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무구(淸淨無垢)한 하늘 아래 아침마다 둥그런 해가 떠오르는 동쪽 소릿재가 눈앞에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이십 여리 남짓하게 떨어져 있는 조금은 먼 듯 느껴지는 거리지만 마음은 벌써 그 산자락 아래 연무대(鍊武臺)에 닿아 있는 것 같았다.
굳이 표현을 한다면 그 설렘은 외삼촌댁에 간다는 생각 보다는 늘 먼발치에서 보았고 나름대로 상상만 했던 또 다른 곳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내지는 신비로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눈과 마주칠 수 있는 눈요깃거리가 심심찮게 있는 도회지 길보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한적하다 못해 쓸쓸하기만 한 시골길을 걷는 것이 더 힘들고 지루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거리가 거의 엇비슷한 길이라도 시골길이 더욱 더디기만 했다.
학교 울타리를 돌아 새터마을에 이르니 대장간에서 두들기는 무딘 망치 소리가 짱짱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지난 국민학교 시절 때 묻지 않은 꿈이 다복 쌓였던 모교의 건물이 반갑게 눈에 보였다. 방학 중이라 그런지 텅 비어 있는 교정이 허전하게 보여도 운동장 어디쯤에서 귀에 익은 정다운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내년에 있을 입시 시험 준비를 하느라 학교로 가는 한 해 아래인 육학년 학생들의 눈에 익은 모습들이 길 위에 하나둘씩 보여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스쳐 지났다.
서두는 발걸음은 목적지인 연무대까지의 중간지점 정도가 되는 눈앞에 빤히 바라보이는 채운면 우기리 가짓골 언덕바지로 향했다. 그리고 애송목들이 참한 모습으로 군락을 이뤄 다복하게 서 있는 새터 마을 동네 어귀를 벗어났다.
지난해 국민학교 졸업반이었던 늦가을 교실 난로에 땔 땔감이 부족하여 그 겨울을 따뜻하게 나려고 우리들 모두가 솔방울을 주우러 갔던 남산리 뒷산이 층을 이룬 논다랑이 너머로 보였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채운면과 맞닿아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은진면의 끝머리 방축리 토끼재 마을이 눈앞에 나타났다. 큼직큼직한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솔숲 사이로 예닐곱 가구가 오붓하게 머릴 맞대고 있는 비록 작은 동네일지라도 마냥 정겹게 보였다.
야트막하게 둥그스름한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자락 끝에 아주 단출하게 몸을 바짝 붙인 초가집들이 산자락 반비알진 밭에 듬성듬성 서 있는 원두막과 더불어 나름대로 운치를 돋우었다. 서로 옹기종기 바짝 들붙어 작은 마을, 그곳이 바로 옥순이 어머니가 우리 마을로 시집을 오시기 전까지 사셨다는 친정집이 있는 토끼재 마을이었다. 비록 동네 규모가 한눈에 들어차고도 남을 만큼 작을지라도 시원스레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 따라 산뜻하고 알차게 보였다.
그리 높지도 않아 나지막하게 바라보이는 냇둑 너머 둥구나무 옆에 용꽃마을 주조장의 함석지붕이 부챗살처럼 퍼져나는 아침 햇살에 뻔득거려 부유한 티를 잔뜩 내었다. 그쯤에서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 가느다란 새끼줄을 늘여 놓은 것처럼 호남선 철로가 아득하게 바라보였다. 철로 위를 달려 남쪽으로 가는 성냥갑처럼 작게 바라보이는 증기기관차가 내뿜는 검은 연기가 아직은 풀기가 가득 서린 들녘 하늘 위로 실타래처럼 실실이 흐트러져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금강과 바로 맞닿은 샛강을 건너는 철교를 묵직하게 바치고 있는 교각 사이 작은 공간으로 내가 사는 마을 남쪽 끝머리집인 기수형네 집 참나무가 마치! 성냥꼬투리만큼이나 작은 모습으로 게슴츠레하게 보였다. 그런 작은 모습 하나에서도 새삼스레 가슴을 파고드는 고향에 풍취를 아늑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녹색 토끼풀이 즐비하게 뻗어나 초록색 고운 비단자락을 펼쳐놓은 듯 보이는 냇둑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두어 걸음 앞을 서 걸어가시던 어머니가 뒤로 고개를 가볍게 돌리셔 나를 힐끔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리 덥냐? 쪼매만 참거라. 나두 초행길이라서 잘은 모르것다 만은 자기들 아들 면회 갔다 오느라 한두 번 댕겨온 동네 사람들 말로는, 저기 빤하게 바라뵈는 가짓골 언덕 날맹이 밑에 시원한 물이 팡팡 솟아올라오는 동네 샘터가 있다닌게, 쪼그만 참구 가서 시원한 물 한바가지 푹 떠서 목 좀 축이구 뜨끈거리는 얼굴이라도 적시고 쪼매 쉬었다 가자.”
