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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56 조회 : 1,100




마을 앞산은 보기 좋을 만큼 솟아올라 완만한 경사를 이뤄 마을로 뻗어 내렸다.

그 산마루에 우뚝 서 있는 노송(老松)은 그 자태와 기상이 절로 넘쳐났다. 그리고 산자락엔 아직은 수령(樹齡)이 어릴지라도 예스러운 풍치(風致)를 지니고 있는 작은 소나무들이 알차게 들어차 아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난 검푸른 소나무들이 힘찬 도약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우리에 삶은 그토록 고난스럽기만 했다. 거친 삶에 부대껴 터져 나오는 숨소리가 목 안에 가득 차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어린 자식들과 배고픔을 면해보려고 너나 할 것 없이 때를 가리지 않고 바동댔다.

그런 빈약한 삶의 구조 속에 내 자의적인 면은 철저하게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그런 삶의 분위기에 휩쓸려 힘없이 끌려가야만 했다. 때로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굴곡진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면서도 내 의지대로 할 수는 없었다. 때론 속이 껄끄럽고 비굴할 정도로 적당히 타협하려 했다. 그런 탓에 내가 늘 지향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너무도 간극이 컸다. 그로 인해 어린 내 호흡이 더욱 가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불안한 요소들이 불만족스럽게 쌓이고 쌓여 넘쳐 날 때에는 앞산 마루에 성큼 올라가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그러나 뉘라서 보아 줄 사람 하나 없어 그저 적적하기만 했다.

그래도 청명한 하늘은 온화한 눈빛으로 높고 널따란 가슴을 활짝 열어 그 여름날들의 기억들과 함께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으려 했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속 깊은 곳엔 큰 위안을 듬직하게 주는 과묵한 저 산이 있었다.

푸른 하늘 한구석에 성글성글하게 들붙어 있는 하얀 조각구름들이 무늬를 이뤄 아름다움이 가득 묻어났다. 늘 하늘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저 멀리 보이는 들녘 먼발치까지 쓸어안아 등을 다독였다. 무릇 나 하나만을 빼놓고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정연한 자연의 섭리 속에 고루고루 축복을 받고 있는 것 같이 풍성하게 보였다.

그 하늘 아래 흙먼지가 옴팍옴팍 내려쌓인 신작로가 길게 이어진 시오 리 읍내 길이 가물가물하게 바라보였다. 막상 따지려 들면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인 듯싶은데 온 누리에 이글대는 햇살에 눈이 가득 시려와 다붓다붓 들붙어 있는 읍네 건물들을 그리는 오래도록 바라볼 수 없었다.

어설프게 둘러진 울타리 가에 외롭게 우뚝 서 있는 잎사귀가 널따란 한 그루 오동나무는 언제나 낮은 초가지붕을 다정스레 내려다보았다.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날씨 때문인지 넓은 들녘은 지열로 이글이글 끓어올라 검푸른 벼 이삭 위에 아롱거려 가끔 불어오는 산바람에 두둥실 부풀어 올랐다.

그 평온한 자연 속에 한 조각처럼 한동안은 냇둑에서 그 모습을 보이지 않던 누런 황소를 몰고 풀을 뜯기려 소를 몰고 냇가로 나오는 종구의 모습이 자그맣게 바라보였다.

얼마쯤 세월이 흐르고 나면 종구네 집과 옥순이네 집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종구 자신도 한동안은 감당키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런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올 일들을 아직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산기슭 우뚝한 둔덕에 높다랗게 자리 잡은 내 작은 초가집은 아랫마을에서 바라보아도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도 세세하게 보였다. 외삼촌이 집에 오신 것을 오고 가는 동네 사람 누군가의 눈에 띄어 어머니에게 귀띔을 해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께서 동네 고샅길을 잰걸음으로 걸어오셨다. 작렬하는 한나절 해가 동네 한복판에 또렷또렷하게 모습을 나타낼 즈음이었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끈끈한 혈육의 정이 앞서는지 외삼촌이 먼저 울타리 너머로 손을 가볍게 흔드셨다. 그러자 방죽 앞을 지나오시는 어머니도 함께 손을 흔들어 참으로 오랜만에 남매의 정을 확인하려는 것같이 보였다.

