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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51 조회 : 1,090




하늘에 먹구름이 빠르게 몰려들어 바라보기 답답할 정도로 두텁게 층을 이루었다. 하늘은 입 안에 땡감을 가득 물고 있는 것처럼 온통 찌뿌듯한 모습으로 하루 내 우중충하기만 했다. 종일토록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해는 짙은 구름 속에 미아처럼 끝없는 미로(迷路)를 헤매는 것 같았다.

비가 올려고 하는 낌새를 알아챘는지 낮 동안 뒷산 그 어드메에서 그리도 애간장을 녹여 내릴 듯 절절히 애절케 울어대던 두견이도 요란스런 매미와 더불어 일찌감치 울음을 접은 듯했다.

집 모퉁이 기둥 밑 어디쯤에 새로 집을 지어 삶의 터를 옮기려나, 새까맣게 떼를 지은 집개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각자의 몫을 다하고 있었다. 비록 하잘것없는 미물일지라도 가볍게 생각하여 쉽게 들뜨는 우리네에게 뜻 깊은 느낌을 남겨주는 것 같았다.

‘비가 한차례 올라치면 맨 먼저 개미가 집을 옮긴다.’고 자라오는 동안 어른들로부터 그리도 수없이 많이 들어 온 터라 이제는 머릿속에 각인(刻印)이 되었다. 추녀 안 집 기둥 틈사이로 작은 개미들이 꼬릴 물어 움직이니 한차례 비가 내릴 것 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늘 가들막하게 낀 구름 탓인지? 금강 둑과 맞닿은 하늘가엔 온통 붉게 물들이던 노을빛이 어두침침한 날씨 탓인지 한 자락도 보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들녘 아랫마을보다는 어둠이 먼저 찾아오는 산골짝에 어둠살은 여느 날보다 짙게 찾아들었다.

재 너머에 있는 규모가 작은 절인 용화사에서 ‘데에에엥 데에에엥’ 저녁 예불을 알리려는 범종 소리가 산골짝에 부딪혀 남겨진 여음(餘音)이 귓가에 더욱 은은하게 들려왔다. 늦저녁 무렵 그맘때면 늘 뒷산 소나무 가지에 서둘러 창백한 모습으로 떠오르던 달도 잔뜩 흐린 날씨 때문인지 그 모습을 통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밤이 되면 온 하늘에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별들이 눈 시리게 은하수를 이뤄 복조리 모양으로 선연하게 보이던 북두칠성의 모습도 오간 곳이 없었다. 그리고 서로 앞을 다퉈 반짝반짝하던 크고 작은 별들의 모습 또한 보이질 않아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밤늦게라도 틀림없이 비가 한차례 실팍하게 내릴 것만 같았다.

내 예측이 그래도 빗나가지 않은 듯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온 사방에 여명이 밝아올 무렵인 이른 새벽녘쯤이었다.

면소재지에 있는 교회에서 새벽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성스럽게 들려올 때쯤 흙냄새 가득 나는 작은 방 봉창문 밖으로 푸석한 땅에 옹골지게 떨어지는 성긴 빗발 소리가 거침새 없이 들려왔다.

그런데 갑작스레 소피(所避)가 마려 부스스한 얼굴로 잠에서 깨어났다. 꽃 색깔까지 푸른색 무늬로 박혀 있는 투박한 사기요강이 방 안 한구석인 아랫목 쌀가마니 옆에 묵직하게 놓여 있었다. 그러나 순덕이 어머니가 우리 집에 함께 살려고 오신 지난해 늦가을부터는 방 안에서 소변을 보는 것이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첫새벽부터 오줌 누는 소리에 혹여 식구들이 단잠에서 깨어날까 싶어 밤새껏 방광 속에 가득 차 있던 오줌도 밖에 나가 눌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안마당 두엄 가에 가려고 쪽마루에서 내려서 무심코 앞산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온 산을 송두리째 삼킬 듯이 비안개 자오록이 서려 부연 연기처럼 솟아올라 산자락을 뒤덮을 것처럼 소용돌이쳐 끝 모르게 번져나고 있었다. 이제라도 비가 실팍하게 내려만 주면 그리 긴 나날 동안 뜨겁게 내리쪼이던 태양의 열기로 온통 달아올랐던 지열을 식혀 더위를 주춤거리게 할 것 같았다.

