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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53 조회 : 1,118




한 이틀 동안에 네댓 차례 질척질척하게 내리던 비가 아침나절쯤에 멈췄다. 동쪽 하늘부터 맑게 트여지는 하늘은 욕심이 날 만큼 파르스름하여 한번쯤 손에 꽉 쥐어 보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웠다.

투명한 아침 해가 금방이라도 푸른 하늘에 푹 빠져들 것처럼 똥그랗게 떠 있었다.

그런 하늘 아래 금강(錦江)의 물결은 은회색 빛으로 반짝반짝하며 실로 방대한 산야를 구불구불 굽이돌아 크고 작은 분지와 숱한 계곡을 알맞게 이뤄 놓았다. 그리고 비옥(肥沃)한 내서평야의 들녘을 보듬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 금강의 발원지(發源地)가 전라북도 장수(長水)에 있는 신무산(895m)의 산자락 아래 ‘물뿌레’라는 참으로 예쁜 이름을 갖은 작은 산골 마을에 있는 ‘뜬물샘’이었다.

‘뜬물샘’으로부터 시작된 물길은 지류(支流)가 비교적 완만한 충청남도 동남 지역을 스쳐 지나 물 흐름이 완만한 논산천과 강경평야지대를 거쳐 서해 앞바다로 흘러들어 갔다.

그 옛날 강경읍내 황산동 포구에는 금강 수로를 따라 목선(木船)들이 내왕을 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기름진 미곡(米穀)이 전국 각지로 유통되었다. 그리고 또한 서해에서 나는 풍족한 수산물을 내륙으로 공급 하는 거점 상업 도시로 발달했다.

비록 도시의 규모가 겨우 시골 읍 단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강경이지만 일제 강제 점령기에는 영남의 내륙 도시 대구와 이북의 개성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상권의 거점 도시로 한때는 전국에 두각(頭角)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호남선 철로가 들어서고 도로의 교통망이 활달하게 되자 수로 운송이 거의 그 실용 가치를 잃게 되었다. 그로 인해 도시의 기능이 쇠잔해져 이제는 가을 김장철에 젓갈 시장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강줄기를 따라 검푸름이 풍요롭게 넘쳐나는 광활한 들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생기롭게 보였다. 농부들은 뙤약볕 아래 논배미에 허리를 구부려 피를 뽑아 김을 매면서 쌓이는 피로를 저마다 가슴 속에 대풍을 그리며 소리없이 달랬다.

겨드랑이에 수스럭수스럭 돋아난 땀띠가 불그레한 발진을 일으켜 참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근질거렸고 등판에는 따끔따끔하게 허물이 벗겨졌다. 그리고 피로가 쌓이면 쉬엄쉬엄 논배미에서 들려오는 뜸부기 소리에 피로를 달래며 저마다 가슴 속에 대풍을 꿈꿨다.

모내기를 하느라 논흙이 잔뜩 묻은 발로 너럭바위에 풀썩 주저앉아 새참을 먹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벼 이삭들이 쭈뼛쭈뼛 솟아올라 올곧게 목을 내밀었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벼꽃은 화사한 데가 전혀 없었으니 향기 또한 있을 리 없건만 무릇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꽃에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하고 고귀한 꽃이었다.

끝 모르게 펼쳐진 금강 들녘에 피었다 지는지도 모르게 소리 없이 피우고 있어 하늘 바라보기를 하는 가난한 농부에 삶의 애환과 고통이 통째로 묻어나고 갈라 터져 부르튼 손으로 땅을 지켜내려는 농부들의 정성으로 벼꽃은 그렇게 온 사방에 피어났다.

너른 들녘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환희에 가득 찬 춤사위를 펼치듯 벼 포기 사이사이를 알뜰하게 헤집었다. 그렇게 부는 바람은 벼 이삭에 매달린 꽃들을 살짝살짝 건드려 서로 짝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논바닥에 알맞게 고여 있는 물은 벼 포기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뼈대를 튼실하게 세워주었다. 수정을 끝낸 벼 이삭의 씨방 안에는 물에 탄 녹말처럼 하얀 액체가 자릴 잡아 자글자글한 햇볕에 등을 데워 성글게 영글어 갔다.

