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산기슭을 끼고 도는 울퉁불퉁한 신작로에 희뿌연 흙먼지를 꼬리에 달고 띄엄띄엄 오고 가는 자동차들이 마치 물방개처럼 자그맣게 보였다.
상수네 고구마밭 모퉁이 거북바위 앞에는 동근이 아버지가 몰고 가는 달구지의 쇠바퀴가 잘 다져진 딴딴한 길바닥에 맞부딪쳐 ‘삐그덕삐그덕’ 소리를 내고 달구지 끄트머리에는 방앗간 순태아저씨가 걸터앉아 거푸 담배를 피워 대셨다. 수박을 실은 짐이 그리 무거워 보이지도 않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 쇠잔(衰殘)해졌는지 종구네 늙은 황소가 무척이나 굼뜬 모습으로 길을 따라 읍내 논산 장터로 향했다.
작달막한 잡목들이 빼꼭히 들어차 음음(陰陰)한 숲을 이룬 산마루를 향해 외가닥으로 굽어 뻗어난 비좁은 오솔길에 바싹 마른 햇볕이 족족 퍼져나고 있었다. 울창한 숲이 마냥 갑갑한지 온통 헤집어 솜처럼 푸실푸실한 뭉게구름 한 덩이가 탐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한 곳에도 걸리지 않아 얽매일 필요 없이 자유분방(自由奔放)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가뿐하게 산자락을 내려서 한낮 찌는 더위를 식혀주려는 듯 내 작은 초가집으로 한차례 시원스레 찾아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주위가 어두워질 무렵까지 추녀 깊숙이 자리 잡은 둥지에서 온통 소란을 떠는 제비들도 전혀 밉살스럽지 않으니 그 또한 한 가족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른 봄부터 짝을 이룬 제비 한 쌍이 쉴 새 없이 너른 들녘을 날아 지푸라기와 흙을 입으로 아주 조금씩 물고 와 놀랍도록 정교한 솜씨로 알게 모르게 수직된 벽에 어느 사이 둥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 둥지 안에 알을 낳아 암놈 제비는 배고픔을 꾹 참고 끈질기게 알을 품어 노오란 부리에 까만 눈망울을 앙증맞게 반짝거리는 어린 새끼들을 낳았다. 그리고 어둠살이 짙게 내릴 때까지 수놈 제비는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날았다.
노란 주둥이들이 찢어져라 잔뜩 벌려 바동대는 어린 새끼들 입속에 물고 온 먹잇감을 하나씩 쏘옥 넣어주고 어린 새끼들이 남긴 배설물을 입에 물고 먹이를 구하려 눈 시리도록 푸른 하늘로 다시 드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하루해가 금강 둑 너머로 스러질 무렵이면 종일토록 원행에 지친 수놈 제비도 제 몫을 다한 듯 마당 안 빨랫줄에 잠시 내려앉아 주위를 한두 차례 살펴보며 가볍게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둥지가 있는 벽기둥에 박혀 있는 가느다란 못에 조심스레 걸터앉아 이리저리 주위를 고루 살펴 둥지를 지키며 그제서야 한숨을 놓는 듯싶었다.
동네 어른들은 영악한 제비가 집을 지을 때 추녀 밑 깊숙이 집을 지면 그해에 큰비가 내려 오랜 장마가 들고 집을 어설프게 지으면 큰비 피해가 없으며 제비가 하늘 밑을 낮게 날면 꼭 비가 온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햇살 가득 받은 온몸에 윤기가 번질거려 원행에 지치기라도 하면 동구 밖 방죽 물 위를 낮게 날아 물결을 툭 치면서 몸을 적시기도 했다.
어린 새끼들의 부리에 노란 색깔이 가시고 제법 날갯짓을 하기 시작하면 어미는 어린 새끼들을 아울러 가까운 마당 안에 늘어져 있는 빨랫줄까지 데리고 나와 어린 새끼들은 위태롭게 날개를 푸덕이며 어렵게 날아 뒤뚱거리며 앉았다. 그러다 그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지 있는 힘을 다해 둥지로 되돌아오고 그다음엔 좀 더 멀리 텃밭 감나무까지 모험을 하듯 날았다. 그렇게 어미로부터 서서히 비상(飛上)을 하는 법과 먹잇감을 구하는 사냥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어 그런 꾸준한 삶의 변화 과정이 땅 위에 숨 쉬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보였다.