어찌 보면 지나간 날 동안 어머니 나름대로는 마음 구석구석에 외삼촌에 대한 서운함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두 분의 꾸밈없는 모습에서 그런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설령 그런 서운함이 점차적으로 서서히 드러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정이 넘쳐나 보였다.

멀리서 집을 향해 오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언제 그리도 잽싸게 뛰어나갔는지 검둥이란 놈이 꼬리를 흔들며 앞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언덕배기를 오르시는 모습이 그 어리고 까만 두 눈동자에도 보였는지 순덕이가 ‘엄마엄마’ 하고 부르면서 사립짝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자 울타리 밖을 바라보고 계시던 외삼촌이 그런 모습에서 우리와 순덕이 사이에 끊지 못할 정이 녹녹하게 배어들었음을 느끼셨는지 의미 깊은 눈빛으로 순덕이를 바라보시며 살며시 웃고 계셨다.

“오빠! 언제 왔어?”

사립짝 앞으로 다가서시던 어머니가 그동안 쌓였던 그리움과 나름대로 서렸던 서운함이 한데 뒤엉킨 반쯤 울먹이시는 목소리를 내시며 들어섰다. 그런 모습이 조금은 두렵게 보였는지 어미 품을 찾는 연약한 병아리처럼 순덕이가 어머니 품 안으로 바싹 파고들었다. 눈물이 가득 서린 눈을 저고리 소매 끝으로 얼른 훔치시며 순덕이를 끌어안으시고 외삼촌도 눈시울이 뜨거워지셔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응 조금 전에 왔어. 넌 아랫마을에 볼일 보러 갔다 오냐?”

외삼촌이 어머니와 함께 쪽마루에 앉으셨다. 잠시 후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오빠라서 그런지 순덕이 어머니에게만 점심 준비를 맡길 수는 없으신 듯 부산스레 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동안 알뜰하게 모아 두었던 계란 바구니 속에서 누런 달걀을 서너 개쯤 들고 나오시며 외삼촌을 향해 말씀하셨다.

“올케언니랑 애들두 매냥 잘 있지? 큰애 이름이 정강인지? 작은애 이름이 정강인지? 애들 안 본지가 하두 오래 되닌께 이름두 다 까먹어버려서 잘 모르것네.”
“응 다덜 잘 있어. 그리구 큰애가 정강이구 작은 애가 정순이여. 큰애는 이번에 논산 읍내에 있는 여자중학교에 들어갔구. 또 작은애는 그기 있는 구자곡 국민학교 5학년에 댕겨. 그라고 니 언니는 쌀가게 보랴, 끼니때마다 밥하랴, 애들 뒤치다꺼리하랴 정신없이 살어, 그나저나 상민이란 놈이 그래두 강경중학교에 떡 허니 붙어서 내가 기분이 참 좋다. 에이구! 죽은 지 애비가 살어만 있다면 을매나 좋아헐 꺼냐? 그리 허망허게 죽어번지구 말었으니 참 무심헌 사람이지. 암튼 니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것구나!”

말을 마치신 외삼촌께서 아랫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뱃갑을 꺼내셨다. 그런데 지금껏 흔히 눈으로 보아왔던 동네 어른들이 피우시는 파랑새나 건설 같은 담배와는 달랐다. 그래도 읍내에서 쌀장사라도 하셔서 여유가 있으신지 필터가 붙어 있는 고급스런 아리랑 담배를 피우셨다.

그리고 어렸을 적 얼굴을 본 적이 있어도 너무도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살아 정강이누나 얼굴이 좀처럼 떠오르질 않았다. 그저 흐릿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유난스레 누런 코를 많이 흘렸던 기억뿐이었다. 저고리 소매 끝이 반질거리게 누런 코를 닦아 담벼락 앞에 모여 옥순이와 함께 코딱지라고 놀려댔던 생각만 가물가물 떠오를 뿐이었다.