그쯤에 멋대가리 없이 거들먹거들먹 불청객처럼 꼭 찾아오는 세찬 비바람과 깜부기병만 잘 피해 가면 극심했던 가뭄에 비해 그런대로 수확이 풍성할 것만 같았다.

비록 땅 한 자락 없어 거두어들일 쌀 한 톨 없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성급하게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각양각색의 삶에 조화를 이루어 서로 각기 다른 삶의 역사를 이루어 내는 우리들에게 벼농사는 생명에 근원이었다. 비옥(肥沃)한 들녘은 척박한 땅을 일궈 우리들에게 남겨 주고 가신 윗대 선조들의 뼛속 아린 삶의 선물이었다. 그렇듯 바라보는 눈에 가득 차오는 풍요로움이 들녘 구석구석에서 불쑥불쑥 솟아나고 있었다.

연이틀 동안이나 그리 다정한 척 들붙어 떨어질 줄 모르던 구름이 색깔조차 희부옇게 제가끔 흩어져 하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립짝을 가볍게 지난 햇살이 쪽마루에 올라 머무는 듯싶더니 문턱을 넘어 어스름한 방 안을 기웃거려 방 벽에 닿았다. 그리고 틈새 벌어진 빛바랜 나무 액자 안에 들어 있는 누렇게 색 바래져 가는 내 아버지의 사진을 비추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리 허무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못다 이루신 사랑에 대한 한을 수놓으신 듯 새하얀 횃댓보에 두 마리 공작새가 곱살한 무늬로 짝을 이루고 있었다. 오색 실로 아름답게 수놓아진 횃댓보에 빛바래져 가는 내 아버지의 사진이 더욱 초라해 보였다. 그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찡하게 우울해졌다.

그 시절 그런 가슴 아려 오는 아픔이 비단 나뿐 만은 아니었다.

낙동강 전투에서 옥순이 아버지가 전사를 하셨고 인식 아버지가 동네 구장으로 뽑혀 마을 일을 했다는 죄로 끌려가 우묵골 골짜기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하셨다. 그리고 철로가 오두막 에 사는 기현이가 전쟁에 아버지를 빼앗기고 그 여파로 단 하나 남은 의지가지였던 어머니마저 낯선 남정네와 눈이 맞아 생이별을 하여야 했다.

어디 그뿐이랴 기성이 형 아버지도 멀쩡한 앞마당 마늘 밭에 인공기 게양대를 세우지 못하게 하였다고 반동으로 내몰려 멀쩡하시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조차도 모른 채 뱃속에서 발길질을 하고 있었던 어린 순아까지도 아버지 얼굴을 모르고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 모두는 처절한 시대적 아픔 속에 하늘만 원망하며 살아야만 하였기에 그런 아픔들이 마음속 깊이 똬리를 틀었다.

사그락사그락 삭풍에 나부끼는 마른 나뭇잎의 신음 소리가 봉창문 밖으로 들려와 고즈넉하다 못해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이 적적하던 어느 늦가을 밤이었다.

어머니께서 뒷산 부엉이 울음소리에 어둑한 방 벽을 바라보시고 흐느끼시듯 몸을 떠셨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스런 마음에 등잔 받침대가 있는 곳에 손을 대고 더듬더듬 성냥 통을 찾아 등잔불을 켜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침을 딱 떼시고 서둘러 나를 막으시며 말씀 하셨다.

“야가, 아닌 밤중에 잠은 안 자구서 뭣 땀시 불은 킬라구 그런다냐? 비싼 석유 지름 달면 으쩔라구. 제발 쓰잘떼기읍는 짓 하지럴 말구 어여 잠이나 자.”

나를 안심시키시려는 듯 공연히 하품을 억지로 하시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나 또한 뻔히 알면서도 어머니를 위로하려는 마음에 말을 했다.

