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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59 조회 : 1,054




아직은 덜 자란 탓에 미약한 내 능력으로는 어느 작은 것 하나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삶의 모습이 수운(愁雲)으로 가득 차 비록 어둡고 고난스럽게 보일지라도 결코 성급히 서둘지 않고 과묵하게 기다릴 줄 아는 냉철한 이성(理性)을 늘 저 산으로부터 조금씩 배우려 했다.

그렇듯 내 주변에 친숙하게 머물고 있는 자연 속의 숱한 사물들과 끊임없는 교감을 가져 삶에 필요한 정신적 양식을 얻고 싶었다. 청초한 풀잎들의 파릇함이 온 산자락에 연초록빛 신록의 띠를 두르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계절은 검푸름이 산등을 타고 번져났다.

마을 어귀에는 언제부터였는지 가늠키 어려울 만큼 세월의 때가 옴팍 묻어난 검회색으로 얼룩진 거북 모양의 둥그스름한 돌 하나가 있어 머리가 반쯤이나 땅에 기우뚱하게 박혀 있었다. 가파르게 내리뻗은 산기슭 끝자락과 들녘 끝자락이 서로 맞닿은 이곳, 수없이 많은 야생화가 피어나는 천혜(天惠)의 터 들메 마을 어귀에 조물주의 힘으로 땅에서 자연스레 솟아올랐다고 하는 거북이 형체의 돌을 윗대 그보다 더 윗대 조상 때부터 거북바위라고 불렸다. 어찌 보면 동구 밖 나들목에 버젓이 자릴 잡아 바윗돌 어느 한구석에도 그럴듯한 문양(文樣)이 한 점도 없어 보잘 것 없이 보이는 돌이였다. 그래도 굴곡진 고난의 세월 속에 숱한 억압을 받으며 살아온 순박한 민초들이 내뱉는 아픔의 소리들을 마음속 깊이 기억하며 풍진 세상을 함께 버텨 온 거북바위였다.

토속신앙이 민초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배어 미신(迷信) 숭배가 창궐(猖獗)했던 그 무렵 동네 사람들은 풀기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거나 마음속에 갈구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심리적으로 돌거북에게 의존(依存)하려 했다. 그로 인해 이슬이 눅눅하게 소리 없이 내리는 이른 새벽이나 앞산 머리에 휘영청 밝고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이슥한 밤에 거북바위 앞에 정안수 떠놓고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혀 수없이 빌고 또 빌던 모든 이들의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그다지 큰 효험(效驗)이 없었는지 아니면 정성을 드려 그토록 빌고 또 빌어 보아도 정성이 크게 부족하여 바라는 만큼 채워지질 않았는지 동네 사람들의 시야를 벗어나 이리저리 천박하게 굴러다니고 말았다. 동네 어귀 밭 한 모퉁이에 버려진 채 점점 소외되어 덧없이 흘러간 세월의 아쉬움을 깁고 있는 작은 바위는 철딱서니 없는 동네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전락(轉落)되고 말았다.

어린 우리들은 거북바위를 그렇게도 좋아라하며 흙 묻은 신발로 등을 타고 올라 힘껏 구르며 놀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선생님 몰래 슬쩍 훔쳐 온 백묵으로 여기저기 낙서를 하였고, 더러 짓궂은 개구쟁이 녀석들이 작은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싸기도 했다.

그러다 동네 어른들 눈에 띄면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저 철딱서니 없는 놈들 하는 짓 좀 봐. 야 이놈아 허구 헌디 다 놔두고 하필이면 그기다 대구 쌩오줌을 갈기구 지랄을 허냐! 너 그딴 짓거리 허면 거북이 귀신이 밤에 업어 간다.”

그래도 한때는 애지중지했던 거북바위가 개화의 물결에 휩쓸려 서서히 뒷전으로 밀려나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시는지 큰소리를 치시며 나무라셨다.

동네 어른들이 큰소리를 치시면 철길로 우르르 도망을 친 우리들은 헐떡거리며 차오르는 숨을 애를 써 가누었다.

