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가 될는지도 모른다.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일컫는 인간이나 미물(微物)인 짐승이나 저마다 뼈골 아프게 낳은 자기 새끼에 대한 모성애는 천만 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듯했다.
추녀 안쪽 깊숙한 곳에 닭둥우리가 집안 그 어느 곳보다 바람이 잘 들이쳐 시원키는 하지만 그래도 극성을 떠는 막바지 더위에는 그곳인들 예외일 수 없었다. 어느 때부턴가 아침에 일어나 닭들이 둥지 안에 낳은 알을 꺼내려고 하면 그중 검정색 암탉이 유난스레 온몸을 잔뜩 움츠려 부리 끝으로 손등을 마구 쪼아대 극도로 사나움을 피웠다. 아마도 가을 병아리를 부화시키려는지 늦더위 속에서도 끈질기게 알을 품고 있었다.
닭들은 마당 앞과 뒤를 헤집어 땅에 떨어진 낱알들을 주워 먹고 때론 싸리 울타리 밑을 헤집어 뛰어나오는 개구리와 뒤뜰 밤나무 풀숲에서 메뚜기와 방아깨비도 잡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두엄을 너저분하게 파헤쳐 지렁이를 찾으려고 어지간히 바지런을 떨었다. 그런데 볏짚 둥우리 속에 알을 품은 뒤로는 먹이도 거르면서 꼭 웅크려 들어앉아 좀처럼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어쩌다 마당으로 내려서면 둥지 안에 있는 알들이 혹여 외부로부터 위험이 도래(到來)되는가? 싶은 노파심에 그리도 급하게 후다닥 달려가 둥우리에 날갯짓으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어미 닭은 한동안을 따뜻한 체온으로 그리 오랫동안 끈기 있게 포란(抱卵)을 했다.
그러던 중 바로 어제 아침 무렵 물기도 채 마르지 않은 샛노란 병아리가 파각된 껍질을 헤치고 나왔다. 채 마르지 않은 노란 병아리를 품안에 보듬어 모이를 찾아 먹는 법을 가르쳐주려나, ‘꼭꼭꼭’ 소리를 내니 병아리들도 이따금씩 ‘삐약삐약’ 소릴 내어 어미에게 응답하는 듯 했다. 어린 병아리들은 어미의 날개 틈사이로 얼굴을 내어 밀었다 감추기를 반복하면서 이따금씩 앞으로 조르르 몰려 나왔다. 그리고 모이를 쪼아 대는 시늉도 하고 물 한 모금 먹고 귀엽게 머리를 하늘 향해 들기도 하면서 저희들 끼리 오순도순 숨바꼭질도 했다. 그렇게 어미로부터 점차적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마당 한 쪽에는 그래도 명색이 수탉이라고 서투른 위용(偉容)을 자랑하고 있었다. 햇살에 선홍색이 더욱 빛나는 빨간 벼슬이 달린 긴 목을 치켜세우고 알록달록한 털 색깔이 그런대로 보아줄 만큼 조화를 이뤘다. 집에서 기른 지 서너 해를 넘겨 여법 완숙하게 보이는 수탉이 어미 닭과 병아리들로부터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슬슬 주위를 살펴보며 홀로 보초를 서는 것 같이 보였다. 어린 병아리들이 그런 보호 속에 저마다 주어진 고귀한 생을 지속하여 알찬 성장으로 이어 가니 이 또한 신이 내려준 종족 번식의 숭고한 법칙을 대물림하는 것 같았다.
산기슭과 끝이 맞닿은 뒤뜰에 이른 봄부터 바람결에 솔씨가 날아와 싹을 틔워 애솔이 여기저기 자라나 조금은 너저분하게 보였다. 그 옆자락에 봄내 화사한 모습으로 만개(滿開)하였던 붉은 진달래와 하얀 철쭉꽃이 다시금 도래될 다음 해 따스한 봄을 기약하며 한 잎 두 잎 땅 자락 아래로 떨구어 모습을 감춘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영롱하게 피어오르는 꽃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가슴 설렜던 봄날의 기억들이 점점 멀어져만 갔다.