지붕 추녀가 낮아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비좁은 방이 가뜩이나 썰렁한데 먼저 아침밥을 드시고 장사를 나가신 어머니 한 분이 빠졌는데도 집안이 온통 텅 빈 것처럼 그리 허전하게만 느껴졌다. 작아 더욱 초라해 보이는 개다리소반 한가운데 단작스럽게 자릴 잡은 옹자배기에 매운 풋고추와 껍질 벗겨 삶은 고구마 순에 애호박을 넣고 자글자글 끓인 된장찌개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확돌에 빨간 생고추를 따다 넣고 갈아 넓적한 빨간 고추 조각이 듬성듬성 묻어난 잘 익은 열무김치를 듬뿍 넣어 성글성글한 보리밥에 섞어 척척 비벼 아침밥을 만족하게 먹었다.
순덕이 어머니는 순덕이와 함께 검둥이를 앞세워 앞산에 갓 자란 버섯과 능이버섯 그리고 표고버섯을 따러 가시려는 것 같았다. 마루 기둥에 걸려 있는 망태기를 챙기시며 채비를 서두르셨다.
이번 종구네 아버지와 옥순이네 어머니의 혼사에 어머니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일로 옥순이를 똑바로 바라볼 용기조차도 없고 마음에 꺼림칙하게 걸리는 것도 있어 아랫마을에 그리 가고 싶은 마음이 썩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거의 윽박지르시듯 신신당부(申申當付)하셨기에 옥순이네 집에 수박 갖다 주는 것을 피할 수 없어 이 궁리 저 궁리를 해 보았다.
그래서 동네에서 내 말을 가장 잘 듣는 철길 옆에 사는 기현이에게 심부름을 부탁하려 마음먹고 볏짚 망태기에 수박을 넣어 사립짝을 나서 원두막 앞을 지났다. 아침나절까지도 그리 풍성해 보이던 동근이네 수박밭에 수박들이 죄다 빠져나가고 밭 자락 군데군데에 둘둘 뭉쳐 놓은 막무가내로 헝클어진 수박 넝쿨이 왠지 허전하게만 보였다.
도랑가 옆자리 쪼가리 참깨 밭에는 기현이 할아버지가 아직 줄기에 청기(靑氣)가 도는 참깨가 알이 영글었는지 베시려는 듯 챙이 널따란 밀짚모자에 곰방대를 무시고 부연 담배 연기를 오지게 내뿜으셨다. 그리고 땅에 깊숙이 박아놓은 숫돌에 낫을 문대시어 날이 시퍼렇게 서도록 갈고 계셨다.
『태극기 흔들며, 님을 보낸 새벽 정거장, 기적이 울려서, 만세 소리 하늘 높이 들려오던 날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는, 님이여 건강하소서.』
산기스락 계단식 밭 어디쯤에서 아주머니들이 함께 부르시는 노랫소리가 들려와 앞을 바라보았다. 산자락과 산자락 사이가 마치 소쿠리를 엎어 놓은 것처럼 우묵하게 들어찬 골짜기 끄트머리 펑퍼짐한 준섭이네 고추밭에서 동네 아주머니 서너 분이 빨간 고추를 열심히 따시며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마냥 수려한 이 강산을 초토화시키며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간지도 어연 수해가 지났건만 아직도 애절한 그런 노래가 민심의 밑바닥에 크게 유행을 하고 있음은 그만큼 그 세대를 살았던 아낙네들이 겪었던 애환이 그리도 컸음을 시사하고 있는 듯했다.
마을 어른들이 ‘입추(立秋)에 대추나무에 대추가 성글게 많이 달리면 그해엔 틀림없이 풍년이 든다.’고 하셨다. 누르스름한 빛깔이 군데군데 돋아 보이는 대추나무 그늘 밑에서 나름대로 제 또래 동네 친구들과 땅바닥에 동글게 구멍을 파 놓고 당글당글 검푸른 탱자 알로 구슬치기를 하며 잘 놀고 있는 기현이를 성가시게 심부름을 시켜 미안한 마음이 가득 들었다.
심부름을 갔다가 곧 돌아올 기현이로부터 옥순이네 집의 분위기가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옥순이의 기분 상태가 어쩐지 궁금하여 빨리 전해 듣고만 싶었다.
