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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61 조회 : 1,017




땅 위에 존재하는 미세한 생명체 하나라도 대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공존의 틀에서 상생하는 듯했다.

아침에 눈뜨고 뜰을 나서면 수많은 꽃들과 일일이 눈길을 마주치니 삶의 생기를 다시금 느껴 심적으로 진한 안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날아가는 새들의 힘찬 날갯짓에서 또 다른 삶의 역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은혜의 자리인 이곳이 내 삶의 터였으니 무릇 온 만물들이 나에게 숱한 마음의 양식을 부여(附與)해 주어 늘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갖고 살았다.

마을 앞산이 검푸른 빛으로 두터운 층을 이뤄 엄청스레 묵직하게 보였다.

더는 푸르게 채울 남은 공간이 없어 그 자리에 판박이가 된 것 같았다. 그 산자락 아래 삶의 둥지를 틀어 살아가고 있는 마을 사람 모두에게 저 산은 마음에 양식을 생기 있게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눅눅하게 내렸던 안개가 홀연히 모습을 감춰 날씨는 시원스레 활짝 개어 쾌청하기만 했다. 밤사이 이슬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는 풀과 나무들은 지글거리는 햇살에 몸을 모우고 있었다. 그렇듯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온 사물들이 평상시보다는 더욱 또렷이 눈앞에 다가섰다.

종일토록 찬연한 햇볕을 듬뿍 담고 있는 파초의 꽃잎 위로 말끔한 하늘이 파르라니 펼쳐 있어 자뭇 탐스럽기만 했다. ‘매암매암’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쉴 새 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귓속이 얼얼하기 보다는 이제는 지쳐 소리의 감각에 무디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좁은 마당을 온통 휘저어 놀던 잠자리들도 더는 뜨거운 햇살이 버거운지 널따란 파초 잎사귀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숨을 돌리려 했다.

그토록 파란 하늘을 올려 바라보는데 내 친구 옥순이의 얼굴이 다정스럽게 떠올랐다.

늘 버릇처럼 부끄러워 다소곳이 숙인 단발머리에 하복 저고리 하얀 깃 속으로 조금 들여다보이는 가녀린 목에 아주 가늘고 푸른 실핏줄이 가쁘게 맥박을 치는 귀염성스런 소녀였다. 쉽사리 속내를 들춰내려 하질 않는 여리디여리기만 한 내 소꿉친구 옥순이의 아픔으로 가득 찬 모습이 그리도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백 일 동안 피었다가 꽃잎이 지고 나면 첫서리가 내린다.’고 하는 속살까지 누런 주황색 능소화도 담장 위에 줄지어 피어났다. 그리고 콩 잎사귀 더부룩한 밭 자락 가장자리 너럭바위 위엔 산비둘기 대여섯 마리가 내려앉아 구구대며 놀고 있었다.
풀숲에 철을 잃은 뱀딸기도 검붉게 농익은 모습으로 멀찍멀찍 간격을 두고 눈에 띄었고 더위에 잔뜩 지친 꽃들이 마치 꾸중을 듣고 있는 개구쟁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조금 멀리 철길 건너 기현이네 집 토담 벽에 기대어 놓은 깨어진 항아리의 넓적한 조각들이 한낮 햇살에 올지게 비춰 번득거렸다.

방학 동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정말 일요일인줄도 몰랐었다.

펑퍼짐한 둔덕 너머로 오붓하게 자릴 잡고 있는 교회 종탑의 모습이 우둑하게 바라보였다. 소담스런 교회의 모습이 눈에 익혀진 만큼 종소리도 살갑게 들려와 마음이 온통 숙연해졌다. 마을을 오붓하게 에워싸고 있는 산자락의 양지와 그늘 속 깊은 곳까지 종소리는 찬연하게 울려 퍼져 나도 모르게 진한 감성의 늪에 빠져들었다.

마루에 앉으셔 그리 한동안 말씀을 멈추셨던 기성이 형 어머니쎄께서 입을 떼셨다.

