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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71 조회 : 961




날마다 정오 무렵이 되면 검은 증기기관차가 날카로운 기적소리를 산자락에 두어 번 남겼다. 그리고 마치 눈도장을 찍는 듯이 어김없이 마을 앞을 잽싸게 스쳐 지났다. 그런 다음 기차는 산모롱이를 가삐 휘어 돌아 잿빛하늘에 석탄 냄새가 물씬물씬 나는 검은 연기를 내뿜어 올리며 남쪽을 향해 질주했다.

하루해가 벌써 반나절이 지났다. 그런데도 구름 사이로 해가 꼭꼭 숨어 진력나게 흐린 하늘은 맑아질 기미를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검회색 비구름이 꽉 들어차 무겁게 내리눌러 앞산 봉우리가 나지막하게 깔린 구름과 술래잡기를 하는 듯 구름 사이로 보였다 안 보이기를 거듭하여 무척 갑갑했다.

산 아래로 펼쳐진 면 소재지에는 마을 한가운데를 양쪽으로 가르는 소달구지 길이 있었다. 자동차 두 대가 바짝 몸을 붙여야 겨우 빠져 나갈 정도로 비좁기만 했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길이 어스레한 날씨에 더욱 좁다랗게 보였다. 그 길 끝머리에 검은 콜타르칠을 한 지서 건물이 머쓱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룩진 이끼가 가득 낀 돌담 너머에 지서장이 살고 있는 일본식 관사가 단조롭게 보였다.

그 울타리 안에 석란이 아버지가 지서장으로 근무를 하셨을 때 심어 놓았다는 배나무 한 그루가 듬직하게 자리를 잡아 몇 해 동안 잘 자라난 모습이 담 너머로 넌지시 보였다. 검푸른 잎사귀 사이로 아직은 속살이 덜 차오른 배들이 가지에 당글당글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산 밑과 끝이 닿은 곳 작달막한 교회의 지붕 머리에 오뚝하게 솟아 있는 교회 십자가가 구름에 가려 흐릿하게 보였다.

끄무레하게 흐려진 날씨에 한차례 비라도 오지게 내릴까 싶어 서둘러 들녘으로 내려왔던 산비둘기 몇 마리가 나지막한 교회 지붕을 가볍게 스쳐 지난 후 마을을 거슬러 산자락 어느 쯤으로 날개를 활짝 펴 날아가고 있었다.

한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 하나의 집합체(集合體)를 이루어 살아가듯이 서로가 눈만 뜨고 나면 머리가 맞닿을 듯 작디작은 마을의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으면서도 종구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불신으로 가득 찬 마음에 서로의 사이에 싹트기 시작한 이질감 내지는 적대심으로 서로가 얼굴 대하기를 꺼려하며 무척이나 힘들고 지루하게 살아갔다.

그 모든 것들이 남기는 결과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을 스스로 가두려 들어 때론 스스로 외로워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막상 얼굴을 마주치게 되면 솔직 담대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스스럼없이 먼저 사과를 할 수 있는 도량은 못 갖추더라도 다소는 미안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함이 옳으련만 소갈머리 없이 가벼운 심사는 저마다 꼴값 사나운 자존심 하나 때문에 겉으로는 늘 태연자약(泰然自若)한 척 했다. 어쩌다 심한 경우에는 눈에 드러날 동 말 동 빈정거리며 늘 눈치만 살피며 살았다. 직접적인 원인이야 지난날 심한 몸싸움을 한 우리 둘의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허나! 좀 더 내면 깊숙이 파헤쳐 보면 우리들 뇌리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불신의 주요인(主要因)은 우리 윗세대들이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발로된 서로 간에 얽히고설켜 있던 구원(舊怨)이 응어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옳지 못한 여파(餘波)가 바로 아랫세대인 우리들에게까지 대물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모르고 천진스럽게 자랐던 어릴 적 한때는 동네 고샅길에 한나절만 안 보여도 궁금해 하면서 온 동네를 뒤져 찾아 나섰다. 그리고 서로 들붙어 앞으로 볼록하게 나온 배에 배꼽을 들춰내고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모르고 해맑게 웃으며 자랐다.