“엄니, 돈 많이 버는 것두 좋지만 너무 힘들게 장사허지는 말으라구. 왜냐면 너무 피곤하닌께 잠두 못 자구 자꾸만 하품을 하는 거지 뭐.”

울먹이려 하는 숨결을 낮추려 몸을 일부러 모로 돌려 누우면 봉창 사이로 새어 드는 달빛이 더욱 시푸르게 보였다. 그 처량한 빛이 오히려 참으려는 숨결을 더욱 거칠게 하여 눈물을 자극했다.

그런 슬픔에 흐느끼고 있으면 어느 틈엔가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으셔 그런 어머니의 품안이 너무도 좋고 포근했다. 그럴 때면 나처럼 슬퍼하시는 어머니 기분을 풀어드리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린 젖먹이처럼 납작하게 달라붙은 어머니의 밋밋한 젖가슴을 만지려 하면 화들짝 놀래시며 내 손을 가볍게 뿌리치시며 말씀하셨다.

“오메 야가 시방 뭐하는 짓이라냐? 징그럽게끔. 응, 그러구 보닌께 우리 집에 젖맥이 하나 생겼네 그려. 허긴 뭐 철딱서니 없이 허는 짓거리 보면 참말루 젖맥이만도 못허지 뭐. 에이구 우리 새끼 은제나 철이 든다냐?”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끈적끈적한 살 냄새 물씬 풍기는 넉넉한 품 안에 다시금 나를 폭 끌어안아 주셨다.

오묘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이 저마다 모성애를 공유하겠지만 유독이 우리 인간은 더욱 그런 따뜻한 어미의 정으로 자라나는 듯싶었다.

하얀 꽃망울들이 클로버 풀잎 사이로 허연 띠를 이루어 바라보이는 둥그런 방죽가엔 종구 아버지 일로 어제 수원에 올라가셨던 동근이 아버지가 원두막을 향해 잰걸음을 하셔 가셨던 일이 어찌되었는지 자못 궁금키만 했다.

텃밭엔 꼬리가 눈에 띄게 가늘고 긴 검정 실잠자리 한 마리가 날개를 바르르 떨며 어렵사리 콩잎에 내려앉아 쉬어 가려했다.

어머니가 오이를 따고 계시는 사립짝 앞에서 순덕이와 같이 놀고 있었다. 언덕배기 내리막길을 내려서신 동근이 아버지가 원두막으로 오셔 텃밭에 계신 머머니가 동근이 아버지께 말씀을 건네셨다.

“안녕하세유? 아침나절 일찍부터 밭에 나오셨네유. 먼 길 댕겨오시느라 피곤허실 건디 좀 쉬시 않으시구. 가셨던 일은 생각대루 잘되셨는감유?”

원두막 마루 위에 무슨 서류 봉투를 올려놓으시며 수박 밭을 한 차례 둘러보시려나, 밭고랑으로 들어서던 동근이 아버지가 말씀을 하셨다.

“아이구 말두 마세유. 그 뭐시냐 정섭이란 놈이 우리 집 밭에 참외 서리허다 들켜 가지구 나헌티 맥아지 집혀서 다리를 오을오들 떨며 파리 새끼매냥 손바닥을 싹싹 빌던 게 바루 엊그저께 같은디. 지 깜냥엔 대갈빡이 영글었다구 그러는지? 싸강머리 읍시 고집을 된통으로 부리면서 사람 애를 바짝바짝 태우는 거시 딱 10문 7짜리 고무신짝처럼 어쩌면 지 애비를 그리두 빼다 박았는지 모르것드라구유.”