여름내 그리도 끈질지게 지속된 더위에 지칠 대로 지쳤는지 맥이 반쯤은 빠져나가 축 늘어져 있던 호박 잎사귀와 넓적한 박 잎사귀 그리고 유난스레 잎이 크고 기다란 파초의 검푸른 잎사귀에 ‘투두둑투두둑’ 소릴 내며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바람에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던 양은 세숫대야에도 ‘톰방톰방’ 빗물 방울이 부딪는 소리를 냈다.

공연스레 울적해지는 마음은 그런 모든 자연의 소리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따라 잠시인들 온갖 시름 다 잊고 지난 시간 속으로 홀가분히 여행을 떠나고도 싶었다.

내리는 빗방울에 옷이 젖을까 싶어 본능적으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두엄 가에서 소변을 보면서 키 낮은 싸리 울타리 너머로 면소재지 마을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아침이 이른 듯 어둑발이 남아 있는 앞마을은 깜깜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나마 불빛이 보이는 곳은 단 두 군데뿐이었다. 그중 한 곳은 지서 정문 앞 추녀에 단작스럽게 매달려 있는 양은 갓을 씌운 전등 속에서 전구 알이 쏟아내는 누런 불빛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새벽 예배를 위해 교회에서 켜놓은 전등불빛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법 굵은 빗줄기 사이로 아물아물하게 보였다.

비를 피하려 토방으로 냉큼 달려와 아랫마을을 한번쯤 바라보니 불빛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단 한 점도 보이질 않아 무서우리만큼 깊은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드문드문 아주 흐릿하게 형체를 겨우 드러내는 초가지붕들의 모습이 마치 들녘에 커다란 짐승들이 잔뜩 움츠려 있는 것처럼 조금은 흉물스럽게도 보였다.

그라도 그런 우울한 마음을 조금은 달래주려는 듯 들녘 저 멀리 한 귀퉁이에 작은 간이역, 채운 역사의 모습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역사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역구내의 선로를 표시하는 빨갛고 푸른 작은 신호등 불빛이 한데 어울려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 보여도 못내는 무척 애잔스러웠다.

시야를 좀 더 멀리 돌려 바라본 내 친구 ‘깨곰보’ 성구가 잠들어 있을 강경 읍내는 빗줄기와 시커먼 구름의 어둠에 가려 아예 그 어떤 형체조차도 가릴 수 없어 퍽이나 서운키만 했다.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와 다시금 잠자리에 들려 하니 한번 깨어난 잠이 좀처럼 오질 않고 억지로 눈을 감아 보아도 눈꺼풀 속에 눈알만 데굴거렸다.

누워서 바라본 어둑한 방 안 천장에 보일 듯 말 듯 때 묻은 서까래를 보고 있는데 문득 종구네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다.

‘과한 욕심이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종구네 집일을 두고 하는 말인 듯싶었다.

대전 형무소에 갇혀 고생을 하고 있는 종구 삼촌이나 종구 아버지가 병막 터에 소나무를 함부로 벤 일이 일어난 후 동네에서 종구의 모습을 좀처럼 볼 수가 없어 잘은 모르지만 종구도 나름대로는 엄청 괴로워하고 있을 것만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온 동네 사람들이 그리도 부러워하는 멀쩡한 기와집을 놔두고 그렇게 무리수를 써 가며 또 다른 기와집을 더 크게 지은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동네 사람들처럼 어린 나도 서서히 해보기 시작했다.

비록 큰 집을 지니고 살더라도 새로운 집에서 얻는 만족감만큼은 혹독한 대가(代價)를 치루고 있는 듯해 보였다. 설령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어 그곳에서 풀려나온다 해도 동네에서 한번 실추된 그분의 명예를 되찾기에는 무척이나 힘이 들 것만 같았다.