서편 읍내 하늘가에 해가 다 지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녘과 산으로 마냥 뛰놀며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서로가 알아서는 안 될 전쟁이 남긴 가슴 아린 비밀들을 알고 난 후부터는 마치 못 볼 것을 보는 것처럼 싫어하는 마음이 싹터 증오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표적의 집중이 종구였으니 자기 삼촌이 지난 날 저질러 놓은 만행의 업보를 자식 대에까지 물려 내려오는 것 같았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증오심을 이제는 모두 버리고 서로를 용서하며 살아야한다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수없는 반복을 거듭하며 듣고 배웠다. 그러나 그 점을 논리적으로는 익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추스르지 못한 감성이 늘 앞서기만 하던 어린 우리들은 각자의 감정에 더 쉽게 치우쳐 살아온 듯싶었다.

면소재지 옆에 붙은 새터 마을로 전도를 하러 가려는 듯 안경을 콧등에 걸치신 여 전도사님을 중심으로 교인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생긴 우체국 앞 오름길로 오르는데 그 일행 속에 석란이와 종구 그리고 옥순이 모습도 보였다.

종구와의 관계가 원만키만 하면 함께 어울릴 수도 있으련만 아직은 서로 어울리기엔 마음에 남은 감정들이 선뜻 용납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성급하게 어울리게 되면 나 혼자서만 동떨어질 것 같아 이런저런 생각에 조금은 외롭기도 했다.

네모난 작은 유리창 너머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발소에는 늦여름 철이라 손님이 없어 나른함 때문인지 이발소 주인아저씨가 빈자리에 앉아 고개를 한쪽으로 늘어트리시고 졸고 계셨다.

‘드르륵’하고 미닫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면서 오랜만에 서로 얼굴을 보게 되어 그런지 더욱 반갑게 맞아주셨다.

집에 거울이라고 어머니와 순덕이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손에 들고 바라보는 작은 손거울 하나 밖에 없어 좀처럼 내 얼굴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다. 모처럼 만에 머리를 깎으며 커다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니 자연스레 얼굴 한곳 한곳을 유심히 바라볼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잘생겼던 또한 못생겼던 어머니가 낳아주신 몸이기에 어느 곳이 내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닮았는가? 하고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그때 머리를 깎고 계시던 이발소아저씨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뭐시냐, 이번에 벼랑바위 앞 둔덕 밭에다 큼지막허게 기와집을 지은 집 아들이 너랑 국민학교 같이 다닌 동창생 맞지?”
“네 맞는디유. 왜그러셔유? 뭔 일이라두 있는감유?”
“뭔 일은 무신 일이 있것냐! 근디 아래께 느네 동네 사람들이 이발하러 와서 허는 말이, 그 집 딸내미한테 기성이가 이번 가실에 장가를 드는 모양인디 느그덜두 다 알구 있지?”
“글쎄유. 어떻게 될란가는 잘 모르것지만, 기성이성이 담 달에 군대를 간다구 허든디 어떻게 가실에 결혼을 한데유?”
“그 어느 핸가 가뭄에 논물 땜시 그 양반하고 기성이가 쌈박질이 벌어져서, 기성이란 놈이 자기를 논물에 꺼꾸루 처박았다구. 한동안은 이발만 하러 오면 이발이 다 끝날 때까장 이 사람 저 사람 다 들으라구 큰소리루 그렇게 죽일 놈 살릴 놈 허면서 그 황소 같은 고집에 끝장을 볼 것 같더니만, 멀쩡한 길 놔두구 뫼로 못 간다구 이제는 자기두 어쩔 수 없이 그 어린 외손주 땜시 승질을 죽여버린 모양이구먼.”

아저씨께서 머리를 다 깎으시고 면도를 해 주시려나, 나무 의자 옆모서리에 달린 기다랗게 납작한 쇠가죽 띠에 면도칼을 몇 차례 쓱쓱 문대어 깔끔하게 면도를 해 주셨다.

그리고 그 시절에 좀처럼 구하기 힘든 시멘트를 어떻게 구하셨는지? 자상하신 성격처럼 매끈하게 만드신 세면대에 머리를 숙였다.