조급한 마음에 기현이가 동네 고샅길은커녕 이제 겨우 동구 밖 나무다리를 건너가는데 상수네 고구마 밭모퉁이 거북바위에 앉아 한참 동안을 눈이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수박을 가뜩이나 제일 큰 놈으로 골라서 그런지 조금 무거워 힘에 벅차게 보이는 수박을 들고 가는 기현이 한쪽 어깨가 축 처져 보였다. 그래선지 연신 양쪽 손을 번갈아 바꾸면서 걸어가고 있어 미안한 마음에 더욱 큰 부담을 느꼈다.
그렇게 옥순네 집에 대한 생각에 골몰(汨沒)하여 한참 동안이나 동네를 바라보고 있는데 발등이 슬금슬금 간지러워 밑을 내려다보았다. 허리가 잘록한 개미들이 좁다란 사잇길을 가로질러 행군을 하듯 어디론가 기어가고 있었다.
다복다복 소나무 숲이 들어찬 산기슭 밑 방죽가 소나무 머리 위로 부연 뭉게구름이 그리 바삐 흘러가고 경망스런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듬직한 저 산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한낮 햇살이 물결에 부딪쳐 금빛을 찬란하게 이루는 방죽가 물 위엔 개구리밥과 마름이 가득 떠 있고 수련도 앙증스레 노란 꽃을 잔뜩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연잎 위에 방정맞게 촐싹대며 올라앉아 있는 개구리가 찌는 더위에 목이 타들어 가는지 양쪽 볼을 풍선마냥 불룩불룩 부풀리며 숨을 할딱할딱 내쉬었다. 한 쪽에선 소금쟁이가 멋진 묘기를 부리듯 물 위를 재빠르게 기어 다니다 바로 멈추고 멈추는 듯싶다가 이내 쏜살같이 방죽 중심부로 내달렸다.
사람 심리가 다 그렇겠지만 그날따라 옥순이 소식에 유난스레 마음이 조급해져 동네 앞으로 한 발짝이라도 가깝게 다가서면 조금이라도 빨리 소식을 들을까 싶어 둥구나무 앞을 지나 고샅길 모퉁이에 다가서 기현이를 기다렸다.
우현이네 뒷집 명구네 집에서 달그락달그락 베 짜는 소리가 낮은 흙 담장 너머로 들려오고 밥을 달라고 들볶아대는 명구 동생인 철부지 명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삼베를 짜시던 명구 어머니는 베틀 위에 북을 놓으시고 베를 짜시느라 잔뜩 움츠렸던 허리를 쫙 펴고 두 손을 앞으로 뻗으셨다. 몸이 몹시도 고단하신지 한차례 하품을 커다랗게 하시며 두 어깨가 저려 오는가? 오른손 주먹으로 왼쪽 어깨를 힘없이 몇 번 두드리셨다.
그리고 밥 달라고 보채는 어린 자식 밥을 주시려나, 쪽마루에서 허리를 다시 한 번 쭉 펴시고 토방으로 내려서 발로 더듬더듬 검정 고무신을 찾아 신으시고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여름이라고 밖은 찌는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건만 동네에서 유난스레 북쪽으로 방문이 트여진 명구네 아랫방은 여름에는 엄청 시원했다. 그러나 긴 겨울밤에 어쩌다 마실을 가서 아랫방에서 놀다 보면 한겨울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도 불기가 좀처럼 들지 않는 온기가 없는 방바닥이었다. 그리 방 안이 늘 싸늘하기만 하여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을라치면 냉기가 온몸에 시려와 한낮에도 이불 밑에 그 냄새가 진동을 하는 발들을 쑥 집어넣고 놀 정도로 찬 기운이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집처럼 구조가 열약하기 짝이 없는 작은 초가집이었다.
벌건 대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는 북향집에 부엌 한 칸이 딸린 자그마한 안방과 달랑 뒷방이 딸려 있었다. 그 뒷방에 베를 짜시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난 날에는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늘쩍지근해져도 그렇게라도 해서 철모르는 어린 자식들과 살아남으시려 하루 한나절도 손에서 북을 놓지 않으시고 부단(不斷)한 노력을 끈질기게 하셨다.
명구네 집은 마을 논배미 중에서 물길 제일 사나운 비석골에 계단식으로 겨우 일궈 놓은 천둥지기 논 두 마지기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는 식구들 끼니조차 연명할 수 없었다.
