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늘 한복판에 덩그러니 떠 있는 한낮 해가 더없이 찬란했다. 그리고 유난스레 돋보이는 자연의 풍광에 마음 빼앗긴 구름이 노루목 언덕배기에 잠시인들 쉬어 가려 주춤거리니 산바람이 채근하듯 매정스레 등을 떠밀었다.
내 고향 들메마을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물들의 자태 하나하나가 자연의 섭리(攝理) 따라 오묘한 조화를 이뤄 자못 진부하게 눈앞에 다가섰다. 자분자분 내리쪼이는 햇살 아래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들의 검은 잔등이 유난스레 번득거렸다. 이따금씩 울어대는 황소의 울음소리마저 마냥 정겹기만 했다. 그렇게 내 고향 마을엔 꾸밈없는 전원의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었다.
사방팔방(四方八方) 어디든지 통할 수 있는 외딴 주막집을 거쳐 널따란 들녘을 지나면 이내 두 읍내와 맞닿을 수 있었다. 더불어 마을 앞으로 거침새 없이 흐르는 시냇물은 푸른 물 넘실거리는 서해 바다와 조우(遭遇)를 하려 원행(遠行)을 하고 금빛 찬란하게 흐르는 금강 물 또한 드넓게 펼쳐진 하늘 아래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는 마을 앞산이 검푸르게 보이지만 조금만 여유를 갖고 구석구석을 짯짯이 바라보면 산을 치감은 검푸른 빛 사이로 불그레한 빛이 듬성듬성 보였다. 그렇게 산자락이 계절의 변화에 호흡을 맞추려는 듯 추색(秋色)으로 서서히 깃들고 있었다.
햇살이 올곧게 내리쪼이는 산자락 양지바른 쪽엔 나무들과 풀 이파리들이 찬란한 은빛으로 번쩍이고 음울하게 그늘 드리워진 응달쪽에는 거무스레한 빛이 잔뜩 몸을 움츠려 똬리를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깎아내린 듯 검회색의 육중한 바위가 턱 버텨 선 노루목 잿마루에서 시원스런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머리부터 슬슬 따끔거리려 하는 몸을 잠시라도 식혀주는 듯싶어 기분이 어린 새의 깃털처럼 가뿐해졌다. 그리고 바람은 언덕마루 소나무의 솔잎들을 흔들어 솔바람 소리에 후덥지근한 늦더위에 지쳐 흩어지려 하는 심성을 가라앉혀 주었다.
그런 솔바람 소리는 대낮같이 밝은 보름달이 중천에 떠올라 지척 없이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이 그리도 처연하게만 보이는 자시 경에 듣는 것이 더욱 운치를 더했다. 그보다는 온 주위가 설원을 이뤄 그 고고한 은빛 속에 하얀 조각달마저 푹 빠져들고 마는 그런 겨울밤에 설한풍 속에 들려오는 솔바람 소리가 더더욱 심오한 뜻을 담아 전해 주는 것 같았다. 그쯤에 들려오는 밤부엉이 소리가 고즈넉한 마음을 온통 들쑤셔 싱숭생숭하다 못해 울적해지기만 했다. 엄동설한 가뜩이나 긴 밤을 더욱 길게 새우려 하는 것 같아 언짢아하기도 했지만 겨울 솔바람이 지니고 있는 뜻 깊은 의미가 비좁은 마음속에 솔솔 젖어들었다.
‘구슬이 제아무리 서 말 있어도 꿰어야 구슬’이고 또 한편으로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동네 어른들 말씀처럼 그 심한 가뭄 속에서도 동근이네 수박밭은 그럭저럭 잘 버텨나 나름대로는 수박 농사가 실하게 된 듯싶었다. 그리 크지 않은 밭이지만 그런대로 밭에 있는 수박과 노란 참외가 알차게 익어가 포만하게 보이지만 그새 중간에 종구네 아버지 일로 시간을 빼앗겨 원두막을 자주 비운 탓도 있어 그리 사람들이 원두막에 찾아 들지는 않았다.
저마다 사는 형편들이 넉넉지 못하다 보니 값이 좀 나가는 듯싶은 수박은 선뜻 사려 들지 못하고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애꿎은 참외만 사 가는데 그것도 어찌나 덤을 더 달라고 졸라대는지 심성이 모질지도 못하신 동근이 아버지는 ‘원두막 참외 장사 삼 년에 사둔 집과 등 돌리고 산다.’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야박스럽질 못하셨다. 더러는 참외를 사러 오신 손님들이 슬쩍슬쩍 한두 개씩 바구니에 넣어도 말씀을 못하시고 그저 ‘허!’ 하고 웃고만 계셨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그런 상태로는 공들인 품삯은커녕 종자 값도 건지질 못할 것 같고 그대로 가다가는 멀쩡한 수박들이 그냥 밭에 버려질 것만 같아 백방으로 생각을 해봐도 묘책이 없으셨는지 아침나절 앞산에 풋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시는 상수 아버지와 주고받으시는 말씀 중에 이번 장날 종구네 소달구지를 하루쯤 빌려 수박을 읍내로 싣고 나가셔 파시려는 것 같았다.