묵직한 자세로 자릴 잡은 앞산이 언제나 그렇듯이 묵묵히 아랫동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탈진 담배 밭에는 점점 누렇게 색깔이 변해 가는 담뱃잎이 더부룩하게 자라났다. 그리고 마치 흙으로 탑을 쌓은 듯 담배 건조장 모습이 단작스럽게 걸쳐 놓은 나무 사다리와 더불어 길쭉스름하게 높이 바라보였다.

그리고 뒤뜰엔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계곡을 따라 천수답 논배미로 물꼬를 트고 있었다. 그렇듯 내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은 평온키 더없는 여름 모습을 아기자기하게 그려 담소한 정취를 자아냈다. 그리고 산 밑자락 모퉁이를 휘어 도는 큰길가엔 면소재지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길 따라 올곧게 서 있는 미루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보였다.

너무도 가난으로 옹색하여 집안 이곳저곳을 뒤져봐야 딱히 나올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라도 더 밥상 위에 차려 보려고 어머니는 집 안 앞뒤를 그리도 부산스레 들락거리셨다. 그날따라 좀처럼 하지 않던 하얀 쌀밥도 넉넉하게 하셨다. 더불어 잘 익어 맛깔스런 오이소박이도 꺼내 놓으셨다. 그리고 뒤뜰 장독대로 가셔 묵은 된장 속에 깊이 박아 두었던 장아찌도 꺼내시고 텃밭으로 가서 연한 열무를 솎아 오셔 어머니 나름대로 상을 푸짐하게 차리셨다.

그리 쉽사리 젓가락이 갈 만한 것은 없어도 무릇 가짓수가 많다 보니 밥상이 비좁을 것 같아 일 년에 두서너 차례 제사상으로나 쓰는 커다란 사각 상을 펼쳐놓았다.

어머니께서는 순덕이 어머니와 함께 몇 차례 정도 부엌을 들락날락하시며 점심 밥상을 차려 놓으셨다. 식구들이 모두 앉아 먹고 있는데 순덕이 어머니는 그래도 외삼촌과 함께 자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우신지 부엌에서 순덕이와 함께 밥을 드셨다.

식사를 하시던 외삼촌이 종구네 집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셨다.

“집만 번드레하게 지으면 뭣 헌다냐? 사람이 맴씨를 곱게 써야지. 그래야 나중에 죽더라도 곱게 썩어 흙 색깔이라두 곱게 나지. 그건 그렇구... 그 뭐시냐? 대전형무소에 있는 지 동상 정섭이헌티 면회는 자주 댕기나 모르겠다.”
“요새 그 집두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여. 뭐시냐, 집인가 뭔가를 짓는다구 병막 터 정씨 영감네 산에서 솔낭구를 막 베어서, 그 일루다가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겨우 합의를 보구 오늘 아침에사 풀려나왔구먼 그려.”

그러자 밥을 드시며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외삼촌이 전후 사정 얘기를 더 이상 깊숙이 듣지 않아도 이해가 충분히 가시는 듯 머리를 끄덕이셨다.

날씨는 기승을 부리는 막바지 더위에 덥고 후덥지근한데 밥까지 더운밥을 먹고 나니 식구들 모두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어머니는 외삼촌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계셨다.

점심 밥상을 물리시고 난 외삼촌이 어머니와 함께 뒤뜰 밤나무 밑에 앉으셔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것을 가만히 들어 보았다.