겨울 낮보다는 해거름이 길어진 여름 낮이지만 하루 동안에 왕복을 하여 다녀와야 하기에 마음이 퍽이나 급해지신 듯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뒤를 따라가는 내 눈에 땀에 젖은 어머니의 얇은 저고리가 군데군데 등짝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푸석거리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걸어가시는 발이 땀에 젖어 ‘삐직삐직’ 하는 소리를 내는 흰 고무신에 억겁의 세월을 살아오신 내 어머니의 한이 흠씬 배어 있었다.
틈새를 두지 않고 쫀쫀하게 내리비치는 강한 햇살에 잘 달아올라 발밑으로부터 후끈거리는 지열(地熱)로 낮 더위가 기승을 부리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타는 갈증에 입 안이 바싹 타들어 가도록 제법 걸어온 듯싶은데도, 눈앞에 뻔히 바라보이는 동쪽 소릿재 산릉선은 제아무리 걸어가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물참나무, 아카시아 나무 같은 잡목들의 검푸른 잎사귀가 울창하게 들어선 내가 살고 있는 같은 채화면의 변두리 동네인 우기리 마을 어귀에 닿았다. 국민학교 졸업반 시절 그리도 우직하게 힘이 세도 묵묵하게 반 아이들과 잘 어울렸던 성태와 곧잘 웃음보따리 터트리는 짓을 하여 인기를 끌었던 응선이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잠시 동네 안 고샅길로 들어서기만 하면 그립던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도 있지만 어머니와 함께 가는 길이라 친구들과의 만남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아쉬움을 그쯤에서 접어야만 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을 앞에 외롭게 서 있는 느티나무 성깃성깃한 잎사귀 사이로 바라보이는 파란 하늘 조각마저도 틈새를 파고드는 햇살에 눈이 가득 시려와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타는 듯 목이 말라 동네 어귀 우물가에 황급하게 내려섰다. 길섶 콩 이파리에 까만 실잠자리가 꼬리를 바르르 떨며 내려앉았다. 그러자 실잠자리를 잡으려고 긴 다리에 힘을 주고 잔뜩 벼르던 사마귀가 인기척에 놀랐는지? 불룩하게 불러진 배를 질질 끌고 어기적거리며 달아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타래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셔 입을 대시고 한참 동안 벌컥벌컥 마신 후 물이 흥건하게 차 있는 타래박을 이내 나에게 건네주셨다.
“에휴. 이제는 세상 살 것 같다. 근디 낼모레가 백로라는디두, 뭔 놈에 날이 원수 척졌다구 수구려 들 줄 모르구 가마솥에 빨래 쌈듯 푹푹 쪄 내린다냐?”
