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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73 조회 : 894




마냥 더디 가는 늦여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어제 하루 내 검은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비가 실팍하게 내렸다. 그로 인해 온누리가 축축하게 빗물에 젖었다.
더불어 진종일 기분이 답답할 정도로 우중충했던 하늘이 좀처럼 본디의 제모습을 찾지도 못하고 그저 어정쩡하게만 보였다.

그런데 동쪽 산마루에 먼동이 터오자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개이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 뒤끝이라 그런지 구름과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파름파름하게 보이는 산자락을 휘감고 흐트러진 비단결보다 더 고운 운무(雲霧)가 새하얀 천을 한 자락 한 자락 풀어헤치고 있는 듯했다. 바로 어쩨까지만 해도 온산을 금새 삼켜버릴 듯 그리 억척을 부렸던 검회색 구름이 제풀에 지쳐 폭 감싸 안았던 산봉우리를 풀어 놓고 얼푸름하게 물러서고 있었다.
그렇게 실실히 흩어져 산자락을 내려선 구름조각들이 느림뱅이 걸음으로 들녘으로 향했다. 그리고 노르스름한 벼 이삭들이 촘촘하게 들어찬 들녘으로 꾸무럭꾸무럭 발걸음 했다.

아침부터 운무가 가득 낀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낮쯤엔 햇살이 만만치 않게 내리 쪼일 것 같아 꽤나 더울 듯싶었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해지면 검푸르죽죽한 풀잎에 해맑은 이슬이 맺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는 백로(白露)가 이제 코앞에 다가와 삼사일밖에 남지 않았다.

어젯밤 모처럼만에 실팍하게 내리는 비는 가을이 턱밑에 바짝 다가왔음을 알리는 전령(傳令)인 것 같았다.

동네 어른들은 백로까지는 제아무리 늦게 심어 놓은 벼라도 벼꽃이 하얗게 패야 농사가 된다고 하셨다. 물길이 사나운 뒤뜰 천둥지기 두서너 군데를 빼놓고는 마음에 들어찰 정도로 벼 작황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백로 때까지 태풍이 불어오지만 않으면 그해 논농사는 대풍년(大豊年)이 든다고 늘상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날이 맑게 개려 하는 조짐을 뭇 새들이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듯싶었다. 산자락 어디쯤에서 있는 수수밭으로 부산스레 날아드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귀에 따가울 정도로 들려왔다.

거름 냄새가 물씬 나는 두엄 옆에 서 있는 대추나무에는 살이 도톰하게 오른 대추알들이 불그레한 빛을 띄우며 점점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엄 속에서 멋모르고 사방으로 기어 나온 지렁이 몇 마리가 마당 위로 곰작곰작 기어 나왔다.
지렁이를 보고 제일 신바람이 나는 것은 토방 위에 있던 닭들이였다. 어느새 용케도 빨리 보았는지 득달같이 달려들어 서로 한 마리라도 먼저 삼키려고 날개를 푸닥거리며 심하게 다툼질을 했다. 그런 모습들이 싱겁게 보였는지 토방 위에 앞다리를 세우고 있던 검둥이가 머리를 들어 뻘쭘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되돌려 생각해 보면 실로 숨이 조여 올 정도로 답답하기만 했던 지난밤이었다. 어젯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밤의 침묵 속으로 깊이 빠져 든 늦을 무렵, 사립짝 밖에서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한동안 멍청히 앉아 있었다. 순덕이 어머니가 나오셔 비 맞지 말고 얼른 들어가자고 하도 성화를 하셔 방 안으로 들어와 광목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고 앉아 있었다.

쪽마루엔 어머니께서 흐릿한 남포등 불빛 아래 어둠 짙은 먼 산자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눈물만 지으시던 어머니가 가슴속 깊이 도사려 있는 한을 억눌러 다스리려는 듯이 긴 한숨 소리를 주위가 다 들리도록 크게 내시며 애써 담담하신 모습으로 계셨다.

이윽고 묵직하게 가라앉은 침묵을 깨시며 말씀하셨다.