동구 밖 나들목엔 기성이형과 종구 그리고 정희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모두들 한동안 발걸음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엉거주춤하며 서 있었다. 내 어림짐작으로는 기성이형이 불과 이틀 전 대문짝에 수박이 박살 날 정도로 종구 아버지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던 일이 있어 종구네 집으로 들어서는 것을 무척 꺼리는 것 같았다.
딸인 정희누나 입장에서는 자기 어머니 돌아가신 후 홀로 사시는 자기 아버지 얼굴을 근 일 년 동안이나 보지 못한 터라 당연히 찾아뵙고 엎드려 큰절을 올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못한 것 같이 보였다. 아무리 흉허물이 없는 부모 자식 지간이라고 해도 식도 제대로 올리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새벽에 가출하여 동네를 떠났었기에 더욱 그런 것 같았다. 그것도 애까지 덜렁 낳아 가지고 집이라고 들어가려니 참으로 자기 아버지 얼굴을 뵐 면목도 없고 가뜩이나 자존심이 남달리 강한 자기 아버지 입장을 동네에서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막상 부모와 얼굴 마주칠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아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믿고 의지할 남편이라고 기성이형과 같이 갔으면 하는 눈치이고 그런 전후사연(前後事緣)을 간파한 종구는 어떻게든 자기네 집으로 모두 함께 가길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선한 기온 속에 해맑은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가 눈앞으로 바싹 다가와서 그런지 동네 지붕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아 거들먹거리는 여름 해도 이제는 극성을 떨어본들 정오 무렵부터 시작하여 오후 한나절뿐인 듯싶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는 날씨가 확연하게 선선하기만 하니 여름내 극성을 떨던 더위도 이번 주가 고비인 것처럼 느껴졌다.
읍내 장터에 나가셨던 준섭이 아버지가 고추밭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 밥반찬을 하려고 읍내 장터 생선전에서 사 오시는지, 볏짚으로 쫀쫀하게 묶어 소금 간이 잘 베인 마른 조기 꾸러미를 손에 드시고 동네 앞 개울가 나무다리를 건너 더위에 지치신 듯 머리에 쓰고 계시던 밀짚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부치시며 둥구나무 앞으로 걸어오셨다.
둥구나무 밑 평상 위에 앉으셔 먹물로 난초 무늬가 멋스럽게 그려진 오죽선(合竹扇)을 활활 부치고 계시던 동네의 숙덕(宿德)이신 진식이 할아버지가 잠시 부채를 접으시고 흰 수염을 위엄 있게 쓰다듬으시며 준섭이 아버지에게 말씀을 건네셨다.
“아! 준섭이 애비 읍내 장에 갔다 오는감? 근디, 저그 오는 기성이랑 동십이 딸내미 정희랑 읍내서 만나가지구 하냥 왔는감?”
그러자 평상 앞에 다가서던 준섭이 아버지가 진식 할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철길 건널목 쪽을 바라보시며 어르신님의 물음에 대답을 하셨다.
“예, 어르신. 읍내에서부터 쟈들이랑 하냥 같은 빠스를 타구 왔구만유. 고추 금 시세두 좀 알아보구 밭일 허는 아줌니들 반찬꺼리두 좀 챙길 겸혀서 읍내 장에 댕겨서 집으루 올라구 차를 기다리는디, 수원에서 아침 첫차 타구 내려오는 길이라구 허든구먼유. 근디 기성이 아들이란 놈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닌께 영판 지 외하래비 동십이 성님을 몽땅 빼다 박았던구먼유. 뒤퉁수 툭 튀나온 것 허구 두꺼비매냥 눈두덩이 두툼헌 게 그놈두 난중에 다 크구 나면 한 성깔 헐 거 같더라구유. 근디 쟈들이 뭣 땀시 얼른 집으루 안 가구 저러콤시루 얼짱거리는지 모르것네유. 가만히 보닌께 동십이 성님이 지그덜 깜냥엔 디게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구만유?”