“그럼 오빠는 즌즉부터 순덕이 애미에 대해서 알고 있었네? 나두 첨 만났을 때부터 순덕이 애미가 운주 어딘가에서 살았다는 얘기만 겨우 해주구 입을 그리 꾹 다물구 말을 하지 않아서 필시 무신 곡절이 있을 꺼라구 생각을 혔어. 그런데 오빠네가 살던 곳 허구 그리 가참한지는 증말루 몰랐어. 시방 오빠 말 듣구 보닌께 고개 하나 넘으면 만날 수 있는 곳이었구먼 그려. 참 세상 좁지. 그래서 그 순덕이 아빠라는 사람은 뭐허구 살든 사람이었는데?”
“뭘, 뭐허구 살기는 뭐허구 살어. 그 첩첩산중 산골짜기에서 화전밭에다 감자허구 수숫대기나 심어 갱신히 먹구 살면서 숯가마 터에서 숯 굽는 일이나 하고 살았지 뭐. 그리 막벌이허면서 살다 보닌께 느는 게 술이지 뭐. 그래두 봄가실에는 일거리가 있어 그렇타 치지만, 노루란 놈두 발목대기가 푹 빠져 댕기지 못할 정도루 눈이라두 쌓이는 시한에는 숯을 실어 나르는 도라꾸가 산으로 들어오질 못해 눈 녹을 때까장 기둘려야 허닌게 그나마 목숨줄 걸구 살던 숯막에 연기가 꺼져버리구 말았지. 그리고 허구헛날 할 일덜 없으닌께 사방천지 낭구는 흔허닌게 방구들 뜨끈뜨끈허게 불 때서 궁둥짝 벗어지게 군불 지펴 놓구... 아, 용천배기 콧구멍에 마늘씨를 빼먹구 말지. 서루들 살기 빠듯헌디 누가 누구 돈을 따먹을 거라구. 죄덜 모여 앉아 그놈의 노름판때기나 벌리구 살았지 뭐.”

말을 끝마치신 외삼촌께서 남에 일이지만 무척이나 한심하신 듯 한숨을 크게 내쉬셨다.

매미 소리 우렁우렁 들려오는 밤나무 그늘 아래서 쪼그려 앉으셔 다른 사람도 아닌 순덕이네 얘기라 열심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참말루다가 대책이 없는 사람이네 그려. 그러니 그런 서방 밑에서 살은 저 여편네는 을매나 속이 터지다 못해 썩어문드러졌을까? 에휴.”
“아! 말하면 뭐헌다냐? 보름마다 해주는 간조날 받은 돈 몇 푼 가지구 그 뭐시냐? 전주 바닥에서 힘 꽤나 쓴다는 감독 일 허는 사람허구 노름이 붙어 그만 돈을 죄다 잃구 속이 상해 술을 양껏 먹구서 개평을 달라구 생때를 쓰며 멱살재비를 혔다지. 그러다가 그 감독인가헌티 실컷 두들겨 맞는 통에 같이 산판 일하는 사람들이 겨우 뜯어말겨 집으로 내려보냈다구 하드라구.”
“참 미쳤지, 미쳤어. 제 정신가진 사람이 어디 그딴 짓 하것어?”
“누가 아니라냐? 그래 가지구 술에 잔뜩 취해서는 집구석으로 왔는데... 차라리 벼룩에 간을 빼먹지. 저 아줌니가 봄에 틈틈이 산나물 꺾고 여름엔 버섯 따서 면소재지 장날에 내다 팔아 모아 놓은 돈이 얼매나 된다구, 본전 찾아 온다구 돈 내놓라구 졸라대도 저 아줌니가 그 돈을 안 내놓거든. 그러니 화를 버럭 내믄서 아, 무식헌 놈이 일 저지른다구 아주머니를 죽도록 두들겨 패는디도 시어머니란 사람은 자식놈 기세에 눌려 말리기는커녕 말 한 자락 꺼내지두 못했다나 보드라구.”
“아이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을 인간이지, 꼴에 사내랍시구 여편내 매질까지 했는감? 애기로만 듣구 있는 내가 손발이 다 떨리네.”
“뭐시냐? 저 아줌니가 그리 두들겨맞아두 끝까장 돈을 안 주니께 동네 주막으로 가서 외상술을 잔뜩 퍼 마시구 그 숯막 감독을 죽인다구 허면서 제 딴에는 빨리 가려구 멀쩡헌 길 냅두구 그 험하디 험한 소릿길로 올라갔다는디, 달이 중천에 멀겋게 떠오르도록 집으로 오지를 않아서 동네 사람들이 횃불을 밝히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까시넝쿨 헤쳐 가며 온 사방간디를 오랫동안 찾다 보니께 술에 취해서 높은 바윗돌에서 미끄러져 굴러 떨어졌는지 산 아래 바윗돌에 부딪쳐가지구 머리에서 검붉은 피가 철철 흘러나와, 죽어 뻣뻣헌 시체로 남아 있드랴.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시신을 거둬다가 뒷산 양지바른 디다 장사를 지내줬다고 하던구먼.”
“음, 그러니... 저 여편네 혼자서 어린 거 데리구 으찌 살라구 그리 세상 떠났데? 허기사 평생 인간 대접 못받구 두들겨 맞으며 살바엔, 차라리 으찌 보면 잘된 일인지두 모르지. 근디 어떻게 해서 요기까장 왔는지 모르것구먼. 내사 물어볼 일두 아니라서 속으로만 그저 궁금허게 생각 했지 뭐.”
“아 글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그 노인네가 자기 자식이 죽구 나닌께 그 한풀이를 저 아줌니헌티 해대는디 그리 죽을 것 살아 있을 때 소원이나 풀어 줄 것이지 안 들어줬다구. 귓구녁에 깽매기 뚜드리듯이 악을 쓰구 소락때기를 질러대면서, 그놈의 나물 뜯어 팔은 돈은 아꼈다가 내 아들 죽구 나면 새서방 만나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게 살라구 모닸냐구 억지를 부리구 낮밤으루다가 그리 볶아댄 모양이더라구. 그래도 꾹 참고서 몇 달을 버텨 사람 도리는 다 하느라구 가을바심까장 다 해놓구, 결국에는 견디다 못해 그해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 달랑 입은 옷 한 벌로 오밤중에 그리 훌쩍 그곳을 떠나버리게 된 거란다. 그러니 참 저 아줌니 팔자두 을매나 기구허냐?”