“이왕지사 이리 된 것 어쩌것냐? 논배미 팔은 거 이제 와서 되돌려 놀 수두 없는 일이닌께, 니놈이 맴이 언짢터라두 참으야 혀. 시방 내 말 듣구 있냐? 낼모레면 니놈 방학이 끝나번져 2학기 수업료도 내야 허구, 이집 저집 쌀 빚에 걸려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면서 언제까장 살 수두 없으닌께, 그노무디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것지만 그기두 사람 사는 곳인디 뭐신들 발바닥 닳구 쎄빠지게 부지런히 움적거리면 막말루 설마헌들 우리 네 식구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것냐? 그래서 냘일랑은 나두 장사 안 나갈라닌께 나랑 같이 ‘까치 마을 삼거리’ 니네 외삼촌헌티 한번 찾아가보자.”

지난밤에 이런저런 북받치는 설움에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을 텐데 이십여 리가 훨씬 넘는 거리를 맨발 걸음으로 걸어가시려 서두시는 듯했다.

여느 날보다 일찍 일어나신 어머니가 특별하게 나들이하실 때만 꺼내 쓰시는 읍내에서 젓갈전을 하시는 재숙이 어머니한테서 선물로 받으신 미군 부대에서 나왔다는 미제 럭스(lux)비누로 세수를 하셨다. 어쩌면 그리도 빨리 콧속으로 쏙 들어오는 향긋한 냄새가 흙냄새와 석유 기름 냄새로 가득 찌든 좁은 방 안으로 퍼져 나고 그동안 입고 계셨던 옷자락 올마다 땀내와 젓갈 냄새가 진득하게 밴 옷을 훌훌 벗으셨다. 그리고 아랫목에 놓인 반닫이 문짝을 열어 새 옷을 꺼내 입으시고 순덕이 어머니가 일찍 지어놓으신 아침 밥상에 둘러앉아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화목한 분위기 속에 어젯밤에 있었던 복잡한 감정은 티끌 하나 없이 털어버렸다.

‘달그락달그락’ 밥사발에 노란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데 밥을 드시던 어머니가 내 앞에 놓인 밥그릇에 밥을 듬뿍 덜어주셔 조금은 의아스런 눈빛으로 의아스런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네깐 놈이 뭐 으디 잘나구 이뻐서 내가 덜 먹구 니 밥그릇에다 밥을 덜어주는지 아냐? 자식이 크면 상전이라구. 그 먼디까장 길을 가다보면 배가 고플까 봐 미리 챙기느라구 주는 거여. 그러니 그리 알고 어여 먹어.”

어젯밤처럼 때로는 내 모습이 얄밉기도 하시련만 당신이 몸 아프게 낳은 자식 그나마 하늘 아래 땅 위에 단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라고 그렇게 챙겨주시려 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마음이 부듯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 네살박이라 이 눈치 저 눈치를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은 순덕이가 어머니께서 다른 날과는 달리 새 옷을 갈아입으시자 분위기가 좀 이상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어머니가 입고 계신 검정 몸뻬 옷자락을 붙들고 같이 따라나서려는 듯 방문을 먼저 열고 나와 서둘러 신발을 찾아 신으려 했다. 저 혼자서 토방으로 내려서려고 엉덩이를 뒤로 쑥 내어 밀고 조심스럽게 쪽마루를 두 손으로 디디고 엉거주춤 내려서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온 식구들이 순덕이 저를 쳐다보고 웃자 저도 따라 기분이 좋은 듯 배시시 웃고 있어 어머니가 두 손으로 얼른 끌어안으셨다.

“아이구 내 새끼가 요로콤시루 다 컸네 그려. 그래두 지 큰에미라구 따라나설려구 허는 것 좀 봐. 참 기특허기두 허지.”

어머니께서 순덕이 얼굴에 얼굴을 맞대시고 몇 차례 비비셨다. 각박하게 살아가는 고된 삶 속에서도 네살박이 어린 아이의 티 없이 맑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따스한 정에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 가득 쌓였던 긴장을 푸시는 듯했다. 그렇게라도 잠시인들 고행(苦行)의 여정 속에 쉼표를 찍으시려는 것 같았다.

남들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단출한 삶으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네 식구의 숨결이 따스하게 배어나는 쪽마루 위에 살포시 아침 햇살이 다가섰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빠네 집에 찾아가신다고 그새 중간에 순덕이 어머니가 산에서 뜯어 오셔 여름 햇볕에 잘 말리신 산나물과 얼마 전 초여름에 텃밭에서 캐온 알이 실팍한 마늘 꾸러미를 챙기셨다.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주고만 싶으셨는지 아침마다 추녀 밑 둥우리에서 꺼내와 순덕이 밥에 넣고 간장에 비벼주시느라 몇 알을 쓰고 그동안 아껴 모아두셨던 계란을 볏짚으로 곱게 묶은 계란 꾸러미를 챙겨 드시고 사립짝을 벗어 나셨다.