“야들아 귀신은커녕 거북이 꼬랑지두 읍는디 우현이 아부지는 우덜만 보면 왜 저런다냐? 글구 우덜만 저기다 오줌 쌌냐? 동네 형들두 그전에는 설찮게 다덜 쌌다구 허든디, 귀신 있으면 다 잡혀가야 허는디 아직까장은 다덜 말짱허게 살아서 돌아댕기닌께. 그냥 우덜 겁줄라구 죄다 그짓말허는 거지 뭐 안 그러냐?”

동네 꼬마들 중에서 제일 힘이 세 대장 노릇을 하는 우물가 집의 종기형이 거들먹거리며 말을 하면 우리들은 까만 눈동자를 끔벅거리며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하루 내 아랫마을에 내려가 계셨던 어머니가 장사를 해서 갚기로 약조約條)를 하고 동네 뉘 집에서 변통(變通)을 하셨는지 머리에 동그란 볏짚 똬리를 얹어 감자가 들어 있는 포대 자루를 이고 오셨다. 힘이 드시는지 거북바위 위에 내려놓으시고 잠시 쉬고 계신 것 같아 얼른 마중을 나가려는데 약삭빠른 검둥이가 싸리문을 박차고 나가 나보다 한참을 앞서 득달같이 달려갔다.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동네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까 봐 동네잔치에 선뜻 나서지도 못하신 순덕이 어머니가 마음에 걸리셨는지 병수네 잔칫집에서 얻어 오신 종이에 싼 삶은 돼지고기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어머니께서 산골짝 집으로 돌아오신 것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모습으로 앞산 언덕마루 왕소나무 위로 발걸음 하려 슬슬 몸을 굼적거릴 즈음이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니 부엌문 밖으로 비록 보잘것없는 시래기 국일지라도 퍼져 나는 냄새가 제법 구수하게 풍겨났다. 지난 늦가을 철에 배추 이파리와 무청을 볏짚으로 가지런히 잘 엮어 바람이 잘 통하는 바깥벽에 걸어 겨우내 말려 두었던 시래기였다. 그 시절 배를 채워 주고 부족한 찬거리를 메우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요긴하게 쓰였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각자도생(各自圖生)하려고 애를 쓰는 민초들에게 어찌 보면 겨울 양식 중 하나였다.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넣고 국을 끓여 어쩌다 운 좋게 굵은 멸치라도 국에 넣으면 구수한 그 맛에 조금이라도 시름을 달랬었다. 어린 우리들은 국물 속에서 퉁퉁 불은 멸치를 그리도 소중하게 뼈를 발라 밥그릇 한구석에 모으는 여유를 가져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늘 국그릇 안에서 멸치를 건져 뼈를 발라 순덕이 밥그릇에 넣어 주셨다. 순덕이는 멸치 맛이 그리 좋았는지 밥그릇이 다 비워져도 멸치를 먹지 않고 손가락만 빨면서 보물처럼 들여다보며 아끼고 아끼려 하는 모습이 너무도 귀엽게 보였다. 내가 일부러 약을 올려주느라고 젓가락으로 집으려 하면 펄쩍펄쩍 뛰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순덕이의 천진한 모습을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빙긋 웃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저년 하는 짓 좀 봐! 어린 게 욕심을 부리는 것이 꼭 심술맞은 놀부 여편네를 빼다박었네 그려. 지 오래비가 조금 먹는 시늉만 혀두 저러는디 난중에 크기라두 허면 지 오래비 생각이나 헐런지 모르것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밥숟가락을 움켜쥐어 울고 있는 순덕이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시며 달래주셨다. 그렇게 시래기는 된장국은 물론 나물로 무쳐도 먹었고 그리고 된장찌개와 더러는 시래기 밥을 해먹어 허기진 배를 채우며 긴 겨울을 힘들게 넘겼다.

어둠이 짙어 가는 새까만 밤하늘에 까막까막하는 개똥벌레 불빛이 파름하게 보이는 쪽마루에 식구들이 모여 앉아 모깃불의 매캐한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어른 두어 명은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삶은 돼지고기를 펼쳐 놓으셨다.