동근이 아버지가 종구 아버지 일 때문에 대전까지 올라가셔 합의를 보시느라 애를 많이 태우셨는지 푸념을 하셨다.
그러자 오이가 자라대로 자라 무게를 버티지 못하여 줄기가 축 늘어진 오이를 따시던 어머니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원래 병막 터 영감님두 고집은 보통이 넘지유 뭐. 그래서 그 총각이 자기 아버지를 닮아서 그러는가 보네유. 아줌니는 법없이두 살 분인디.”
“왜? 아니래유, 참말루 젊은 놈이 꽉 맥혔다 해두 그렇지 나이 먹은 놈이 그 먼디까장 가서 통사정(通事情)을 허는디. 웬만허면 못 이기는 척허구 들어주면 으디 덧나는가? 그리 똥고집을 부리더라구유. 그래서 허는 수 없이 기성이가 나서 죽으라구 들볶아대듯 사정을 해서 겨우 합의를 했는디, 경찰서에 낸 고소장에 고소인두 지 애비 이름으로 되어 있어 또 지 애비 한티 사정을 혀야 되것더라구유. 그러니 일이 을매나 복잡허게 됐냐구유?”
“그러게유, 그러니 새중간에서 일 보시는 아저씨가 욕을 보시는 거지유 뭐.”
“그래두 으짜것시유. ‘목마른 소가 뜨물 켜드라구’ 죽으나 사나 지 애비한티 도장을 받아야 해서 막차 타고 왔구먼유. 글구 저녁밥 한 술도 못뜨구 병막 터 노인네한티 도장을 받구서 집으로 걸어올라닌게, 진종일 싸댕기느라 힘이 빠져 그런지 두 다리가 엿가락처럼 축 늘어져서 휘청거리더라구유.”

무척이나 힘이 드셨던지 찌푸린 얼굴로 풀숲을 들추시며 제법 묵직한 수박 덩이를 들어 똑바로 자릴 잡아주고 계셨다. 그러자 풀숲에 숨어 있는 모기떼가 극성맞게 달려들었다.

“에이! 뭔 놈의 모구새끼들은 이리 극성맞게 달라드는지 모르것네.”

목에 걸고 계시던 수건을 내려 손에 드시고 모기가 우글거리는 몸 주위를 이리저리 흔들어 모기를 쫓으셨다.

“기나저나 이번에 진정서에 도장 받으러 댕기면서 보닌게 동섭이가 인심을 잃기는 많이 잃었드라구유. 동네 사람들이 그저 ‘처 삼촌 묘등에다 벌초하듯이’ 그리 깊이 신경을 쓰지 않구, 그저 한동네 산다는 정리루 마지못해서 찍어 주는 사람들이 거의 태반이드라구유. 그러니 앞으루는 동섭이가 자중를 혀야 될 건디 으짤라나 모르것네유?”
“그러게유, 원체 성격이 남달리 표가 나서 그게 좀 문제지유.”
“그리구 손바닥으루 하늘 못 가린다구 감추구서 살아 본들 벳모가지 누렇게 익어 가면 어차피 토끼재 댁허구 두 집 살림 한군디루 합쳐야 헐 건디, 동네 사람들 다들 눈이 있은게 보지 마라구 혀두 보게 될 것이구 귀가 달렸으닌께 듣지 마라구 혀두 들을 것인디. 으짤랑가 모르것네유.”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허리를 재빨리 펴시며 ‘동근이 아버님!’ 하고 다급하게 부르셨다. 그러자 동근이 아버지가 급하게 부르시는 어머니 얼굴을 빤히 바라보시며 다시 말씀을 하셨다.

“아! 뭐시 어뗘서 그런데유? 종구 애비허구 그 양반이 어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숨어 살 것두 아닌디, 어차피 애들두 알고 넘어 가야 헐 일 아닌감유? 그리구 지가 알기루는 이번 일에 상민이 엄니가 중간에서 애를 많이 쓰신 모양이던디 암튼 욕을 많이 보셨네유. 아참! 내 정신 좀 봐. 아줌니랑 야그 허느라구 시간 가는 줄두 몰랐네유. 동섭이 그 사람 급한 승질머리에 어지간히 눈 빠지게 기둘릴 건디. 빨랑 가서 경찰서에다 합의서두 넣어야 되구, 동섭이 면회두 할라면 바쁠 것 같아 날랑은 싸게 가봐야 쓰것네유.”