그런데 순덕이 어머니가 나를 부르셔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순덕이 어머니가 손에 들고 계시던 약간의 용돈을 내 손에 건네주시려 해 얼른 뿌리치고 계란 꾸러미를 들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러자 순덕이가 같이 따라나서려고 사정없이 울며 떼를 쓰자 순덕이 어머니가 순덕이를 등에 업으셔 억지로 달래셨다.

먼 길을 가는데 배가 고프면 뭐라도 사 먹으며 요기라도 하라고 주셨는데 그냥 뿌리치고 나서는 내가 마음에 걸리셨는지 사립짝 앞에서 한참동안을 멍하니 쳐다만 보고 계셨다. 그런 순수한 순덕이 어머니의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져 뒤돌아 바라보았다. 내가 한 손을 높이 들어 흔드니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순덕이 어머니도 병막 터 길모퉁이를 돌아서 어머니와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어찌 보면 이제는 정이 들 대로 깊이 들어 친이모처럼 느껴지는 순덕이 어머니가 나를 생각하셔 주시려는 성의는 고마웠지만 훗날 순덕이가 자라서 국민학교에 들어가면 쓰신다고 그토록 몸이 피곤하시게 모아 놓으신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어쩌다 드물게 비가 내리는 날만 빼놓고 날마다 산에 오르셔 나물을 뜯어 오셔 솥에 넣고 삶아 양지 바른 쪽에 말리시고 해가 질 무렵이면 걷으셔 또 날이 밝아오면 다시 말리시길 수없이 반복하셨다.

봄에는 쌉싸름한 엄나무 순을 꺾어 오시고 취나물도 뜯어 등에 한 짐 가득 지고 오셨다. 그리고 여름 한철에는 싸리버섯과 검게 익은 오들개까지 따 모으시고 가을철엔 표고버섯과 갓버섯을 따시며 도라지도 캐시고 운이 좋은 날에는 굵직한 더덕도 캐오셨다. 그 모든 것들을 어머니께서 읍내 장에 내다 팔아 주시면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돈을 판판하게 펴셔 조금씩 모으시는 것을 내 눈으로 수없이 보았기에 차마 받을 수 없었다.

둔덕 아래 우묵하게 파인 병막 터를 지나려니 밤사이 내린 빗물에 축축이 젖은 고구마 이파리에 채 마르지 못한 빗물 방울이 동글동글하게 맺혀 구름 틈새를 비집고 나온 아침 햇살에 새치름하게 비춰 마냥 곱살하게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는 여치가 해말끔한 이슬을 찾아 나섰는지 조금씩 노릇노릇해져 가는 콩 잎사귀 위에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길가 풀숲에 제법 길게 목을 쭉 내밀고 있는 강아지풀 머리끝엔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매달려 목을 슬쩍 내밀어 이리저리 살펴보는 듯싶다 껍질 속으로 머리를 거둬들여 쑥 움츠리고 있었다.

기다랗게 우묵 들어간 비석골 골짜기에는 떡갈나무와 박달나무가 덥수룩하게 숲을 이뤄 왼쪽 둔덕 너머엔 길쭉길쭉한 수숫대 사이로 상여집이 음산하게 바라보였다. 국민학교 졸업반 시절 밤늦도록 과외 공부를 마치고 달빛조차 흐린 밤에 옥순이와 같이 무서워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생각이 떠올랐다. 무서움을 이기려 부끄러움이라는 것도 아예 모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몸이 딱 달라붙었다.
그리고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들을 소리쳐 불러도 겁에 잔뜩 질린 옥순이는 입으로 겨우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만 내었다. 마음속으로는 가뜩이나 어두워 겁이 잔뜩 나는데, 그나마 위안이 되던 보름달마저도 구름 사이로 들어가 주위가 조금 더 어두워졌다. 옥순이는 배고픔을 꾹 참고 소리를 질러대는 내 얼굴을 슬쩍 바라보며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이곳 채화리에서 외삼촌댁이 있는 까치 마을 삼거리 ‘연무대’가 먼 산 아래 희끄무레하게 보이건만 이곳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편도가 약 이십여 리 정도이니 왕복으로는 오십 리 가까이 되는 거리였다. 그다지 멀게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면소재지에서 직접 그곳으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 그곳으로 걸어서 가지 않으려면 논산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곳 연무대로 가려면 흙먼지 부옇게 일어나는 비포장도로를 삼십여 분 정도를 달려 그곳 논산 버스 정류장에 내려 다시 연무대로 향하는 버스를 갈아타고 울퉁불퉁한 자갈길 비포장도로를 은진 미륵이 있는 은진면을 거쳐 삼십여 분을 달려가야 그곳 연무대에 닿을 수 있었다.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은 기차를 타고 갈 수는 있는데 마을에서 들녘 한가운데에 외떨어져 있는 채운역으로 가려면 거의 오 리 길이 되었다. 그리고 하루에 겨우 3번 왕복을 하는 기차를 타고 이십여 분을 덜컹거리며 가야 연무대역에 닿을 수 있는데 그 연무대역이 일반 다른 역과는 달리 시내 중심가와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 말 그대로 백제의 옛 터전 황산벌답게 뻘건 황토가 송두리째 들여다보이는 비포장도로를 다시 십여 분을 걸어가야 그곳 면소재지의 중심가에 닿을 수 있었다.

