 같이 보였다. 종구가 검푸른 감나무 가지가 담장을 넘어 뻗어날 대로 뻗어나 낮게 휘어진 골목길로 자전거를 몰며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저서 앞에서 한참 동안을 기다리던 동근이 아버지는 이저리도 못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미루나무 그늘 밑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종구 아버지는 지열로 기차 레일이 마냥 이글이글하는 철로 건널목을 건너 읍내 경찰서로 가려는 듯 힘이 빠지신 모습으로 주막집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어린 시야에 비쳐 오는 그런 모습들이 달갑지만은 않아 가만히 앉아 있어도 후끈거리는 더위만큼 답답하기만 했다.

지난날 자유당 전성기 때 시골 작은 면내에서도 ‘내가 나’라고 하는 듯 위세를 떨치며 걸맞지 않게 온 사방이 들리도록 큰 기침을 하고 다녀 권세(權勢)가 그리도 당당했던 사람들이 변화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두 사람씩 서서히 옛 모습들을 감춰 가는 것에 대하여 사리구별이 더딜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나이의 사고(思考)로도 그 사람들의 풀죽은 모습에서 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힘없이 읍내 경찰서로 가는 종구네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 초라하게 보였다. 그 동안 종구 아버지의 기세에 눌려 슬슬 눈치나 보며 살던 동네 사람들이 그동안 꾹 참고 있었던 말들을 한마디씩 하여 역시 동네 거물(?)답게 숱한 사람들의 입질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조금 잠잠해지는 듯싶던 둥구나무 아래가 동네 어른들에 대화의 장으로 다시금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때 동네 고샅길을 빠져 나오는 기성이 형의 모습이 보여 너무도 오랜만에 얼굴을 대하는지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엊저녁 느지막이 마을로 돌아온 기성이 형이 멀리 수원에 홀로 두고 온 정희누나와 새로 태어난 아기가 걱정이 되어 겨우 하룻밤을 묵고 서둘러 떠나려는 것 같이 보였다.

기성이 형의 속마음으로는 그다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정희 누나와의 혼인문제로 종구 아버지와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보고 싶은 마음도 다소는 있을 법한데 작금(昨今)의 종구네 집안 사정이 그렇다 보니 아예 엄두도 못 내고 목메게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서둘러 올라가려는 것 같았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 둥구나무 밑에 앉아 계시는 어른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드리자 반가운 마음에 성글성글하게 인사를 받으시던 기현이 할아버지가 한 말씀 하셨다.

“아니! 내려온 지 이제 겨우 하룻밤밖에 지나지 않았는디 벌써 서둘러 올라가려구 허냐? 허긴 의지할 곳 없는 낯선 타관 땅에 에미를 홀로 남겨놓고 내려왔으니 자나 깨나 걱정이 좀 많이 되긋다. 야튼 그건 그렇구 이번참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다구 허니 축하한다.”

기성이형이 자기 나이에 비해 조금은 이른 듯싶게 아들을 낳아 동네 어른들 보기에 민망스러운지 머리를 숙이려 하자 평상에 앉아 있던 순태아저씨가 촐싹거리며 나섰다.

“어이 조카! 그나저나 이참에 동섭이성님이랑은 뭔 말 한 자리라두 나눠 봤는감? 말이사 바른말이지 이제는 애까장 덜렁 낳으니 동섭이성님 고집이 고래 심줄 같이 쎄다구 혀두 별 도리 있것는가? 다 타고난 팔자대루 가야지 그리구 나중에라두 잘 타협이 되면 이참에 고래 등 같은 큰 집두 하나 잘 지어 놨으닌께 허다 못해 묵은 집이라두 달라구 혀서 들어앉아 살면 좋을 틴디.”

방앗간 순태 아저씨가 기성이형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을 마치려 하시자 머리를 조금 숙인 듯 예의를 갖추고 있던 기성이형이 이내 머리를 바짝 들고 순태아저씨를 바라보며 대뜸 말을 했다.

“아저씨 말씀은 고마운디유. 넘들은 어찌 생각들 헐런지는 모르지만서루 저는유 아직까정은 사대삭신이 멀쩡 헌깨루 제 힘으루 먹구 살지 추호두 그런 맴은 없구먼유. 그리구 을매 되지는 않지만 우리 조상님헌티 물려받은 땅떼기 죽두룩 가꾸며 살 꺼구. 인제 자식 하나 낳은 거 저처럼 까막눈 안 맨들구 잘 키우면 그만이구먼유.”

어떠한 형태로던 자기 자식 대에는 그런 아픔들을 내림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번쩍거리는 눈빛에서 결연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순태아저씨가 자기 딴에는 기성이형을 생각해서 한 말인데 기성이형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거북하게 생각하니 다소 무안스런 표정을 하려는데 기성이형을 배웅하려고 동구 밖에 나오신 경수아저씨가 순태아저씨를 책망하듯 말을 했다.

“아따! 성님은 ‘눌 자리 보구 다릴 뻗으랬다.’구 그걸 시방 말이라구 허구 있는감유? 아 그 양반이 어떤 사람인디유 막말루다가 자기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두 절대루 그런 일은 없을 꺼구먼유. 용천배기 콧구멍에서 마늘씨라두 빼먹을 사람인디 참 그렇게 잘두 혀주것네유? 옛말에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를 허지 말랬더라구 기성이네가 어디 때꺼리 간곳없이 사는 집두 아니구 그리구 지 말마따나 사대삭신 멀쩡헌디 뭣 났다구 그런 짓꺼릴 헐꺼유. 그러니께 성님두 지 말을 아니꼽게 듣지 마시구 아무리 넘 일이지만 앞으루다가는 그런 말 함부루 허질 마세유.”