향기가 조금 날 듯 말 듯싶은 세숫비누를 이발소아저씨가 머리에 잔뜩 묻혀 선천적으로 작으신 몸에 두 손으로 우악스럽게 문대셔 허연 거품을 잔뜩 내셨다. 그리고 함석으로 만든 둥그스름한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 헹궈 주시며 조심을 하였는데도 비눗물이 눈에 조금 들어갔는지 눈이 쓰라리게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 어른들이 이발하러 오시면 늘 사용하시는 전기 코드에 꽂아 쓰시는 둥그런 전기 드라이기는 쓰지도 않으시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 주셔 이발을 끝냈다. 거울을 다시 한 번 바라보니 이발을 안 하였을 때보다 영 어설프게 보이는 빡빡 깎은 머리가 참으로 볼품없이 너무도 우습게 보여 슬쩍 웃으면서 이발소 밖으로 나왔다.

하루해는 어느덧 오후 한나절을 넘겨 저녁녘으로 치닫고 있었다. 날은 더욱 거무스레해지고 용꽃 마을 주조장에서 면내 전 지역 마을로 술 배달을 하는 마차가 배달을 마쳤는가? 주조장으로 되돌아가는 흑자색 말이 끄는 마차가 방울 소리를 힘차게 울리며 우체국 쪽 오름길로 향했다.

면사무소에서는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는지 낯이 익은 면 직원 한두 분이 자전거를 타고 측백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면사무소 정문을 홀가분하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여름내 푸르딩딩하기만하던 청미래덩굴이 잎사귀 사이사이로 빨간 열매를 탐스레 내비치며 덥수룩하게 뒤덮은 언덕배기에 올랐다.

우묵골 둔덕 너머 펑퍼짐한 계단식 밭에는 곧 터질 듯이 알알이 달려 있는 수숫대와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차조가 머리가 무거운 듯 땅 밑으로 잔뜩 숙이고 있었다. 불어오는 산바람에 기다란 이파리들이 우수수 소리를 내어 적적해지는 마음에 눈을 모아 산자락을 바라보았다.
왠지 허전해지는 내 마음만큼이나 잔뜩 흐려 어둑어둑해져 가는 저녁 하늘 아래 내 아버지 영면해 계시는 그곳이 처연하게만 바라보였다. 그리고 지금껏 얼굴도 모르는 단 하나뿐이었던 내 누이가 묻힌 곳이 어디쯤일까? 한참을 골똘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그때 그 무엇에 놀랐는지 아래턱 밭에 숨어 있던 수꿩 한 마리가 그리 높게 날지도 못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 푸덕거리며 병막 터 뒷산 쪽으로 내리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늘 보아온 터라 한눈 안에 쏙 들어오는 내 고향 작은 마을의 모습이 바라보였다. 해거름 녘 동네 고샅길엔 하루 논밭 일을 마치고 지게를 지고 가시는 동네 어른들과 우물터에 물 길러 나서는 아낙네들의 잰 발걸음이 그리도 정겹기만 했다.

저녁밥을 서두르나 나지막한 초가지붕 굴뚝 위로 띄엄띄엄 저녁연기가 잔뜩 흐려진 날씨 때문인지 야트막하게 힘없이 흐트러지고 있어 정감 어린 그 모습도 놓치기 싫었다. 늘 그맘때면 서편 하늘가에 선홍빛으로 물들이던 노을마저도 밉살스런 구름이 덜컥 삼켜버려 그나마 한 줌 노을빛조차 볼 수가 없어 퍽이나 서운키만 했다.

생각보다 일찍 어두워지는 산골짜기 밤으로는 산골짝에 심심찮게 빛을 발하던 반딧불이는 다 어디로 숨었는지? 단 하나도 보이질 않고 가뭄에 물이 마를 대로 마른 계곡이 밑바닥을 거의 드러냈다. 군데군데 쌓여 있는 모래톱들이 밀려오는 어둠살에 희끄무레하게 바라보이는 더부룩한 풀숲 사이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청아한 밤을 서둘러 부르는 듯싶었다.

조금 멀리 작은 내 초가집이 가슴 울먹하게 작게만 바라다보여 애틋한 마음에 그래도 자잘한 정이 소록소록 묻어나 더딘 발걸음을 재촉했다.