훗날에서야 그 이유를 상세하게 알게 되었지만 강경역에서 채운역을 거쳐 연무대역으로 가는 아주 짧디짧은 ‘강경선’은 철로를 연결한 목적이 일반인들의 교통과 소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고 오로지 군부대의 병력 이동과 군수물자 운송을 목적으로 개통이 되어 자연스레 군부대가 운집해 있는 외곽 지역에 연무대역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곳 연무대 시장 터에서 싸전을 하시는 외삼촌댁에 가려고 이른 아침부터 너무 일찍 서두른 탓인지 동네에서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에 다음 해 봄에 상급 학교인 중학교에 진학을 준비를 하고 있는 우물가집 인식이와 뒤뜰에 상수리나무가 있는 집에 사는 상수가 아직까지도 냇둑 길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왕복 오십 리 길을 걸어가야만 되고 또 그곳에서 어머니가 볼일을 보시려면 꽤나 시간이 걸리실 것 같아 일부러 일찍 나선 것 같았다.

복스럽게 내리쪼이는 아침 햇살에 개울물이 번득번득하게 금빛 무늬를 가득 채우고 저 멀리 천오백 년 백제의 한을 담고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어느 기점에서 조우를 하려 말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 후 왼쪽으로 곧장 가면 이번에 새로 개설한 작은 우체국을 지나 면소재지 중심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새터 마을이 나오는 나들목에 닿을 수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 너머로 지난 육 년 동안의 추억들이 다복하게 담겨 있는 모교인 국민학교 검정 콜타르칠을 한 건물이 바라보였다. 잊은 듯이 잠시 멈춰 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새롭게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언제나 변함없이 사방으로 육중한 성곽처럼 둘러 서 있는 측백나무 울타리를 끼고 돌려니 6학년 때의 꿈과 정이 담겨 있던 교실 한 모퉁이가 측백나무 틈새로 아쉬울 만큼 보였다. 지난날 그리도 스스럼없이 웃고 울며 뛰어놀았던 옛 동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영선이 생각이 문득 났다. 특이나 종구와의 싸움 사건으로 그리도 지지리 속을 많이 썩여드려 지금까지도 미안스럽고 고맙기만 한 담임선생님 얼굴이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뗄 때마다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절대 빈곤을 탈출하지 못하여 암울키만 하였던 그 시절 산과 들에 자연적으로 나는 열매 정도가 겨우 간식거리였다. 아무리 아침밥을 많이 먹고 학교에 가도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장 몇 바퀴만 뛰어다니고 나면 배가 푹 꺼져 점심시간이 아직은 멀었는데도 벌써부터 배가 고팠다.
눈 빠지게 기다리던 점심 도시락을 먹은 지 꽤나 오래되어 선홍빛 저녁노을이 교실 유리창에 불그레하게 물들려 하면 저녁밥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래도 중학교 진학 공부를 하느라 운동장엔 어느덧 어둑발이 가득 내려앉아 주위가 거무스름했다.
교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붉은 전구 알이 흐릿하게 비치는 교실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벌써 집의 밥상 앞에 가 있는데 수업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자연스레 저녁밥 끼니를 넘겨버려 가만히 있어도 텅 빈 뱃속에서 자꾸만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나 그토록 배가 고팠었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추한 세태에 전혀 때 묻지 않고 티 없이 자라났던 그 시절이 더할 나위 없이 그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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