말씀을 마치신 준섭이 아버지가 잠시 쉬었다 가시려나, 둥구나무 밑에 놓인 평상 가장자리 한쪽으로 조심스레 걸터앉으셨다. 그러자 진식이 할아버지가 흰 수염을 또 한 차례 버릇처럼 쓰다듬으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아! 이제 와서 동십이가 그래 본들 뭘 으짜겄는가? 동십이 아니라 동십이 하래비가 와두 으짤 수 없는 것이지. 이미 물은 엎질러진 건디 자네 같으면 이제 와서 죽이것는가? 살리것는가? 그러니 천하 없는 소리 다 필요 없는 것이구. 그저 타구난 지 사주팔자대루 가는 거지 뭐 별도리 있건는 감, 안 그려?"
그러자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계시던 준섭이 아버지가 말씀을 하셨다.
“그럼유. 말이사 어르신 허시는 말씀이 백번 천번 다 맞는 말이지유. 언제 어르신님이 하신 말씀이 틀리신 적이 있었남유? 근디 엊그제 기성이가 그래두 지 생각으로는 장래 장인 될 사람이라구 동십이 성님한티 선물헐라구. 큰맴 먹구 동근이네 수박 밭에서 제일루 큰 넘으루 한 덩이 골라서 들고 갔다가 글쎄 그집 마루에 한 번 앉아 보지도 못허구 동십이 성님이 화가 잔뜩 나서 들고 간 수박을 냅다 대문짝에다 내동댕이쳐서 박살을 내번졌다는구먼유. 그러니 앞으루 영원히 서루 안 보구 살 것두 아닌디 원만허면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에이구.”
‘언제나 어르신님 말씀이 틀리신 적 없었다.’는 준섭이 아버지 말에 진식이 할아버지가 기분이 한껏 고무되셨는지 마른기침을 가볍게 한차례 하신 후 합죽선을 쫙 펴시며 다시 말씀을 하셨다.
“왜 아니것는가? 부모 맴은 다 매냥 한가지인 걸. 참 세상이 많이 좋아지느라 그러는지는 몰러두 당췌 나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인지라 쪼매 그렇네. 뭐시냐? 우리덜 클 때 같으면 동네서 그런 일이 생기면 사내놈은 멍석에 둘둘 말아 몽둥이찜질을 허구 가시네는 지그 애비 에미가 가위질루 머리를 빡빡 깎아 방구석에 가둬 놓는다구 온통 난리 법석을 떨 일인디, 시방은 이놈에 세상이 어쩌콤시루 될라구 그라는지 토통 모르것네 그려.”
말씀을 마치신 진식이 할아버지께서 한숨을 한차례 푹 내쉬시며 기분이 언짢으신지 평상에 놓인 재떨이에 장죽 대통을 대고 세게 두드리셨다. 그러자 그때까지 두 분이 나누시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계시던 입 바른 소리 잘하시는 우현이 아버지께서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아무렴유. 어른님 말씀대루 세상 못쓰게 변해번진 건 이미 오래 적 얘기지유. 아 어제 저는 참 기막힌 꼴을 다 보았네유. 목화송이가 여물라구 허닌께 그것두 먹을꺼 라구 철딱서니 읍는 어린 것들이 자꾸만 알게 모르게 따먹구 밭을 잔뜩 뭉개놓기에 지가 어제 늦저녁에 노루목 둔덕에 있는 목화밭을 한바퀴 둘러보려구 비석골 상여집 자리 모탱이를 막 돌아가려는디,수수밭 자락에서 뭐시 후다닥거리구 불쑥 튀어나오는디. 아 글쎄, 귀때기에 피두 안 마른 것들이 그 속에 처백혀서 무신 개지랄병들을 허구 나오는지, 뭐시냐? 머슴애 놈은 물레치기쪽으루 냅다 도망을 치구 지지배는 ‘걸음아 날 살려라.’허구 병막 터루 똥줄 빠지게 도망치는 꼬락서니를 보니 하두 기가 맥혀서 뭐라 헐 말이 읍드라구유. 내 원참 기가 막혀서.”
