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엊그제가 절기상으로 입추였다.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는 좀처럼 물러설 줄을 모르고 더욱 기승을 부렸다.
가파른 산자락에는 짙푸른 녹음이 가득 들어차 여름의 절정을 이루었다. 언덕마루엔 어슷하게 뿌릴 내려 달망이게 보이는 참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었다. 그 참나무 줄기에 고만고만한 이파리들이 다닥다닥 매달려 한낮 햇살에 들볶여 신열을 하듯 반들거리는 초록빛으로 아늘아늘했다.
여태껏 자지러지게 울던 매미가 잠시 소리를 멈추는 듯 뒤따라 뜸부기 울음소리가 앞들 논배미에서 간간히 들려왔다.
푸른 이끼 듬성듬성 들붙어 있는 펀펀한 바윗등에는 밤색 줄무늬 선명한 다람쥐 한 마리가 꽤나 바지런하게 한낮 더위 아랑곳없이 방정맞게 이저리 옮겨 다녔다. 그러다 그도 이내 싫증이 났는지 눈 깜짝할 사이 곡예를 하여 묘기를 부리는 듯 높다란 참나무 등을 잽싸게 타고 올라 밉살스레 고개를 갸웃거려 밑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자락이 훤하게 트여진 넓은 들녘에는 벼 이삭 끝머리가 검푸른 빛으로 올곧게 보여 이제 초가을도 그리 멀지는 않은 듯했다.
산자락 밑 우묵한 터에 듬성듬성 둑을 따라 흐르는 맑은 도랑물은 더부룩한 풀숲을 헤쳐 나와 홀가분한 듯 졸졸 흐르니 그 소리만으로도 잠시인들 시원한 느낌이 들어 정신을 맑게 했다.
산기슭에 자릴 잡은 밭 자락엔 검푸른 고춧대가 꼿꼿이 서 있어 가지마다 수북이 매달린 고추가 붉은 빛을 띄우며 야무지게 여물어 가고 있었다. 줄기와 이파리 사이로 붉은 고추가 또렷한 모습으로 심심찮게 눈에 띄어 다른 작물들에 비해 고추 농사가 풍성하게 된 듯싶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삶은 끝없는 갈고닦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온몸을 밤새껏 짓누르던 크고 작은 사념들이 이제는 물러설 때도 된 듯싶은데 내 작은 육신에 그리도 옹골지게 덕지덕지 들붙었다.
세월이 흩뜨려 놓은 힘겨운 지난날의 흔적들이 몹시도 안타깝기만 했다. 또한 내 어린 마음에 감당하기엔 너무도 힘이 들었다. 그래서 애끓는 연민까지도 떠가는 뭉게구름에 띄워 번민 속에 끝없이 밀려오는 크고 작은 아쉬움들을 어디론가 멀리 떨쳐 내고 싶었다. 그러나 처해진 냉엄한 현실은 그리 하지도 못함에 이제는 하는 수 없이 그마저도 가슴에 담아 살려 했다.
애틋함에 가슴 아림은 굽이굽이 삶의 한 모퉁이를 휘어 돌아 천만년 세월의 흐름이 숨김없이 각인된 말없는 바위를 조금은 빼닮고 싶었다. 그래도 애꿎게 다시금 스멀대는 그리움이 하나 둘씩 산자락에 머물러 말없이 자리를 잡으려 하니 나약한 내 어린 육신으로는 끝내 감당키 어려워 더욱 힘들기만 했다.
시침(時針)은 하루 해 반나절을 가리키고 있었다. 능글능글한 한낮 해는 동네 한복판에 거만스레 자리를 잡아 뭉그적거렸다. 그리고 언덕 아래엔 색 바래져 가는 단출한 초가집 한 채가 검푸른 초원 속에 오롯한 모습으로 눈에 띄어 곱다 못해 더러는 애틋하게 느껴졌다.
산자락을 오르는 구불구불하게 굽어진 오솔길이 내 아버지 잠들어 계신 영면의 터를 살짝 끼고 돌아 가물가물하게 보였다. 그리고 하늘과 닿은 듯 고갯마루 끝자락에 아직은 때 묻지 않은 푸른 여백이 조금은 남아 있는 하늘 한 조각이 새치름하게 바라보여 마음이 덜 허전했다.