“그 뭐시냐 나는 머리털 나구 첨 가 본 디라서 어디가 어딘지 시방두 잘 모르것는디, 저번 참에 애를 낳다구 혀서 그 먼디까장 올라가 보닌께 손주란 놈이 듬실허게 고추를 떡허니 달구 나왔더라구. 뼛골은 지 애비처럼 야무지게 생겼구 얼굴 모양은 지 외쪽을 많이 닮은 거 같긴 헌데, 두루두루 살펴보닌께 콧날 오뚝 선 것 하구 눈언저리가 꼭 지 친할애비를 빼닮아 그놈두 한 고집 헐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되던구먼 그려.”

그래도 자기 핏줄이라고 싫다 소리는 않으시며 은연중에 자랑을 늘어놓으시는 기성이 형 어머니를 바라보시며 영호 어머니가 말씀을 이으셨다.

“아 뭐시냐? 그래두 성님은 어찌됐던 간에 이 번 참에 대 이어줄 손주란 놈 보았구. 기성이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으니 을매나 좋은 일이래유? 안 그런감? 상민이 에미.”

그러자 영호 어머니 말씀에 기성이 형 어머니가 한껏 기분이 좋으신 표정으로 다시금 말문을 여셨다.

“허긴 껍데기야 누굴 닮으면 어쩔 것이여. 맴속이 고와야 허지. 암튼 저 양반이 이리라도 새중간에 다리를 놔 준다구 허니 맴은 한결 놓이지만, 나두 인피를 둘러쓰구 사는 지라. 저 산모퉁에 누워 있는 기성이 지그 애비를 생각허면 오장육부가 다 녹아내리는구먼 그려. 허나 어쯔것는가? 이것두 다 사주팔자인 것 같은디 허는 수 없이 따르는 수밖에 어디 뾰족한 수 있단가?”

말씀을 마치신 기성이형 어머니가 만감(萬感)이 교차하시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런 복잡하신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듯 말매미는 쩌렁쩌렁 울어대고 낮 더위는 잔뜩 쪄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성이 형 어머니가 속이 타시는지? 얼마 전에 순덕이 어머니가 쪽마루에 갖다 놓으신 사발에 담긴 물을 다시금 벌컥벌컥 마시고 계셨다. 냉수를 마시면서도 조금 먼저 자리를 뜨셔서 원두막으로 가 계시는 동근이 아버지를 자꾸만 바라보셔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시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참! 내 정신머리 좀 봐. 야기허느라 정신혼창을 다 뺏겨서 뽕잎 따는 일을 깜빡했네. 얼른 밭으로 가 서둘러 뽕잎을 따야 쓰것구먼 그려.”

영호 어머니가 마음이 조급하신 듯 말씀을 하셨다.

“아이구 동상 그런 말허닌게 괜히 내가 미안스러워 죽것네 그려. 공연히 내 새끼 일 땀시루 뽕두 못 따구 으쩐댜? 어여 서둘러 가 보더라구. 혹시 모를 일이지만서루 운 좋으면 훤칠허게 생긴 남정네라두 하늘이 미친 척허구 툭 떨어트릴지 누가 알것는가? 이놈의 얼굴까장 쭈글쭈글 다 늙어 터져서 나 같은 늙은 할망구야 벽에 똥칠헐까 봐 거들떠두 안 볼 것이지만, 암튼 어여 가보게나.”

이 근심 저 근심 잠시라도 잊으시려는 듯 농담을 하시며 웃으시자 옆에 계시던 어머니와 헝겊 차데기를 챙겨 들으시던 영호네 어머니도 함께 따라 크게 웃으셨다.

깊은 내막도 잘 모르시더라도 어머니와 두 분 어른들이 모두 웃고 계시자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시듯 순덕이 어머니도 따라 웃으셔 아주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울타리 밖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원두막 위로 오르시던 동근이 아버지가 뭔 일이 있나 싶어 잠시 고개를 돌려 슬쩍 바라보셨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려고 어머니께서 말을 하셨다.

“아이구, 아줌니. 그런 말씀 함부루 하시면 으쩐대유? 저기 둥구나무 밑에 영호네 아버지가 버젓허게 살아 계시는디, 만약에 그 소리 듣기라두 하시면 으짤라구 그런대유?”

