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사 원체 기복이 심해 그렇다 치더라도 월복(越伏)이 들어 있는 해라 그런지 흐렸다 개기를 시나브로 반복하는 날씨는 늦여름까지 변덕을 자주 부렸다. 엊저녁 늦은 무렵까지도 창창하기만 하던 하늘이 밤사이 진회색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아침부터 끄무레한 날씨가 온몸을 묵직하게 내리눌러 온통 싱숭생숭했다.
게슴츠레한 해는 짙은 구름 사이를 겨우 헤집고 나오려 몹시도 바동거려 그토록 찬연했던 광채를 아둔하게 잃은 채 퉁퉁 부은 모습으로 멀쑥하게 떠 있었다. 그리고 산자락 아래로 부는 바람은 마냥 서늘키만 하여 조금은 선득선득하게 느껴졌다.
이내 가는 실비라도 한차례 내릴 것처럼 검은 구름들이 삼밭네 마을 쪽에서 밀려왔다. 텃밭에서 고구마 줄기를 한 아름 꺾어 드시고 사립짝을 들어서시던 어머니께서 하수선한 날씨가 영 탐탁지 않으신지 동쪽 끝머리 쪽 하늘을 두어 차례 훑어보시더니 오른쪽 손을 왼쪽 어깨에 얹어 두드리시며 혼잣말처럼 하셨다.
“비라두 한 무디기 퍼붓을라고 그라는가? 뭔 넘에 날씨가 이리 찌뿌둥허고 온 삭신이 들쑤신다냐!”
찌뿌듯한 날씨 탓인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무척이나 측은하게 보여 아침부터 험상궂게 흐린 하늘처럼 마음은 더없이 착잡하기만 했다. 조금만 삶에 여유가 있으면 비도 내리려 하니 이런 날은 하루쯤 푹 쉬셔도 좋으련만 네 식구 부양의 막중한 책임을 지신 어머니로서는 그 방법 말고는 살아나갈 길이 없었으니 이저리도 못하셨다. 그렇다고 눈에 빤히 보이는 현실이 각박하기만 하니 힘차게 하루쯤 장사를 쉬시라고 앞에 나서 말씀드릴 입장도 못되니 갑갑한 마음만 늘어나 한숨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참말루 세상에 뭐시 뭐시가 무섭다구 혀두 사람 목구멍이 제일로 무섭구먼. 자고 나면 하루하루가 다르게 푹푹 내려앉는 아랫목 쌀가마니만 쳐다보면 입으루 터져 나오는 게 한숨이구 느는 게 얼굴에 주름살뿐이니... 언제나 이놈의 팔자 허리 한번 쫙 펴구 살다가 죽을랑가 모르것네 그려.”
어머니께서는 못내 아쉬워하시는 얼굴로 아랫목에 놓여 있는 쌀가마니만 애꿎게 바라보셨다. 그리고 순덕이 어머니께서도 구름 잔뜩 낀 거무튀튀한 동쪽 하늘을 한차례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순덕이 어머니가 금새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이 영 미덥지 않으신지 엉거주춤하시며 햇볕에 말리려 손에 들고 계신 마른 나물들이 펼쳐진 싸리나무로 만든 널따란 채반을 이내 도로 쪽마루에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밭에서 꺾어 오신 고구마 줄기를 벗기시려는 듯 마루 한쪽에 밀쳐놓으시고 순덕이 어머니는 아침밥상을 차리시려 부엌으로 가셨다. 어머니는 품 안으로 찰싹 달라붙는 순덕이가 마냥 귀여우신 듯 머리를 쓰다듬고 계셨다.
비구름을 몰고 오는 바람에 자발스럽게 나풀거리는 잎사귀 사이로 제법 붉은빛이 도는 대추 알들이 바라보이는 울타리 너머로 ‘끼이익 끼익’ 자전거 브레이크를 세게 잡는 소리가 들려 본능적으로 머릴 들어 언뜻 바라보았다. 그리 풍성해 보였던 수박밭이 거의 다 비워지는 듯싶어 허전하게 느껴지는 원두막에 자전거를 타고 온 종구의 모습이 보였다.
종구는 동근이 아버지가 따 놓으신 듯 수박 두 덩이를 망태기 밑바닥에 풀을 깔아 조심스레 넣고 자전거 짐받이 뒤에 올려놓아 끈으로 야무지게 묶고 있었다.