목마른 산야는 찌는 더위를 견디다 못해 하늘 밑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한여름 내 갈증 난 대지는 속까지 검게 바삭바삭 타들어 한 줌 비를 갈구하는 처연한 눈빛으로 둥실둥실 떠가는 구름을 향해 조금은 멋쩍게 미소를 띄어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구름은 그도 모르는 듯 냉정하게 머릴 돌려 서쪽 들녘으로 바람 따라 먼 길을 떠나고 있었다. 그러자 아쉬워 가벼이 입 벌려는 모두를 비웃는 듯 밟힐수록 신음 소리 내지 않는 질경이가 고연(固然)하게 목을 들어 참고 견디라는 말을 한마디쯤 건네려는 듯했다.
여름 더위를 식혀 주려 소나기가 아쉬울 만큼 흩뿌릴 것처럼 보였다. 산릉선에 오전 내 부산을 떨던 서너 덩이 먹구름이 마을을 향해 느린 걸음으로 서서히 밀려오고 있었다. 는적거리던 구름을 떨쳐 보낸 저 산은 홀가분한 듯 몸을 가다듬어 햇살에 반사되어 잘 묻어난 짙푸른 빛으로 탐스런 퍼즐을 남겼다.
산자락에 묻어나는 진한 그리움이 두려워 눈을 감아 보아도 되뇌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푸념을 하듯 속마음으로 나 혼자만의 거리낌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지나간 어느 해 여름날 오후 내 아버지의 듬직하게 널따란 등에 업혀 나팔꽃을 함께 바라보았던 기억(記憶) 하나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동네 분들이 이따금씩 주고받으시는 말씀 중에 짐승도 주인의 성격을 닮아 간다고 했다. 아마도 그 짝이 나려는지 근 반나절은 족히 풀을 뜯어먹어 배를 뎅뎅하게 채운 듯 양 옆구리가 불룩하게 보이는 종구네 황소가 넓죽하게 엎드려 졸음이 오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연신 턱을 좌우로 움직여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주인만큼 욕심이 많은 듯해 조금은 아둔하게 보였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후덥지근하기는 그늘 밑이나 그늘 밖이나 매한가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늘 밑이라고 둥구나무 밑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철길 건널목 내리막길과 맞닿은 벼랑바위 앞엔 더위에 힘이 드신지 머리에 쓰고 계시던 누런 밀짚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연신 얼굴에 대고 부치시며 걸어오시는 동근이 아버지와 방앗간 순태아저씨가 동네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산림절도죄’로 병막 터 정섭이형으로부터 피소(被訴)가 되어 읍내 경찰서에 조사를 받고 있는 종구 아버지를 면회하고 돌아오시는 것 같았다.
산 밑 고추밭을 한 차례 둘러보시고 김칫거리에 넣으려 따오셨는지 붉은 고추가 두어 주먹 정도 놓여 있는 평상에 앉아 있던 준섭이 아버지가 옆에 함께 앉아 계신 동네 분들을 바라보시며 말을 하셨다.
“참! 저 사람 순태하구 오는 꼬락서니라니. 나이를 꺼꿀루 먹었는가? 철딱서니 읍는 애들 매냥 저러콤 촐랑대는지 모르것네 그려.”
말을 마치신 준섭이 아버지께서 영 못마땅하신지 혀끝을 차시자 평상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기현이 할아버지가 이내 말을 이으셨다.
“아 그래두 저 사람만큼만 허라구 혀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저 사람 매냥 동네일에 팔 걷어붙이구 나서는 사람이 어디 또 있는감? 다 이녁들 실속부터 챙기느라구 어물쩡허게 꼬랑지 내리구 눈치들이나 실금실금 보기 바뻤지 어디 자기 일처럼 선뜻 나서는 사람이 있었냐구? 순태 저 사람이 이따금씩 뒷감당 못헐 말 씀벅씀벅 뱉어서 그게 탈이긴 허지만."
그러자 상수네 아버지가 산자락 밑 고추 밭을 바라보며 한 해 농사가 그런대로 마음에 차게 되어 기분이 흡족한지 넉넉한 얼굴 표정으로 바라보시며 다시 말을 하셨다.
“그나저나 날씨 한질라 오라지게 더워 정신 혼창이 다 빠질 것 같은디 고생들 깨나 하고들 오는 구먼 그려. 그건 그렇구 일이 어찌 되어 가는지 궁금혀서 어여 싸게싸게 와서 야기라두 한자리 속 시원허게 들어봤으면 싶구먼. 어여 싸게덜 오지 않구 뭘 꾸물럭거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것네 그려.”
한여름 혹서(酷暑)에 읍내 쇠전에 거래가 뜸해 좀 한가하신 듯 용철이 아버지가 여러모로 궁금하신 듯 동네사람들에게 말을 한 마디 건넸다.