정말 모처럼만에 느껴보시는 그런 분위기가 좋으셨는지? 영호 어머니가 또 한 차례 웃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뭘 으짜긴 으짜것는가? 늙은 할망탕구가 노망이 잔뜩 들어서 느자구 없는 소릴 헌다구 욕이나 실컨 퍼붓겄지 뭐. 하두 속이 답답혀서 그저 웃자구 허튼소리라두 한차례 혀 본 거여.”
“아따 성님. 내사 그런 속맴을 어찌 모른당가유? 어디 우리가 등때기 맞대구 산지가 하루 이틀이던가유? 내 처녀 적 첨 시집와서 시집살이가 넘 고되 못 이기구 집으로 도망이라두 갈려구 뒤뜰 담벼락 앞에 쭈그리고 앉아 시어머니 눈치 슬슬 살피며 울고 있을 때, 그라두 등 뚜드려 주신 게 성님뿐인디 내가 어찌 모르것는가유?”

그러자 순덕이를 끌어안고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말씀을 하셨다.

“기나저나 아줌니네는 그래두 그런 기술이라두 있으닌게 일년에 두어 차례 누에라두 쳐서 먹구 살만 하시지만, 이것저것 아무것두 못허구 배우 도적질이 이것뿐이라구 허구 헌날 목 빠져라 옹기 동이 이구 이 집 저 집 정처 없이 떠도는 지 신세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감유?”
“그기사 그럴는지 모르것지만서루. 그깟 누에 쬐끔 쳐 봤자 별 볼 일 없구먼 그려. 못사는 집구석에 끼니때만 되면 파리 떼처럼 우루루 숟가락 들고 밥상 앞에 달라붙는 자식새끼들이 오라지게 많아서 ‘깨진 독에 물 붓기’라구, 양식 쪼께 기별혀서 숨 좀 돌리나 싶다가도 며칠만 지나면 어느새 양식 자루 푹 꺼져 내리니 그저 허망허기 만 허지 뭐.”
“왜 아니것시유? 그러니 아줌니가 을매나 힘들것시유?.”
“무시냐? 돌아가신 그 양반 살아계셨을 적엔 시애미라구 그리 독살스럽게만 보여 죽이구 싶도록 밉기만 허드니, 그래두 이거라두 야물딱지게 가르쳐 줘서 밥 안 굶구 사는가 싶드만. 그전에 내가 왜 그리 미워만 했는지 후회두 되는구먼 그려.”

영호 어머니께서 말씀을 마치기 무섭게 어머니가 말을 이으셨다.

“허긴 그렇기는 허것네유. 지는 이것두 자식이라구 달랑 하나 있는 것두 가르치랴 먹여 살릴랴 정신이 없는디, 아줌니네는 자그만치 애덜이 여섯이나 되니 왜 안 그렇것어유? 그 좋은 놈에 쌀 섬짝들 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그놈의 쌀이 조금만 있어두 이 걱정 저 걱정 않구 살 것인디.”
“아 왜 아니랴? 반만 되면 코딱지만허게 꼴에 윗방이라구 겨우 하나 달려는 있지만, 두 방이 꽉 들어차게 애들이 이리저리 머리 베구 드러누워 있으니. 다들 제대루 자는지 지붕 위에 열린 박 세듯이 세다 보면 늘어나는 게 한숨뿐이지 뭐.”

사실이 그랬다. ‘없이 사는 집에 밥숟가락만 늘어난다.’고 내년에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하는 영호네 집은 영호 어머니가 6남매를 낳으셨다. 그러니까 영호 위로 누나가 두 명 있어 맏이인 큰누나는 두 해 전에 들녘 한가운데 있는 장화리 동네로 시집을 갔다.

그리고 그 바로 밑에 열여덟 살 먹은 둘째 영숙이 누나가 있었다. 그 육남매 중에 영호가 셋째인 청일점(靑一點)으로 태어났다. 그 밑으로 한두 살 터울의 딸만 내리 세 명을 더 낳으셨다. 그 일로 화가 잔뜩 나신 영호네 아버지가 제발 딸 좀 그만 낳으라고 그리 성화를 대셔 동네 사람들이 영호네 집을 ‘딸그마니네 집’이라고 불렀다.