말을 마친 경수아저씨가 논산역에서 출발하는 기차 시간에 늦는다고 기성이형 어머니와 기성이형을 재촉하여 마을 앞까지 배웅을 하시려나, 큰길로 함께 걸어가셨다.

한나절 내 둥구나무 위에 늘쩍지근하게 내려앉아 동네 사람들의 숱한 주고받는 말에 귀를 잔뜩 기울리던 하루해가 는적거리며 서편 들녘으로 발걸음 하려 들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시던 동네 사람들이 한두 분씩 집으로 돌아가셔 그리도 넉넉하게 보이던 둥구나무 밑자리가 듬성듬성 비워지고 있었다.

논둑길을 따라 집을 향해 걸어오는데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논배미를 검푸르게 물들이며 무릎까지 차오르게 튼실하게 자라 오른 벼 이삭들을 바라보니 무릇 한숨만 터져 나왔다.

현실의 냉혹한 판단의 결과를 가늠하기 이전에 늘 앞서기만 하는 조급한 의식(意識)이 쉽게 동요 되는 감성을 건드려 다시금 아픔이 떠오르게 했다.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땅덩어리를 잊고 살아야만 옳을 듯싶ㅇ,ㄴ데 지난 일들이 자꾸만 되뇌어지는 그 자체가 번민을 자초하는 단초인 듯싶었다. 그런 생각을 애써 지우려 해도 한동안 억지로 억눌렀던 한 덩이 응어리진 아픔이 다시금 얄밉게 스멀스멀 껍질을 벗으려 해 고통스러웠다.

물 대기 좋은 앞 들녘 비옥한 땅은 고사하고 하늘만 뻘쭘 바라보는 천수답의 척박한 땅이라도 그나마 한 조각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알몸으로 부딪쳐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보니 앞날을 기대할 수 없는 암울한 생활은 늘 밑바닥을 맴돌았다. 그러니 달이 차고 해가 바뀌어도 늘품성은 전혀 보이질 않아 고된 삶은 늘 제자리에서 힘든 턱걸이만 반복하고 있었다.

논배미 한가운데 방죽에는 물옥잠과 개구리밥이 보기 좋을 만큼 둥실 떠 있고 방죽 가장자리엔 올곧게 쭉쭉 뻗은 창포 냄새가 비릿한 개흙 냄새 속에 상큼하게 풍겨 났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방죽의 물결이 바르르 떨며 끝없이 번져 나 잔잔한 파문(波紋)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물결이 방죽가에 차랑차랑하게 부딪쳤다. 둥지를 틀어 놓은 갈대 숲 사이를 돌아 나온 논병아리 몇 마리가 머리를 물속에 깊숙하게 처박고 궁둥이를 잔뜩 치켜세워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또랑또랑한 수놈 한 마리가 짝짓기를 하려고 암놈의 등 위에 오르려고 방정맞게 깝죽거렸다. 그러자 암놈이 두 날개를 파닥거려 물살을 낮게 차고 올라 부서진 허연 물방울이 온 사방으로 튀어 쏟아지고 있었다.

길가 논두둑에는 허연 배를 불룩 내민 개구리가 먹이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다 논둑을 걷는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랐나, 펄쩍 뛰어 ‘풍덩’소리를 내며 연초록색 당글당글한 작은 물이끼들이 가득 떠 있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검푸른 벼 포기 사이로 몸을 잽싸게 숨겼다.

반비알진 밭에 밭두렁과 고랑 사이를 폴짝폴짝 오르내리는 어린 멧새 한 마리의 움직임이 둔하고 어설퍼 보였다. 그래서 혹여! 손에 잡힐까 하는 욕심에 몸을 낮춰 사부작사부작 밭이랑을 따라 조심스레 걸어가는데 어찌 그리 귀신 같이 알아챘는지 ‘날 잡아 봐라.’는 듯이 여린 두 날개가 찢어져라 푸덕거리며 그리 높지도 않게 날아가고 있어 공연한 짓을 했나 싶어 그냥 한차례 멋쩍게 웃고 말았다.

철로 변 외딴집에 사는 기현이가 할아버지가 솥에 넣어 쪄 주신 듯 제법 큼직하게 보이는 타박이 여름 감자 한 알을 놋젓가락에 깊숙이 끼워 자그마한 입으로 한쪽부터 베어 물면서 사립짝을 나서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보고 반가운 듯 활짝 웃는데 조금은 낯선 듯 나를 쳐다보며 가볍게 으르렁거리던 흥남이아저씨네 복실이를 기현이가 손으로 한차례 두들기자 풀이 죽어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미물인 짐승이라 그런가? 그런 상황에도 식탐이 일어나는지 기현이가 손안에 들고 있는 감자를 두 눈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철길 건너 둔덕 너머 집 울타리 앞에서 순덕이와 함께 놀고 있던 검둥이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죽을 둥 살 둥 모르게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리고 언덕배기를 넘어 내리막길을 달려오자 방금 전까지 기현이 옆에 쪼그려 앉아 조금 떼어 주지 않나 하고 눈 빠지게 기다리던 복실이가 달려오는 검둥이 모습에 기가 눌려 언제 어디로 숨었는지 전혀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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