기성이형네 집과 종구네 두 집 사이에 일이 잘 풀려 혹여 두 집안이 상견례라도 하려는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제는 종구네 아버지가 어린 외손주를 보고 마음이 약해지셔 늦게라도 세상을 순리대로 사시려고 쇠심줄 같은 고집을 꺾으시고 기성이형을 정식 사위로 맞아드리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을 나 혼자서 마음속으로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아침밥상을 물리시고 읍내 장터로 나가시려는 어머니가 개학을 며칠 앞두고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석유 기름을 사오라고 하시며 몸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셔 마루에 놓으셨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변함없이 젓갈 동이를 머리에 이시고 사립짝 밖으로 나가시는 모습에 가슴속 구석구석을 들쑤셔 놓는 아픔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둔덕 밭 자락엔 군데군데 노릇노릇해져 가는 감들이 주먹만큼이나 튼실하게 알이 차올라 탱탱한 땡감을 항아리 속에 뜨거운 소금물에 며칠 동안 푹 담가 놓으면 우려낸 감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면소재지 이발소로 가는 언덕 아래로 눈앞에 펼쳐지는 앞 들녘이 온통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벼 이삭들로 넘실거렸다. 그리고 밭둑에는 이따금씩 땅이 조금씩 갈라진 틈새로 아주 연한 붉은빛을 띤 고구마가 몸 한 부분을 조금씩 들춰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드문드문 띄었다. 발길이 풀숲에 스칠 때마다 메뚜기가 이리저리로 뜀질하는 좁다란 밭둑길 양쪽의 콩밭에는 누렇게 색이 변해가는 콩들이 통통하게 몸을 불려가고 있었다.
검회색 구름들이 잔뜩 끼어 한낮인데도 하늘이 음침해 보였다. 조금은 가파른 듯싶은 서낭당 고갯마루를 너머 면소재지로 이어지는 나들목 벼랑바위 앞에 닿았다. 그리 화사하지 않으니 눈여겨봐 주는 사람도 적지만 어여쁜 담황색으로 해마다 꿋꿋하게 피어나는 능소화가 불어오는 산바람에 얼굴이 간지러운가 여유롭게 몸 흔들며 여름 끝자락을 배웅하려는 듯해 보였다.
그 벼랑바위 앞 큰길로 내려서는데 마을 사람들은 물론 은 물론 면소재지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이제는 의장님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병수네 어머니께서 면소재지에 볼일이 있으신지 다가오셔 머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웨미, 이게 누구랴? 상민이 아닌감? 그래 오랜만이구나! 근디 시방 으디 가는 길이냐? 참 그리구 니 엄니는 장사 잘 다니구 계시지?” “예, 방학이 끝나 부려서 머리두 깎으야 허구 지름이 다 떨어져서 염씨네 점방에 가서 석유 지름두 살라구 허는 구먼유.” “그려, 암튼 공부 열심히 혀 가지구 난중에 큰 사람이 되야 혀, 그래야만 너땀시 맨날맨날 입에 단내 나게 그 쌩고생 허면서 장사 댕기는 니 엄니 한이라두 풀어주지 안 그러냐? 내 말이 맞지?”
병수 어머니께서 너그러우신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조금은 일이 바쁘신 듯 잰걸음을 하셔 면소재지를 향해 건널목 위로 오르고 계셨다. 전형적인 시골 아낙네처럼 늘 수더분한 옷차림으로 사셨던 병수네 어머니가 면소재지 출입이 잦아지면서 눈에 띄게 옷차림새에 변화가 일고 있었다.
겉으로는 무척이나 품위를 지켜 숙덕(宿德) 있게 보이려 힘을 쓰시는 듯싶었지만 외적으로나마 갑작스레 변해가는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예전처럼 쉽사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무엇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워 새로운 거리감이 나도 모르게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 옷차림새가 아직은 몸에 덜 밴 탓인지 동네 사람들 눈에는 어설프게 보이기도 했지만 사회적으로 권위가 있는 그 자리가 사람의 겉모습을 점차 변화시키는 듯했다.
그 어둡던 시절에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술이 거나하게 취하신 상태로 ‘한오백년’ 노래를 그리도 부르시고 다니셨을 때는 ‘또 취했구먼!’ 하면서 으레 그러려니 하고 뒤에서 수군덕거리며 비웃던 사람들이 병수 아버지가 비록 작은 기초 자치 단체의 의장이라도 한자리을 하고보니 전후 사정의 허물은 오간데 없어졌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을은 물론 먼 타동네 사람들까지 연줄을 타고 아침저녁으로 병수네집 문턱을 심심찮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병수 아버지를 찾아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탁을 하는지라 차마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 그랬는지 양봉 꿀에 볏짚으로 간조롬하게 묶은 날계란에 씨암탉과 때로는 중풍에 좋다고 소문이 난 오리까지 들고 오는 모습을 내 눈으로 여러 차례 보았다. 또한 철 따라 나는 과일들도 그리 지극 정성으로 싸 들고 오니 그 자리가 얼마큼 위력을 가진 자리인지는 내 어린 사고로는 구분키 어려웠으나, 아무튼 어림짐작으로 서슬 퍼렇게 보이던 지서장과 온후하면서도 근엄하게 보이는 면장 정도의 위력이 있는 자리로 보였고, 또 그렇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숱한 사람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리들 찾아오니 손님 대접을 하는 일도 예삿일이 아닌 듯싶었다. 어쩌다 읍내에서 좀 귀한 손님들이 오는 날에는 손님 대접을 준비를 하시려고 동네 아주머니 두서너 분이 부엌일을 도우셨다. 그래서 벌건 대낮부터 병수네 초가지붕에는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해마다 여름철에는 일거리가 별로 없어 여름이 다가도록 조용하기만 하던 담뱃대 만드는 공방도, 병수 아버지 얼굴로 주문이 많은지 쇠붙이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거의 끊어질 날이 없었다. 동네 어른들 말씀처럼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자기 사촌 동생이 그런 자리에 있다 보니 그런 덕으로 그런지 퍽이나 분주하게 보였다. 그리고 곰방대 만드는 집에 사는 면내에서 인물이 좋기로 널리 소문이 난 금실이 누나가 읍내에서 미용 기술을 배워서 미용 기술자 자격증만 따면 병수네 아버지가 면 소재지에 미장원을 차려 주신다고 하셔 읍내 미장원에 기술을 배우러 아침녘으로는 곱다란 자태를 뽐내며 논산 읍내 미장원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내 주위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병수네 아버지가 청렴결백(淸廉潔白) 하다고 제아무리 무슨 소리를 하여도 궁핍으로 찌든 그때의 내 어린 눈에 비친 그 모든 것들이 역시 부유함은 부유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처럼 느껴져 왠지 모르게 자꾸만 소외되는 듯했다.