그저 농사일밖에는 모르고 살아오신 동근이 아버지가 타고나신 언변(言辯)이 남달리 좀 능숙하셔도 그 자존심 강하신 분이 과연 숫기 좋게 수박을 다 팔 수 있을는지 자못 궁금키만 했다. 그런 부산스런 동근이 아버지에 마음을 부채질을 하는 듯이 불그레한 고추잠자리들이 떼 지어 날아와 잿빛 원두막 지붕 위를 에워싸고 빙글빙글 원을 그려 눈을 잔뜩 어지럽혔다.
그리고 계곡 바위틈에서 미유기 낚시질에 재미가 붙었나, 우물가에 사는 억시기가 제 나이 또래인 광섭이와 함께 철길가에 사는 기현이를 데리고 어깨에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는 아주 가는 대나무 낚싯대를 걸쳐 들고 노래를 부르며 수렁골 계곡으로 걸어갔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데요.”
그 아이들 중에 늘 마음의 아픔을 함께 하는 기현이가 서럽게 자라는 만큼 몸 어느 한곳이라도 아프지 말아야 할 것인데 한쪽 눈에 실로 꿴 네모난 누런 헝겊 쪼가리를 갑갑하게 대고 있어 눈 다래끼가 난 듯싶었다.
여름 끝머리에 눈여겨보는 사람 없어도 해마다 고결(高潔)한 모습으로 묵묵히 피어나고 그리 화사하지 않으니 오만할리 없는 깔때기처럼 생긴 누르스름한 능소화가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동네 앞 나들목 벼랑바위 앞에 기성이형 모습이 보였다. 하얀 반팔 하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하얀색 커버를 둘러씌운 학생모를 단정하게 머리에 쓴 종구와 함께 들주막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한겨울 동네 앞 개울가에 얼음이 꽁꽁 얼면 동네 아이들 모두 얼음판에서 즐겨 타는 썰매를 솜씨 좋은 기성이형이 그리도 잘 만들었다. 둥근 나무로 토막을 내어 날이 잘 선 칼로 깎아 만든 팽이의 윗부분에 칠한 크레용 색깔이 그리도 곱게 보여 동네 아이들이 기성이 형네 집에 우르르 몰려가 놀았다. 그런데 어쩌다 종구가 기성이형네 집에 놀러가는 날엔 이상하리만큼 종구 아버지가 종구를 지독스럽게 혼쭐을 내었다. 종구가 고샅길 길모퉁이에서 우는 모습을 보고 그저 순진한 생각에 종구가 공부를 게을리하다가 혼이 나는 줄만 알고 지냈다. 그런 종구 아버지의 태도가 이상스럽게만 느껴졌는데 어느 여름날인가 마을 앞 둥구나무 밑에서 동네 어른들이 진지하게 주고받으시는 이야기 속에 지난 난리 때 동네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종구 아버지가 그토록 노발대발하시는 깊은 이유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외조부도 같은 피해를 당하신 것을 알고 난 뒤로는 종구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졌다.
그런 서먹한 감정이 서서히 쌓이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 속에 경쟁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여 종구는 부유한 자기네 집의 형편을 최대한 살려 동네 친구들은 물론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마음을 물질로 움직여 환심을 사서 주위를 형성했다. 그에 반하여 빈약한 나는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여 가난으로부터 오는 부족한 면을 학업성적으로 메워 나갔다. 그런데 학업 성적이 뒤떨어져 열등감을 느낀 종구가 전쟁 통에 두 다리를 잃고 비참하게 귀향을 하신 내 아버지에 대하여 사실에 근거를 두는 듯싶으면서도 과장을 하여 주위 친구들에게 심하게 헐뜯고 비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들켜 비석골에서 큰 싸움이 벌어져 두 집 사이가 영원한 앙숙처럼 지내고 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 옥순이 어머니와 합치는 일로 그 귀하디귀한 쌀 한 가마니까지 우리 집에 보내줬으니 조금은 사이가 완화(緩和)되는 것 같이 보여 겉으로는 두 집 사이가 풀어지는 것 같았지만 종구 아버지의 뜻은 전혀 달랐다.
‘스님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종구 아버지가 옥순이 어머니에게 새 장가를 들고 싶어 그새 중간에 어머니의 힘을 빌리고 있는 듯 했다. 그런 분위기가 화해라기보다는 종구 아버지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더 큰 욕심이 있을 것 같아 조금도 진솔하게 보이지 않았고 그런 느낌조차 없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종구가 수원으로 정희누나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아 참으로 오랜만에 두 남매가 해후를 하는 듯해 보여 이제서야 종구도 지난날 자기 삼촌이 기성이형 아버지를 해친 일에 대하여 어떤 형태로든 사과를 하였는지 그 당시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찌되었던 기성이형이 자기 아버지를 논물에 빠트린 일에 대한 섭섭함을 풀고 이제서야 마음으로 기성이형을 매형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 과정이 오기까지 기성이형과 정희누나 두 사람이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 땅에서 기성이형이 막노동을 하면서도 잘 참고 견디어낸 보람이 조금은 늦은 감이 있어도 비로소 얻어지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흐뭇하기만 했다.