좀 길고 장황하게 설명을 곁들여 이야기를 하시는 외삼촌을 주의 깊게 바라보시며 드문드문 한숨을 내쉬던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으셨다.

“아이구 그러니 내 팔자나 저 여편네 팔자나 기구헌 건 매나 한가진데 뭐. 이것저것 따질 것두 없구. 같이 한솥밥 먹구 살게 된 것두 전생에 인연인가 보닌게 서루 돕구 살아야지 뭐. 그리구 저 어린것두 인제는 넘이라는 생각이 하나두 안 드닌께 그새 나두 몰르게 정이 들대루 들었는가 봐.”

그런 지난날의 아픔을 전혀 알 리 없는 순덕이가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두 분이 측은하신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나 또한 그런 순덕이가 더욱 안쓰럽게 보여 먼 훗날까지도 더욱 잘해 주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해는 서편 들녘으로 어제처럼 성큼 내려섰다. 뒤편 둔덕에 들어차 있는 소나무들과 밤나무 그늘이 모습을 점차 길게 마당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마치신 듯 순덕이 어머니가 자싯물 그릇을 부엌문 앞으로 들고 나와 마당에 흙먼지를 가라앉히려 물을 끼얹으셨다. 그러자 개숫물 속에서 섞여 나오는 밥알들을 주워 먹으려 나무 그늘 밑에 움츠려 숨을 헉헉거리던 닭들이 우르르 몰려와 부리로 밥알을 쪼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너헌티 너무 허술하게 대한 것 같아 미안하다. 넌 어떻게 생각혔나 모르지만 나는 나대루 논마지기 팔어 가지구 간 돈으로 어린것들이랑 살아 볼려구 겨우 산 하나 사 놓구 보닌게, 멀쩡헌 산 놀릴 수 없어 그 높은 산 중턱에서 참나무 베어 끌고 내려와 세워 놓구 표고버섯 종균이라두 넣을려니 참말루 눈코 뜰 새 없더라. 그렇게 죽으라구 시작혀 본 버섯 재배두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영 타산이 맞질 않고, 그리구 그새 중간에 큰딸아이 상급학교 교육문제도 있구 혀서 지난봄에 까치 마을 삼거리로 이사를 하고 말았다.”
“오빠 난 절대루 오빠 원망을 해본 적은 읍서. 지 애비 그리 허망허게 먼저 보내구 나서 저 어린 걸 데리구 살라닌께 첨엔 앞이 깜깜혀서 못살 것더라구. 그래서 이 생각 저 생각허다가 읍네 젓갈장사 하는 정심이헌티 찾아가서 뭐라두 혀 볼라는디 으짜면 좋겻냐구 물었더니, 지두 첨에 해 본 거라구 젓갈장사를 혀보라구 해서 시작한 거시 지금까장 하는 구먼. 근데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세상이 그리 녹녹허질 않드라구. 장리 빚 독촉하느라구 시도때두 읍시 들볶아대는 종구 애비 땜시 결국엔 알뜰 논배미 서마지기 면소재지에서 점방 하는 염씨네헌티 팔구 말았어.”