“동네가 내동 조용허다 싶었더니, 아니! 도대채 왜들 그러는지 모르것네유 나사 첫새벽 눈곱 띠자마자 읍내 쇠전으루 가닌게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것지만 조근조근 야기를 들어 보닌께그 뭐시냐 동섭이 성님이 병막 터 영감네 집 산에서 서까래에 쓸 낭구를 주인 허락두 읍시 마구 베 내린 것 땀시 일이 이지경까장 벌어진 모양인디 아무리 그렇타 치더라두 그렇지 한동네 살면서 영 안 쳐다보구 등 갈르구 살 것두 아니면서 다들 왜 그러나 모르겄네유. 나이 헌질라 어린 것이 이 뜻뜻 더운 날 사람을 깜깜한 유치장에다 쌔리 가둬 놓구 뭘 어쩌자는 말인지 도통 그 심보따리를 모르것네유, 내참.”
용철이 아버지가 다소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말을 마치려 하시자 늘 은연중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종구네 아버지와 대립의 각을 세우시는 고샅길 첫머리 집 우현이 아버지가 말을 하셨다.
“아! 이 사람아 속내두 잘 모르면서 그렇게 딱 허니 무 짤라 내듯이 말을 허지 말어. 허긴 자네사 자네 말대루 날 새기가 무섭게 읍내 소전에 나가 소 아갈박 벌리느라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는가? 본디 지 집구석 산에서 멀쩡한 낭구를 막 벼 내리는디 가만히 있을 사람 있건는감? 어디 부처님 가운데 토막두 아니구 자네 같으면 잘두 참구 있건네 그려.”
그렇게 우현이 아버지가 자상하게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시듯 말을 하시는데 이유야 어찌 되었던 간에 결과를 놓고 볼 때 정섭이형이 취한 태도가 영 못마땅하신지 용철이 아버지께서 다시 말을 꺼내셨다.
“ 얼라 그래두 그렇지 아무리 서운헐지언정 그럼 못쓰는 벱이지유. 그게 어디 사람이 헐 짓이던감유? 그리고 나이 헌질라 어린놈이 어디 어른헌티 대들구 그려. 내가 옆에 있었으면 절대루 기냥 놔두지 않았을 건디.”
평소에 술을 많이 드셔 목젖 부근이 불그레하신 용철이 아버지가 조금은 화가 나시는 듯 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조금 가쁘게 숨을 내시며 말을 잠시 멈추려 하자 우현이 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의 주장이 안 먹혀들자 다소 열기가 달아오르는 모습으로 목청을 높이셨다.
“아, 글쎄! 자네 말두 맞기는 허지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구. 그런닌께 서둘지 말구 내 말을 끝까장 찬찬허게 들어보라구. 그래서 그 집 아들내미가 맴이 무지허게 상해 가지구 그날 밤중에 따지려 왔는디 ‘똥 뀐 놈이 되려 화를 내드라구.’ 아무리 자식뻘이라두 사리에 맞는 말을 하면 그냥 미안케 됐다구 낭구 값 무러 준다구 말 한 자락 했으면 진작에 끝날 일을 가지구. 그놈의 자존심이 법 먹여 주나 냅다 소락떼기는 냄다 질러대구 끝까장 버티다가 서루 언성이 높아지닌께 혀서 될 말이 있구 혀서는 안될 말이 있는 법인디, 동섭이가 지 승질머리를 못 참구 뭐시냐 병막 터 영감이 옛날에 일본넘 밑에서 귀싸대기나 얻어맞으면서 용천배기들 피고름이나 딱아주구 종노릇허며 살았다는 말을 허는 바람에 일이 이지경까장 된 거라구.”
한바탕 장황하게 말을 하신 우현이 아버지가 이제는 상황 파악이 되느냐는 듯이 담배를 피워 물려하시는 용철이 아버지를 바라보시자 그제서야 부분적으로 다소 이해가 가시는 듯 용철이 아버지가 말을 하셨다.
“예, 그랬었구먼유. 지가 흘러 댕기는 말루 얼핏 듣기루는 정섭이가 좀 심했다 싶었는디, 그러닌께 양쪽 말을 다들어봐야 헌다구유? 참 그나저나 동섭이성님두 그렇지 자식뻘 밖에 안되는 애 앞에 그걸 헐 소리라구 했는감유?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며 나무래키더라구. 옛날 자기 처지를 생각허면 그런 소리 누워 떡 먹듯이 못할틴디. 에이구 좀 참지 못하구 서리 이 뜨거운 날 무신 생고생이래유.”
떨떠름하신 표정으로 동네 앞 나무다리를 건너 둥구나무 앞에 거의 다 다가서는 동근이아버지와 순태아저씨를 바라보고 계셨다.