물론 그 숫자가 적지는 않지만 장리 빚을 얻어 쓰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고운 눈빛으로 바라볼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지난 난리 때 자기 동생이 저질러 놓은 엄청난 일로 좋은 평을 듣지도 못하며 살아가는 터에 손바닥 뒤집어 보듯 뻔한 작은 시골에서 어찌 되었던 간에 남의 산에서 나무를 불법으로 베어내어 ‘산림절도죄’라는 좋지 못한 오명을 남기고 말았다.

가뜩이나 자존심이 강해 내가 낸데 하며 으스대기 좋아 하는 분이 그런 수치를 감당하고 살기엔 심적인 고통이 꽤나 클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엄청스레 강한 남다른 자존심에 그토록 큰소리를 치며 권세(權勢) 있게 살았는데 앞으로는 모든 사람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나가실지 자못 궁금키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어제 우리 집으로 진정서에 도장을 받으러 오신 동근이 아버지께서 마지막에 남기고 가신 말씀을 되뇌었다.

밤이 깊도록 아무리 붙들고 통사정을 해봐도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 병막 터 사시는 정섭이형 아버지와는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하지 않으려 하셨다. 어차피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당사자가 정섭이형이기에 정섭이형의 마음을 돌려 볼 사람은 동네에서는 아무도 없어 생각 중에 떠오른 것이 정섭이형과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인 기성이형이었다.

그래서 동근이 아버지가 날이 밝기만 하면 논산역에 나가 첫차를 타시고 기성이형과 정희누나가 살고 있다는 수원으로 올라가 기성이형을 데리고 대전으로 내려오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정섭이형이 일을 하고 있는 대전역 앞에 있다는 철공소에 찾아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합의서를 받아 오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일이 잘 될는지는 동네 사람 그 누구도 예단키 어려웠다.

나와 종구가 국민학교 4학년 때인 삼년 전 그해 봄 어느 날이었다. 몹시도 가뭄이 극심하여 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 갈 때 어디 땅에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고여 있는 물이 있으면 서로 머리를 들이밀고 다툼질을 했다. 논 물자리 때문에 종구네 아버지와 기성이형이 심하게 다퉈 말다툼 끝에 그만 성질을 참지 못하신 종구네 아버지가 기성이형 귀뺨을 세게 후려치시며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란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성이형이 종구 아버지를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번쩍 들어 논배미에 내던졌다.

흙탕물에 푹 빠져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종구 아버지가 흙물에 범벅이 된 모습으로 지서로 뛰어가 신고를 하여 지서에서 순경이 찾아와 기성이형이 붙들려가고 말았다. 지서에서 해결이 나지 않아 경찰서로 넘어가 고생을 하다 기성이형 어머니가 동네 구장님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어 겨우 합의서를 받아 내어 풀려나왔다.

그런데 사랑은 운명도 비켜간다는 말처럼 하필이면 기상이형이 종구 누나인 정희누나와 정분이 나서 정희누나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그리 결혼을 하려고 종구 아버지에게 목메게 사정을 해도 종구 아버지가 그때의 묵은 감정을 풀지 못하시고 죽도록 반대를 하셨다.

그로 인해 끝내는 지난해 늦가을 어느 날 새벽에 기성이형과 정희 누나가 집을 나와 고향을 등지고 타관 객지로 떠나고 말았다. 이저리 떠돌다 이제 겨우 수원 어디쯤에 있는 허름한 단칸 사글셋방을 얻어 아들을 낳은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고 온 동네에 소문이 났다. 그런데 기성이형이 군대 입영명령서가 나와 더 이상 객지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기성이형이 하는 수 없어 죽기 아니면 살기라고 동네로 다시 돌아오려고 동네 분위기와 종구네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러 왔는데 하루 전날 그만 일이 터져 종구네 아버지가 경찰서에 붙들려 가시는 바람에 말 한자리 꺼내지도 못하고 기성이형이 다시 정희누나와 아기가 있는 수원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처럼 다급해지자 종구 아버지와 동근이 아버지 두 분이 사전에 교감이 있어 상의를 하셨는지는 잘 모르지만 ‘목이 탄 송아지 우물만 보아도 머리를 들이민다.’는 말처럼 아무튼 마지막으로 기성이형한테 매달리는 것 같아 어른들 말씀처럼 사람에 운명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인 듯싶었다.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간이 흐르다 보니 허연 방문의 문살이 뚜렷하게 보이고 천장 서까래의 생긴 모습과 그 숫자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밝아왔다.