말씀을 마치신 어머니가 지난 일들에 대한 아픔이 또다시 생각나시는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음, 그 인간이 능히 그러구도 남았을 게다. 암튼 어린 거 하구 참 고생이 많았다. 나두 지금이사 겨우 자리를 잡아 가지만 세상 살기 참으로 힘들더라. 처음 연무대로 이사를 해서 뭐를 할까 생각하다, 그래두 헐 수 있는 것이 농사일을 혀 봐서 쌀은 볼 줄 알어 장터에다 넘 집 가게방 사글세로 얻어 쌀장사를 시작혔는디... 면회가 있을 때는 그럭저럭 장사가 되는 듯싶더니 아래께부터 면회가 없어지구 나닌께, 수입이 절반으루 내려앉기는 혔지만 그냥저냥 애들 둘 가르치구 밥 먹구 사는디는 별루 지장이 없을 것 같구나!”
“그래두 어찌됐던 잘된 일이네. 오빠라두 그리 잘 살면 되는 거지 뭐. 그맨큼 맹그러 놓는라구 언니가 죽어 났겠네.”
“그려, 이 맨큼이라두 숨 돌리게 된게 다 그 사람 덕이지 뭐. 그리구 나랑 성님 동상허구 지내던 양반이 그기 살면서 훈련병 면회 덕분에 돈을 벌었는지 내가 세들어 사는 건물을 사들였어. 그런데 면회가 없어지자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간다구 허면서 이층으루 된 건물을 넘주기 아깝다구 나보구 사라구 혀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새 중간 억척배기 니 언니랑 둘이서 죽을 둥 살 둥 모아 놓았던 돈으로 우선 계약금과 중도금으루 절반을 치루구, 나머지 절반은 일년 후에 갚기루 허구 건물을 샀는디, 아래층에 점방이 두 개 딸려서 하나는 내가 쌀가게루 쓰구 또 한쪽은 양복점 허는 사람이 월세를 달라구 혀서 주었단다.”
“그럼 아직까장은 건물 값을 다 못 치뤘네? 그럼 그 돈두 갚을라면 큰 걱정이것네 그려.”
“그러니 죽으나 사나 벌어야지. 한 일 년 죽어라 벌어 보구 정 안 되면 시골에 있는 산이라두 팔려구 맘 먹구 있어. 그리구 이층에는 그전부터 다방을 허든 자리라 훈련병들 면회가 있을 때는 누구 말마따나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다구 허는디, 아무래두 시방은 그만은 못혀두 니가 종업원 두고 슬슬 경험을 쌓아 가면서 혀 보면 어떨란가 싶어서 니 의사를 물어볼려구 온 거여. 그러닌게 너두 이제 나이두 먹어 가는디 자꾸만 뙤약볕에 목 아프구 발바닥 후끈거리게 젓갈 장사를 헐 것두 아니구. 애두 다 컸으닌게 서둘르지 말구 잘 생각을 혀 보라구. 그리구 니 언니두 널 보구 싶어 허닌께, 니 언니 얼굴이랑 니 조카들 얼굴두 볼 겸혀서 이번 공일날쯤에 한번 댕겨가거라. 그럼 그렇게 알구 날랑은 얼른 집에 가 봐야 쓰것다. 여편네 혼자서 쌀 배달두 못허구 죽어날 건디.”

외삼촌께서 밤나무 그늘 밑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사립짝 앞으로 걸어가시며 순덕이 어머니에게 목을 가볍게 숙여 인사를 나누시고는 버스를 타시려고 들 주막 정류장을 항하여 밭둑길로 걸어가셨다.

어머니와 나는 외삼촌이 서낭당 고갯마루에 올라 모습이 가물가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혈육의 정이 그토록 소중함을 몸과 마음으로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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