잠시 말을 멈추셨던 영호네 어머니께서 동구 밖 둥구나무를 휙 둘러보시며 말씀을 하셨다.

“누에가 마지막 잠을 잘라구 혀서 을매나 먹어 치우는지 정신이 읍는디, 서방이라구 이리 바뿔 때는 팔 겉어붙이구 도와주면 귀신이 붙들어 가기라두 허나. 내 몰라라 허구 저리 둥구나무 밑에서 도끼자루 썩는 줄두 모르구 신선놀음 허며 장기나 두구 앉었으니, 내 속만 타 내리지 뭐. 내 집 양반이나 넘네 집 양반들이 죄다 덜 그 모양인지 모르것더라구. 손가락 누렇게 타들어 가는 줄두 모르구 몸에 하나두 좋지 않은 그 독한 놈에 담배는 무신 원수 척졌는지 오라지게 빨아 헛기침이나 해대니 내 원 참!”

몹시 못마땅하신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시며 말씀을 하시자 두 분이 더우실까 봐 부채질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래두 봄만 되면 논 갈아엎구 못자리허셔 모내기 끝나면 죽으라구 논에 매달려 일하시는디 뭘 그려셔유? 글구 동네서 영호 아버지 그 양반 만큼만 부지런허라구 해유 좀 바지런하셔야지.”

그러자 영호네 어머니가 속으로는 기분이 좋으신지 슬쩍 웃으시며 말을 받으셨다.

“아니 그기사 당연히 혀야지. 안 그러면 으짤 것이여. 여편네허구 대추나무에 달린 대추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자식 새끼덜 눈만 말똥말똥 뜨구서 자기 얼굴만 뺀히 바라보는디, 딱 두 손 놓구 있으면 다 굶겨 죽일란감? 그러니 죽으나 사나 혀야지 뭐. 안 그런감? 암튼 상민네 애미야. 덕분에 잘 쉬었다 가네. 사카루(사카린) 탄 물두 잘 마시구.”

말씀을 마치신 영호 어머니께서 토방을 내려서 사립짝을 벗어나 산 밑 뽕밭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방앗간 순태 아저씨는 천하태평으로 원두막 위에서 시원한 산바람 맞으며 이미 낮잠에 깊이 들으셨는지? 동근이 아버지가 바짝 다가가 인기척을 내는데도 일어설 줄을 모르셨다.

그러자 동근이 아버지가 원두막에 오르셔 기둥에 웃옷 저고리를 벗어 걸으시며 조금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아, 이 사람아! 어젯밤에 잠은 안 자구 뭐했는가? 아랫마을 벌뜸에 무당집 여편네헌티 밤마실이라두 댕겨온 모양이구먼.”

그러자 그제서야 방앗간 순태아저씨가 부스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기성이형 어머니와 쪽마루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옆에 놀고 있던 순덕이가 보이질 않자 이리저리 둘러보시다 뒤뜰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워매. 야가 어쩐지 조용허다 싶드니 그새 뒤꼍으루 가서 멀쩡헌 꽈리를 죄다 따번저 못쓰게 맹글어 버렸네 그려. 그러니 일을 으짜면 좋다냐?”

순덕이가 양손에 꽈리를 한 움큼씩 들고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노여움을 타는 듯 입을 꽈리마냥 뾰로통하게 모으다 이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자 뭐라고 나무라시던 어머니가 더 당황해하셨다.

“아이구 내 새끼. 그래 큰애미가 소릴 질러대서 노여워서 그랬냐? 그래 그래, 에미가 잘못했다. 잘못했으닌게 얼른 뚝 끄쳐라. 아이구 우리 새끼가 꽈리두 불라구 허구 이젠 다 컸네 그려.”

그 시절 면소재지 염씨 아저시네 점방에는 유리알 속에 곱다란 무늬가 새겨진 유리구슬과 가위로 곱게 잘 오려 딱지치기를 하던 마분지 딱지와 고무 재질로 만든 꽈리를 팔았다. 형편이 좋은 집 아이들은 더러더러 사서 가지고 놀았지만 말 그대로 살기 어려운 집 아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어쩌다 명절날에 운 좋게 몇 푼 용돈이라도 생기면 목마른 병아리처럼 우르르 달려가 그토록 갖고 싶던 장난감을 사서 놀았다.