어머니께서 둥구나무 밑에 놓인 둥그스름한 작은 바윗덩어리 위에 쌓인 면지를 입으로 훅훅 불으시고 앉아 쉬시는데 이제 철이 다 지나서 그런지 힘없어 보이는 매미소리가 느르적느리적 들려왔다. 예닐곱 개 해바라기가 가지런히 목을 치켜들고 쨍쨍 내리쪼이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길가에 단출한 동네 이발소가 보였다. 그런데 주인인 듯싶은 아저씨가 창문 밖으로 걸어가는 어머니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이발소 옆에 바짝 달라붙어 반쯤 기운 듯해 보이는 헛간 앞뒤로 삐쭉삐쭉 무성하게 자라난 명아주가 왠지? 모르게 적요(寂寥)하게만 바라보였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 새하얀 목화솜처럼 마냥 부풀어 오른 솜털구름이 유연하게 흘러가는 그리 높지 않은 고갯마루 성황당에 올랐다. 고개를 넘느라 오고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쌓아 모은 돌무더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어 나도 한참을 두리번거려 풀숲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찾아 돌무더기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넘었다. 한줌 시원한 바람결에 풍기는 진한 인분 냄새가 얼굴을 찌푸리게 하여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널따랗게 펼쳐진 잡곡 밭들이 눈에 보이고 군데군데 네모지게 깊이 파여진 웅덩이에 인분이 가득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토록 많은 양의 인분이 그 작은 동네에서 나올 리는 없어 궁금하게 느껴졌는데 앞을 서 걸어가시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참말루 을매나 많은 군인들이 먹어댔으면 나오는 인분이 저리두 많을까? 우선 간에 콧구멍으루 냄새 맡기가 영 그렇다마는, 어찌 돈을 쪼매나 주구 사오는 건지. 아니면 어차피 치워야 되는 인분이라 군인들이 차루 그냥 실어다 주는지는 모르것지만, 그래두 여기 사는 사람들은 밑거름 하나는 별루 애 안 쓰구 구하는 모양이네 그려. 그러닌께 저 너른 밭에다 밭농사를 배가 터져라구 짓지.”
그만그만한 잔솔들이 가지런하게 들어선 둔덕 모퉁이에서 트럭의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길모퉁이를 갓 벗어난 녹색 칠을 잔뜩 한 군용트럭 한대가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느긋하게 달려오는데 군용트럭이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구린내가 더 세게 퍼져났다. 어머니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른 코를 손으로 쥐고 틀어막아 날아오는 흙먼지를 피하려 몸을 뒤로 돌려 길가 한쪽으로 피했다. 그러자 군용트럭이 땅바닥 위에 인분이 묻어난 물을 질질 흘리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밭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밭주인처럼 보이는 아저씨의 손짓을 따라 이내 미리 파놓은 듯싶은 밭고랑으로 덜컹덜컹하며 들어서고 있었다.
동네에서 어른들이 밭으로 지고 나르시는 인분 통을 몇 십 개 합쳐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커다랗게 쇠로 만든 둥그런 통 안에 인분을 저토록 많이 싣고 오는 것을 보니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군인들이 모여 작은 도시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이제 얼마 후면 그 규모를 눈으로 직접 보겠지만 참으로 군인들이 많기는 많은 듯싶었다.
군용트럭이 지나갔지만 공기 속에 남아 떠도는 분진 속에 배어 있는 역겨운 냄새는 쉽게 가시질 않았다. 그런 탓인지? 말로만 들어오던 생소한 도시를 난생처음 찾아가는 길치고는 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동네에서 자라나면서 늘 산자락 끝머리에 잇달린 조그마한 계단식 밭에 눈이 익었던 지라, 그곳의 널따란 밭도 마을 앞 들녘처럼 그렇게 넓지는 못했다. 붉은 황산벌답게 온 사방으로 어느 정도는 시원스레 펼쳐진 널따란 밭엔 잡곡들이 넉넉함이 넘쳐날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날아드는 산비둘기와 이름 모를 산새들이 수없이 번차로 날아들며 귀가 따갑게 울어대고 가끔은 ‘포롱포롱’ 소리를 내며 하늘로 자유롭게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 어디쯤에서는 수꿩의 울음소리도 들려오고 이따금씩 소릿재 산 밑 아래에 있는 군 사격장에서 훈련병들이 사격 연습을 하느라 수없이 총을 쏘아대어 콩을 볶는 듯이 총소리가 들려와도 새들이 두려워하지 않아 이상하리만큼 면역이 잘되어 있는 듯싶었다.