그 어느 해 늦가을 밤에 술에 거나하게 취하신 몸으로 휘영청 밝은 달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바라보시며 두 귀로 듣기에 애절하리만큼 섧디섧게 ‘한오백년’ 노랫가락을 격 없이 부르시던 그때의 병수 아버지 모습이 더욱 그립기만 했다.
화창한 봄날엔 해마다 울안에 자목련이 곱게 피어나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약방 앞을 지나 이발소를 향해 걸었다. 얼마 전 면 소재지에 새로 생긴 성균이형 사진관 안에 기성이형이 군대 가기 전에 가족사진이라도 남기려고 그러는지 기성이형과 정희누나 모습이 보였고 종구도 옆에 있어 화목하게 보였다.
하늘에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음참한 날씨는 비가 올 듯 말 듯 하면서도 좀처럼 내리질 않고 하늘 한쪽에서 ‘우르르르릉’ 소리를 내며 천둥을 치고 그 소리가 가깝게 들리는 듯싶다 이내 소리가 작아지면서 천둥소리가 멀리 사라졌다.
그리고 면사무소 앞에는 교회 전도사님과 교인들이 모여 있고 그리고 근 한 달 정도 얼굴을 못 보았던 석란이와 정임이 얼굴이 보여 반갑기도 했다. 그 일행 중에 한동안 교회하고는 담을 쌓은 듯싶게 보이던 옥순이 얼굴도 보였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아마도 자기 어머니 문제로 여름방학 동안 동네 우물가에 물 길러 가는 일 빼놓고는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마음의 고통이 심하다 보니 무엇인가에 의지를 하려는 것 같아 애연스럽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어머니와 종구 아버지가 재혼하는 일에 내 어머니가 중간 역할을 하여 그 대가로 종구네 집에서 쌀 한 가마니를 얻어먹었다는 그리 유쾌하지도 못한 소리를 석란이에게 할까 싶어 노파심이 생겼다. 그러나 침착하게 생각을 해보니 우리 집 얘기가 나오려면 먼저 자연스레 자기 어머니의 재혼 이야기가 나와야 하기에 그것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더욱 크게 들어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이해가 조금 덜 되는 부분은 종구가 엄연히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교회에 가게 되면 서로 눈이 마주칠 건 뻔한데 물론 석란이가 찾아와 끌려오다시피 엉거주춤 따라왔는지는 몰라도 조금은 의아스러웠다.
그리고 어렸을 적 국민학교 시절 여름 성경 학교에 다녔을 때 배운 찬송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는 말처럼 참 신앙의 힘이 그리도 큰지 석란이가 물론 정들었던 고향이고 방학 중이라고는 하지만 이십 여 리가 족히 넘는 먼 곳에서 면소재지까지 자주 찾아오는 것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얼마 전에 종구가 동근이네 원두막에서 수박을 가져간 이유와 대낮부터 면소재지에 종구가 나와 있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능력 있고 권위 있는 목사님 한 분이 작은 교회 부흥 전도를 위해 귀한 발걸음을 하신다고 꼭 저녁 부흥회에 나와 달라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친구들 모두가 겉으로는 서로가 그 어떠한 이질감 하나 없는 막역한 친구 사이처럼 보이지만 불행하게도 내면적으로는 나와 종구와의 관계 그리고 옥순이와 종구의 관계는 그렇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펴 가며 좁은 동네 한울타리에서 살아야만 했으니 그저 답답하다는 말밖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두 집이 서로 합쳐질 때 옥순이와 종구의 관계 또한 서로가 그리 순탄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게 보였다. 그 모든 복잡스런 일들 모두가 불운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적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늘 마음 한구석으로는 구태의연하게 인습화되어 가는 시류에 어린 우리들 모두가 물들지 말고 돈독한 우정을 키워가는 그런 진부한 사이가 되길 마음속 깊이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