명구네 어머니가 우리 동네로 시집을 오시기 전 처녀 시절에 같은 충청도에 있다고 하는 모시와 삼베를 그리도 많이 짜는 한산이라는 곳에 살아 어릴 적부터 베를 많이 짜서 베를 짜시는 솜씨가 남달리 뛰어나셨다. 그래서 읍내에서 떡 벌어지게 점포를 커다랗게 내놓고 장사를 하는 포목점 주인들이 서로 일거리를 맡겼다.
‘걸음새 뜬 소가 천 리를 간다.’고 그렇게 숱한 날을 두고 베를 짜고 또 짜다 보면 베가 한 필 두 필씩 늘어나 부듯한 마음에 읍내 포목점에 갖다 주고 품삯을 받으셨다.
그렇게 뼈아프시게 버신 돈으로 봄철 춘궁기 때 배가 고파 뒷생각도 않고 종구네 집에서 덜렁 얻어다 쓴 장리변 이자도 갚고 어린 자식들하고 다음 햇곡식이 나올 때까지 충족하지는 못하여도 그럭저럭 끼니를 이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듯 너나없이 가진 것이 없다 보니 무심한 하늘만 빤히 바라보고 하늘 원망을 하는 것도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 이골이 났었다.
그래도 죽으나 사나 어린 자식들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니 할 수만 있다면 막말로 남의 집 담넘이하는 도적질과 남 집 남정네 붙어먹는 ‘화냥년’짓만 빼놓고는 가족들과 어린 자식들을 위해 그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는 절박하기 더할 나위 없는 암울키만 한 때였다.
그런 탓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도 있으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그 일에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치중을 하며 목숨을 이어 갔다. 남의 집 논밭에서 삯일을 하는 것은 물론 더러는 읍내 요릿집 부엌의 찬모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아직까지 풀기가 남아도는 동네 남정네들은 어디가 어떻고 어디는 어떻다 떠도는 소문들을 주섬주섬 귀동냥하여 고향을 떠나 객지로 나가 단 한 푼이라도 벌어들이려고 몇 날 며칠을 두고 재고 또 재며 생각을 모았다. 그러다 어느 정도 생각이 모아지면 이불 속에서 자기 마누라랑 밤이 이슥하도록 베갯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했다. 그리고 타관객지로 돈벌이를 하러 눈에 밟히는 어린 자식들과 한동안이나마 생이별을 하여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떠나던 그런 어두운 시절이었다.
둔탁한 장기 알 소리가 이따금 울려 퍼지는 둥구나무 위에 잔뜩 올라앉아 있던 천연덕스런 해가 서서히 마을로 들어서려는 중참이 조금 못된 시각(時刻)이 되었다.
옥순이네 집에 심부름 갔던 기현이가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 상태로 돌아와 나를 보더니 대뜸 말을 했다.
“참! 상민이 성은 그런 걸 나헌티 시켜부러서 옥순이 누나헌티 나만 괜히 욕만 바가지루 한 바가지 배 터지게 얻어먹구 와 번졌구먼.”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기현이에게 사과를 하려는 말도 꺼내기 전에 얼른 볏짚 망태기를 나에게 건네주고 같이 놀던 동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줄달음질 쳤다.
마을 앞 큰길에는 아침 일찍부터 동네에서 제일 먼저 읍내 장터로 가셨던 준섭이네 아버지가 동네로 오시려고 벼랑바위 앞에 모습을 보였다. 아침나절 동근이네 수박 밭에서 그리도 모질게 몰아붙이던 방앗간 순태아저씨 말씀 중에 저작거리 ‘옥천옥에 새로 왔다는 술집 여자와 정분이 났다.’는 말은 사실과 다른 것 같았다.
그런 준섭이 아버지가 걸어오시는 곳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면 소재지 건널목에는 기성이형과 등에 아기를 업고 있는 정희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멀리서 보아도 하얀 하복이 눈에 팍 띄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종구의 모습도 보였다. 단 하나 밖에 없는 자기 누나인 정희누나를 보려고 그 멀고멀다는 수원이라는 데까지 올라갔던 종구가 기성이형과 함께 동네로 돌아오고 있었다.
종구네 집과 기성이형네 두 집 사이에 얽힌 앞으로의 일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진행이 되더라도 이제는 오랜 타관살이를 멈추고 그 모두를 넉넉하게 감싸 안아줄 따뜻한 고향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네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한결 가볍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