‘여름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고 몇 번을 말씀하시며 순덕이 어머니에게 손짓을 하셔 새우젓과 함께 드시라고 성화를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병수네 집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해서 그런지 배가 더부룩하다고 하시며 저녁밥을 드시지 않으셨다. 순덕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기름기가 많은 부위를 피해 고기를 잘게 떼어 작은 입 안에 넣어 주시며 꼭꼭 씹어 삼키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

멀리 떨어진 신작로에서 두서너 줄기 성긴 자동차의 불빛이 붉은 파초 꽃 위로 곧게 비쳤다. 그 불빛이 잠시인들 마음을 가라앉혀 차분하게 해주었다.

삶은 진력(盡力)만으로 그 모두가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사고의 방향을 타의에 의해서 잃고 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때 내가 가슴을 졸이며 가장 크게 우려했던 점은 소중하신 내 어머니가 옥순이와 종구는 물론 동네 사람들 눈에 종구네 아버지와 옥순이 어머니 사이에서 거식하는 모습으로 초라하게 비춰질까? 하는 것이었다.

나름대로는 그렇게 고심을 해 보았지만 미력(微力)한 어린 나는 그날 밤까지도 옥순이 문제에 뚜렷한 해법을 찾을 수가 없어 말 한마디도 못했다. 오히려 어머니 입에서 무슨 말이 먼저 나올까 싶어 은연중 기다려 보아도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태어난 이곳에서 내 어머니의 정성과 힘으로 동네 사람들과 한울타리에서 더불어 살아오는 동안 가슴 벅차게 기뻤던 순간과 때론 가슴이 뒤틀리도록 처절한 아픔을 부여받으며 자라났다. 친숙할 만큼 이물 없었던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동네 사람들로부터 이번 일에 대하여 어떤 연유였던 가슴 아린 상처를 조금이라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내 작은 소망이자 그렇게라도 지켜내고 싶었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잘사는 부유층 그들의 눈에 천형인 양 옭아매어진 조촐한 삶 속에 허기진 내 모습이 어설픈 몸놀림으로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진저리 쳐지는 가난으로부터 꼭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듯 발버둥 치도록 애끓는 바람처럼 덩어리진 아픔을 모두 가슴 밖으로 드러내어 풀어헤치듯 부연 밤안개가 어둠을 휘감아 산마루턱에서부터 소리 없이 사뭇 번져났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가서는 어둠살이 가진 자들의 횡포처럼 차츰차츰 온 사방을 삼키려 했다.
그런 어둠이 못내 싫었는지 산마루턱에서 불어오는 늦저녁 바람이 밋밋하게 서 있는 미루나무를 마구 흔들어 매달린 이파리들이 지질맞게 간들거렸다.

그런대로 불빛이 보이던 모깃불이 수그러져 주위가 한결 어두워졌다. 어머니는 까칠해지신 손으로 석유 등잔에 심지를 성냥개비로 돋워 올리시고 불을 키셨다. 넘실거리는 흐린 불빛 틈 사이로 내 어머니의 야윈 두 볼에 주름진 얼굴이 보여 나도 모르게 아픔을 토해내듯 한차례 숨을 크게 내쉬고 말았다. 그런 나에 속내 조금은 아시는 듯 어머니도 나처럼 애써 감추시려는 듯 앞마을 면소재지에서 희유끄름하게 번져나는 전등 불빛에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야, 아까 참에 먹은 돼지괴기를 잘못 먹어서 얹혀버렸는가? 그라지 않구는 복 달아나라구 뭔 놈에 한숨을 땅이 냅다 꺼지라구 쉰다냐? 속이 영 안 좋으면 바늘루 따 보자! 그럼 얹혔던 체기가 쑥 내려가닌께, 어여.”

어머니께서 일부러 태연하신 척 말씀을 하셔 답답한 마음에 마루에서 내려와 신발짝을 대충 신고 토방을 내려서 애꿎게 모깃불만 뒤척거렸다.

“뭐시 체했다구 엄니는 상구 저리 법석을 떠는지 모르것네. 이렇게 멀쩡허닌게 걱정 말라구.”

그런 분위기를 모면하려 서둘러 사립짝 밖으로 나왔다. 내 몸 주위로 서서히 밀려드는 안개가 흙냄새를 더욱 지긋하게 풍겨왔다. 밤안개에 달빛이 쇠잔하게 흐려지고 얼마 전까지 하늘에 총총하게 보이던 별들이 희뿌연 안개에 가려 겨우겨우 눈에 띄었다.