종구와 내가 그토록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며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나오는 동안 마음속 깊게 쌓아 두었던 무거운 감정들을 이제는 풀고만 싶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격 없이 함께 어울려 공차기도 하면서 뛰어 놀았으면 좋을 것만 같았다.
아침나절 물 마른 앞 냇가에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대소쿠리로 건져 올린 살이 제법 오른 붕어는 일일이 한 마리씩 배를 따면 마치 콩알만 하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작은 부레가 눈에 띄어 장난삼아 손끝으로 누르면 ‘딱딱’ 소리가 났다. 허리를 잔뜩 구부려 개울 밑 흙바닥 속을 발로 뒤척거려 잡아낸 참게 한 마리도 함께 잘 손질 했다. 그리고 순덕이 어머니께서 잘 손질한 민물고기에 애호박을 듬성듬성 썰어 넣고 파, 마늘, 고춧가루 간장을 섞은 양념으로 간을 맞추셨다. 그런 다음 면소재지 산 밑에 있는 가마터에서 사 온 흙을 구워 만든 둥그런 화덕에 숯을 넣고 연기에 잔뜩 그을려 검은 그름이 가득 낀 넙적한 냄비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둥그런 바퀴에 검정 고무줄이 감긴 풀무를 손잡이로 돌려서 빨갛게 타오르는 숯불에 불그레한 국물이 자글자글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자발스럽게 뚜껑을 들썩들썩하며 ‘푹푹’ 뿜어내는 더운 김 속에 묻어오는 민물고기 매운탕의 맛깔스런 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나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했다.
그런데 냄새 하나는 귀신 같이 잘 맡는 검둥이가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려와 산초나무 그늘 밑에 두 앞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엎드려 실실 순덕이 어머니 눈치만 밉살맞게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비릿하게 풍기는 냄새엔 예외가 없는 듯 그늘 밑에 움츠리고 있던 닭들도 회가 동하는지 슬슬 몸을 뒤척였다.
귀여운 말썽꾸러기 순덕이는 마당에 놓여 있는 풀무의 바퀴를 저도 돌리고 싶어 바퀴에 달린 손잡이를 작은 두 손으로 움켜쥐고 돌리려 제아무리 용을 써도 힘이 약해 제 뜻대로 안되자 떼를 쓰며 울먹거렸다. 그래서 더 울까 싶어 얼른 달려가 손잡이를 잡고 시원스레 몇 바퀴 돌려주자 그제서야 얼굴을 환하게 펴고 배시시 웃고 있어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따라 웃고 말았다.
그렇게 더러는 작은 여유로움 속에 가볍게 웃어 보기도 하지만 천형(天刑)처럼 들러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가난은 짜디짠 소금 같은 세월의 흐름 속에 매섭게 쓰라렸던 시간의 흐름이 저 산릉선 위에 고스란히 기억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척박한 삶의 토질에 잔뜩 드리운 먹장 같은 늪에서 서둘러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처해진 상황의 한계가 어제와 다를 바 없어 그 벽에 부딪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말 그대로 암담하기만 하여 기대를 걸어 보는 내일이 지극히 불투명했다. 그러니 침체된 이 작은 공간 산골짝에서 아쉬움에 목을 잔뜩 치켜들 수밖에 없어 공허한 하늘만 시름 찬 눈빛으로 올려다볼 뿐이었다.
오르내리는 사람 하나 보이질 않는 오솔길이 더욱 고즈넉하게만 보였다. 가느다란 실처럼 구부러지게 보이는 산마루턱에 게으른 한 덩이 조각구름이 다시금 비윗살 좋게 머물려 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살려 하는 익살스런 내 친구 ‘깨곰보’ 성구의 제안(提案)대로 티끌만큼의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가벼운 저 바람처럼 한번쯤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 속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디론가 떠나 보고 싶었다.
여름 더위가 끝맺음을 한다는 처서(處暑)가 바로 눈앞에 다가오는데도 끈질긴 매미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사라져 가는 여름이 마음에 그리 서운한지 더욱 청승맞게 울어댔다. 두 다리 쭉 뻗고 끝까지 버티려 하는 부질없는 늦더위의 격한 열기를 가라앉히려 산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횟수가 제법 잦아졌다.
날마다 오후 4시 반 무렵이면 어김없이 서울을 향해 북상을 하는 곳간차가 동네 앞을 지나 매캐한 검은 석탄 연기를 가득 흩트려놓으며 기적 소리 드높이 울렸다.
그리고 늦여름 너른 들녘에 무엇을 찾으려는지? 저 혼자서 바지런하게 헤집고 있는 오후 해가 서편 금강둑 너머로 기울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은 남아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