달빛 하나 없는 산길을 혼자서 한밤중에 걷는 것도 좀 으스스하지만, 짙은 먹구름이 가득 들어찬 어스름한 산길도 그에 못지않았다. 손톱 같은 초승달 하나마저도 보이질 않아 작은 샛별은 더욱 보일 리 없는 초저녁 산길에 그리도 처연하게만 들리던 소쩍새 울음소리마저도 을씨년스럽게 들렸다.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호젓한 산길을 내려서며 슬슬 스며드는 무서움을 막아보려는 심사로 아일랜드 민요인 ‘아 목동아!’ 노래를 힘껏 불러 보았다.

‘거의 끝 소절 부분의 산골짝마다 눈이 내려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를 부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그것은 진정 온 주위가 어두워져 밀려오는 무서움만은 결코 아니었으니 무엇이라고 형언(形言)키 어려운 가슴 아려오는 한 가닥 진한 외로움 때문이었다.

어둑발이 다보록하게 내린 가파른 언덕배기를 내려서니 마당 한 모서리 허름하게 빛바래가는 뒷간 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주위의 어두움 탓에 더욱 또렷하고 하얀 모습으로 군데군데 보였다. 그리고 두서너 덩이 하얀 박이 달빛 한 자락 없는 밤에 뉘에게 보여주려나, 배를 불쑥 내밀고 있는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풋나무 타는 매캐한 냄새가 길모퉁이까지 번져나 굴뚝 언저리에 회갈색 연기가 힘없이 흐물흐물했다. 순덕이 어머니가 산을 내려오시며 풋나무를 한 짐 해서 내려오신 듯했다.

가뜩이나 지난번 종구 아버지 일로, 동네 사람들이 산에 나무를 하면서도 산지기에게 걸릴까봐 무척이나 조심을 하는 터라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사립짝 안으로 들어서니 비가 올 듯싶어 서둘러 장사를 마치시고 집으로 돌아오신 듯 어머니가 쪽마루에 앉아 등잔 받침대 위에 놓인 등잔불에 심지를 갈아 끼우시고 계셨다.

“너는 일찍일찍 좀 댕기지 않구. 그 잘나터진 면소재지에 뭘 그리 볼 것이 많다구. 늦게까지 꾸물럭거리다 이제서야 오냐?”

어머니께서는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내 모습이 못마땅하신 듯 가볍게 눈을 흘기시며 혀끝을 차셨다.

“뭐, 내가 헐 일 없이 노느라구 그랬는감? 낼 모레가 개학이라 밀린 숙제 좀 해놓고 보닌께 점심때가 훌쩍 지나버려서, 늦게서야 이발소에 머리 깎으러 가서 조금 늦은 걸 가지구 뭘 그리나무래키는지 모르것네. 참! 그리구 내가 진작부터 생각은 했지만 엄니 고생허는 거 생각혀서 차마! 말을 못했는디, 오늘일랑은 저녁밥 먹고 나서 엄니헌티 함 물어봐야 것네.”

내가 생각해 보아도 버릇없이 좀 퉁명스럽게 말을 하자 어머니가 조금은 당혹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참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라구 하네. 험한 세상 오래 살다 보닌께 인제는 자식새끼헌티까장 추궁(追窮)을 다 당하고 사네 그려. 그려 잘나터진 니놈이 나헌티 그리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대들며 씀벅씀벅 말허는 거 보닌께, 필시 니놈 뱃속에 뭐시? 꽉 들어차 있는 것 같은디 뭘밥 먹구 나서까장 기다린다냐? 이왕지사 니놈 입으로 꺼낸 말인께 그때까장 미룰 것두 없이 시방 싸게 말을 혀봐라. 나가 그 소리 안 듣구는 절대루 내 목구멍에 밥이 안 넘어가닌께 그리 알구 싸게 말을 혀봐.”

어머니께서 너무도 단호(追窮)하게 격앙(激昻)된 어투로 말씀 하시며 순덕이 어머니가 차려 오신 저녁 밥상을 마루 한쪽으로 밀쳐놓으셨다. 깊은 내막을 아직은 모르시는 순덕이 어머니가 무척이나 당황하신 얼굴로 나를 쳐다보시며 어머니께 얼른 잘못했다고 빌라는 눈치를 주시면서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무런 영문도 알 리 없는 철딱서니 없는 순덕이는 큰엄마와 오빠가 어찌 됐던 간에 그래도 배가 고팠던지 밥상으로 조르르 달려가 밥을 먹으려는 듯 밥숟가락을 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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