낮 동안 그리도 탐스럽게 번득거리던 산자락의 흐려진 모습이 음습하게만 보였고 밤안개 자우룩하니 마지막 여름 더위가 다음 날에도 연이어 기승을 부릴 듯싶었다.

쌀죽의 국물처럼 희뿌옇게 보이는 둥그런 보름달이 구름 속에 저 혼자서 숨바꼭질을 하며 어두워지려는 주위를 밝히려 했다. 그리고 온 천지는 찾아드는 밤을 맞이하려는 듯 차분하게 가라앉아 맑고 고요하니 달은 구름에 몸을 비벼 부드러움을 더하고 구름의 유회는 삶의 시간을 이어 놓으려 했다. 그리고 마냥 은은한 달빛은 풀 향기와 알맞게 어우러져 밤을 이루려 했다.

아직은 가을 문턱이 멀기만 한데 텃밭 돌무더기 틈 사이에서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처연하게 들렸다. 그와 더불어 안개에 음침하게 가려지는 앞산 그 어디쯤에서 오랜만에 부엉이 소리가 큼직하게 들려왔다.

‘밤에 부엉이가 울어대면 동네 어느 집엔가 초상이 난다.’는 말이 있어 조금은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하여 그런 좋지 않은 일이 동네에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 시절 동네 어른들이 민속처럼 전해 내려온 것들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벌건 대낮에 뒷산에서 여우가 울면 초상이 나고 동네 지붕 위에 까마귀가 떼를 지어 날아와 한바탕 시끄럽게 울고 가면 그 또한 초상이 나며 밤에 부엉이가 그리 크게 울어대면 다음날 틀림없이 동네 어느 집에 초상이 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다 해가 반짝 뜨면 호랑이가 장가를 간다고 하였으며 집안 뜰에 나타난 큰 구렁이를 함부로 헤치면 그 구렁이가 한을 품어 집안이 망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쩌다 여름 장마철에 눈에 띄기라도 하면 아주 조심조심 뒤로 물러서 구렁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집안에 나이 드신 어른이 오랜 병석에 누워 계신데 집에서 키우던 멀쩡한 개가 밖으로 나가서 죽으면 병이 낫는다고 했다. 또한 멀쩡한 이빨이 빠지는 꿈을 꾸면 재수가 없는 일이 생긴다거나 아침녘에 길을 걷다 상여를 만나면 아주 좋은 일이 생긴다는 등등의, 일일이 열거(列擧)를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말들이 입에서 입으로 사실 아닌 사실처럼 전해 내려왔다.

그런 속설들에 깊이 빠져 당연시하게 받아들여 지키려고 하였으니 그 시절이 참으로 그만큼 어두웠는지 아니면 세태에 찌들지 않아 순박하였는지 모른다.

산자락을 내려온 우윳빛 안개가 고뇌하는 나를 포근히 감싸 안듯 잔잔하게 퍼져났다. 밤안개가 나를 조롱하듯 저희들끼리만 수런거려 스며드는 외로움이 한결 더했다.

그때 침울한 밤의 정적을 깨부수는 것처럼 ‘뽀옥뽀옥’ 멀어 가까운 듯 들리는 밤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기관차 앞머리의 불빛이 번쩍거려 산봉우리 위에 닿을 듯 비치는가 싶더니 찰나에 자취를 감추었다. 낮보다는 더 가깝게 들려오는 진동 소리가 귓속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어스름하게 바라보이는 우묵골 너머로 모교인 국민학교 건물이 잔뜩 서려오는 안개 속에 모습이 감춰지는 산자락 밑에 너부죽하게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사노라 잠시 잊은 듯싶었던 그립고 고맙기 그지없는 담임선생님과 지난 6년의 세월 동안 함께 울고 울었던 내 친구들의 얼굴 모습들이 활동사진 필름이 영사기 렌즈를 통해 영사막에 비치듯 허전한 마음속을 채우는 것처럼 뭉클뭉클하게 하나둘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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