잠자리에 드셨던 어머니가 일어나셔 빗소리에 신경이 쓰이시는지 방문을 활짝 여시고 밖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셨다.

“어쩐지 몇 날 며칠을 두고 사람 잡아먹을 듯이 그렇게 푹푹 찌더라니 이제서야 심난허게 비가 내리구 있네. 다덜 두 손으로 파리새끼매냥 빌면서 비 좀 오라구 애걸복걸헐 때는 사람 복장 터지게 들은 대꾸두 않더니만. 누구 염장 질를라구 그러는가? 초복, 중복, 말복 더위 다 가구 나닌께 가리늦게 청승 떠느라구 내리는 구먼 그려. 기나저나 그건 그렇구 오늘 동근이 아버지가 종구 애비 일 땜시 그 뭐시냐 기성이를 만날라구 먼 길을 떠난다구 허든디. 비까장 구질구질허게 내리면 으짠다냐?”

말을 끝마치신 어머니께서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추스르시며 닭둥우리 안에서 달걀을 꺼내시려나, 알 바구니를 손에 챙겨 드셨다. 그리고 뒤따라 일어나신 순덕이 어머니는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면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시고 아침밥을 지으시려 부엌으로 나가셨다.

그런데 귀염둥이 내 동생 순덕이는 낮 동안 닭을 쫓으며 노느라 제 딴에는 무척 피곤했던지 이부자리에 침을 흘려 자욱을 남기며 새록새록 잠을 자고 있었다. 자는 모습을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서 바라보니 마냥 천진난만(天眞爛漫)하고 온통 귀엽기만 했다. 그래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볼을 한번쯤 만져주고 싶었지만 잠에서 깨어나 떼를 쓸까 싶어 그만 멈추고 말았다.

선연한 하얀색과 풍요롭게 보이는 누런색 달걀이 섞여 있는 알 바구니를 쪽마루 위에 놓으시며 울 밖을 넌지시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참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사 죄은 죄 땜시 그렇다 치더라두, 저 양반이사 뭔 놈에 죄가 있다구 저로콤시로 쌩고생을 허구 댕기야 허는지 몰르것네. 어찌 아침밥이나 자시구 그 먼 길을 나서는가 모르것네 그려. 누가 봐두 저리 고생을 쌔리 허는디, 암튼 일이라두 애 안 먹이구 썩썩 잘 풀려야 헐 긴디 으쩔란가 모르것다.”

마루에 올라서 동네 둥구나무 쪽을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수원으로 가는 열차를 타시려는지 누런 삼베 저고리에 바지를 입으시고 검정 헝겊 우산을 받쳐 드신 동근이 아버지가 버스 정류장 들 주막으로 가시려 동구 밖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가벼운 한숨을 쉬시며 다시금 말씀을 하셨다.

“댕일치기루 그 먼디까장 갔다가 대전까장 되돌려올라면 가참한 읍네 길두 아니라 퍼뜩퍼뜩 서둘러서 가야 헐 긴디, 오사랄 놈의 비까장 지랄을 허느라 내리구 있네 그려. 기나저나 넘들 다 종구 애비헌티 면회를 댕기는 모양인디 밉던 곱던 간에 한동네 사는 죄루다가 한번쯤은 가봐야 쓰것는디 으쩐다냐?”

그래도 믿고 상의할 자식이라고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시며 종구네 집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떠한지 조심스레 떠보시는 것 같았다.

비는 생각보다 그리 실팍하게 내리지도 못했다. 어정쩡하게 내리는 가랑비에 기분이 침울해져 일상이 퍽이나 무료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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