동근이 아버지께서는 밭두둑으로 나오셔 서류봉투를 드시고 주막집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서두셨다.

그런데 방금 전 두 분이 주고받으신 말씀 중에 귀가 번쩍 하는 소리가 있었다.

‘종구 아버지가 토끼재댁 허구...’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이번 일에 상민이 엄니가 중간에서 애를 많이 쓰셨는 모양인디’라는 말에 그만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동안 작은 기우에서 멈추길 그토록 바랐는데 이 모두가 사실이라면 하는 생각에 발 밑바닥에서부터 내 오장육보를 뒤흔들고 목젖을 치고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런 탓에 얼굴이 불그레해져 두 귓불이 뜨끈뜨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귓속에서 이음이 들려올 정도로 내 감성은 무엇이라 꼬집어 말로 표현키 힘든 혼란 속에 아픔이 밀려오고 있었다.

밭에서 퉁퉁한 오이 몇 개를 손에 들고 나오시던 어머니가 사립짝 앞에 서 있는 나와 서로 눈이 마주치자 굳어진 내 얼굴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셨다.

“너는 담 너머 넘집 넘보는 것 매냥 뭐 헌다구 그기 서 있냐? 어여 들어가자 건건이두 읍는디 시원허게 오이 냉국이라두 혀서 먹게.”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며 사립짝 안으로 들어가셔도 채 추스르지 못한 감정에 아무런 대답을 않고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니 너는 뭐가 그리 못마땅혀서 소화다리 떡장사 뺑득이 엄니매냥 입이 남산맨큼 잔뜩 부어터져서 그런다냐? 어여 들어가자닌께 뭘 꾸물럭거리냐?”

아예 종구 아버지와 옥순이 어머니 일에 대하여 말문을 서둘러 막으시려는지 다시금 다그치시듯 말씀을 하셨다.

“아, 알었다구. 내가 어디 귀머거린감 한번 했으면 됐지. 귀찮게시리 가마솥에 콩 볶아 대듯이 재촉허는가 모르것네.”

이래저래 화가 나서 어머니 얼굴도 보지 않고 마당 안으로 쓱 들어서고 말았다.

“아니 저놈 허는 짓거리 좀 봐. 으디 에미헌티 대구 얼굴 붉히면서 말대꾸냐 말대꾸가! 저 싸강머리 없는 놈 가만히 허는 짓거리 보닌께, 나중에 지 기집이나 하나 얻어 장개라두 들면 볼만허겄네 그려. 허긴 서방 복 없어 지리리두 궁상 떨며 사는 년이 뭔 놈에 자식 복은 있을 라구. 내 꿈이 야물지 내 꿈이 야물어 에이구.”

어머니는 아주 서운하시고 불편하신 마음으로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마루에 그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잠재되었던 쌀가마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새롭게 비좁은 마음속에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무엇이라 속 시원하게 묻고 싶은 말들이 좁은 가슴속에 꽉 차올라도 내 어머니에게 더 큰 아픔이 도래될까 두려워 입 안에서만 맴도는 소리가 턱을 넘지도 못했다.

익을 대로 익은 탓에 셔 꼬부라진 열무김치의 시크름한 냄새가 온통 번져나는 쪽마루 한쪽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무척이나 거북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져 답답한 마음에 사립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산기슭 아래 자릴 잡고 있는 종구네 육중한 기와집을 바라보았다.

지난날 종구 아버지로부터 제때에 이자를 갚지 못한다고 그리도 처절하게 당하셨던 어머니가 진저리가 나지도 않으신지? 과연 무엇 때문에 그러셨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빛바래져 가는 어머니의 강인했던 의지력이 실망스럽기도 했다.

왜 하필이면 종구 아버지와 재혼을 하는 상대가 옥순이 어머니일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온통 혼란스럽기만 하여 버릇처럼 먼 산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이제 갓 어미 품을 떠나 그래도 어미를 찾으려 하는지 애절하게 울어대는 새끼 고라니 소리가 퍽이나 애잔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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