용철이 아버지가 여지껏 들붙듯 앉아 계시던 자리를 선뜻 내어 주시고 한 걸음 물러서자 방앗간 순태아저씨가 동근이 아버지보다 먼저 자리에 앉으시며 서둘러 말을 하셨다.
“내! 드러버서 순사놈들 있는 쪽으루는 오줌두 안 눌라구 내가 맹서를 했네 그려. 그 무신 죽을 죄를 지었다구 얼굴 한번 보게 혀달라는 것두 칼루다가 무 짤라 내듯이 참 야박허게 딱 잘라 버리구 뒤두 안 돌아보더라구. 뭔 놈의 큰 벼슬 감투라두 쓴 것 매냥 으시를 대는지 내가 참말루 어릴 때 먹었던 울 엄니 젖이 다 올라올라구 허대. 세상이 뒤집어졌다구 혀두 지놈들끼리는 덕을 볼란가는 몰라두, 허구 헌날 흙 파먹구 사는 무식한 우리네 같은 촌것들헌티는 빛 좋은 개살구구 말짱 도루매기더라구. 그러니 참말루 죄짓구 붙들려 갈 곳은 못되더라구.”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느라 크게 흥분을 하셔 타들어 가는 담배꽁초에 손가락을 데신 듯 손가락을 팔팔 터시며 서둘러 침을 듬뿍 바르고 계셨다. 순태아저씨의 표정에서 종구 아버지 면회를 갔던 일이 어렵게 되었나 싶었다. 순태아저씨의 얼굴 표정이나 어투로 보아 화가 단단히 난 듯싶어 조금 전 면 소재지에서 동네로 향해 오시면서 그렇게 동근이 아버지와 말씀을 하시며 부지런히 손짓을 하신 이유가 촐싹거리는 성격 탓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평상에 모여 앉아 계시던 동네 분들이 종구 아버지에 대하여 무슨 소식이라도 들어보려고 하는 궁금한 눈빛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순태아저씨가 그리 떠드시자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데 성격이 동네 삼식이 아버지 못지않게 좀 급하신 용철이 아버지가 퍽이나 답답하신 듯 동근이 아버지에게 물으셨다.
“성님 그러닌게 순태성님 말대루라면 동섭이성님 볼라구 이 더운 날 거기까장 갔는디 면회는 커녕 얼굴두 한 번 제대루 못 보구 기냥 허탕만 치구 와 번졌구먼유?”
종구 아버지 면회 문제와 일의 진행 사항을 알고 싶어 동근이 아버지로부터 무슨 말을 들어 보려는 마음에 말씀을 하시자 무슨 생각을 하시는 듯 조용히 계시던 동근이 아버지께서 말을 하셨다.
“기냥 사무실에서 볼 수는 없었구. 그 뭐시냐 하루에 한 번씩 시켜준다구 하는 면회를 유치장에서 철망 사이루 서루 얼굴만 겨우 쳐다보면서 했는디, 뭔가? 헐 말이 엄청스레 많은가 본디 내 얼굴을 보닌게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지 첨에는 말두 제대루 못허구 울먹이더라구. 그리고 감시허는 순사 눈치 볼라 나하구 말헐라 무지허게 신경을 쓰더라구. 그 펄펄허던 사람이 풀이 다 죽어서 사람 꼴이 영 아니더라구. 암튼 그러면서 허는 말이 만사 제쳐 두구 병막 터 정씨 영감하구 합의를 해서 합의서를 받아서 경찰서에 내야 된다고 하던구먼. 그리구 동네 사람들헌티 진정서에 도장을 받아 오라구 신신당부를 허더라구. 그래서 이참에 허는 말인디 어쩌것는가? 밉네 곱네 혀두 내 동리 사람인께 서로 도와야 쓰지 않것는감? 그래서 우선 한숨 돌리구 나서 날랑은 병수 애비허구 병막 터 정씨 영감 만나러 갈라구 허닌게, 순태 자넬랑은 그 뭐시냐 경수동상허구 같이 진정서에 도장 좀 받으러 댕기라구. 참! 내 정신 좀 봐. 호랭이헌티 물려 가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헌다구 진정서 써야 되는 걸 깜빡 했네. 맴이 급허다 보닌게 몸이 따루 놀라구 허네 그려.”
둥구나무 밑에 앉아 계시던 동네 분들이 모두다 앞을 다퉈 진정서를 가지고 오라 하시며 진정 내용에 동의를 하는 도장을 찍어 주려고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때가 묻지 않은 잔잔한 인간의 정이 남아도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