우현이 아버지가 엊그제 늦저녁 수수밭에서 있었던 일이 아직도 기가차신 듯 비석골 밭 자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시고 계셨다. 그리고 준섭이 아버지는 밭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들 점심 준비를 하시려 둥구나무 밑까지 잰걸음으로 걸어오신 준섭이 어머니에게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놓았던 장을 보아 온 보따리와 볏짚으로 묶은 마른 조기를 건네주시고 이내 자리에 도루 앉으셨다. 그리고 늦둥이 손주라 더욱 애지중지하시는지 옥광목 기저귀를 채운 손주를 안으신 민균이 아버지가 준섭이 아버지를 바라보시며 말을 건네셨다.
“어이! 준섭이 애비 그래 장터에서 수박 팔러 나간 동근이 애비랑 방앗간 순태는 보았는가? 머리털 나구 장사라고는 도통 모르는 동상이라 어째 쬐매라두 팔았는가? 말았는가? 무지허게 궁금허구먼 그려.” “안 그래두 다덜 궁금해 할 것 같아 바루 얘기를 헐려구 했는디. 기성이란 놈 이야기 땜시 그 얘기가 쑥 들어가번졌네유. 읍내 고추 도맷집에 들러서 고추 시세 좀 알어 보구 어찌 생선이라두 두어 마리 살려구 길 건너편에 있는 생선전으루 가는디, 약국 모탱이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 자상허게 바라보닌께, 글쎄 방앗간 순태가 낮술을 한잔혔는가? 어쨌는가? 광목 수건을 목에 두르구, 숫기두 좋게 오가는 사람들헌티 수박을 사 가라구 그 쬐끄만한 몸땡이 으디서 그런 큰소리가 나오는지 소락때기를 냅다 질러대구. 뭐시냐? 동근 아버지는 수박을 한통 따개놓고 더러더러 오가는 사람덜 헌티 맛 좀 보라구 하시며 수박을 팔구 있는디, 장이 일러서 그런지 겨우 몇 통 밖에 못 팔았다구 투덜대면서 걱정을 하고 있더라구유. 그래서 보기에 좀 그렇기에 순대국집으로 가서 술국 한 뚝배기에 술 한 주전자를 시켜주고 왔구먼유.”
다들 뭐니 뭐니 해도 기성이형과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라 기성이형이 동네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삼식이 아버지와 장기를 두고 계시던 경수 아저씨가 준섭이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시며 씩 웃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참말루 오래 살다 보닌께 해가 서쪽에서 뜰려구 그러는가? 쫀쫀한 성님이 술두 덜컥 사 주구 그러네유. 암튼 성님이 참말루 잘했구만유 꼭 말걸리 한 사발 먹구 안 먹구를 떠나서 기분 문제지유. 글구 시방 지가 헌 말은 너무 분위기가 그래서 지가 어른님들 웃으시라구 헌 말이닌께 성님두 맴속에 담지 마세유.”
그러자 평소에도 성격이 너그러우신 준섭이 아버지가 실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나가 왜? 동상 맴을 모르것는가? 다 이리저리 웃자구 허는 말인 걸 내가 그걸 모르것는가? 그나저나 날랑은 고추밭에 일꾼들 먹을 점심밥 지게에 지구 가야 허닌께. 나 먼저 가 볼라네.”
준섭이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셔 고샅길 입구로 걸어가셨다.
종구네 집에서는 그런대로 일이 잘 풀려 가는지 먼젓번처럼 기성이형이 종구네 집 대문 밖으로 쫓겨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한편으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관계가 참 복잡 미묘한 것만 같았다. 어차피 올가실에 종구네 집과 옥순이네 집이 한집으로 합치게 되면 옥순이 어머니는 좋든 싫든 간에 종구와 정희누나에게 의붓어머니가 되는 것이고 종구와 옥순이는 의붓남매가 되며 정희누나와 옥순이는 의붓자매가 되니 기성이형은 옥순이 어머니에게 장모라고 불러야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니 옥순이는 기성이형을 형부라고 불러야 하니 기성이형은 또한 옥순이를 처제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어린 내 나이에 두 집 사이에 얽힌 그 잘난 촌수를 따져보는데도 그처럼 시간이 한참은 걸릴 정도로 어수선하기만 했다.
그중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느껴져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기성이형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직접 관여를 하였던 종구네 삼촌을 기성이형이 처삼촌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