방금 전 트럭이 엔진 소리를 높이며 기를 쓰고 올라섰던 언덕마루를 숨이 차오르게 넘어 비탈진 길을 내려섰다. 눈앞에 불그레한 철조망 울타리가 네 귀퉁이로 끝없이 둘러진 군부대가 보였다. 군부대 안에서 들려오는 훈련병들이 부르는 듯싶은 귀에 낯선 군가가 우렁차게 들려오고 푸른 군복을 입은 기간병들이 오고 가는 발걸음이 힘차게 보였다.
그리고 길가를 달려 어디로 가는지 군용트럭들이 자주 눈에 띄어 이십여 리 길을 그리 아침 일찍부터 나선 시오리길을 걸어와 도심 외곽 입구에 있는 군부대에 닿았다. 그러나 작은 도시 중심부까지 가려면 아직도 오 리 정도를 더 가야만 하니 참으로 넓기는 넓기만 한 곳이었고, 이제 조그만 더 걸어가면 연무대 시내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한두 해를 지난 후에 상세하게 알게 되었지만 한국전쟁 중에는 제주도에 처음으로 세워졌던 육군훈련소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끝나 휴전이 되자 정부에서는 충청남도 논산군 구자곡면 황산벌에 강병육성의 요람지인 논산육군훈련소를 세웠다. 피와 땀이 나는 훈련을 거쳐 강병을 육성하여 전국 군부대로 배출하여 국방의 근간을 이뤘다.
무예를 갈고 닦는 수련의 터라는 의미로 그곳의 지명을 연무대(鍊武臺)라고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셨던 이승만 박사가 처음으로 지었다.
연무대는 지형이 동쪽 산머리 소릿재로부터 아홉 골짝으로 시원스럽게 뻗어내려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듯 아늑하고 포근한 모습이었다. 훗날 그곳 동네 어른들로 부터 아홉 골짜기 따라 ‘자손들이 아홉 명씩이나 장성하도록 번창한다.’하여 면 이름을 구자곡면이라고 지었다는 말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들었다.
그리고 부대 안에는 철제 구조물로 세워 아주 두꺼운 철판으로 지붕과 벽을 둘러 둥그렇게 지어 놓은 국방색 페인트칠을 한 막사가 줄을 지어 늘어 서 있었다. 막사 안에는 군인들이 아직은 기승을 부리는 늦더위를 피하려고 반팔 러닝 차림으로 모여 앉아 있었고 사방으로 둘러쳐진 철조망 군데군데엔 ‘접근금지’라는 붉은 페인트로 써 놓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철조망 네 군데 구석엔 철모를 쓰고 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 보초병들의 모습이 눈에 띄어 조금은 삼엄하게 보였다.
부대 울타리를 끼고 돌아 정문 앞에 이르자 정문 앞에는 굵은 쇠사슬이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로막고 부대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들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었다. 군기가 똑바로 잡혀 서 있는 자세가 각이 잡힌 위병이 총을 들고 위엄 있게 서 있고 ‘위병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자그마한 초소 안을 들락거리는 계급이 조금 높아 보이는 군인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부대 앞 정문 간판에는 ‘육군 제2 훈련소 수용연대 배출대대’라고 쓰여 있었다. 이미 전반기 6주간의 교육을 마친 훈련병들이 부대배치를 앞두고 대기를 하는 곳이었다.
호남선 철로 가에 사는 우리들이 이른 아침 첫차의 기적소리로 하루를 시작하여 고요 속에 깊이 빠진 밤의 정적을 깨트리며 마을 앞을 달리는 마지막 화물열차의 소리를 들으며 잠을 이루듯이 그곳에 사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도 눈만 뜨면 귓가에 들려오는 훈련병들의 힘찬 군가 소리로 아침의 장을 열고, 한낮에는 귀가 따가울 정도로 진절머리 나게 사격장의 총소리를 들으며 불그레한 노을빛이 훈련병들의 등 잔등에 너울질 때 다시금 들려오는 군가 소리로 하루해를 마감하며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동쪽 머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 뒷산인 마산이라는 곳의 사격장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총소리와 길 위를 오고 가는 활기찬 군인들의 발걸음과 좁다란 시내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큰소리 내어 부르는 군가 소리 그리고 황산벌답게 붉은 흙먼지가 이는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군용트럭의 엔진소리가 조금은 어색하고 낯설기만 했다.