냄새가 좀 지독스레 나는 국광 꽃이 한두 송이씩 모습을 보이는 장독대 옆에 꽈리가 불그레하게 익어 가면 동네 누나들은 꽈리를 따서 손가락으로 수없이 주물렀다. 알맹이가 동글게 속에서 뭉쳐지면 바늘 끝으로 조심조심 꽈리 윗부분을 터트려 속 알맹이를 조금씩 짜내고 입김을 불어 동글게 꽈리를 만들어 불었다. 입술로 오물거리다 지긋하게 누르면 ‘우드득 우드득’ 으깨지는 소리를 내며 한껏 멋스럽게 불었다.

그리고 빨간 봉숭아 꽃잎을 따서 돌맹이로 옹글게 찧어 명반(明礬)을 섞어 봉숭아 이파리로 손톱에 둘러 실로 칭칭 동여맨 다음 하룻밤을 자고 나면 손톱에 빨간 물이 보기 좋게 들었다.

산자락과 산자락 사이로 저 멀리 펼쳐진 계단식 밭 너머 면 소재지 남쪽 끄트머리엔 함석으로 이은 지붕에 온통 빨간 페인트칠을 하여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이번에 새로 생긴 그리 크지 못해 작게만 보이는 우체국이 있었다.

그 건물이 지난 세월의 흐름 속에 숱한 애환 속에 질곡으로 얼룩졌다. 일제강제점령기 때에는 일본인들이 면내 각 부락에서 생산되는 양곡을 강제로 공출하여 쌀가마니를 쌓아 놓았던 적재 창고로 쓰였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나서는 면내에 글을 모르시는 어른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야학당(夜學堂)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그리고 한국 전란 때에는 인민군들에게 강제 점령을 당하여 한때는 인민군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반격하는 국군과 경찰에 의하여 수복이 된 후에는 혼란스런 면내 질서유지를 위하여 결성된 치안대의 본부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의용소방대가 자릴 잡았으나 얼마 전에 의용소방대가 면사무소 옆 공터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을 했다. 그 뒤로 얼마 동안 텅 빈 채로 방치되어 현관문 걸고리에 내 주먹보다도 더 큰 둥글 묵직한 자물통이 녹이 슬도록 채워져 있었다.

참으로 문명의 혜택에서 지극히 소외된 작은 시골 동네였다. 어쩌다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 전보라도 치려고 하면 시오리길 읍내를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늘 모든 면민들의 숙원이었던 우체국을 이번에 각 마을에서 새로 선출된 면의회 의원들이 발 벗고 나서 유치하게 되었다. 우체국이 처음으로 문을 열던 그날 면민들이 한데 모여 풍물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규모가 더없이 작은 시골 우체국이라 근무하는 직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면내 유지들 틈에 낄 수 있는 우체국장을 포함하여 사무를 보시는 직원 두 분과 면내 각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부 두 분까지 통틀어서 다섯 분이 근무하셨다.

그리고 우체국 건물의 규모가 들녘 한가운데에 외롭게 서 있는 간이역인 채화역과 엇비슷했다. 암튼 금년 가을 국민학교 운동회 때에는 누런 차양막이 쳐진 본부석 옆의 내빈석에 의자가 하나 더 놓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자리가 늘어난 면내 유지인 면의회 의장 병수 아버지와 새로 초대 우체국장으로 부임하신 두 분은 과거의 유지들과는 하시는 행동이 판이하게 달랐다.

제발 과거의 유지 분들처럼 면 소재지 큰길가를 어깨에 힘 잔뜩 넣고 괜스레 헛기침만 하며 여덟팔자로 볼썽사납게 걸어 힘이 약한 민초들 위에 군림(君臨)하지 말기를 바랄뿐이었다. 진정으로 면민들의 공익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존경스런 분들이 되시기를 마음속으로 조심스레 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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